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15)화 (315/385)

315화. 숨기다

지온이 은신처에서 걸어 나왔다.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굴까요?”

대부인이 말했다.

“수법을 보니 명문가 시위 출신인 것 같아. 오씨 가문의 사람일지도 모르지.”

강왕세자비 친정의 성이 오 씨였다.

‘시위가 아가씨와 관계를 맺은 걸까? 그런 내용이라면 좀 식상하잖아? 유민이도 이런 소재는 거의 안 쓰지.’

지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얼른 돌아가요, 곧 수색하러 올 거예요.”

대부인이 대답하며 재빠르게 현장을 수습했다.

“가자.”

두 사람이 중정으로 돌아오고 얼마 되지 않아 밖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현주를 찾았습니다, 현주를 찾았습니다!”

세자비가 시비에게 부축받으며 집 밖으로 나가자 소현주가 강왕세자를 따라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손에 아직도 그 인형을 안고 있었는데, 옷 밑단에 진흙이 묻은 것 외에는 전부 멀쩡했다.

“어머니!”

소현주가 달려왔다.

“저 여기 있어요!”

세자비가 눈시울을 붉히며 꾸짖었다.

“어디 갔다 왔느냐? 어쩜 이렇게 없어질 수가 있어?”

소현주가 그녀의 손을 잡고 미안해하며 말했다.

“저, 고양이를 쫓아서 매화림에 갔었는데 연지(莲枝)에게 말한다는 것을 잊어버렸어요.”

“너……!”

강왕세자가 걸어오며 말했다. 

“내가 이미 혼냈으니 당신은 화내지 마시오. 우리가 맘이 너무 급해서 정원도 다 수색해보지 않고 아이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거요.”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소현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서 어머니께 사과드려라.”

소현주는 영리하게 바로 사과했다.

“어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세자비는 몹시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소현주가 조심스럽게 사과하자 결국 아이를 손가락으로 한번 쿡 찌르기만 했다. 

“다시는 이런 짓 하면 안 돼, 알았지?”

“예.”

괜히 한바탕 놀라고 난 후, 강왕세자와 세자비가 하객들에게 사과했고, 생일잔치도 이렇게 대충 끝나버렸다.

* * *

지온은 북양태비를 찾으러 가서 평왕비에게 작별을 고했다.

지온이 대문을 나서니 밖에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녀들이 문밖으로 나오자 마중하러 온 루안이 보였다.

그는 검은 머리에 검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하얀 얼굴이 옥처럼 빛났다. 자세가 곧아서 마치 가는 눈발 아래 꼿꼿하게 서 있는 대나무 같았다.

지온은 잠시 남편의 미모를 감상했다. 그의 미모에 놀라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지온의 허영심을 크게 만족시켜 주었다.

루안이 우산을 쓰고 이쪽으로 걸어왔다.

“어머니, 장모님.”

인사를 한 그는 자연스럽게 지온의 옆에 서서 서아의 일을 빼앗아 그녀에게 우산을 씌워주었다. 

북양태비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일단 돌아가자.”

루안이 왔기 때문에 북양태비는 가마에 대부인과 동승하여 그들 둘을 같이 앉게 했다.

가마의 발을 내린 루안은 지온을 자신의 옆으로 끌어당기고 그녀의 손을 감싸 따뜻하게 해주었다. 

“그 사람들이 당신을 괴롭힌 건 아니겠지?”

지온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 눈엔 내가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보이나 봐?”

루안이 웃으며 그녀의 손을 끌어다 입김을 후 불었다.

“방금 강왕세자가 시위들을 이끌고 서슬 퍼렇게 뛰쳐나오길래, 난 또 당신이 무슨 짓을 한 줄 알았소.”

“나처럼 선량하고 무고한 사람이 무슨 짓을 한다고 그래요?”

지온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나서 소현주가 실종되었던 일에 관해 이야기했다. 마지막에 가서 그녀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머니께서 저한테 좋은 구경을 시켜주셨는데 말해줄까요?”

“무슨 좋은 구경?”

지온이 그의 귓가로 다가가 세자비의 비밀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루안의 놀라는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정말 놀랍지 않아요? 강왕세자비께서 어쩜 그리 어질고 총명하실까 했는데 알고 보니 진즉부터 바람을 피우고 있었지 뭐예요.”

루안은 정신이 돌아오자 웃음을 참지 못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들 설마 들킨 건 아니겠지?”

지온이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께서 대응이 빠르셨어요. 그 남자는 우리가 강왕부 사람인 줄 알고 얼른 도망갔어요.”

루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을 시켜서 지켜보라 하겠소. 조만간 유용하게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 * *

영원의 연회가 끝난 뒤 강왕세자는 세자비가 현주를 데리고 떠났다는 부하들의 보고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주씨를 불러오너라.”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옷을 입은 한 사나이가 그의 앞에 와서 주먹을 말아 쥐며 인사했다.

“세자 전하.”

강왕세자가 물었다.

“누군가가 정원에 잠입했다고 하지 않았느냐? 하지만 현주는 전혀 납치당한 것이 아니었다.”

밀정 주씨가 말했다.

“세자 전하, 저도 그 부분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벽에 분명히 자국이 있었고 남겨진 지 얼마 안 된 것이라 이는 분명히 누군가가 정원에 들어갔다는 걸 증명하는 것입니다. 설령 상대방이 우리가 오인하도록 일부러 꾸몄다 할지라도 분명히 그런 짓을 한 사람은 있을 겁니다.” 

“확실한가?”

주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보증할 수 있습니다, 틀림없습니다.”

강왕세자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 이해할 수가 없어서 눈살을 찌푸렸다. 

이때 시위가 와서 보고했다.

“세자 전하, 매화림을 수색하는 도중에 의심스러운 흔적을 찾았습니다.”

강왕세자는 두말없이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가보자.”

일행이 매화림에 도착하자 주씨는 자발적으로 수사 대열에 합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와서 보고했다.

“세자 전하, 이 발자국을 보십시오. 담장 위에 있던 것과 크기가 똑같습니다.”

강왕세자가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범인은 어디 있나?”

주씨는 흔적을 따라 자세히 한번 살피더니 대답했다.

“그는 이쪽에서 담을 넘어 나갔습니다.”

강왕세자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저쪽의 시위가 또 와서 보고했다.

“세자 전하, 여기 다른 발자국이 있습니다!”

주씨가 가서 살펴보더니 좋지 않은 얼굴로 돌아와 보고했다.

“세자 전하, 여인의 발자국입니다.”

“여인?”

주씨가 땅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크기가 좀 작은 것이 있는데, 분명히 여인이 아이를 데리고 나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주씨가 결론을 내렸다.

“남자의 발자국은 저쪽 한 군데밖에 없는데 아마 실수로 남겨진 것 같습니다. 현장을 청소한 것으로 보아 이 사람은 전문가입니다.” 

강왕세자의 안색이 점점 더 안 좋아졌다.

주씨가 완곡하게 돌려 말했지만, 그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이의 발자국은 소현주의 것이야. 그 말은 어떤 여자가 소현주를 데리고 숲에서 나갔다는 얘기지. 하지만 아이는 분명히 나한테 혼자 나왔다고 했어.’

그가 물었다.

“세자비는? 현주가 실종된 후에 세자비는 어디에 있었느냐?”

시위가 머뭇거리다 보고했다.

“세자 전하께 보고드립니다. 세자비께서는 놀란 나머지 기절하시어 돌아가서 쉬셨습니다. 그 이후의 일은 저희도 모릅니다.”

강왕세자가 천천히 말했다.

“이 일은 아무도 입 밖으로 내지 마라.”

주씨와 시위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강왕세자는 잠시 영원에서 머무르다가 일어나 왕부로 돌아갔다.

그러는 동안 세자비는 벌써 잡무를 다 처리하고 마중 나와 그의 시중을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왕세자는 일상복으로 갈아입고 편안하게 앉아서 따뜻한 차를 마셨다.

그는 손에 찻잔을 받치고 심오한 눈빛으로 세자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자비는 항상 이렇게 사람을 안심시킬 뿐만 아니라 맡은 일을 언제나 적절하게 처리했다. 예전에 어머니가 집안에서 제멋대로 굴었을 때조차 그녀는 주도면밀했다. 

그래서 강왕세자는 항상 그녀가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을 불쌍히 여겼다. 설령 첩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그녀의 체면은 반드시 세워주려 노력했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항상 완벽한 아내였다. 그를 위해 아이를 낳고 첩실을 거두면서도 질투조차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가 초조해할 때마다 마음을 달래주고 그에게 적절한 의견도 제시해주었다.

‘그런 그녀가 나한테 숨기는 일이 있었다니!’

* * *

2월이 지나자 날씨가 금방 따뜻해졌다. 봄기운이 완연하여 살구꽃이 만발했다. 

유모지는 그새 혼인을 하여, 혼인한 다음 날 대바구니를 들고 과거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그는 수험방에서 참혹한 9일을 보내고 나서 겨우 무사히 빠져나왔다. 

이 기간에 루안은 휴가로 집에 있었지만 계속 과거 시험장 쪽을 주시하느라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그는 시험이 시작되고 나서야 마음속의 큰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번 주임 시험관으로는 여강이 지명되었는데 루안은 무슨 사고라도 생겨 여강의 벼슬길에 차질이 생길까 걱정했다. 

시험이 끝난 뒤 시험관들은 답안지를 채점하고 합격자를 발표했다. 유모지도 그 50명 안에 들어있었다. 

유씨 가문에서는 결과에 매우 만족했다. 

유모지는 공부를 시작한 이후로 항상 일을 대충 하는 습관이 있었다. 매일 공부를 마치고 나면 다시는 책을 펼치려 하지 않았으니 시험에 합격한 것만으로도 이미 감지덕지한 일이었다.

회시가 끝나고 나서 유씨 가족은 그 후에 있을 전시(*殿试: 과거 제도 중 최고의 시험)는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다. 회시를 통과했으니 어쨌든 낙방한 것은 아니었고 유모지가 죽을죄를 짓지 않는 한, 진사 자리는 따놓은 당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시(*殿试: 과거 제도 중 최고의 시험) 합격자가 발표되는 날 유씨 일가는 발칵 뒤집혔다.

항상 변변치 못하다고 여겨왔던 유모지가 뜻밖에 그의 형처럼 탐화랑(*探花: 과거 시험의 최종 시험인 전시(殿試)에서 3등으로 합격한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형제 두 명이 모두 탐화랑이 되다니, 이 왕조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온은 사람을 시켜 축하선물을 준비한 뒤 태사부로 보냈다. 

이틀이 채 되기도 전에 유씨 가문에서 특별 초대장을 보내왔다.

지온은 유씨 가문에서 관례대로 한턱내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도착해서 보니 뜻밖에 손님이 그들 한 집밖에 없었다. 

‘단독 연회를 베풀다니, 우리 집과 태사부의 관계가 이렇게까지 좋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지온의 마음은 이런 의혹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온은 술자리가 절반쯤 지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유 대부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지온 소저 덕분에 우리 둘째 녀석한테 이런 좋은 날이 다 왔어.”

알고 보니 공교롭게도 전시에 군자의 도에 관해 논술하라는 문제가 출제되었는데 유모지가 예전에 지온과 말다툼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그 참에 군자불기(*君子不器: 군자는 박학다식하여 여러 일을 감당할 수 있다는 뜻)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써서 제출했던 것이다. 

이것이 결국 황제의 마음에 쏙 들었고 황제는 칭찬을 늘어놓으며 50등쯤에 있던 그를 억지로 10등 안까지 끌어올렸다. 

그 후 등수를 정할 때 10등 안에 있는 자들 중에 그가 제일 어리고 재능이 출중하다는 이유로 아예 탐화랑 자리를 주어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유씨 가문에서는 또 한 명의 탐화랑을 배출하게 되었다.

유모지는 의기양양하게 제 큰형 앞에서 자랑했다.

“큰형, 다들 내가 형보다 공부를 못 한다고 했는데 시험에서는 형보다 못하지도 않은 것 같아!”

이 열아홉 살의 탐화랑은 정말 유신지 못지않았다.

유신지가 그를 흘겨보았다.

“듣자 하니 폐하께 사인(*舍人: 황제의 조서를 기안하는 관직명)이 부족하다던데,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널 그리로 보내는 편이 나으려나?”

유모지가 놀라서 연신 손사래를 쳤다.

“안 돼! 난 새벽에 출근해서 한밤중에 퇴근하고 싶지 않아!”

유신지가 웃음을 터뜨렸다.

“저리도 포부가 작아서야!”

루안이 말했다.

“탐화랑이 되었으니 전례를 따른다면 한림원에 들어가게 되겠지. 자네가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위에서 정해주길 기다리면 되네. 몇 년 동안 책만 베꼈으니 강의를 들으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질 거야.”

유모지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그것도 괜찮네요.”

강연을 듣고, 할 일이 없으면 화본을 쓰는 나날이야말로 신선놀음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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