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22)화 (322/385)

322화. 골치 아픈 세자비

“다들 좀 기다려보세요.”

루안이 입을 열었다. 

“이 강십이라는 자는 신분이 좀 이상하니 제가 조사를 해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요.”

“이상하다고요?”

루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능력을 볼 때 분명 시위 출신일 거요. 군 경력도 있을지 모르지. 제대로 알아보고 나면 활용할 데가 있을지도 모르오.”

대장공주가 턱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하다가 그냥 포기해버렸다.

“너희 둘은 꿍꿍이속이 너무 많아서 본궁은 신경 쓰기도 귀찮구나. 온아, 내일 한 번 건너오거라. 본궁의 밀정한테 너를 한 번 만나 보라고 하마.”

지온이 깜짝 놀라며 기뻐했다. 

“어머니!”

이는 대장공주가 자신의 밀정더러 지온의 명령도 따르게 하겠다는 의미였다. 

대장공주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느긋하게 말했다.

“전에는 본궁이 나이가 많아도 일을 맡길 사람이 없었어. 이제는 딸이 생겼으니 당연히 딸 복도 좀 누려봐야지.”

그리고는 손사래를 쳤다.

“됐다, 너희 부부는 계속 놀아라, 본궁은 이만 가마.”

* * *

예불을 드리는 것은 지루한 일이었다. 

오 부인은 날이 밝기도 전에 절에서 일어나, 아침 수업을 할 때 편전으로 가서 경을 읽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오 부인은 종일 편전에서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았다.

소현주는 하루 동안 오 부인과 동행해보더니 이런 일정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오 부인은 아이가 인내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침 수업이 끝나면 놀러 나가렴. 하지만 시녀를 꼭 데리고 가고 사람이 많은 곳은 가지 말아야 해.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이 외할머니가 너희 부모에게 할 말이 없어.”

소현주는 이 말에 동의했다.

소현주는 시녀들을 데리고 나와 천천히 산책하다가 앞에 있는 천왕전(天王殿)에 도착했다.

머리에 삿갓을 쓰고 무명옷을 입은 어떤 사람이 천왕전 앞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는 나무를 조각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주위에 여러 가지 만들다 만 제품이 널려있었다.

소현주가 하나하나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물병, 이건 연꽃, 이건…….”

“이건 연꽃이고, 또 화개(华盖)와 물고기……. 이것들을 합치면 불문팔보(*佛门八宝: 불교에서 상서로움, 원만, 행복 등을 상징하는 8가지 법물)이지요.”

누군가 그녀의 말을 이어받았다.

소현주가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더니 웃기 시작했다.

“아저씨구나!”

나무를 조각하고 있던 사람은 바로 강십이었다.

그는 소현주에게 웃어 보이고 필요 없는 나무 한 토막을 들어 조각하기 시작했다.

소현주는 그의 옆에 쪼그리고 앉아 구경하고 있었는데 보면 볼수록 놀라웠다.

“이건 누구야? 왜 이렇게 나랑 닮았어?”

강십은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각칼로 깎을 때마다 얼굴 모양이 점점 뚜렷해졌고, 소현주 곁에서 시중드는 시녀들마저 이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사나이는 조각 솜씨가 정말 대단했다. 이 소녀 조각은 과장된 부분도 있고 사실적인 부분도 있었다.

그는 조각을 끝내고 사포로 조각을 곱게 다듬은 뒤에 소현주에게 건네주었다.

소현주가 기뻐하며 조각을 유모에게 보여주었다.

“나랑 비슷하지 않아?”

유모가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네요! 현주께서는 역시 관음마마를 모시던 동녀(童女)가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것이었군요.”

소현주가 하하 웃으며 강십에게 물었다.

“이거 색칠해줄 수 있어?”

강십이 고개를 끄덕이며 안에서 물감을 꺼내 한 획 한 획 색깔을 더했다.

장난감을 받은 소현주는 강십이 있는 곳에서 온종일 놀았다.

* * *

이튿날 소현주가 강십이 있는 곳에 또다시 왔다.

아이는 좀 친해졌다고 생각했는지 이것저것 활발하게 묻기 시작했다.

강십은 참을성 있게 대답하며 아이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에는 불문팔보를 이야기했고 나중에는 각종 강호의 기담을 이야기했다.

그는 말수가 적어 보였지만 의외로 아주 생동감 있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 소현주는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강왕부의 하녀들은 모두 그가 첫날에 현주를 구한 것을 알고 있었다. 또 소현주가 위험한 곳에 가지도 않았기 때문에 더욱 안심했다. 이에 소현주에 대한 감시가 점점 해이해졌다.

* * *

7일이 지나고 강왕세자비는 광명사에 아이를 데리러 갔다.

요 며칠 그녀는 골치가 아팠다.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시어머니가 갑자기 생각이 트인 것 같았다.

그날 약사발이 깨지고 세자의 의심이 강왕세자비에게로 향했지만, 강왕세자비는 당연하다는 듯 부인했다. 그러자 강왕비는 무슨 말을 해도 모를 정도로 울기 시작했다. 

강왕세자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어머니가 아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 모친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자비가 과거에 원한을 기억해두고 있다가 은근히 시어머니를 괴롭히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세자비는 한편으로는 남편의 의심을 풀기 위해 애를 쓰고 다른 한편으로는 광명사에 있는 딸을 걱정했다. 무슨 사고라도 생길까 걱정이 되어 입가에 물집이 다 생길 지경이었다. 

어렵사리 강왕세자의 마음을 잠시 돌려놓고 나니 세자비는 심적으로 너무나 고단했다.

하지만 이 두 번째의 머리 아픈 문제는 정말 잘 해결해야 했다. 절대로 더 이상 문제가 생기게 해서는 안 됐다.

세자비가 옷을 갈아입고 살금살금 문을 나서는데 뒤에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일찍 어디 가는 거요?”

세자비가 뒤를 돌자 강왕세자가 일어나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잠에서 덜 깬 몽롱한 얼굴이 분명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윤이를 데리러 가요.”

그의 이마에 땀이 조금 나는 것을 보고 세자비는 시녀에게 젖은 수건을 가져오게 하여 직접 땀을 닦아 주었다. 

“시간이 아직 이르니, 부군께서는 좀 더 주무십시오.”

강왕세자가 말했다.

“그러겠소. 일찍 갔다 일찍 오구려.”

세자비는 웃으며 알겠다고 대답하고 벽지에게 들어와서 강왕세자의 시중을 들라고 한 뒤에 집을 나섰다.

“세자 전하.”

벽지는 세자비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수줍게 세자에게 기댔다.

강왕세자는 손쉽게 그녀를 끌어당겨 벽지의 허리를 마음대로 더듬었다.

벽지는 벌써 며칠째 그와 몸을 섞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춘심이 동했다. 그녀는 고양이 같은 소리를 내며 자진해서 강왕세자의 몸 위로 기어 올라갔다. 

세자비는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안심하고 정원을 빠져나왔다.

그녀가 멀리 떠나자 바쁘게 움직이고 있던 벽지가 갑자기 힘껏 떠밀렸다. 벽지는 소리를 악, 지르며 침대 밑으로 떨어졌다.

벽지가 정신을 차리는 동안 강왕세자는 벌써 일어나서 큰 소리로 사람을 부르고 있었다.

“여봐라!”

벽지는 깜짝 놀랐다. 부름을 받고 들어온 사람이 시녀가 아니라 암위(*暗卫: 비밀 호위무사)였기 때문이다.

강왕세자는 냉담한 눈길로 그녀를 한 번 훑어보고는 말했다.

“사람을 보내 세자비를 잘 지켜보거라.”

“예.”

벽지가 무언가를 깨닫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세자 전하!”

그러나 강왕세자는 더 이상 벽지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는 대충 씻고 재빨리 옷을 갈아입은 뒤 문을 나섰다.

* * *

루안이 조사하겠다고 했던 것은 이틀 후에 결과가 나왔다.

지온이 아주 의외라는 듯 말했다. 

“이렇게 빨리요?”

‘이 강십이라는 자는 이력이 불분명하니 신원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게 아니었나?’

지온이 생각하는 사이에 루안이 말했다. 

“공교롭게도 우리 북양에서도 오랫동안 조사해오던 자더군.”

지온은 이 말을 듣고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채고 그에게 물었다. 

“그 사람 누군데요?”

루안이 찻잔을 받아 한 모금 마시고 계속 말했다.

“정해군의 사람이오.”

지온은 깜짝 놀랐다. 

무애해각을 공격한 해적들은 변장한 정해군이었다. 그들은 정해군이 동남쪽에 멀리 있고, 자발적인 파벌도 이루고 있어 어떻게 손을 뻗어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그물에서 빠져나온 물고기 한 마리가 있었던 것이다. 

“이름은 강세안(姜世安)이라 하는데 오씨 가문의 시위였소. 10년 전에 정해군에 들어갔지. 시기가 강왕세자비가 시집간 때와 딱 맞아떨어지오. 그들 사이의 은밀한 관계를 알고 있었던 덕분에 이 일을 더 이해하기 쉬웠소.”

당시 강세안은 자기가 지키는 가문의 아가씨와 관계를 맺었다. 그런데 강왕부에서 오씨 가문의 소저였던 세자비를 마음에 들어 했다. 어쩔 수 없어서였는지, 아니면 강왕부의 권세가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오씨 가문의 소저는 결국 강왕부로 시집가서 강왕세자비가 되었다.

그 후 강세안은 오씨 가문을 떠나 정해군으로 이적했다.

“4년 전 정해군이 해적 행세를 하며 무애해각을 기습했지. 그때 이 강세안이란 사람은 교위(*校尉: 지금의 부대장 정도의 무관) 중 한 명이었고 그날 밤 종적을 감췄소.”

“정해군?”

지온은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다. 

“그럼 이 사람이 소달을 알겠네요?”

루안이 지온을 주시했다. 

“당신 지금 생각하는 게…….”

지온은 이미 마음을 정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 당시 무애해각에서의 일은 이 사람도 책임이 있으니 만약 소달에게 편지를 보내면…….”

루안은 번개가 치듯 단번에 이해가 됐다.

“소달이 반드시 약속 장소에 나타나겠군!”

지온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자비 하나로는 부족하겠지만 거기에 소통령(*统领: 지금의 여단장에 해당하는 무관)까지 더한다면? 이쯤 되면 그들도 나설 이유가 충분하지.’

* * *

강왕세자비가 집을 나설 때 소씨 가문으로 서신 한 통이 배달되었다.

소달은 집사에게 가로막히자 짜증스럽게 말했다.

“지금 관아에 가려는 것이 안 보이느냐? 갔다 와서 이야기하자!”

그러자 집사가 말했다.

“장군, 그 사람이 장군께서 지금 서신을 안 보시면 후회하실 거라고 했습니다.”

소달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마침내 그 서신을 건네받았다.

그는 서신을 보자마자 표정이 변했다. 소달은 급히 방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집사에게 지시했다. 

“관아에 사람을 보내 휴가를 신청해라, 내가 어딜 가는지는 아무도 모르게 하고!”

“예.”

* * *

세자비가 광명사에 도착하자 오 부인이 막 아침 식사를 끝내고 웃으며 말했다.

“너무 일찍 왔구나. 윤이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어!”

이렇게 말하며 오 부인은 소현주를 깨우라고 지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녀가 와서 소현주가 방에 없다고 보고했다.

오 부인이 깜짝 놀랐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어딜 간 게야?”

시녀가 말했다.

“아마 천왕전에 갔을 겁니다. 현주께서 요 며칠 그곳에 놀러 가는 것을 제일 좋아하셨습니다.”

오 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딸에게 말했다.

“지난번에 방생지에서 윤이를 구해줬던 사내 기억하지? 그 사람이 조각 기술이 아주 훌륭한데, 지금은 천왕전에서 일하고 있어. 윤이가 한가할 때면 그 사람을 찾아가 놀더구나. 지켜보니 착한 사람인 것 같아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 이따 돌아가기 전에, 스님들한테 그를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하자꾸나. 그럼 그날 도와준 은혜에 보답은 하는 셈이 되겠지.”

세자비가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는 잠깐 앉아 계세요. 제가 가서 윤이를 찾아올게요. 아이가 놀기 시작하면 정신을 놓는다니까요.”

“그래, 가서 애 혼내지 말고. 모처럼 밖에 나와서 좀 많이 놀았을 뿐이니까.”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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