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25)화 (325/385)
  • 325화. 하늘의 벌

    강세안이 허허하고 차갑게 웃었다.

    “내가 데려가는 것이 싫었으면 아이를 잘 가르쳤어야지! 윤이가 지금 이 모양인데 나더러 어떻게 안심하라는 거요? 나도 당신을 방해하고 싶지 않소, 그렇다고 그게 날 죽이려는 이유가 되오? 난 당신이 이렇게 독한 사람인 줄 몰랐소!”

    “그래요! 나는 독한 사람이에요! 난 당신이 죽기를 간절히 바랐어요! 애초에 어쩌다 내가 당신 같은 사람한테 눈이 멀었었는지, 지금 당신이 그걸 약점 삼아 날 협박하고 있잖아요!”

    세자비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금비녀를 줍고 다시 그를 향해 돌진했다.

    “당신이 윤이를 데려가면 나도 살 이유가 없어요!”

    강세안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의 눈이 빨갛게 변했다.

    “당신 정말 윤이를 위해서 이러는 거 맞소? 사실은 입막음하고 싶은 것 아니오? 강왕부는 야심이 가득해서 그 당시 정해군에게 해적 행세를 시켜 태자를 죽이고 의안왕을 황위로 밀어 올렸소! 하지만 정말로 황위에 앉고 싶었던 사람은 강왕이지! 

    당신의 부군인 강왕세자는 아마 진즉부터 태자의 꿈을 꾸고 있었을 거요. 당신도 요 몇 년 동안 그를 내조하면서 온갖 나쁜 일들을 처리해 왔을 테니 그의 마음을 모를 리가 없겠지? 당신이 아까운 것은 윤이가 아니라 황후의 봉좌(*凤座: 황후의 의자, 황후의 자리)가 아니오!”

    세자비는 한 번도 남에게 말하지 않았던 은밀한 속내를 그가 대놓고 폭로해버리자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강세안, 이 자식아!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면서 날 그렇게 부드러운 말로 꾀어 뭘 하려고 했던 건데? 나한테 윤이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한 것도 사실은 다 나를 속인 거였어. 비정한 남자 같으니라고!”

    세자비는 강세안에게 손을 잡히자 미친 사람처럼 이빨로 물어뜯었다.

    강세안은 오히려 그녀를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한 덩어리로 뒤엉키기 시작했다.

    소현주는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당황한 그녀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그들을 떼어놓으려 달려들었다.

    “어머니! 하지 마요! 우리 엄마를 놔요! 손 놓으라고요!”

    하지만 아이는 아직 어린아이일 뿐이라 그까짓 힘으로는 그저 가려운 데를 긁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세자비가 강세안의 팔을 물고 힘을 주더니 얼마 안 있어 살점 한 덩어리를 물어뜯었다. 

    강세안이 아파하며 팔을 휘두르자 세자비가 소리를 악, 질렀다. 두 사람은 엎치락뒤치락하며 제사상 앞까지 가서 부딪쳤다. 

    이러는 사이 책상 위에 있던 보따리가 땅에 떨어져 물건이 우르르 쏟아졌다. 

    소현주는 어떻게 해도 강세안을 떼어낼 수 없자 마음이 급해졌다. 그녀는 너무 급한 나머지 발밑에 떨어진 조각칼을 보고는 주워서 앞으로 찔러버렸다. 

    “우리 엄마 놔!”

    이 조각칼은 원래 강세안이 특별히 제작한 것이었다. 평상시에는 나무를 깎는 데 썼지만, 강호를 돌아다닐 때는 암기(*暗器: 암살무기)로도 쓸 수 있는 것이라 매우 날카로웠다. 

    소현주가 칼로 찌르니, 마치 진흙을 찌르는 것처럼 칼은 강세안의 가슴에 곧장 박혀 들어갔다.

    푹——!

    싸우던 두 사람의 몸이 굳었다.

    강세안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딸을 바라보았다.

    “윤아…….”

    소현주도 깜짝 놀라서 황급히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나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난 그러려고 그런 게 아냐…….”

    아이는 단지 어머니를 구하고 싶다고 또 그가 아주 밉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전혀 사람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 칼은 아주 단호하고 정확하게 살갗을 찔러 들어갔다. 강세안은 폐에서 치밀어 오는 아픔을 느꼈다. 

    그는 세자비를 놓아주고 가슴을 움켜쥐었다.

    선혈이 방울방울 흘러나왔고 그는 걸음을 비틀거리다 뒤로 넘어졌다.

    세자비는 이 틈을 타 몸을 빼고 딸을 껴안았다. 그녀는 두렵고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강세안의 눈가가 젖어 들었다. 

    이 칼은 너무도 제대로 박혀버렸다. 4년 전의 큰 재난도 모두 피한 자신이 결국 자기 딸의 손에 죽게 될 줄은 몰랐다. 

    ‘어떻게 이럴 수가? 내가 잘못한 일이 많아 하늘이 내게 벌을 내리는 것인가?’

    강세안이 눈물을 흘렸다.

    “윤아…….”

    그가 이럴수록 소현주는 더욱더 무서웠다. 아이는 어머니의 품에 숨어 감히 그를 보지 못했다.

    강세안은 절망했다.

    ‘내가 잘못했구나, 정말 잘못했어. 처음부터 이 여자를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어, 그리고 10년 뒤에 딸을 데려가려 해서는 더더욱 안 됐어. 저 여자가 딸을 자기와 똑같은 사람으로 키워놓았구나…….’

    “무서워할 것 없어.”

    세자비는 냉정을 되찾고 딸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저 사람이 죽고 나면 앞으로 아무도 우리를 위협할 수 없을 거야. 앞으로도 너는 여전히 강왕부의 존귀한 현주야. 누구도 바꿀 수 없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입구 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세자비는 고개를 돌려 보고 몹시 놀랐다.

    한 남자가 문을 밀고 들어와 탑 안의 상황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먼저 강세안을 쳐다보더니 당황하며 외쳤다.

    “당신은…… 강세안?”

    강세안은 가슴을 움켜쥔 채 흐릿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는 이 사람이 한때 상봉이었던 소달임을 알아보았다. 

    소달은 4년 전의 그 일 이후, 벼락출세하여 경성으로 전근을 가서 단번에 금군의 통령이 되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왔지? 어디서 소식을 들은 걸까?’

    강세안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애석하게도 이미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소달은 나머지 두 사람을 보러 갔다.

    여자 하나, 여자아이.

    여자는 머리가 풀어 헤쳐져 있고 이마에는 피가 흘러 아주 난처한 상황인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녀는 그가 강왕세자를 알현할 때 몇 번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세, 세자비?”

    소달은 멍해졌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럼 이 여자가 안고 있는 아이는……?’

    그가 뭔가 반응을 하기도 전에 불탑의 문이 다시 열렸다. 

    소달이 고개를 돌리자 거센 바람이 그의 얼굴을 덮쳤다.

    ‘고수(高手)의 짓이다.’

    소달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침과 동시에 불탑 안의 촛불이 꺼졌다.

    창문이 없어 안은 온통 칠흑같이 깜깜했다.

    이런 악랄한 수법을 쓰다니 상대방은 아주 극악무도한 자였다. 

    소달은 재빨리 대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가 상대방의 초식(*招式: 공격이나 방어를 하는 기본 기술을 연결한 연속 동작)을 막아내자마자 등 뒤에서 바람이 훅 끼쳐왔다.

    ‘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니었어!’

    머릿속으로 이 생각을 하자마자 그는 매섭게 등을 찔렸다. 

    “악!”

    소달은 비명을 질렀고 자신이 곧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소달과 싸웠던 사람이 뜻밖에도 소달을 발로 차서 땅에 넘어뜨렸다. 뒤이어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소달의 귀에 들렸다. 

    소달은 잠시 기다렸지만 아무도 죽이러 오지 않았다. 고요한 불탑 안에 아이가 두려움에 떨며 우는 소리만 들렸다.

    ‘이렇게 가버린 건가?’

    그는 힘겹게 몸을 지탱하며 일어났지만, 머리는 여전히 흐리멍덩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그는 아침에 서신을 받고 다급하게 나왔다.

    강세안은 소달의 오랜 부하였는데, 그 당시 해적으로 변장했던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날 밤 이후 강세안은 자취를 감추었고 소달은 그가 그 싸움터에서 죽었다고 생각했다. 4년이나 지나서 그가 갑자기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오는 길에 소달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 가능성은 강세안이 당시에 다치는 바람에 제때 돌아오지 못해서 지금 자신에게 의탁하려고 찾아온 걸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었다. 두 번째는 그가 처음부터 고의로 도망간 것이고, 지금 뭔가 어려운 일이 생겨 자신을 좀 도와달라고 찾아온 것이었다.

    그는 이런저런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지만 오자마자 이런 기괴한 상황을 맞닥뜨릴 줄은 몰랐다. 

    ‘강세안과 강왕세자비가 함께 있다니?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설마 그가 강왕세자비를 겁탈하고 강왕부를 협박하려던 건가? 그런데 왜 서신을 보내어 나를 만나자고 했을까? 내 등 뒤에서 손을 쓴 사람은 또 누구지? 그와 한 패거리인가?’

    소달은 상처가 아파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소달의 머릿속은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소달이 힘겹게 일어나 도와줄 사람을 찾으러 가려는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불탑의 문이 다시 세차게 열렸다.

    소달은 고개를 들어 보았지만, 그가 빛을 등지고 있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어서 들려오는 음산한 목소리가 너무나 귀에 익었다. 

    “불을, 켜라!”

    어둠 속에서 세자비는 온몸의 피가 다 굳는 것 같았다.

    ‘어떻게? 그가 어떻게 온 거지? 이제 끝장이야, 내가 애써 숨긴 모든 것들이 다 끝장났어.’

    세자비는 머릿속이 윙윙거려 딸의 고함도 듣지 못했다.

    수행원이 등불을 켜러 갔고, 강왕세자는 분노로 가득 차서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 

    그는 세자비가 한 명의 시녀만 동반했고 그 시녀가 밖에 남아 있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했다.

    그녀 혼자 불탑에 들어간 후 또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날 영원에 나타난 남자인가? 흥! 아무리 애써 숨기려고 해도 몰래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그는 오히려 이 간통남이 누구인지 보고 싶었다.

    촛불이 켜지자 강왕부의 시위가 즉시 앞으로 나가 소달을 끌어올렸다.

    강왕세자는 그들을 등지고 세자비 앞에 서서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요?”

    겁에 질린 세자비가 더듬거렸다.

    “부군, 저, 저는…….”

    소현주는 더욱 놀라서 얼어붙었다.

    ‘아버지가 이 비밀을 알게 되면 날 죽일까? 난 죽는 걸까?’

    강왕세자는 그녀들의 모습을 보고 마음속에 분노가 더욱 끓어올랐다.

    ‘이 오씨는 자신이 남자랑 밀회를 즐기는 것도 모자라 거기에 딸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윤이를 방패막이 삼아 이 일을 숨기려고 했던 게로군? 그런데 지금 이건 또 무슨 일이지? 머리가 깨져서 피가 흐르다니, 간통남과 다투기라도 한 건가? 잠깐, 그 간통남은 제일 먼저 영원에 몰래 숨어 들어왔었어, 정말 이상하네, 그때는 윤이가 목적이었던 것 같은데…….’

    강왕세자의 의심 가득한 눈빛이 모녀 주위를 맴돌았다.

    이때 뒤에서 시위의 놀란 외침이 들렸다.

    “세자 전하!”

    강왕세자는 그 소리를 듣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몸을 돌린 그는  깜짝 놀라 갑자기 그 자리에 못이 박힌 듯 멈춰 섰다. 

    “소달?”

    ‘시위에게 붙잡힌 사람은 바로 소달이 아닌가? 간통남이 소달이라고?’

    세자비도 깜짝 놀랐다.

    ‘강세안은?’

    그녀는 눈을 들어 훑어보았지만, 바닥에는 아무도 없고 소달 한 사람만 있었다. 바닥에 방금 흘린 핏자국만 없었다면, 세자비는 정말로 자신이 방금 꿈을 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머니…….”

    소현주는 두려워하며 세자비를 껴안았다.

    강왕세자는 소달을 한 번 보고 다시 뒤돌아 모녀를 쳐다보며 조롱하듯 웃었다.

    “좋아, 이거 아주 재미있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둘 중 누가 설명해볼 텐가?”

    소달은 다친 나머지 사람이 없어진 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세자 전하, 어서 저 남자부터 잡으십시오! 일이 좀 이상하긴 합니다만 신이 나중에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남자?”

    강왕세자가 어두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무슨 남자가 있다고? 자네 지금 꿈꾸나?”

    소달은 다급해졌다.

    “어찌 없다고 하십니까, 바로 여기…….”

    그의 뒤는 텅텅 비어 있었다. 

    소달은 넋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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