소설리스트

천방 (329)화 (329/385)
  • 329화. 꿈이 깨진 유신지

    루안은 웃음을 머금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달은 그제야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완전히 이해했다.

    “쪽지를 건넨 그 어린 스님도 자네 사람이었군. 그 아이가 편지를 훔쳐 가는 바람에 나는 세자 앞에서 해명할 길이 없어졌어!”

    소달은 세자비와 만나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말했지만, 세자비의 금비녀는 본인의 등에 꽂혀있었다. 소달은 누군가가 광명사에 오라고 편지를 보냈다고 말했지만 그 서신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소달이 했던 말에 부합하는 증거가 하나도 없어 소달에 대한 세자의 믿음은 결국 사라져 버렸다.

    “자네는 이렇게 나를 해치고 또 내 사람들마저 가져가려 하는 건가?” 

    소달은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문신들은 정말 체면도 없는 것인가!’

    하지만 루안은 태연한 표정으로 전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자네는 원하는 것이 있고, 나는 의지할 데가 있으니 마침 각자 필요한 것을 취하는 것이 좋지 않나?”

    소달은 이 가증스러운 얼굴을 노려보다가 마침내 무너졌다.

    상대방이 자신을 음해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솔직히 말해서 강왕세자가 냉혹하고 매정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자신이 세운 공로를 내세워 어떻게든 변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소달은 하필이면 요 몇 년 동안 강왕부를 위해 온갖 나쁜 짓을 다 하느라 도움을 청할 친구 한 명조차 없었다.

    게다가 루안이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증거를 수집한 것을 보면 오래전부터 자신을 제거할 이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자네가 나한테 이런 짓을 했는데 나더러 자네를 어떻게 믿으라는 건가?”

    소달이 말했다. 루안이 미소 지었다. 

    소달은 마음이 흔들렸다.

    “나를 못 믿어도 상관없네, 자네는 한 사람만 믿으면 되네.”

    “누구 말인가?”

    “정국공.”

    소달은 깜짝 놀랐다.

    정국공부는 대순의 개국공신으로 이미 백 년 동안이나 흔들림 없이 줄곧 병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부귀를 유지할 수 있는 정국공부라면 당연히 의지할만했다.

    그들은 황권 투쟁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고 황제의 명령만을 따랐다. 설사 그들이 대장공주의 시댁일지라도 새로운 황제가 등극한 후에는 자신의 본분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줄곧 군인 유족을 돕는데, 돈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매년 이들을 위해 큰돈을 기부해 국고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정국공부의 원수라 할지라도 부인할 수 없었다. 

    ‘만약 정국공이 나서서 내 처자식을 돌봐주겠다고 약속한다면…….’

    소달은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마침내 입을 뗐다.

    “정국공을 만나 뵙고 다시 얘기하세.”

    루안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서 소리쳤다.

    “여봐라!”

    궁전의 문이 열리고 시위와 서기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소 장군을 감옥으로 돌려보내라.”

    “예.”

    서기들은 법정을 정리하고 시위들은 소달을 호송하며 각자 맡은 일을 질서 정연하게 처리했다. 누구도 쓸데없는 말 한마디조차 하지 않았다. 

    이 광경을 본 소달은 몸서리를 쳤다.

    소달은 생각을 바꿨다. 

    ‘이 사람들은 황제가 보내준 것이 아니라 루안이 스스로 양성한 사람들이다.’

    소달은 여태껏 그가 황제 곁을 지키는 못된 개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자신들이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이 못된 개가 배후 조종자가 되어 있었다.

    황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강왕부의 허수아비가 아니었다.

    그는 바로 루안의 허수아비였다.

    * * *

    소달은 다시 감옥으로 돌려보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 태의가 들어와 그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소달이 감탄하며 말했다.

    “엄 태의를 만날 다시 만날 수 있을 줄 몰랐네!”

    엄 태의가 웃으며 그의 약을 바꿔주고는 말했다.

    “소 장군께서는 몸이 건강하셔서 이 정도 상처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움직임이 많아서 상처가 아물기 쉽지 않겠군요.”

    “아물 기회가 있기나 할지 누가 알겠나.”

    소달은 이렇게 말하고 자기 몸을 더듬으며 말했다. 

    “이쪽도 좀 아픈 것 같네.”

    “그렇습니까? 제가 한번 보지요.”

    엄 태의가 살펴보는데 손에 헝겊 뭉치가 쑥 쥐어졌다. 

    그는 웃으며 손을 거두었다.

    “별일 아니니 안심하고 쉬시면 괜찮을 겁니다.”

    엄 태의는 몸을 돌려 각종 의구들을 약상자에 넣고 소달이 바꿔치기한 피 묻은 헝겊까지 챙겼다. 

    “장군, 푹 쉬시면서 상처를 잘 돌보십시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소달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달은 그가 옥졸을 따라 옥사를 떠나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세자가 그의 해명을 믿어준다면 그는 아내와 자식을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시 금군의 통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습게도 루 통정이 자신에게 그런 중요한 비밀을 알려주는 바람에 그는 세자에게 목숨을 구명할 밑천을 얻었다.

    ‘아무리 바보라도 뭘 선택해야 할지는 아는 법이지.’

    소달은 마음속으로 비웃으며 잠을 자려고 잠시 엎드렸다.

    그런데 그가 눈을 감자마자 감옥의 문이 다시 열렸다.

    소달이 고개를 돌리자 첫 번째로 눈에 들어온 것은 빨간 옷을 입은 루안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보인 것은……. 

    ‘방금 나간 엄 태의!’

    그는 눈을 번쩍 뜨고 루안이 엄 태의를 데리고 감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피로 쓴 천 뭉치가 가볍게 그의 앞에 떨어졌다.

    루안은 그를 보며 웃는 듯 마는 듯한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소 장군, 이러면 본관이 아주 실망스럽네.”

    * * *

    대장공주의 새 저택에서 그녀는 느릿느릿 차를 마셨다.

    “그래서 강왕부가 소달을 포기한 게야?”

    지온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정확한 표현이 아니지요. 강왕세자가 소달이 맘에 안 들어서 버렸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아요.”

    대장공주가 피식하고 비웃었다.

    “하긴, 그 늙은 개망나니가 있었으면 자기 오른팔을 스스로 잘라버리게 놔두지는 않았겠지. 아무래도 그 자식새끼는 화를 못 참았나 보다.”

    “아마 자기 자신을 너무 높게 평가했던 거겠지요. 대세가 이미 정해졌다고 생각해서 소달이 없어도 상관없다고 착각한 것 같아요.”

    대장공주가 일어났다.

    “본궁은 이제 정국공부로 가보마.”

    지온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빨리 처리해주셔야 해요.”

    대장공주가 고개를 끄덕이고 외출 준비를 하러 갔다. 

    루안이 이 사건을 맡았는데 지온은 듣자마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강왕부에서 어떤 움직임이 있었다면 이렇게 쉽게 처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대장공주를 문밖까지 배웅하고 지온은 서신 한 통을 받았다.

    내용을 확인한 지온의 얼굴색이 이상해졌다.

    “부인, 편지에 문제라도 있습니까? 저희가 한 번 조사해볼까요?”

    조 선생이 물었다. 

    “아니네.”

    지온은 편지를 서아에게 건네주었다.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바로 저기 길모퉁이에 있을 거야.”

    그리하여 지온은 아무도 안 데리고 혼자 길모퉁이의 찻집으로 갔다.

    이 찻집은 북양왕부의 가게이기도 해서 조 선생이 바로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 * *

    유신지는 노파심에 거듭 유민에게 말했다. 

    “오늘은 놀러 나온 게 아니다. 네가 보기에도 별로 먹을 것도 없잖느냐, 아니 그러하냐?”

    “놀러 나온 게 아니면 뭐 하러 온 거야?”

    유민이 고개를 내밀고 밖을 내다보다가 물었다.

    “큰 오라버니, 저쪽이 루씨 가문 저택 맞지?”

    유신지는 이 말이 뭔가 이상해서 경계하며 물었다.

    “말투가 왜 그러느냐?”

    유민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큰 오라버니, 동생 주제에 참견할 일이 아니긴 하지만 오라버니 정말 그러면 안 돼! 지온 언니는 이미 시집을 갔잖아. 군자가 언니를 더 이상 귀찮게 하면 안 되지. 게다가 오라버니한테 좋을 것 하나 없는데 계속 그렇게 생각하면 어쩌자는 거야? 평생 그 구렁텅이에 빠져서 안 나오려고?”

    유신지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오늘 휴일도 아닌데, 또 휴가를 냈지? 오라버니가 이렇게 자주 휴가를 내는데 상사가 뭐라고 안 해? 맨날 둘째 오라버니가 불성실하다고 뭐라 하더니 어째 큰 오라버니도 점점 닮아가는 것 같아.”

    “유민아!”

    유신지가 화를 냈다. 

    애석하게도 그가 요즘 좀 되는대로 살다 보니 큰 오라버니의 위엄이 흔들리고 있었다. 

    유민은 노파심에 계속 충고했다. 

    “백모님한테 들었는데, 오라버니 요 한 달 동안 대여섯 명이나 되는 아가씨들하고 선을 봤다며? 백모님 눈에 든 거면 분명히 좋은 아가씨들일 텐데 오라버니는 왜 다 마음에 안 든다는 거야? 도대체 아가씨들이 별로인 거야, 아니면 오라버니 눈이 삔 거야?”

    유신지는 화가 나다 못해 어이가 없어 웃음이 다 나왔다. 

    “그래, 그래, 내 눈이 삐었구나. 됐지?”

    “그건 내가 동의해 줄 수 없겠는데요.”

    갑자기 누군가가 한 마디 끼어들었다. 지온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눈이 삐었으면 나한테 반하지도 않았겠죠, 안 그래요?”

    “지온 언니!”

    유민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언니가 왜 여기에 온 거예요? 두 사람……?”

    그녀는 지온을 한 번 보고 또 그녀의 큰 오라버니를 한 번 보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온이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톡톡 때렸다. 

    “너 이 조그만 머리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부인, 뭘 주문하시겠습니까?”

    찻집 주인이 직접 들어와 인사하며 말했다. 

    지온이 말했다. 

    “아무거나. 그리고 밖에서 잘 지켜보게. 사람들이 엿듣지 못하게.”

    “예.”

    주인은 빠르게 새로운 차와 다과를 올리고 객실의 문을 닫은 다음 직원에게 옆방에는 더는 손님을 받지 말라고 지시했다.

    유민이 의아해했다. 

    “지온 언니, 여기는……?”

    “우리 가문 거야.”

    지온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웃으며 물었다.

    “소소는 왜 안 왔어요?”

    유민은 이해가 안 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오늘 경 언니와 약속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갑자기 언니 얘길 하는 거지?’

    유민이 대답하려던 차에 유신지가 먼저 끼어들었다.

    “며칠 동안 밖으로 못 나오는 걸 보니 경 백모께서 가둔 것 같소.”

    “거봐요, 소소가 구경하러 안 올 리가 없다니까요.”

    “어제도 나한테 서신을 보내어 가서 물어보라고 하더군.”

    “그래서 물어보러 온 거예요?”

    유신지는 얼굴이 죽상이었다.

    “내가 물어보러 안 가면, 경 소저가 계속 편지를 쓸 거고, 하루에도 몇 번씩 보내겠지. 우리 어머니께서 이 사실을 아시면, 당장 우리 약혼을 진행하려 할 게 아니오?”

    지온이 빙그레 웃었다. 

    “제가 볼 때 대공자님도 별로 반대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요!”

    “말이야 그렇지만, 너무 빠르지 않소…….”

    유신지가 투덜거렸다. 

    유민은 들으면 들을수록 이상해서 급히 말을 끊었다. 

    “잠깐만! 이게 다 무슨 소리야? 난 왜 처음 듣는 소리지? 큰 오라버니, 경 언니랑 언제부터 그렇게 잘 된 거야? 언니가 오라버니한테 편지도 보냈다고?”

    유신지는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지온이 대신 대답했다.

    “너 몰랐어? 너희 큰 오라버니가 소소랑 선을 봤잖니! 아주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야. 내 생각엔 너희 집에 곧 경사가 생길 것 같아.”

    “정말이야?”

    유민이 눈을 크게 부릅떴다.

    “큰 오라버니, 나한테 거짓말하는 건 아니겠지?”

    유신지는 한숨만 푹푹 내쉬며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그만해, 난 아직 잘 모르겠구나!”

    “뭐 맘에 안 드는 게 있어? 말해봐. 같이 생각해보자!”

    “그 계집애가 사고뭉치잖냐. 정말로 장가를 들면 나중에 내가 계속 뒷수습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될 게다.”

    지온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벌써 그런 미래까지 다 생각해 본 거예요? 확실히 진지하게 생각해보긴 했네요.”

    유신지가 손사래를 치며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어쨌든 그녀가 재미있긴 하잖소! 배짱도 두둑하고 어디 한군데 빠지는 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오.”

    경소소의 행실은 건달 같았고 입은 사나웠으며 주먹과 발은 훨씬 더 사나웠다. 

    유신지는 생각 끝에 조금 슬퍼졌다. 

    ‘선녀에게 장가가겠다고 결심했던 내가 이제 선녀는 고사하고 오히려 건달을 아내로 맞게 생긴 것이 아닌가?’

    이 무슨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고, 뒤로 넘어져 코가 깨질 일이란 말인가. 세상에 이리 억울하고 원통한 일이 다 있단 말인가?

    유씨 가문 대공자는 자신이 이미 이 혼사를 묵인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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