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28)화 (328/385)
  • 328화. 어째서 당신이오?

    이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정오가 되자 마침내 누군가 와서 그를 불렀다. 

    이 사람들은 궁중의 시위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얼굴이 아주 낯설었다. 

    소달이 눈살을 찌푸렸다. 궁중의 시위는 얼굴이 알려져 있어서 그는 시위들의 얼굴을 모두 알고 있었다. 세자가 자신을 응징하려 한다고 해도 강왕부의 궁궐 안 세력들은 결국 다 자신의 손을 거쳤던 자들이었다.

    ‘설마 강왕부에 또 다른 비밀 정보원이 있는 건 아니겠지?’

    옥졸이 절차를 확인한 뒤 시위가 소달을 데려갈 수 있도록 옥문을 열어주었다. 

    소달은 반쯤은 부축을 받고 반쯤은 끌려 나가듯이 침상에서 내려왔다. 소달은 등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참으며 시위들에게 손을 말아 쥐고 인사했다. 

    “형제들, 이름이 뭔가? 직위는 어떻게 되나? 전에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 시위들은 대답 한마디 없이 침묵을 지키며 소달을 감옥에서 압송했다.

    소달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몇 번이나 물었다. 그제야 그들의 우두머리가 말했다. 

    “소 장군, 우리는 명령을 받들어 일하는 것이고 감히 당신과 호형호제할 수는 없소이다. 어쨌든 장군은 힘을 아껴두는 것이 좋을 거요. 이따가 법정에서 재판받으면 훨씬 피곤해질 테니.”

    이렇게 말이 안 먹히는 상대한테는 소달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저 입을 다물고 나중에 자신을 심문할 사람이 누구인지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었다. 

    ‘출궁하지 않는 것을 보니, 내정이 나선 것이 같은데? 주심관이 될 정도의 사람이라면 분명히 그릇이 작은 사람은 아닐 거야. 내정이라면 내가 아주 잘 알고 있으니 일을 처리하기 더 좋겠지.’

    소달은 이런 생각을 하며 어느 궁전으로 끌려갔다. 

    * * *

    이 궁전은 감옥과 가까웠다. 평상시에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정리하여 임시 재판의 장소로 삼은 것이었다.

    “대인, 범관(*犯官: 범죄를 지은 관리)을 데려왔습니다.”

    시위가 보고했다.

    소달의 눈가에 빨간색 상의를 입은 사람이 힐끗 보였다. 소달은 속으로 몇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며 고개를 들어 올려보았다.

    그러다 깜짝 놀라서 멍해져 있던 소달이 입을 열었다.

    “어째서 당신이오?”

    루안이 눈을 들고 아주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공적인 말투로 물었다.

    “범관은 누구인가?”

    소달은 믿을 수 없었다. 

    ‘설령 내가 세자와 사이가 틀어졌다 할지라도 루 통정이 나를 심문하게 할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세자 전하, 이건 대체 무슨 뜻입니까? 내가 이 사람들과 원한이 깊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탁!

    경당목(*惊堂木: 옛날 법정에서 법관이 탁상을 쳐서 죄인에게 경고하던 막대기)을 두드린 루안이 다시 물었다. 

    “범관은 누구인가? 이름을 말하라!”

    소달은 머리에 물음표가 가득 찼지만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본장, 금군 부통령 소달 입니다”

    루안이 계속해서 공적인 말투로 말했다. 

    “오늘 상소문이 올라왔다. 네가 누명을 씌워 충신을 해치고 뇌물을 받고 법도를 무시했다는 탄핵이 있으니 폐하께서 본관에게 이 안건을 심리하라 명령하셨다. 소달, 너는 죄를 인정하느냐?”

    만약 법정에 앉은 사람이 강왕세자의 사람이었다면 소달은 이때 억울함을 호소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건을 심리하러 온 사람은 루안이었다. 그는 광명사에서 있었던 일을 차마 언급할 수 없어 화를 참으며 대답했다. 

    “이 일들은 모두 사실이 아니니, 본장은 무죄입니다!”

    루안은 더 이상 그를 귀찮게 하지 않고 직접 지시했다. 

    “범관이 죄를 인정하지 않으니 서기(书办), 자네가 읽어보게.”

    “예.”

    서기가 붓을 내려놓고 앞에 있는 작은 탁자에서 문서를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모년 모월, 어사 여진이…….”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소달도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안색이 나빠졌다. 뜻밖에도 이 문서에는 자신이 했던 짓들이 대부분 다 적혀 있었고, 심지어는 증인의 증언까지 담겨 있었다. 서기는 다 읽고 나서 소달에게 한 번 보여주며 증인이 찍은 지장을 확인시켜 주었다. 

    하나를 다 읽고 나서 서기는 또 다른 하나를 들고 처음부터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건 또 다른 사건으로 소달이 뇌물을 받고 다른 사람을 대신해 일을 처리해준 일에 관한 것이었다.

    소달은 작은 탁자 위에 가득 쌓인 문건을 보고 머리가 아찔해졌다.

    이 죄명들이 확정되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아마 자신의 삼족이 모두 몰살될지도 몰랐다!

    소달은 정신을 가다듬고 큰소리로 외쳤다.

    “루 통정! 자네가 나한테 뇌물을 받았다고 추궁하다니! 거기에 자네 이름은 없소? 전에 자네가 형부에 있었을 때 사람들한테 얼마나 받아먹었소? 항간에 소문이 자자하던데 자네부터 조사해봐야 하지 않겠소!”

    루안이 한쪽 입꼬리를 삐죽 올리며 비웃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이미 몇 번이나 함정에 빠진 경험이 있는 소달은 그의 이런 웃음을 보고 가슴이 뜨끔했다. 

    이 문관이란 작자들은 뱃속이 못된 심보로 가득 차 있어, 혹시 또 뭔가 잔꾀를 부려 자신을 함정에 빠트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루안은 침착하게 말했다. 

    “소 장군, 무엇이든 증거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 법이다. 본관은 뇌물을 받은 적이 없고, 단지 찻값만 받았을 뿐이지. 찻값이 무엇인지 아는가? 우리가 업무를 보러 나갈 때, 그 일을 치르는 집에서 제대로 대접을 할 수 없으니 우리 스스로 차를 사 마시라고 주는 돈이지. 관례가 이러한데 어떻게 뇌물이라고 할 수 있는가? 자네가 폐하께 고한다고 해도 본관은 당당하다.”

    소달이 마음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차를 사 마시는 데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단 말인가? 명전용정(*明前龙井: 최고급 차의 한 종류)인가 대홍포(*大红袍: 최고급 차의 한 종류)인가? 뇌물이 분명한데 교활하게 궤변을 늘어놓다니!’

    그러나 루안은 아직 말을 끝내지 않았다.

    “하물며 본관은 한 번도 남을 대신해서 일을 처리해 준 적이 없다. 판결해야 할 것들만 판결하였지. 믿지 못하겠으면 가서 조사해 봐도 된다. 본관이 취급한 사건은 전부 형부에 문서로 온전하게 보관되어 있다. 네가 본관이 부정을 저질렀다는 증거를 찾아낸다면 본관이 스스로 관직을 내려놓을 것이다.”

    소달은 이 말을 듣고 멍해졌다. 상대가 이렇게까지 확신하는 것을 보면 문서에서조차 전혀 이상을 찾아낼 수 없을 것이라는 뜻이 아닌가?

    ‘문관은 역시 간사하기 짝이 없군, 벌써 준비를 다 끝낸 모양이야.’

    “할 말 없나?”

    루안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계속 읽어라.”

    “예.”

    서기가 이어서 읽어내렸다.

    한눈에 봐도 반나절을 읽어도 반도 읽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이런 죄목들은 소달을 열 번을 넘게 죽이고도 남을 정도로 충분했다. 소달은 끝내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루 통정, 도대체 어떻게 할 생각인가? 허세 부리지 말고 제대로 말을 하게!”

    마침내 분위기가 충분히 무르익었다.

    루안이 손짓을 하자 거기에 있던 서기와 관원들이 잇달아 물러갔다.

    심부름꾼 역할을 맡은 시위가 그들의 뒤를 바짝 따라 뛰어나갔고, 심지어 가는 김에 문까지 닫아 주었다!

    그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깨끗하게 물러갔고 소달과 루안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소달은 깜짝 놀랐다. 아무리 내정의 법정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하는 법은 없었다. 

    ‘그러니까 이 자리에 있던 관리들과 시위들은 모두 루 통정의 사람이었단 말인가? 그가 어디에서 이렇게 자기 사람을 많이 데려왔을까? 혹시 폐하의 사람?’

    사람들이 모두 물러가고 나자 루안도 자리에 앉아있지 않고 일어났다. 그는 천천히 소달의 앞으로 걸어와서 멈춰 섰다.

    “소달, 내가 여기 있는 걸 보면 자네도 강왕세자가 자네를 살려둘 마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거네. 자네가 그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고 심지어 이 황위조차 자네 덕분인데도 그는 이런 사소한 일 때문에 자네 목숨을 거두려 하고 있지. 자네가 죽으면 그 사람이 옛정을 생각해서 자네 가족을 돌봐줄 거라 생각하나?”

    루안은 점점 절망적으로 변해가는 소달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자네가 어렸을 때 굶는 일이 다반사여서 가업을 일으켜 자손들을 고생시키지 않겠노라 맹세했다고 들었네. 안타깝지만 자네의 그 소원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겠군. 자네가 죽고 나면 소씨 가문은 결국 망할 테니까!”

    소달은 지금까지 이렇게 두려웠던 적이 없었다. 

    젊어서 목숨을 걸고 싸울 때 그는 칼날의 피를 핥으며 오늘 잠이 들면 내일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모두가 배불리 먹을 수 있을까, 출세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공을 세우고 명성을 얻어 높은 자리에 오른 지금 그는 오히려 너무나 두려워졌다. 

    루안이 그의 앞에 서서 천천히 말했다.

    “자네 부인 말일세. 비록 가세가 좀 기울고, 하는 행동도 품위가 없긴 하지만, 순진하고 자네에게만큼은 진심이지. 그리고 자네의 그 멍청한 아들 말일세. 자네가 없으면 그 아이의 어미가 아이를 보호해줄 수 있을 것 같나? 

    게다가 자네의 처가는 시류에 편승해 이익이 되는 곳에 붙는다던데, 강왕부에서 자네의 목숨을 원하는 것을 알면 아마 자네의 처자식조차 거둬주지 않겠지. 소 장군, 자네가 반평생을 들여 목숨을 걸고 얻은 부귀가 이렇게 연기처럼 사라지겠군.”

    소달이 고개를 들어 루안을 보았다.

    사실 그는 지금껏 루 통정을 신경도 쓰지 않았다. 

    명문가 출신이 뭐라고? 재능이 넘치면 또 뭐한단 말인가? 그는 그저 황제 곁을 지키는 못된 개 한 마리에 불과했다.

    그리고 황제는 자신이 지키는 허수아비였다. 

    그의 눈에는 허수아비를 지키는 못된 개가 아무리 사납게 짖어도 그저 겉만 번지르르한 물건으로 보일 뿐이었다.

    지금에야 소달은 이 못된 개의 무서움을 깨달았다.

    루안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자신의 약점을 찔렀다.

    “그래서 뭐 어쨌단 말인가?”

    소달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설마 자네에게 나를 구할 방법이라도 있단 말인가?”

    루안이 웃었다.

    “당연히 난 자네를 구할 수 없지. 설사 자네를 구할 방법이 있다고 해도 역시 난 자네를 구해줄 수가 없어.”

    루안이 그에게 다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매일 밤, 자네 손에 죽은 사형들과 스승님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아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거든!”

    소달의 눈동자가 움츠러들었다. 그는 루안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자네…… 알고 있었나?”

    루안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내가 왜 모르겠나? 4년 전 자네는 정해군에서 지휘사로 일했지. 야영 훈련을 핑계로 네 수하의 사람을 데려다 해적으로 위장해 한밤중에 무애해각에 들어가 태자를 살해했어. 내 사형, 사제들과 스승님들은 거의 다 자네 손에 죽었지. 소달 자네가 한번 말해보게, 내가 이 원한을 갚지 않을 수 있겠나?”

    한참 후 소달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자네가 상경한 건 역시 다른 계획이 있었던 게로군!”

    루안이 빙그레 웃었다. 

    “이제 알아채다니 좀 늦었군.”

    소달은 생각했다.

    ‘그래, 이미 늦었지. 세자 전하는 나를 버렸고, 심지어 이 소식을 전하에게 전할 기회조차 없으니.’

    “그럼 자네가 뭘 하려는 건지 말해보게. 나더러 자네 편이 되라는 것인가?”

    루안이 경멸하며 말했다. 

    “내가 말했을 텐데, 넌 반드시 죽을 거라고.”

    “그럼 뭘 원하는가?”

    루안이 몸을 돌려 작은 탁자 위에 쌓인 문서를 짚었다.

    “자네가 이렇게 많은 짓을 했으니 수중에 사람이 많겠지? 어차피 자네는 죽을 거고 이 사람들도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질 테니 나에게 주는 건 어떤가? 적어도 나는 자네 처자식의 목숨 정도는 보장해줄 수 있네.”

    “내가 왜 자넬 믿어야 하나?”

    질문을 던지던 소달의 머릿속에 한 줄기 빛이 번쩍였다. 소달은 갑작스럽게 무언가를 깨달았다.

    “자네야! 그 편지는 자네가 쓴 거였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