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18)화 (318/385)
  • 318화. 선을 보다

    지온은 이쪽을 한 번 보고 저쪽을 또 한 번 보았다. 

    유신지는 눈을 슬슬 피하며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경소소도 눈빛이 흔들리며 고개가 가슴께까지 떨어졌다.

    그제야 지온은 깨달았다. 

    “두 사람 지금 선 보는 거야?”

    ‘어쩐지 조방궁에 안 갔다 했더니, 아는 사람을 만날까 봐 겁나서 그랬네?’

    경소소가 황급히 그녀를 잡아당겼다.

    “지온 언니, 목소리 좀 낮춰!”

    지온은 웃고 싶었지만, 그들이 부끄러워하며 화를 낼까 봐 진지한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대공자가 경 백모님의 요구에 딱 들어맞네. 둘이 잘 어울려.”

    유신지가 고개를 푹 떨구고 중얼거렸다.

    “어울리긴 뭐가 어울린단 말이오! 경 소저는 날 만나고 나서 벌써 열 번도 넘게 욕을 했소. 내가 맘에 안 드나 보오.”

    경소소가 그 말을 듣고 눈을 부라렸다.

    “꼭 내가 공자를 괴롭힌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선을 보는 게 싫으면 나오지를 마세요. 우리 어머니 앞에서는 무슨 앞잡이처럼 생글거리더니 나랑 나오자마자 표정이 달라졌잖아요. 조금도 성의를 안 보여 놓고 지금 내가 싫은 내색을 했다고 탓하는 거예요?”

    유신지가 반박하며 말했다. 

    “경 소저는 뭐 성의가 있었소? 방금 문으로 들어오는데 내 발을 걸려고 한 건 내가 넘어져서 망신당하는 걸 보고 싶어서 그런 것 아니오? 당신도 선을 보기 싫으면서 말도 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한테 이런 음모나 꾸미다니, 너무 야박한 것 아니오?”

    그가 사실을 폭로하자 경소소는 수치심이 들어 버럭 화를 냈다. 

    “당신, 선보기 싫다는 게 설마 거짓말은 아니죠? 진짜면 가서 그냥 말해요! 사내대장부가 되어서는 뒤에서 딴소리하지 말고요. 이러면서 내가 말을 예쁘게 안 한다고 탓하는 거예요?”

    유신지가 허허 웃었다.

    “당신이 나를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건데 가서 말해야 할 사람은 당신 아니오? 당신이 정국공 부인 앞에 가서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한마디만 하면 이런 연극을 할 필요도 없이 지금이라도 각자 제 갈 길을 갈 수 있소. 그럼 좋지 않겠소?”

    경소소가 흥 하고 쏘아붙였다.

    “책 읽는 사람들은 아주 교활하기 짝이 없어요. 겉으로는 성인군자인 척하면서 이런 작은 일까지 여자한테 뒤집어씌우려고 하니 말이에요. 내가 가서 말하면 당신은 무고한 사람인 것처럼 굴 거고 욕은 내가 다 먹을 테니 당신이야 좋겠죠. 계산이 어찌나 빠르신지! 꿈도 꾸지 마요!”

    유신지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 말은 경 소저는 거절할 마음이 없다는 거요?”

    경소소는 팔짱을 끼고 콧구멍을 하늘을 향해 치켜들고 곡조를 흥얼거렸다. 이런 그녀의 태도를 보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의도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유신지가 빙그레 웃었다. 

    “사실 당신이 오해하고 있는 거요. 난 오늘 아주 즐겁다오. 경 소저가 명문가 출신에다 또 이렇게 깜찍하기까지 하니 스물 몇 살이 되도록 장가도 못 간 나 같은 노총각이 싫어할 리가 있겠소?”

    말싸움으로 말할 것 같으면 경소소가 어디 유씨 집안의 대공자와 상대나 될 수 있겠는가! 그의 도발에 경소소는 쉽게 넘어가 화를 냈다. 

    “당신 지금 나랑 끝까지 해보겠다는 거예요?”

    유신지가 팔을 옆으로 벌리며 아주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난 솔직하게 말한 거요! 아니면 우리 지금 바로 어른들한테 가서 이 혼사를 진행하자고 합시다. 어떻소?”

    경소소는 화가 나서 입술을 비틀며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

    “말하면 하는 거지, 누가 무서워할까 봐요!”

    “그럼 갑시다!”

    “가요, 가!”

    두 사람은 이미 지온을 잊어버린 듯했다. 그들은 어른들 앞에 가서 속마음을 밝히고 당장 혼인한 뒤에 상대를 신방으로 보내서 상대방을 난처하게 만들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었다.

    이때 밖이 왁자지껄해지며 놀란 비명이 들리고, 이어서 무언가 풍덩 물에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온이 뒤를 돌아보자 다른 시녀가 급히 와서 보고했다.

    “부인.”

    “무슨 일이냐?”

    그 시녀가 유신지와 경소소를 한번 쳐다보았는데 지온이 괜찮다는 눈빛을 보내자 이내 입을 열었다. 

    “누군가가 일부러 분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지온은 이내 표정이 진지해지더니 말했다.

    “가자!”

    그러자 유신지와 경소소는 보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이 대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녀를 따라갔다. 

    “지온 언니, 뭐 하는 거야? 응?”

    경소소의 얼굴에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유신지가 물었다. 

    “당신, 누굴 미행하고 있었던 거요?”

    지온은 대답 한마디 없이 눈으로 방생지를 훑어보았다. 누군가 떠밀려 물에 빠져 있었고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와서 서로 짓밟고 난리가 나 있었다. 

    혼란스러운 가운데 인파를 거슬러 가는 사람이 특히 눈에 들어왔다.

    지온을 등지고 있어 그의 생김새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뒷모습이 영원에 나타났던 남자와 아주 닮은 것 같았다. 

    그는 소현주를 잡아끌어 밖으로 데리고 가고 있었는데 소현주를 모시는 시녀는 주변에서 사람들이 서로 짓밟아대는 통에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온이 서아에게 분부했다.

    “당장 가서 어머니한테 여기 일이 생겼다고 알려.”

    그러고 나서 지온은 또 다른 시녀를 데리고 그의 뒤를 쫓았다. 

    유신지와 경소소도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역시 그녀를 따라갔다.

    이 남자는 무공이 아주 높았기 때문에 지온은 너무 바짝 따라붙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가 소현주를 데리고 광명사 뒷문에 있는 불탑으로 가는 것을 보고 더 가까이 가지 못하고 외곽 쪽에 멈춰 섰다.

    유신지와 경소소도 눈치 있게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놀다가 지친 척하며 아무렇게나 돌난간에 앉았다. 

    그 남자는 고개를 돌려 뒤를 한 번 살펴보았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모습을 보고 그는 의심하지 않고 불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경소소가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지온 언니,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예요? 저 아이는 어느 댁 아이인데요?” 

    지온이 대답하기도 전에 대부인이 도착했다.

    “온아!”

    “어머니!”

    지온이 그녀를 데리고 가서 작은 소리로 방금 본 상황을 말했다.

    대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들은 인원이 많아서 접근하기가 어려울 테니, 내가 가서 상황을 보겠네.”

    지온은 정말 그녀를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이성이 그러면 상대방이 눈치채고 경계할 수 있다고 경고했기 때문에 아쉽지만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알겠어요.”

    대부인이 곧 사라졌다.

    지온은 돌아와 경소소의 옆에 앉았다.

    유신지가 두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도대체 누구를 감시하는 거요? 소현주라니? 어느 왕부의 소현주를 말하는 거요?”

    지온은 그들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강왕부요.”

    유신지와 경소소의 얼굴색이 동시에 바뀌었다. 

    “강왕부의 일에 끼어들려는 거야?”

    유신지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미쳤소? 루 통정은? 당신이 이렇게 제멋대로 구는 걸 알고는 있소?”

    지온이 빙그레 웃었다.

    “왜 그 사람이 모를 거라고 생각해요?”

    유신지가 그녀를 한참 쳐다보더니 결국 화를 내며 말했다.

    “둘 다 미쳤군! 둘이 아주 천생연분이야!”

    그는 마침내 자신이 지온의 짝이 될 수 없었던 이유를 알았다. 

    지온은 화를 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칭찬 감사해요.”

    경소소는 화가 나지만 차마 표출하지 못하고 있는 유신지를 보고 아주 즐거워하며 말했다.

    “강왕부는 또 왜? 언니는 대장공주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잖아. 설마 그들이 무서워서 그런 거야?”

    유신지가 입꼬리를 잡아당기며 가식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러게! 대장공주께서 아주 대단하시지 않소!”

    경소소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그렇게 비꼬면 우리가 못 알아들을 줄 아는가 봐요. 대장공주께서 출가를 강요받았으니 이미 권력에 중심에서 멀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하지만 그것 때문에 폐하께서 대장공주마마께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고 오히려 강왕세자에게 불만을 품고 계신 거예요. 설사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폐하는 대장공주마마의 편이 되어 주실 거라고요.”

    유신지가 의외라는 눈빛으로 경소소를 한 번 보고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도 머리가 있긴 하구려?”

    경소소는 기분이 확 나빠졌다.

    “뭐라고요? 정말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 바보인 줄 아나 봐? 허, 당신처럼 잘난 척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은 본 적도 없네요!”

    “난 그걸 자신감이라고 부른다오. 고맙소.”

    유신지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지온은 두 사람의 언쟁을 듣고 있자니 가소로워져서 얼른 입을 열어 말렸다.

    “됐어! 둘 다 조용히 좀 해, 들키라고 고사를 지내는 거야?”

    세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멀리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강왕부와 오씨 가문 사람이 소현주를 찾고 있었다. 

    “저 사람이 오씨 부인 맞지?”

    경소소는 어디서 났는지 작은 귤을 꺼내 껍질을 벗기고 몇 조각으로 쪼개서 지온에게 주었다.

    지온이 귤을 받아먹으면서 말했다.

    “맞아! 오늘 강왕세자비 모녀가 오 부인을 모시고 예불하러 왔어.”

    유신지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사전에 뭔가 계획된 것이 있는 거요?”

    경소소가 그의 손바닥을 응시하며 불량스럽게 물었다.

    “손은 왜 내미시는지?”

    유신지가 당당하게 말했다.

    “보는 사람도 자기 몫이 있지 않소! 이렇게 서로 기밀을 나누는 자리에서 안 나눠 먹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니오?”

    경소소가 생각해보니 의외로 그의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망설이다가 귤 두 조각을 그에게 나누어주고는 중얼거리며 한 조각은 자기 입에 넣었다.

    “이 정도면 됐다…….”

    한편, 시위들이 아이를 찾지 못한 채 강왕세자비에게 가서 보고하자 세자비가 크게 화를 냈다.

    “못 찾았으면 계속 찾아라! 현주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너희들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줄 알아라!”

    “와! 정말 무시무시하네!” 

    유신지가 말했다.

    “강왕세자비는 단정하고 현숙하다고 하지 않았소? 여인들의 부드러움이란 역시 다 꾸며낸 거였군.”

    말이 끝나자 지온과 경소소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네 개의 눈이 동시에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자 유신지가 아차 싶어 뒤늦게 덧붙였다.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세자비가 그렇다는 거요!”

    그러고 나서 얼른 화제를 돌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오? 소현주가 유괴된 거요?”

    지온이 고개를 저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지금 자세히 말하기 어려우니 일단 좀 기다려봐요.”

    세 사람이 묵묵히 귤만 먹고 있는데 강왕부의 사람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다. 심지어 세자비는 울음을 터뜨렸다.

    “윤아! 윤아, 어디에 있느냐? 빨리 나오거라!”

    오 부인도 역시 초조한 표정으로 하인에게 지시했다.

    “빨리 왕부에 가서 소식을 전해라, 사람을 불러와서 같이 찾자!”

    “언니, 저 사람들한테 말할 거야?” 

    경소소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지온이 대답하기도 전에 불탑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방금 탑에 들어간 그 남자가 소현주를 데리고 나왔다.

    그는 오늘 아주 말끔하게 차려입었다. 머리카락과 수염을 다 정돈하고, 소박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있었다.

    “어머니!”

    소현주가 큰 소리로 부르며 이쪽으로 달려왔다.

    유신지와 경소소 두 사람은 하마터면 눈알이 다 튀어나올 뻔했다.

    “이게 무슨 일이오? 유괴가 아니었소?”

    “분명히 일부러 데려갔는데 왜 다시 돌려보냈을까?”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으니 미리 발을 빼려고 그런 것 아니오?”

    지온은 대답하지 않고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참!” 

    두 끈끈이들이 급하게 지온을 뒤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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