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13)화 (313/385)
  • 313화. 소현주(小县主)

    2월이라 밖이 아직 추워서 추위를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비로소 좀 조용해졌다. 

    잠시 앉아서 지온이 쉬고 있는데 지온의 귓가에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온은 매화 가지 사이로 열 살 안팎의 여자아이 두 명이 뛰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윤아, 나 좀 갖고 놀게 줘봐! 망가뜨리지 않을게. 응?”

    말한 사람은 분홍색 상의를 입은 어린 소녀로 친구 손에 있는 물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지온이 그 아이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았다.

    또 다른 여자아이는 해당화처럼 붉은 치마와 상의를 입고 있었다. 아이는 머리에 순금의 화관을 쓰고, 목에 금목걸이를 걸고 옥패를 찼으며 신발 끝에는 커다란 구슬을 달고 있었다. 

    온몸이 보석으로 아주 휘황찬란했다. 

    지온은 대부인과 눈을 마주치고 웃었다.

    ‘이분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소현주구나. 강왕세자비는 평소에 몸가짐이 단정하고 검소해서 사치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강왕비와는 아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자기 딸한테는 또 이리 다를 줄이야.’

    소현주는 세밀하게 다듬어진 상자를 손으로 감싸들고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며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어머니께서 나한테 주신 생일선물이야. 안 줄 거야.”

    분홍색 상의를 입은 소녀는 간절한 눈빛으로 상자를 바라보며 그녀에게 또 사정했다. 

    애석하게도 소현주는 꿈쩍도 안 하고 머리만 붕붕 저었다.

    분홍색 상의를 입은 여자아이는 물러나 다음 기회를 노릴 수밖에 없었다. 

    “그, 그럼 보기만 하면 어때? 네가 갖고 놀아, 난 안 만질게.”

    소현주는 그제야 동의했다. 소현주는 정원의 돌 탁자 위에 상자를 놓고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지온이 자세히 살펴보니 안에 나무 인형이 여러 개 들어있었다. 

    나무를 조각해 만든 어린아이 모양의 인형들은 특수 제작된 작은 옷을 입고 있었고 전부 생김새가 달랐다. 징을 치는 아이, 북을 치는 아이, 말을 타는 아이, 가마를 타고 있는 아이……. 하나하나가 다 천진난만하고 살아있는 것처럼 생동감이 넘쳤다. 

    지온이 속으로 생각했다. 

    ‘저 인형들이 세밀하게 잘 만들어지긴 했지만 강왕부의 재력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희한할 정도까지는 아니잖아?’

    이런 생각을 하자마자 그녀는 바로 자신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알고 보니 이 인형들에 또 다른 신기한 기능이 있었다. 소현주가 어딘가를 두 번 비틀자 징을 치는 아이가 정말로 징을 쳤고 북을 치는 아이는 정말로 북을 쳤다. 말의 다리도 진짜로 움직여 마차의 바퀴가 계속 굴러갔다. 

    ‘이거 기계식이잖아! 도대체 어느 대장장이가 이런 기예를 저런 작은 장난감에 썼을까? 대단한 인재를 썩히는 꼴인데.’

    소현주가 인형을 가지고 잠시 놀고 있는데 그 분홍색 상의를 입은 아이가 끝내 못 참고 손을 뻗어 인형을 만졌다. 하지만 조심스럽지 못해서 그중 하나를 땅에 떨어뜨려 버렸다. 

    이에 소현주가 크게 화를 내며 갑자기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런 행동에 옆에 있던 아이가 놀랐고, 강왕세자비도 소리를 듣고 달려와 한동안 아이를 어르고 달랬다.

    뒤이어 강왕세자 역시 친히 와서 소현주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사람들이 가버리자 대부인이 감탄하며 말했다.

    “세자 부부가 소현주를 정말 보배처럼 아끼는구나.”

    회랑에서 함께 구경하던 젊은 부인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그러네요! 세자께 자식이 많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가장 아픈 손가락은 장녀인가 봐요. 확실히 적자도 소현주에 비할 바는 못 되는 것 같네요.”

    지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자는 그렇다 치고, 세자비가 정말 의외네요. 명문가 출신이라 딸에게 엄격할 줄 알았는데요.”

    젊은 부인이 입을 오므리며 웃었다.

    “누가 아니래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지요. 소현주는 왕부라는 탄탄한 뒷배경이 있으니 좀 제멋대로라도 상관없지 않겠어요.”

    지온이 생각해보아도 그랬기에 지온은 더 이상 말을 보태지 않았다. 

    잠시 기다리자 손님들이 다 모였고 강왕세자비가 와서 말을 전하는 것으로 연회가 시작되었다. 

    지온도 북양태비를 따라 자리에 앉았다.

    지온은 아주 격식을 갖춘 태도를 보였다. 모두가 젓가락을 들면 젓가락을 들고, 모두가 술을 마시면 술을 마시고, 다른 사람이 말하면 듣고, 공연이 재미있으면 손뼉을 쳤다. 

    술이 세 바퀴쯤 돌자 사람들이 마음대로 연회석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소현주와 그녀의 친구들은 놀러 가느라 자리를 떠났고 손님들도 꽃구경을 하고 싶은 사람은 꽃구경을, 연극을 보고 싶은 사람은 연극을 보러 갔다. 

    북양태비가 평왕비에게 불려가자 일부러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강왕세자비가 지온에게 말을 걸었다. 

    “지온 사촌, 설 전에 폐하께서 자네에게 태후마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라고 부탁하셨다고 들었는데, 마마께서는 좋아지셨나?”

    지온이 대답했다.

    “세자비께서 걱정이 지나치십니다. 태후마마께서는 원래 무슨 병이 있으셨던 게 아니라서 좋아지고 말고 할 것도 없었지요.”

    “그런가?”

    세자비의 눈빛이 반짝하고 빛났다.

    “그 보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는데, 태후마마께서 화가 많이 나시지는 않았나?”

    지온이 고개를 저었다.

    “태후마마께서 화가 나셨는지 아닌지 저는 모릅니다. 세자비께서 알고 싶으시면 저 같은 제삼자를 거치지 말고 궁에 들어가 문안드릴 때 직접 한 번 여쭤보시지요.”

    세자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태후마마의 속상한 마음을 건드릴까 봐 염려스러워 이러는 게 아니겠나?”

    지온은 대답 없이 미소만 지었다. 

    세자비는 그녀의 입이 이렇게 무거울 줄은 몰랐는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궁에서의 일은 우리도 들었네. 지온 사촌도 운이 나빠 결국 후궁의 싸움에 휘말리게 되었더군. 그래도 잘 견뎌서 거기에 연루되지는 않았다니 다행이네.”

    지온이 눈을 크게 떴다.

    “세자비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저는 성지를 받들어 며칠 동안 태후마마를 모셨을 뿐이지 다른 일은 모릅니다.”

    이 말에 세자비가 조용히 이를 악물었다.

    ‘이 나쁜 계집이 바보인 척하는 게야!’

    그녀가 다시 말을 하려는데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시녀 몇 명이 급하게 이쪽으로 달려오며 큰소리로 외쳤다.

    “세자비마마, 큰일 났습니다. 현주께서 없어지셨습니다!”

    강왕세자비의 표정이 확 변했다.

    그녀는 벌떡 일어서서 소리를 지르며 물었다.

    “뭐라고?”

    그 시녀는 초조함에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현주마마의 옷에 흙에 묻어 노비가 새 옷을 가지러 갔다 왔는데 그다음부터 찾을 수가 없습니다.”

    세자비가 물었다.

    “너희들이 대체 몇 명인데 한 명도 현주를 보고 있지 않았단 말이냐?”

    시녀들이 무릎을 털썩 꿇더니 우물거리며 말했다.

    “현주께서 소인들을 귀찮아하시며 저희더러 좀 멀리 서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세자비는 다른 건 신경 쓰지도 않고 즉시 소리쳤다.

    “멍청하게 뭣들 하느냐, 가서 찾아라!”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억지로 주변 손님들에게 사과한 뒤, 황급히 시녀를 따라갔다. 

    지온은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어 목소리를 낮추고 대부인에게 말했다.

    “세자비께서 현주를 정말 끔찍이 아끼시네요. 그 성격에 이렇게 손님을 다 내팽개치고 가버리다니.”

    이곳은 왕부의 정원으로 경비가 삼엄했다. 소현주가 정말로 사라졌을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아마 잠시 어디론가 도망가서 안 보이는 것일 가능성이 컸다.

    걱정을 하는 것이야 당연했지만, 세자비의 반응은 좀 지나쳐 보였다. 

    대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현주가 활발한 성격이니 어쩌면 어딘가에 숨어 있을 수도 있지.”

    두 사람은 잠시 앉아 기다렸지만, 여전히 소현주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지온은 대부인과 복도에 서서 강왕세자가 시위를 데리고 멀리서 분주하게 지나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손님들은 자기 아이들을 계속 단속하며 모여서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못 찾는 걸까요? 물에 빠진 건 아니겠죠?”

    “그 정도는 아니지 않겠어요? 이 영원에는 얕은 못 몇 개밖에 없어요. 물에 빠졌다면 바로 보일 거예요.”

    “아니면 우리도 가서 도와줄까요? 어디 숨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요.”

    강왕부에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서 순식간에 많은 손님이 아이를 찾는 것을 돕겠다며 자리를 떴다. 

    지온이 생각해보더니 말했다. 

    “어머니, 우리도 가볼까요?”

    대부인은 그녀의 표정이 안 좋은 것을 보고 조용히 물었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나?”

    지온이 말했다.

    “좀 이상해요, 어머니도 사람을 찾아본 경험이 있으시죠?”

    대부인이 대답했다.

    “그럼.”

    두 사람은 시녀에게 아이를 찾으러 간다고 말하고 중정에서 나갔다.

    소현주는 후원(后园)에서 실종되었는데 그 주변은 전부 화초뿐이라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한눈에 다 보였다. 

    그녀들이 도착했을 때 마침 강왕세자가 어두운 얼굴로 시위를 이끌고 수색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시위들은 이 잡듯이 다 훑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람이 몸을 숨길 수 있을 만한 곳은 샅샅이 다 뒤졌다. 

    이때, 검은 옷을 입은 한 사내가 벽 쪽에 쪼그리고 앉아 이쪽을 보고 있었다.

    대부인이 지온의 귓가로 다가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밀정이야.”

    잠시 후 그 밀정은 뭔가를 발견한 듯 강왕세자에게 가서 보고했다.

    강왕세자의 안색이 점점 나빠지더니 얼굴 근육이 푸르르 떨렸다. 그가 크게 소리쳤다. 

    “가자!”

    지온은 구경꾼들과 함께 급히 옆으로 비키며 시위들이 사나운 기세로 뛰어나가는 것을 보았다. 

    “어디 가는 걸까요?”

    “정원 밖으로 나간 것 같은데요.”

    “설마 납치당한 건 아니겠죠?”

    “어머나! 소현주가 위험한 걸까요?”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

    “이제 우리가 도울 수도 없으니 돌아가요!”

    “그래요, 소현주가 무사했으면 좋겠네요.”

    지온은 대부인과 눈을 마주치고 사람들이 떠나길 기다렸다가 약속이라도 한 듯 조용히 후원으로 들어갔다.

    대부인이 주위의 흔적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말했다.

    “소현주가 여기서 잠깐 놀았을 것이야.”

    그리고 풀에 남아있는 흔적을 천천히 눈으로 따라갔다. 

    지온은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었다. 마치 대부인의 눈에 보이는 세상과 자기가 보는 세상이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대부인은 담 모퉁이에 멈춰 서서 중얼거렸다.

    “그렇구나.”

    지온이 급히 물었다.

    “왜 그러세요?”

    대부인이 한 곳을 가리켰다.

    “여기 발로 밟은 흔적이 있네.”

    비록 지온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사람들이 제각기 지닌 장기가 다르다는 말처럼 무공에 조예가 깊은 대부인의 결론은 그 밀정과 일치했다. 소현주는 정말로 납치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소현주가 납치되었다고 생각한 거군요.”

    대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여기에 없다면 그녀들도 더 이상 손을 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되돌아갔다. 

    그러나 중간쯤 가다 지온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아닌 것 같아요.” 

    대부인은 이해하지 못했다.

    “왜? 뭐가 아니라는 겐가?”

    지온이 말했다.

    “현주의 몸종을 찾아서 한 번 물어봐야겠어요.”

    대부인은 뭐가 아니라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저 지온을 믿어주었다. 

    두 사람이 중정으로 돌아가니 마침 시녀들이 전전긍긍하며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자비는 지금 그들을 상대할 시간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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