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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 (317)화 (317/385)
  • 317화. 광명사(光明寺)

    얼마 지나지 않아 기문혜가 돌아왔고 원창은 그 참에 일어나 며느리에게 지온을 배웅해주라고 지시하고 안으로 돌아갔다.

    그는 계속 이야기하면 자신의 밑바닥이 드러날까 두려웠다. 

    기문혜가 궁금해했다.

    “시아버지께 무슨 일이 있어요? 꼭 이가 아픈 사람처럼 어딘가 불편해 보이시네요.”

    지온이 웃으며 말했다.

    “조정에서 무슨 골치 아픈 일이 있었나 보죠! 재상이시니 하는 일도 많으실 거고 우리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어요.”

    기문혜도 그렇다고 생각해 더 묻지 않고 그녀를 배웅했다.

    * * *

    집으로 돌아온 지온은 루안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이 일에 관해 이야기하고 물었다.

    “원 재상께서 왜 이러시는 걸까요? 우리를 자극하려는 건가요?”

    루안이 말했다.

    “과연 선대 황제께서 총명하다 극찬하실 만하오. 재상께서 눈치를 채신 것 같소.”

    먼저 대장공주가 언제 조방궁으로 돌아갈지 물어본 것은 그녀가 이사한 목적을 의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북양태비를 언급하며 북양으로 돌아가라고 재촉한 것은 여기 남아있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뜻이었다.

    마지막으로 루씨 가문 형제가 조정에서 다툰 일에 대해 언급 것은 루혁이 상경한 목적이 루안의 오명을 벗기고 의혹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기 위해서라는 것을 눈치챘다는 뜻이었다. 

    지온이 고민하며 중얼거렸다.

    “그럼 그걸 우리한테 알려주려는 거예요, 아니면 경고하려는 거예요? 둘 다인가.”

    루안이 생각해보더니 말했다.

    “둘 다겠지!”

    지온이 말했다. 

    “그건 좀 이상한데요. 원 재상은 항상 자기 안위만을 생각하던 사람인데 어째서 갑자기 우리 일에 개입하려는 거죠? 화를 불러올까 봐 두렵지도 않은 걸까요?”

    루안이 웃으며 말했다.

    “아마 나쁜 일은 아닐 거요. 재상께서 적의가 있었다면 우리에게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지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안심하고 이 일을 루안에게 맡긴 뒤 자신은 강왕부를 살피는 데 집중했다. 

    루안에게는 북양왕부의 비밀 정보원이 있었는데 지온은 일찍이 류명주에게 편지를 전할 때 그의 정보망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두 사람이 혼인한 뒤 루안은 조 선생을 불러 더 이상 자신을 거치지 말고 직접 지온의 명령에 따르라고 지시했다. 

    루안은 공무로 바빴기 때문에 지온은 아예 정보망을 건네받아서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찾았다. 

    또 보름쯤 지났을 때 조 선생이 와서 보고했다.

    “강왕부에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세자비가 소현주와 오 부인을 모시고 예불하러 광명사로 간다고 합니다.” 

    강왕세자비의 성은 오 씨이고, 오 부인은 바로 그녀의 생모를 일컬었다.

    지온이 물었다.

    “강왕세자는요? 요 며칠 무슨 특별한 행동이 있었나요?”

    조 선생이 대답했다.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지만 강왕부의 경비가 더욱 삼엄해진 것으로 보아 분명히 도둑이 들었다고 의심하는 것 같습니다.”

    지온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대부인을 찾아갔다.

    “어머니, 광명사에 향을 피우러 가시겠어요?”

    * * *

    북양태비는 나갈 준비를 하는 지온 모녀를 보며 따라가고 싶어 안달이었다. 

    “진짜 내가 안 따라가도 되겠어?”

    지온이 손을 흔들었다.

    “어머님께서 가시면 너무 눈에 띕니다. 같이 가시게 되면 강왕세자비가 곧 소식을 들을 거고 그럼 그쪽에서 미리 대비하겠지요.”

    북양태비가 생각해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신분이 높았기 때문에 광명사에 가려면 많은 사람을 동원해야만 했다. 강왕세자비가 이를 알게 되면 와서 인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북양태비는 그래도 영 내키지 않아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럼 내가 변장하고 가면 어떠니? 나이 든 시녀로 분장하면 아무도 모를 게다.”

    지온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다.

    “어머님! 이렇게 기백이 넘치시는데 시녀로 분장한다고 누가 속겠습니까! 사람들이 알아보면 곤란합니다.”

    북양태비는 결국 설득당해 의기소침하게 말했다.

    “알았다, 네 말 들으마.”

    지온이 그녀를 위로했다.

    “양어머니께서 집에 계시지 않습니까? 양어머니는 집 밖으로 나들이 가기도 힘드신데 더 불쌍한 처지이시지요! 조방궁에서 나왔다고는 하지만 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정원에 갇혀서 화원을 산책하는 일만 하고 계세요. 오늘만 좀 불편하실 뿐 나가고 싶으시면 언제든지 나가실 수 있는 어머니와는 상황이 매우 다르시지요.” 

    북양태비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이내 기분이 좋아졌다. 

    “네 말이 옳구나. 대장공주의 불쌍한 처지를 봐서 내가 오늘 하루 함께 있어 줘야겠다.”

    “예, 어머님 잘 부탁드립니다.”

    북양태비를 위로하고 지온은 대부인과 함께 문을 나섰다.

    경성 사람들은 향을 피우러 갈 때 보통 두 곳으로 갔다.

    첫 번째는 조방궁이고, 두 번째는 광명사였다.

    조방궁은 황실의 사원이자 여관이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향을 피우러 오는 손님은 권세가 높은 사람과 부녀자가 많았다. 

    광명사는 또 달랐다. 그들은 서민 노선을 걷고 있었다.

    광명사는 항상 절의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빈민을 구제했다. 곳곳에 있는 작은 마당을 수리하여 경성에 시험을 보러 온 수험생들에게 아주 싼값에 빌려주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자 광명사 주변에는 많은 문인과 학자들이 모여들게 되었고 문단의 대성지가 되었다.

    지온은 대부인과 마차에서 내려 접대 담당 승려의 영접을 받으며 광명사로 들어갔다.

    “지온 언니!”

    불현듯 귓가에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지씨 가문의 두 모녀는 고개를 돌려 보고 깜짝 놀랐다.

    문 옆에 정국공 부인과 경소소가 있었다.

    그녀들은 판에 박은 듯이 똑같이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서로 인사를 한 뒤 경소소가 물었다.

    “지온 언니, 언니는 도가 문파 제자인데 절에도 향을 피우러 와?”

    지온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나는 속가 제자(俗家弟子)라 괜찮아. 게다가 불교와 도교는 본래 한 집안이잖아. 유람하던 시절에는 도관을 찾지 못하면 절에 가서 자는 일도 다반사였어.”

    “그렇구나…….”

    지온이 되물었다.

    “너랑 경 백모께서는 왜 조방궁에 안 갔어?”

    대장공주가 있었기 때문에 정국공부에서 향을 피우러 갈 때는 줄곧 조방궁으로 갔다. 

    경소소는 입만 벙긋거리고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도 정국공 부인이 반응이 빨라 얼른 대꾸했다. 

    “이제 대장공주께서 안 계시지 않니? 소소가 놀러 나오고 싶다고 해서 여기저기 둘러보던 중이란다.”

    지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힘 있는 집안 부녀자들에게 향을 피우는 일은 신에게 빌고 부처에게 절하는 것이 아니라 놀면서 바람을 쐬는 일에 더 중점이 가 있었다. 매번 조방궁으로만 가면 싫증이 날 만도 했다. 

    양쪽은 잠시 서서 주저하며 입을 열지 않았다.

    그녀들의 관계를 고려했을 때 향을 피우러 가다 우연히 만나면 동행을 청하는 것이 예의였다.

    하지만 지온은 이번 방문에서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경씨 가문의 모녀와 동행하면 방해가 될 것이 뻔했다.

    정국공 부인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역시 동행을 꺼리는 눈치였다. 

    대부인이 상황을 보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희는 무비대사(无悲大师)와 선약이 있어 먼저 가보겠습니다.”

    경씨 가문의 모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국공 부인이 대답했다.

    “그럼 저희가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부인께서는 편한 대로 하십시오.”

    작별 인사를 하고, 양쪽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지온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저 두 사람 좀 이상한 것 같지 않으세요?”

    대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따로 볼일이 있는 것 같더군.”

    “정말 이상하네요. 말하기 곤란한 일이라도 있는 걸까요?”

    대부인이 말했다. 

    “그건 모르지.”

    지온도 그냥 물어본 것뿐이었다. 그렇게 큰 정국공부에 비밀이 좀 있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 

    * * *

    한편, 경소소도 어머니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지온 언니는 모르겠죠?”

    정국공 부인이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아도 상관없어. 넌 상대방을 잘 속일 생각이나 해.”

    경소소가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쑥스러워했다.

    “누가 보면 웃을까 봐요…….”

    “웃을 건 뭐 있어? 다른 집 아가씨들은 안 그러는 줄 알아?”

    * * *

    지온은 대부인과 향을 피우고 무비대사를 찾아가 점을 쳤다.

    다행히 무비대사가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그녀가 화신첨의 명성을 앞세워 남의 사원에 찾아와 난동을 부린다고 오해했을 것이다. 

    향을 피우는 일을 끝내고 두 모녀는 편전에서 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서아가 밖으로 나가 살펴보고 돌아와서 말했다.

    “오씨 가문 사람들이 왔어요.”

    지온과 대부인은 벽화를 감상하는 척하며 뒤에 있는 전(殿) 쪽으로 갔는데 때마침 그녀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신분이 높은 사람이 찾아오자 대전(大殿) 안에 있던 향을 피우는 손님들은 먼저 나가 버렸고 지금은 강왕세자비 같은 사람만 남아있었다.

    소현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우리 왜 광명사에 온 거예요? 조방궁에 가는 게 더 조용하잖아요?”

    세자비가 웃으며 말했다.

    “조방궁에 모신 것은 화신마마이고, 오늘 우리는 부처님께 절을 올리러 온 거란다.”

    소현주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무슨 신이고 부처고 다 똑같은 거잖아요!”

    세자비가 약간 엄하게 말했다. 

    “무례하게 굴면 안 되지. 너의 외할머니께서는 부처님을 믿으셔!”

    또 다른 낯선 목소리가 들렸는데 아마도 오 부인일 터였다.

    오 부인은 웃음기를 띤 목소리로 말했다.

    “윤아, 조급해하지 말거라. 향을 다 피우고 나면 같이 구경하러 가자꾸나. 광명사는 조방궁보다 더 볼 것이 많단다. 매일 법회, 문회(*文会 문인들 모임), 그리고 불교 연극(佛戏), 볼 만한 것들이 아주 많으니 조금만 기다리렴.”

    소현주가 그제야 웃었다.

    잠시 기다리자 오 부인도 향 피우는 것을 끝내고 편전에 가서 쉬었다. 그녀는 사람을 시켜 소현주를 데리고 나가 놀게 했다. 

    편전에는 뒷문이 없어서 대부인이 지온과 의논했다. 

    “내가 잠입해서 저들을 감시할 수는 있는데, 자네와 같이하기는 좀 불편할 것 같네만.”

    지온이 잠시 생각해보더니 말했다. 

    “그럼 우리 두 갈래로 나눠요. 어머니께서 세자비를 감시하시고 저는 소현주 쪽을 주시할게요.”

    전에 한 번 협박당한 이후로 루안은 지온의 안전에 대해 매우 신경을 썼다. 매번 외출할 때마다 뒤에서 몰래 보호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대부인은 잠시 생각해본 뒤 승낙했다. 

    “그래, 문제가 있으면 바로 연락하시게.”

    * * *

    지온은 서아와 무공을 하는 또 다른 시비를 데리고 편전을 나와 소현주의 뒤를 따라갔다. 

    3월의 따뜻한 봄날은 나들이의 계절이라 광명사는 곳곳에 사람이 가득했다. 

    지온은 소현주를 따라 방생지에 도착했다.

    광명사의 방생지는 경성의 큰 명소로, 광명사에서는 방생지 안에 아주 큰 거북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백 살이 넘었다고 하는데 선남선녀들이 이곳에 와서 소원 비는 것을 좋아했다.

    소현주가 뒤를 도는 것을 본 지온이 급히 모퉁이로 피했다.

    그 찰나 모퉁이에서 갑작스럽게 사람이 나타나 지온은 누군가와 부딪쳤다.

    “아야!”

    양쪽은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두 사람은 귀에 익은 목소리에 이내 고개를 들어 서로를 마주 보았다. 

    한참 만에 유신지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물었다.

    “왜 여기 있소?”

    지온은 더 의아했다. 

    “나야 놀러 왔지요! 유 공자는요? 오늘은 휴일이 아니잖아요? 왜 관아에 안 갔어요?”

    유신지가 막 대답하려는데 짜증 가득한 목소리가 멀리서부터 점점 가까워졌다. 

    “다리가 부러졌어요? 한참을 따라오지도 못하고 진짜……!”

    뒤의 말을 삼킨 경소소가 그녀를 보며 말을 더듬었다. 

    “지, 지온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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