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16)화 (316/385)
  • 316화. 점잖지 못한 사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온이 물었다.

    “당신 미리 알고 있었죠?”

    루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왜 말 안 했어요?”

    루안이 그녀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

    “무슨 말을 하겠소? 하나는 당신 전 약혼자이고, 하나는 당신을 연모하는 사람이오. 그들이 당신한테 남은 미련이 없다고 해서 내가 당신 전 약혼자한테 거저 이익을 얻게 해줄 필요까지 있소? 흥!”

    지온은 질투 어린 그의 말투에 빙그레 웃었다.

    “질투하는 거예요?”

    루안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지온은 뛸 듯이 기뻐하며 그를 바라보고 웃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지온이 달래주지 않자 루안이 불평했다.

    “아직도 웃는 거요! 그게 그렇게 즐겁소?”

    지온이 웃음을 거두고 진지하게 생각에 잠겼다.

    “갑자기 이 결혼이 아주 손해라는 생각이 드네요. 열아홉 살짜리 탐화랑이 당신보다 나은 것 같아요! 아이고…….”

    지온은 말을 반쯤 하다 화가 나서 이를 갈고 있던 누군가에게 당겨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온은 마차에서 내릴 때 북양태비가 자신을 자꾸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것을 알았다. 지온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옷은 다 정리했는데!’

    지온은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고 나서야 입술연지가 다 번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지온은 소리를 지르며 루안을 쫓아가서 때렸다.

    “왜 안 알려줬어요?! 아주 잘하셨어요. 이제 어머니께서 날 어떻게 보시겠어요!”

    루안이 시원하게 웃었다.

    “어머니께서 모르실 거라고 생각하오? 이걸 봤다고 별반 다를 것도 없소.”

    두 사람은 그렇게 침상으로 쓰러지더니 일어나지 않았다. 서아는 급히 손을 흔들어 시비들을 전부 밖으로 내쫓았다.

    처소 문을 닫으면서도 서아는 여전히 궁금증이 일었다. 

    ‘전에는 루 통정이 점잖다 못해 좀 틀에 박힌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아가씨와 혼인을 한 이후로 다른 사람이 된 걸까?’

    * * *

    이번 과거 시험에 합격한 사람 중에는 원 공자(袁公子)도 있었다.

    원 재상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서 지온은 원(袁)씨 가문의 저택이 붐비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원씨 가문에 인사를 하러 갔다. 

    원씨 가문의 며느리인 기문혜는 아이를 낳은 후 포동포동하게 살이 올랐다. 산후조리를 하면서 얼굴색은 한층 더 뽀얘지고 볼에는 붉은빛이 돌았다. 비참하고 처량한 모습으로 조방궁에 와서 제비를 뽑던 그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지온을 보자 그녀는 농담을 했다.

    “이제 현군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아니면 지 부인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지온이 아주 뻔뻔하게 대답했다.

    “언니 좋을 대로 부르세요. 어차피 똑같아요.”

    기문혜는 웃음을 터트리고 사람을 불러 아이를 데려오라 했다. 

    “내가 막 출산을 하고, 하필이면 부군께서도 시험이 코앞인지라 동생의 혼례가 치러지는 날인데도 잔칫집에 가서 술도 못 얻어먹었네요.” 

    지온이 말했다.

    “언니가 보낸 선물은 다른 어떤 사람이 보낸 것보다 귀했어요. 언니가 왔든 안 왔든 마음만은 잘 알고 있어요.”

    기문혜가 환하게 웃었다.

    “동생과 왕래하는 건 내가 원해서 그런 것이니까 아부까지 떨 필요 없어요.”

    지온이 다가가 아기를 보니 희고 통통한 것이 아주 귀여웠다.

    잠시 아기와 놀다가 아기가 배가 고파 울기 시작하자 기문혜는 유모를 불러 돌려보냈다.

    지온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물었다.

    “언니, 원 재상께서 쉽게 시를 써주지 않으신다던데 어떻게 이렇게 또 보내주셨어요?”

    지난번 화신부를 써준 것으로 그녀에게 진 빚은 이미 다 갚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또 보내다니! 이 선물은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문혜가 말했다.

    “안 그래도 그 일은 내가 한번 말하려고 했어요. 사실 그날 내가 준비한 선물은 그게 아니었어요. 집사가 선물을 보내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시아버지의 심부름꾼이 시를 들고 왔지 뭐예요.”

    지온이 깜짝 놀랐다.

    “원 재상께서 직접 보내셨다고요?”

    “그래요! 내 생각엔 시아버지와 루 통정이 친분이 있어서 특별히 축하 선물을 보낸 게 아닐까 싶어요.”

    ‘친분? 혼란스러운 일이 생길 때마다 원 재상을 호출해 댄 그런 친분 말인가?’

    지온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친분이 아니라 원한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 같았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신혼 생활은 어떤지 안 물어봤네요.”

    기문혜가 미묘한 웃음을 머금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온이 점잖은 얼굴로 말했다. 

    “느낌은 전과 별로 다를 게 없는데 가끔은 집안에 사람이 하나 늘어서 좀 귀찮아요. 잘 때 이불을 뺏어야 하기도 하고요.”

    기문혜가 피식 웃으며 부채로 그녀를 가리켰다.

    “아닌 척하지 말아요! 얼굴이 아주 꽃처럼 활짝 폈어요. 물 만난 물고기처럼 행복한 신혼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지온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언니는 다 알면서 뭘 또 묻고 그래요? 언니도 신혼을 보냈으면서 아직도 무슨 느낌인지 몰라요?”

    기문혜가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아주 만족스러운가 보군요! 저녁 먹을 때 루 통정한테 닭다리라도 하나 더 얹어줘요.” 

    두 사람은 한참을 웃으며 결혼 생활의 느낌과 남편을 단속하는 방법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후 내내 놀다가 저녁 무렵이 되어 지온이 작별을 고했다.

    기문혜가 그녀를 중문까지 배웅했는데, 때마침 지온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던 원 재상을 우연히 만났다. 

    지온은 인사만 드리고 떠나려 했는데 뜻밖에 그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지 부인, 잠깐 이야기 좀 가능하겠소?”

    원창은 소년 시절에 이미 명성을 얻은 능력자로 젊었을 적에는 계속 지방에 있었다. 경성으로 돌아온 후 그는 재상의 자리에 앉을 때까지 계속 승진을 거듭했다.

    지온의 기억으로는 옥종화 시절의 자신이 무애해각에 있을 때 원창은 아직 경성으로 돌아가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 태자는 일찍이 옥종화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원창은 아주 총명하지만 좀 교활한 면이 있지. 그렇기에 아바마마께서 경험을 더 많이 쌓으라고 일부러 그를 지방으로 보내신 거야.”

    옥종화는 그때 웃으며 말했었다.

    “원 대인께서 어떤 재주로 명성을 얻으셨기에 세자께서 다 교활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태자가 손사래를 쳤다.

    “잘 모르겠지만 원창 이 사람은 서자 출신이지. 어렸을 때 정실부인한테 구박받아서 명철보신(*明哲保身: 잘못이나 자신의 이익에 손해될 것이 두려워 근본적인 문제에도 가부(可否)를 표시하지 않는 태도)하는 성격을 가지게 된 것 같아. 물론 그가 고급 관료(高官) 노릇만 할 거라면 그런 성격이 장점이 될 수 있겠지.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의 뛰어난 재능을 썩히는 거야. 나라를 맡길 중신이 되려면 어려움을 무릅쓰고라도 앞으로 나아갈 줄 알아야 해. 그에게 부족한 점이 바로 그런 독립적이고 용감한 기세지.”

    옥종화가 칭찬하며 말했다.

    “그렇군요. 폐하께서는 정말 멀리 볼 줄 아시는 분이시네요.”

    나중에 옥종화는 지온이 되었다. 지온은 비록 자신이 원(袁) 씨 가문과 조금 얽힌 것들이 있긴 했지만, 이 원 재상 나리에게 줄을 댈 생각은 없었다.

    선대 황제께서 너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원 재상은 제대로 경험을 쌓지 못하고 재상 자리에 앉았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능력을 갖춘 그가 만일 지온을 화근으로 여긴다면 자신쯤은 얼마든지 망가트릴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이유로 지온은 그를 건드릴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오히려 이 원 재상 나리가 자진해서 지온을 찾아온 것이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지?’

    원창은 중문 옆의 정자에 앉아 며느리에게 분부했다.

    “저쪽에 살구꽃이 예쁘게 피었더구나. 네가 가서 몇 송이 꺾어 이따 서재로 보내거라.”

    이는 기문혜를 따돌리려는 의도였다.

    기문혜는 혹시 모를 소식을 듣기 위해 나이 든 시녀를 한 명 멀찌감치 남겨둔 채 자신은 자리를 피했다.

    정자에 두 사람만 남자 원창은 찻잔을 내어주며 지온을 쳐다보았다.

    “대장공주마마께서 요즘 계속 사택에 계신다고 들었는데, 언제 조방궁으로 돌아가시오?”

    지온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재상께서는 원래 저희 양어머니와 이렇게 친분이 두터우셨습니까? 저희 잘못이 아닙니다. 어머니께서는 이사하실 때도 아무 말 없이 오셨습니다.” 

    원 재상이 잠시 침묵했다.

    ‘대장공주마마께서 과부라서 그런가, 친분이 두텁다는 이 말이 왜 이렇게 묘하게 들리지? 내가 함부로 묻는다고 비꼬는 것인가?’

    그는 다시 한번 지온을 쳐다보았지만, 그녀의 얼굴이 아주 진지해 보여 말에 뼈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너무 예민했던 거겠지?’

    원창이 재빨리 해명했다. 

    “그냥 생각나서 한 번 물어본 것이오.”

    “그러시군요!”

    지온이 웃으며 대답했다. 

    “저희 양어머님의 성격이 어떤지 재상께서도 들어보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머니께서는 정말 내키는 대로 하시는 분이십니다. 지금은 사택으로 이사 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신선한 느낌이 아직 가시지도 않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어느 날 싫증이 나시면 아마 또 바로 돌아가실 겁니다.” 

    원창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또 물었다.

    “그럼 북양태비께서는? 언제쯤 경성을 떠날 생각이신지 알고 있소?”

    지온이 정말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되물었다.

    “재상께서…… 저희 시어머니와도 친분이 있으셨습니까? 그런 말은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저는 시어머니께서 경성을 떠난 지 오래라 아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잠시 멍해진 원창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떠올랐다.

    북양태비도 과부이지 않은가!

    지온의 말은 마치 수절하는 과부에 관해 한 명, 한 명 자세히 캐묻다니 쓸데없이 대체 무슨 마음을 품고 있는 거냐고 묻는 것 같았다.

    “아니, 난 그냥 물어보는 것뿐이오.”

    원 재상이 변명을 시도했다.

    지온이 분명한 태도로 말했다.

    “예, 다른 뜻은 없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원창은 말이 없었다.

    “…….”

    그저 몇 마디 탐문하려 했을 뿐인데,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리자 원 재상은 자신이 점잖지 못한 사람이라는 의심을 사지 않도록 분명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난 그저 태비께서 이제 돌아가셔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오.”

    원창이 천천히 말했다.

    “태비께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루 통정이 경성에서 아무도 없이 혼자 혼사 준비를 하는 것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는 건 이해할 수 있소. 하지만 루 통정은 이미 혼인했고 봄이 되어 날도 따뜻해졌으니 지금쯤이면 북양으로 돌아가는 길도 순조로울 거요. 이제는 태비께서도 안심하고 떠나실 수 있지 않겠소이까.”

    이 말은 의미심장했다. 

    지온은 흘끗 그를 한 번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창이 계속 말했다.

    “사실 북양왕이 이번에 경성에 와서 루 통정과 조정에서 언쟁한 것은 정말 뜻밖이었소이다. 루 통정이 북양왕에게 아버지를 시해한 혐의가 있다는 것을 어찌나 절절하게 진술을 하던지 듣는 사람들이 다 감동할 지경이었소. 

    하지만 분노한 북양왕이 역으로 루 통정을 고발한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소. 양쪽이 모두 진심이어서 도대체 누구를 믿어야 좋을지 모르겠군. 3개월 동안 나는 이 일에 대해 사람들이 논쟁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소.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두 형제의 말이 모두 진실이고 둘 다 그저 다른 사람에게 농락당한 것이라고 생각하더군…….”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지온을 쳐다보았다.

    “부인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지온이 빙그레 웃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그것에 대해 달리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부인으로서 부군이 어떤 말을 하든지 간에 그저 믿고 따르는 것일 뿐이지요.”

    원 재상은 한 번 떠보려 했다 아무런 소득도 없이 역으로 말려든 꼴이 되어 할 말이 없었다.

    “…….”

    ‘루 통정은 대체 어떤 아내를 얻은 거지? 말 몇 마디로 나를 꼼짝도 못 하게 하다니, 이런 사람이 조정에 나갔으면 아주 큰 일이었겠어. 여자였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나중에 말다툼해야 할 사람만 또 하나 늘었겠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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