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26)화 (326/385)

326화. 당신을 구한 거지

“허허!”

강왕세자는 이마에 핏줄이 다 튀어나왔지만, 겨우 화를 참으며 크게 소리쳤다.

“데려가라!”

“예!”

시위가 일제히 대답했다.

여러 해 동안 강왕세자를 따랐던 소달이 어찌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모를 수 있겠는가? 그는 황급히 소리쳤다.

“세자 전하! 세자 전하! 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신이 들어왔을 때 그 남자가 세자비에게 찔려 상처를 입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세자비를 협박했는지 어떤지는 모르오나 신도 막 도착한 것일 뿐입니다!”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갑자기 등에 통증을 느꼈다.

강왕세자는 피가 묻은 금비녀를 들고 그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그의 얼굴이 까맣게 내려앉았다.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비아냥거리는 말투를 들은 소달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소름이 쫙 끼쳤다. 

소달은 마침내 누군가 자신을 음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 * *

남자는 무명으로 된 옷을 입고 천왕전으로 들어갔다.

청소하던 스님이 보고 물었다.

“강 시주(施主), 어디 갔다 오셨습니까?”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화장실에 다녀왔습니다.”

말을 마치고 그는 조각품을 정리하더니 앉아서 전처럼 계속 조각을 했다.

스님은 청소를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귀한 가문의 시위가 와서 강세안이라는 사람이 여기에 있느냐고 물었다. 스님이 그 사람을 데리고 천왕전으로 갔지만, 거기에는 이미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광명사를 두루 찾아보았지만, 강세안이라는 남자를 찾을 수 없었다. 

시위의 질문에 스님이 황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정말입니다! 강시주가 반 시진 전까지만 해도 여기서 이 목상을 조각하고 있었습니다!”

“반 시진 전이요? 기억이 잘못된 건 아니십니까?”

“아닙니다. 정말 반 시진 전이었습니다.”

시위가 시간을 계산하고 다시 물었다.

“그가 여기 있었을 때 무슨 이상한 점이 없었습니까. 다친 상처라던가? 아마 이 자리쯤 될 겁니다.”

스님이 기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다친 곳은 없었습니다. 옷을 걷고 땀을 닦는 걸 소승이 똑똑히 보았습니다.”

시위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가 보고했다.

루안은 광명사 맞은편에 있는 과자가게에서 그들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됐어. 너는 인제 그만 없어져도 되겠군. 강세안.”

맞은 편에 있던 사내의 얼굴에서 루안이 사람 가죽으로 된 가면을 벗기자 한등의 얼굴이 드러났다. 한등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진술이 하나도 맞지 않으니, 소달은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글렀네요!”

루안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그 서신은 훔쳐 왔느냐?”

“훔쳐 왔습니다. 증거를 남겨 두면 안 되지요. 쪽지는 세자비의 필적을 사용하였습니다.”

루안은 마음속으로 한 번 되짚어 보았다. 허점은 없는 것 같았다. 설령 이 일에 뭔가 불가사의한 부분이 있어도 강왕세자는 고집이 세고 의심이 많으니 그가 마음속으로 그렇다고 믿기만 한다면 소달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을 것이다!

* * *

과자가게 후원에서 루안이 객실 문을 밀어 열었다.

침상 앞에 앉아있던 지온이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일은 다 끝냈어요?”

“응. 강왕부에서 확인하러 사람을 보냈는데 진술과 맞지 않았소.”

지온이 웃으며 말했다. 

“소달은 이제 죽은 목숨이군요.”

루안은 침상에 누워 있는 남자를 보며 물었다. 

“고찬이 와서 진찰했소?”

“왔다 갔어요. 아주 많이 다쳤대요. 그래도 우리가 제때 구한 덕에 목숨은 건진 셈이지요.”

루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사람은 시체가 즐비하고 피가 낭자한 전장을 건너온 사람이오. 이런 사람의 목숨은 아주 질기지.”

그리고 그녀에게 물었다. 

“배 안 고프오? 벌써 식사 시간이 다 됐소.”

“그럼, 여기서 먹어요.”

지온이 말했다. 

“지난번에 여기서 여의권을 한 번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당신네 북양 정보원들은 과자가게만 차리던데 설마 다들 식탐이 많아서는 아니겠죠?”

루안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마 그들도 미래에 간식을 좋아하는 주인 마님이 생길 거라는 걸 알았는가 보오?”

* * *

강세안은 깨어났을 때 자기가 또 꿈을 꾸는 줄 알았다.

그의 귀에 한 쌍의 남녀가 대화하는 소리와 젓가락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은 그다지 말이 많지 않았다. 가끔 요리에 대해 한두 마디 주고받을 뿐 대부분 조용히 밥을 먹었다.

하지만 이 순간, 주위에는 화목하고 따스한 기운이 가득했다. 

마치 강세안이 예전에 꾸었던 꿈처럼 말이다.

10년 전에 그는 오씨 가문의 호위였다. 그는 오씨 가문의 아가씨가 외출할 때마다 늘 동행했다.

언젠가 한 번은 향을 피우고 돌아오는 길에 아가씨의 말이 놀라는 일이 있었다. 다행히 강세안이 즉시 말에게로 달려들어 말을 멈춰 세웠다. 

그 이후로 아가씨는 강세안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강세안도 18세에서 19세에 불과한 한창의 소년이었다.

명문가 출신의 소저는 온화하고 아름다워서 강세안에게는 마치 하늘 위의 구름처럼 가망이 없는 꿈이었다.

아가씨의 사랑은 그에게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독약과도 같았다. 그는 독으로 인해 결국엔 죽게 될 것임을 알면서도 독약을 주저 없이 들이켰다. 

강세안은 자신들의 신분 차이가 너무 커서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진작 깨달았어야만 했다. 

강왕부에서 온 혼담은 강세안의 망상을 철저하게 깨부쉈다.

아가씨는 가족들까지 말려들게 할 수 없어 강세안을 따라갈 수 없다고 말했다. 강세안은 아가씨가 왕부에 시집가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세자비가 되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후 그는 짐을 챙겨 오씨 가문을 나와 슬픔이 깃든 이곳을 떠났다. 

정해군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생활하던 때, 강세안은 늘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꿈을 꿨다.

꿈속에서 아가씨는 자신을 따라왔다. 꿈속에서 자신들은 이 두 사람처럼 아주 평범한 부부로 평온하고 화목하게 살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그쳤다.

누군가가 옆에 서서 말했다.

“이 사람 우는 거예요? 슬퍼서일까요 아니면 아파서일까요?”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는 목소리는 약간 낮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슬퍼서가 아니겠소?”

강세안은 마침내 정신을 차렸다. 그는 자신이 침대에 누워있고 상처가 꽁꽁 싸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한 쌍의 젊은 남녀가 침대 앞에 서 있었다. 여자는 그가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남자는 전에 스쳐 가듯이 본 적이 있었다. 

정말 쉽게 잊을 수 없을 만한 미남이었다.

그리고 강세안은 이 사람의 신분이 생각났다. 이어서 불탑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르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이런 방법을 써서 날 잡아다 뭘 하려고?’

지온이 강세안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웃으며 말했다.

“역시 잘생긴 분이네요. 어쩐지 세자비 같은 사람의 마음을 다 흔들었다 했어요.”

루안이 그를 힐끗 쳐다보더니 약간 냉담한 말투로 말했다.

“그렇소?”

그의 말투에 질투가 섞인 것을 알아차린 지온은 웃음을 터트렸다. 

“당연히, 당신만큼 잘생긴 건 아니지요.”

루안의 입꼬리가 치켜올라갔다. 지온은 말 한마디로 쉽게 그를 달랬다.

이런 분위기에 강세안은 점점 더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는 결국 눈을 감았다.

지온이 말했다.

“이 사람, 당신을 알아보는 것 같아요.”

루안이 웃으며 무언가를 가져와 강세안의 코끝에서 흔들었다.

강세안은 사레가 들려 저절로 재채기가 나왔다. 

그는 가슴과 등에 모두 상처가 있었다. 재채기를 함과 동시에 상처의 근육이 당겨져 갑작스럽게 통증이 일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강세안이 정신을 차리길 기다렸다 루안이 물었다.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나?”

강세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고개를 돌리는 것이 말을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강세안은 지금 실의에 빠져 목숨을 구걸하는 것 따위에 연연하고 싶지 않았다. 

루안이 말했다.

“자네 정말 딸을 원하지 않는 건가? 아이의 그런 성격은 솔직히 말해서 세자비보다는 강왕세자가 기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자네 딸보다 천만 배쯤 더 잔혹한 성격을 가진 그 세자 전하께서 지금 의심을 품고 있다네. 그가 자네 딸에게 어떻게 할 것 같은가? 아이가 가엾지는 않은가?”

강세안이 눈을 번쩍 떴다.

루안이 담담하게 웃었다.

“이제 내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겠나?”

강세안이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 딸을 구해주실 겁니까?”

루안이 말했다.

“그건 자네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느냐에 달렸지. 만약 몇 가지 문제에 대해 대답을 해준다면 자네 딸의 시체 정도는 수습해 줄 수 있네. 하지만 자네가 충분한 일을 해준다면 내가 그 아이의 목숨을 구할 방법을 생각해 볼 수도 있지.”

“당신은…….”

루안은 냉정해 보일 정도로 표정이 평온했다. 

“자네가 스스로 선택하게, 나도 강요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거든.”

강세안은 오래 망설이지 않고 그가 방금 한 질문에 대답했다.

“그날 밤, 무애해각에서 당신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상경하여 소식을 수소문할 때도 한 번 스치듯 본 적이 있습니다.”

강세안은 마침내 깨달았다. 

소달이 까닭 없이 나타나더니 곧이어 강왕세자가 간통 현장을 잡으러 왔다. 두 사건 간의 시차가 아주 짧았기 때문에, 이 계획은 조금만 부주의해도 실패할 수 있었다. 상대방이 이렇게 정확하게 계산한 것을 보면 자신의 행적은 이미 오래전에 다른 사람의 눈에 띈 것이 분명했다. 

강세안은 정해군에서 밀정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일을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두려워해야 마땅한 상대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현재 상대방과 대적할 만한 밑천이 아무것도 없었다.

루안은 그의 이런 대답을 듣고 눈썹을 치켜올렸다.

“자네 그냥 깨끗하게 인정하지그래.”

강세안이 말했다.

“이걸 물어보려고 날 잡아 온 게 아닙니까?”

“아니.”

대답을 한 것은 지온이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당신을 잡아 온 게 아니라, 우리가 당신을 구한 거지.”

강세안은 멍해졌다. 

지온이 그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당신과 싸운 것이 우리가 아니잖아? 당신을 죽이려고 계략을 꾸민 것도 우리가 아니지? 거기다 당신을 찌른 사람도 우리가 아니고. 우리가 손을 쓰기 전까지만 해도 당신은 숨이 곧 끊어질 것처럼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태였어. 

강왕세자한테 들키지 않도록 우리가 당신을 데리고 나온 거야. 그리고 우리가 당신을 치료해서 생사의 갈림길에서 끄집어 올렸지. 목숨을 살려준 은인한테 어찌 이리 협박하는 것처럼 말을 하나?”

지온은 서두르지도 않고 천천히 말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맞는 말이어서 강세안은 어리둥절해졌다. 

‘정말……그런 것도 같군…….’

만약 그때 이들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강왕세자가 오는 즉시 자신의 목숨은 끊어졌을 것이다. 윤이도 마찬가지로 죽었을 것이다.

설령 강왕세자가 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신의 상처를 고려했을 때 치료하지 않았다면 역시 죽었을 것이 뻔했다. 

“그러니까 무애해각이 갑자기 습격당했던 그때, 역시 정해군이 해적으로 변장했던 것이 맞나?”

강세안은 얼떨떨했다. 다시 입을 열어 말을 하기 시작하자 강세안은 마음이 차츰 가라앉았다. 

“그 당시 우리의 지휘관은 소달이었는데 어느 날 그가 갑자기 야간 훈련을 하겠다며 우리를 데리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어느 섬에 도착해서 거기에 있는 해적들과 합류했습니다. 우리는 해적들의 옷으로 갈아입고 며칠 동안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 * *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루안이 문을 열고 지온의 손을 잡고 나왔다.

과자가게 주인이 밖에서 이들을 공손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루안이 분부했다.

“저자를 잘 숨겨두고 세심하게 보살펴라.”

가게 주인이 몸을 굽히며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후원에는 이미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차에 올라 소리 없이 뒷문을 빠져나왔고 곧 두 사람이 탄 마차는 도로의 마차들 사이에 섞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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