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24)화 (324/385)
  • 324화. 두려운 미래

    소현주가 두려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너도 이제 네가 황족의 핏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잖니. 아버지와 함께 가자. 이 일이 폭로되기 전에 우리 멀리 떠나자. 그럼 너는 안전할 거야.”

    “폭, 폭로?”

    소현주가 겁에 질려 물었다.

    강세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는 말이 있어. 그날이 올지 안 올지는 아무도 모르지. 그렇지만 세자인 너의 아버지가 성질이 어떤지는 너도 잘 알 것이다.”

    소현주가 입술을 깨물었다.

    ‘만약 아버지가 내가 친자식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분명히…….’

    “당신만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몰라요!”

    세자비가 소리쳤다.

    “강세안, 이렇게 부탁할게요. 제발 당신 딸을 좀 놔줘요!”

    강세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대치하고 있는데 소현주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좋아요, 나, 나 아버지랑 갈래요…….”

    소현주는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사실 소현주는 가고 싶지 않았다. 이 허름한 아버지가 이후의 생활을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한다고 할지라도 일단 그와 함께 떠나면 자신은 더 이상 높은 신분의 현주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화려한 옷도, 산해진미도, 자신을 치켜세워주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소현주는 태어날 때부터 온갖 총애를 받고 자라서 그런 날을 보내게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저 사람은 자신이 진정한 황실의 혈통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만약 아버지가 알게 된다면 자신은 분명히 죽을 것이다!

    죽지 않으려면 저 사람과 함께 가야 했다.

    강세안이 웃음을 지었다.

    그는 세자비에게는 실망한 지 오래라 그저 딸이 함께 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윤아!”

    세자비가 깜짝 놀라 소리치며 아이를 붙잡았다.

    강세안이 와서 반대로 세자비의 손목을 잡고 소현주에게서 뜯어냈다.

    세자비가 어떻게 강세안의 힘을 당해낼 수 있겠는가? 그녀는 소현주가 자기 손을 놓고 강세안을 따라 다른 쪽으로 가는 것을 두 눈을 빤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윤아, 돌아와!”

    세자비가 소리쳤다.

    “이 어미를 버리고 가려는 거야?”

    소현주가 고개를 돌리고 괴로운 듯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 제가 아버지 자식이 아니잖아요. 저는 진짜 현주가 아니에요! 저는 왕부에 있을 자격이 없어요.”

    “윤아…….”

    “됐소.”

    강세안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윤이가 지금 나랑 같이 가겠다고 하는데 당신이 더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거요? 당신이 부귀영화를 원한다면 당신에게 강요하지는 않겠소. 하지만 윤이는 내 딸이오. 아이를 당신처럼 변하게 만들지는 않을 거요.”

    그는 소현주를 데리고 책상 쪽으로 돌아와 가방을 챙겼다. 

    소현주가 그중 인형을 하나 집어 들었다.

    이건 자신이 며칠 전에 받은 생일 선물과 같았다. 알고 보니 그 인형들은 바로 자신의 생부가 조각한 것이었다. 

    “강 아저씨.”

    아이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호칭을 바꾸었다.

    “아버지, 우리는 이제 안 돌아오는 건가요?”

    강세안이 온화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저 당분간 돌아오지 않는 것뿐이야. 네가 실종되면 강왕부에서 틀림없이 너를 찾을 거다. 그 일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네가 어머니를 만나고 싶으면 아버지가 만날 수 있게 해줄게.”

    “정, 정말요?”

    “응.”

    아이는 손에 들고 있는 인형을 들어 올렸다.

    “이건 아버지가 직접 조각한 거예요?”

    “그래, 네 생일인 것을 알고 아버지가 며칠 동안 조각한 거야. 좋으면 나중에 또 만들어줄게.”

    소현주는 인형을 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나 너무 무서워요.”

    아이는 아주 막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바깥세상이 어떤지 몰라요. 아버지가 말했던 강호는 아주 위험한 곳 아니었나요?”

    강세안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가 그런 일에 참견만 하지 않으면 그렇게 위험하지도 않아. 앞으로 아버지가 무예를 가르쳐 줄게. 우리 부녀는 천하를 유람하면서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가고 자유롭게 살게 될 거야.”

    “많이 걸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강세안이 대답했다.

    “아버지가 말을 사면 돼. 네 발로 걸을 필요 없단다. 놀다 지치면 어딘가 머물 곳을 찾아서 집 두 채를 사든지 아니면 산꼭대기를 사서 무릉도원에서처럼 살 수도 있어.”

    “그럼 제 시녀도 가질 수 있어요?”

    강세안이 웃으며 말했다.

    “길에서는 데리고 다니기 불편하니 우선 스스로 돌보는 법을 배우렴. 풍파가 지나가고 나면 아버지가 건장한 하녀 두 명을 사줄게.”

    “어…….”

    소현주가 막막함에 머뭇거리자 강세안이 옷 한 벌을 털어 건네주었다.

    “이걸로 갈아입어라.”

    이 옷은 거친 면으로 만든 옷으로 먼지투성이에다 모양도 예쁘지 않았다. 소현주가 만져보니 거칠거칠했다.

    아이는 평생 이런 옷을 입어본 적이 없었다.

    “꼭 입어야 해요?”

    “입어야 해. 네 옷이 너무 눈에 띄어서, 이걸로 갈아입어야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할 거야.”

    소현주는 입을 꾹 다물고 옷을 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금 강세안이 설명했던 것은 아이에게 있어서는 알 수 없는 미래였다. 머리로는 고생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이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옷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아이는 그 미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상상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낡아 빠진 옷을 입은 자신이 똑같이 너덜너덜한 옷을 입은 아버지를 따라다녀야 하는 삶이었다. 

    예전의 자신은 이런 사람을 보기만 해도 눈이 더러워진다며 싫어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자신이 이런 사람이 될 것이다.

    소현주가 고개를 돌려 세자비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세자비의 눈에서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강세안이 양보하려 하지 않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세자비는 소매 안의 물건을 꽉 쥐었다.

    강세안이 짐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돈주머니, 반쯤 다듬은 목각인형, 조각칼…….

    “아버지!”

    그는 소현주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소현주는 아직 옷을 갈아입지 않고 있었다. 

    “왜 옷을 안 갈아입었어? 서둘러라, 지체할 시간이 없어.”

    그날 그는 영원에 몰래 들어갔다가 다른 사람한테 들켰다. 그래서 그는 요 며칠 아주 조심하면서 지냈다. 다행히도 미행하는 사람은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행적이 유출될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빨리 떠나는 것이 안전했다. 

    소현주가 울며 말했다.

    “나 안 가면 안 돼요? 난 말도 못 타서 빨리 가기도 아주 힘들 거예요. 또 엄마랑 남동생을 두고 떠나고 싶지 않아요…….”

    강세안이 화를 참으며 말했다.

    “윤아, 이런 건 다 잠깐이야. 아버지가 나중에 다시 데리고 돌아와 줄게. 말 들으렴. 가야지만 네가 안전해.”

    “하지만, 이 일은 두 분만 알고 있는 것 아니에요? 두 분이 말하지 않으면 누가 알겠어요?”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단다.”

    강세안이 말했다.

    “네 눈에도 우리가 이렇게 닮았잖니. 네가 강왕세자와 닮지 않았다는 건 누구나 알아볼 수 있어. 만약 어느 날 누군가가 우리의 일을 알아내면? 윤아, 네가 고생할 일은 없을 거야. 아버지가 약속할게.”

    소현주가 울면서 애원했다.

    “아버지! 내 아버지라면서 왜 내 생각을 안 해주는 거예요? 아버지로서 자식이 잘되길 바라야 하는 것 아니에요? 나는 지금 잘 지내고 있어요. 어머니랑 동생이랑 같이 있고 누구한테나 다 사랑받고 있는데 아버지는 왜 그걸 망가뜨리려고 해요? 날 전혀 사랑하지 않는 거예요?”

    “아니야, 윤아…….”

    강세안이 그녀를 달래려는데 그만 말이 잘렸다.

    “윤아!”

    세자비가 다가왔다.

    “됐어, 네 아버지의 말씀도 일리가 있다. 이 일은 어쨌든 숨어있는 화근이야. 네 안전을 위해서 가는 게 좋겠어.”

    “어머니…….”

    세자비가 눈물을 닦고 말했다.

    “이 어미가 너한테 많이 미안해. 애초에 너를 낳지 말았어야 했어. 탓하고 싶으면 이 어미를 탓하렴. 앞으로 아버지를 따라가면 스스로 잘 챙겨야 한다. 알았지?”

    소현주가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며 말했다.

    “어머니, 저를 원하지 않았던 거예요?”

    세자비는 말없이 그녀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 그녀는 몸을 일으키며 강세안에게 말했다.

    “알았어요, 윤이가 당신과 함께 가는 것에 동의할게요. 하지만 당신도 아이를 잘 보살펴 준다고 약속해요. 아이가 좀 크면 경성으로 데리고 와서 보여줘요.”

    강세안은 그녀를 주시하다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세자비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당신이 내가 부귀영화를 탐낸다고 말해도 난 할 말 없어요. 난 고생할 엄두가 안 나는 게 맞아요. 하지만 강세안, 그때 난 당신을 진심으로 좋아했어요. 난 윤이를 낳은 걸 후회한 적이 없어요.”

    강세안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게도 또 미워하게도 만드는 이 여인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 잘못이오. 당신과 신분이 맞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망상을 품었었소. 이게 본래 당신이 살아야 하는 삶이지.”

    세자비는 펑펑 눈물을 쏟으며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를 껴안았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항상 그리울 거예요.”

    그녀의 울음소리와 애틋한 포옹에 강세안은 그들이 아직 순수한 소년 소녀였을 때를 떠올렸다…….

    그도 역시 손을 뻗어 그녀를 안으며 위로했다.

    “미안해해야 하는 건 나요, 다 내 탓이오…….”

    말을 하는 도중에 등 한복판에서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그는 멈춰 서서 놀란 눈으로 품속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강세안은 손을 뒤로 보내 뒤쪽의 손을 잡고 힘껏 비틀어 세자비를 땅바닥에 내던졌다.

    강세안은 극도로 화가나 오히려 웃기 시작했다.

    “당신의 감언이설은 다 이것 때문이었군?”

    세자비는 그의 반응이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그녀는 땅에 넘어지며 머리를 제사상에 부딪혔다. 갑자기 피가 왈칵 그녀의 머리에서 쏟아졌다.

    “어머니!”

    소현주가 그녀를 불렀다.

    세자비는 이마가 축축해지는 느낌과 더불어 은근한 통증을 느낄 수 있었다. 손을 뻗어 만지니 온 손바닥이 피로 물들었다. 

    그녀는 손을 떨며 고개를 들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강세안을 바라보았다.

    “다, 당신 이렇게 잔인할 수가…….”

    강세안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내가 잔인하다고? 당신은 정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는군! 나는 그저 윤이를 데리고 가고 싶었을 뿐이오. 그런데 당신은 날 죽이려고 했지. 내가 죽기만 하면 당신의 비밀은 아무도 모를 것 아니오? 그러면 당신은 안심하고 세자비로 살 수 있겠지. 안 그렇소?”

    그는 비틀거리며 손을 뒤로 뻗어 금비녀를 힘껏 잡아 뽑았다. 선혈이 튀고 얇은 봄옷이 피로 흠뻑 젖었다. 

    챙강!

    금비녀를 땅에 던진 강세안의 표정은 차가웠고 그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당신 아주 아쉽겠군. 요 몇 년 동안 나는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들며 살아왔지, 이까짓 작은 상처가 별거겠소?”

    세자비는 딸까지 미끼로 삼아 아주 오랫동안 세웠던 계획이 이렇게 실패할 줄은 몰랐다. 

    ‘강세안과 사이가 틀어졌으니 이제는 반드시 윤이를 데리고 가려고 할 거야. 일부러 크게 소란을 피울 수도 있지. 그때쯤이면 나도 좋은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이 들자 세자비는 가슴에 울화가 치밀어 올라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또 어쩌겠다고요? 가고 싶으면 당신이나 가면 되지, 우리랑 평생 안 보고 살던 사이인데 왜 다시 돌아왔어요? 우리가 잘 지내고 있는 걸 보고 굳이 와서 훼방 놓는 거잖아요? 강세안, 내가 당신한테 미안할 게 뭐 있어요? 

    애초에 당신과 나는 신분이 안 맞아서 부부가 될 수 없었어요. 난 왕부에 시집을 가고 당신은 군대에 가고 우리는 각자 갈 길을 간 거예요. 누구도 서로를 방해할 필요가 없다고요! 윤이 당신 자식 맞아요. 그래서 뭐요? 내가 낳아서 내가 키웠고 당신보다 백배는 더 고생했어요. 당신이 뭔데 내 아이를 뺏어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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