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10)화 (310/385)
  • 310화. 처가로 인사를 가다

    한편 서아는 자신이 남자 주인에게 미움을 산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서아는 그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정성스럽게 차를 올렸다.

    지온은 시녀 몇 명을 데리고 방을 정리하며 동쪽에 있는 방을 자신의 서재로 정했다.

    루안이 와서 두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나중에 책상을 하나 더 놓는 게 좋겠소, 내가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편하도록 말이오.”

    지온이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종이와 붓을 꺼내 예전처럼 글씨를 썼다.

    원래는 서아가 먹을 갈아야 했지만 루안은 그녀를 내쫓고 자신이 직접 먹을 갈았다.

    지온이 웃으며 말했다.

    “미녀와 함께 공부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 있는데 어째 반대로 미남께서 이리 와 계시네요?”

    루안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부인을 위해 먹을 가니, 기쁘기 그지없구려.”

    지온이 가볍게 웃더니 붓을 들고 글씨 연습을 했다.

    루안이 조용히 지켜보다가 그녀가 한 장을 다 쓴 후에 말했다.

    “예전 서체와 완전히 다르오.”

    지온이 말했다.

    “당연하지요. 벌써 연습한 지 1년 가까이 되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옥종화의 서체로 쓴 것은 지난해 청명절에 불에 태워 조부께 올렸다. 그 이후로 그녀는 과거의 흔적을 하나하나 지우고 글씨도 그림도 고칠 수 있는 한 다 고쳤다.

    두 사람이 잠시 글씨와 그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서아가 들어와서 말을 전했다.

    “조 선생이라는 분이 고야를 찾아왔습니다.”

    루안이 눈살을 찌푸렸다. 

    ‘왜 신혼 다음 날 이렇게 눈치 없이 찾아와 귀찮게 구는 것인가?’

    지온이 말했다.

    “가 봐요. 중요한 일이 아니면 이렇게 찾아오지 않았을 거예요.”

    루안이 미안해하며 말했다.

    “그럼 금방 다녀오겠소.”

    지온은 붓과 먹을 치우고 창가에 있는 간이침대에 기대어 책을 읽었다.

    얼마 안 있어 루안이 돌아왔다.

    그는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야우가 도망갔소.”

    “하?”

    루안이 말했다.

    “큰형님이 처음에 야우를 보낸 이유는 내가 잘못해서 옆길로 빠지지 않도록 감시하기 위해서였소. 그런데 내가 결혼했으니 자기 임무가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도망가 버렸소.”

    지온은 답답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한대도 틀린 건 아니죠. 그저께 큰형님께서 가시면서 왜 그 사람은 안 데려갔대요?”

    루안이 말했다.

    “당신은 왜 큰형님이 그를 경성으로 내쫓았다고 생각하오? 그 녀석이 말이 너무 많아 큰형님이 일손을 보태준다는 핑계로 귀찮은 녀석을 나한테 보내버린 거요.”

    지온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그 사람은 정말 깨달은 것도 없나 보네요.”

    “그러게 말이오? 도망가려면 가라지, 나도 그놈이 귀찮았소.”

    “집에 약혼녀가 있다면서요? 돌아가서 결혼하는 것도 좋지요.”

    두 사람은 오후 내내 함께 지냈다. 북양태비와 대장공주가 함께 돌아와 옆집의 구조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의견이 달라 또 한바탕 싸우며 지온에게 누구 말이 맞는지 평가해달라고 했다. 

    한쪽은 양어머니, 다른 한쪽은 시어머니였다. 기분을 상하게 하면 또 달래줘야 했으므로 지온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내는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북양태비가 시녀들의 호칭이 틀린 것을 보고 휘하의 노복을 모두 불러들였다. 

    “넷째 공자가 혼인하여 이전과 신분이 달라졌으니, 너희들도 이제 호칭을 바꿔야겠다.”

    또 지온이 데려온 시녀에게 당부했다.

    “너희 본가의 풍속에서는 시집가도 고야라고 부른다더구나. 하지만 경성은 그런 규범이 아니니 이쪽 풍속을 따르는 것이 좋겠다.”

    서아를 비롯한 몇몇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지온도 당연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루혁이 북양왕의 자리를 이어받았으니 틀림없이 왕부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호칭을 바꿨을 것이다. 전에는 루안이 아직 혼인하지 않았었으니 마음대로 불러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집에 여주인이 생겼고, 또 북양태비까지 있으니 이 항렬은 옳지 않았다.

    당부를 마치고 북양태비가 손을 휘저으며 유쾌하게 말했다.

    “온아, 앞으로 이런 일은 너에게 맡기마.”

    지온이 채 대답하기도 전에 루안이 한마디 받아쳤다.

    “꼭 예전엔 신경 쓰셨던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북양태비가 그를 노려보았다.

    “이런 불효자식 같으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어머니가 진지하게 화를 내려고 하자 루안이 패배를 인정했다.

    “예, 예,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럼 당연히 네 잘못이지.”

    네 사람은 함께 저녁을 먹은 후 대장공주를 배웅했다.

    대장공주가 즐겁게 말했다.

    “네가 친정에 인사하러 갈 때쯤이면 잡무들이 처리가 다 끝날 거다. 그럼 본궁이 이쪽으로 넘어와서 살 수 있을 거야. 온아, 기다리고 있거라!”

    지온은 알겠다고 대답했다.

    방으로 돌아와, 루안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대장공주께서 여기 와서 사시고, 당신의 새어머니께서도 와서 사실 거 아니오. 그럼 나중에 한 집에 어머니가 세 분이나 계시게 되는 거요.”

    “그렇죠!”

    지온이 빙그레 웃었다.

    “효도해야 할 곳이 줄줄이지요.”

    루안의 얼굴이 파래졌다. 자기 집은 안 그래도 소란스러운 일이 많은데, 거기에 대장공주, 그리고 대부인까지 와서 역성을 든다니, 그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신혼을 좀 즐기고 생각해보자. 며칠 더 휴가를 얻겠다고 얼마 전까지 밤낮없이 관아에서 일만 했잖은가.’

    “부인, 날이 어두워졌소!”

    루안은 암시하듯 말했다.

    “아, 그렇군요.”

    그러나 지온은 태연하게 계속 책을 읽었다.

    루안은 어쩔 수 없이 대놓고 말했다.

    “우리 이제 좀 쉬어야 하지 않겠소?”

    지온이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초저녁인데, 너무 이르지 않아요?”

    “이르긴, 오늘 아침에 늦잠 잔 걸 생각해보시오.”

    지온은 그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루안이 그녀를 밀었다.

    “가요, 가서 씻어요.”

    그의 이런 뻔뻔스러운 행동에 지온은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루안은 그녀보다 먼저 씻고 나와 지온이 다 씻기를 기다렸다. 그는 책꽂이 앞에 서서 천천히 술을 마셨다.

    그 술은 피처럼 새빨간 빛깔이었고 심상치 않은 기운이 배어 있었다.

    어제 지온은 그의 몸에서 아주 옅은 술 냄새를 맡았는데, 아마도 오랫동안 이 술을 마셔서 밴 냄새인 것 같았다.

    그녀가 오는 것을 보고 그는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상자에서 알약 하나를 꺼내 건네주었다.

    “매일 거르지 말고 한 알씩 드시오.”

    지온이 냄새를 맡고 말했다.

    “피임약?”

    루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 몸에 있는 독이 아직 제거가 안 됐소. 아마 아이에게 좋지 않을 거요. 게다가 당신은 아직 젊으니 2년 정도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지온은 자신이 어떤 마음인지 정확히 가늠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아직 엄마가 될 준비가 안 되어 있을까 봐 걱정했는데, 알고 보니 엄마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독, 해독할 수 있어요?”

    루안이 웃으며 말했다.

    “겁낼 것 없소. 계속 잘 제어하고 있소. 작년에는 해독제를 별로 먹지도 않았소.”

    지온은 그가 말한 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었으나 그의 말이니 믿기로 했다.

    “좋네요.”

    그녀가 갑자기 자발적으로 그에게 기대더니 그를 끌어안았다.

    “괜찮아요. 우리는 이제 시간이 많으니까 천천히 기다려도 돼요.”

    * * *

    처가로 인사하러 가는 날이 되자 루안은 지온을 데리고 지온의 친정으로 출발했다.

    황제가 성지를 내려 축하하고 지온에게 봉호를 하사했다는 소식에, 지씨 가문에서는 더욱 지온 부부에 대한 대접을 소홀히 할 수 없게 되었다. 

    둘째 노야와 셋째 노야는 모처럼 형제가 한마음으로 조카사위를 대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루안도 그들의 체면을 생각해 차려진 연회 음식을 최대한 먹었다. 그러고 나서 지온과 함께 작별을 고하고 그 참에 대부인도 데리고 나왔다.

    위씨 부인은 정씨 부인이 물건을 정리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형님, 정말 온이랑 갈 거예요? 우리 집도 형님이 먹고사는 데 부족하지는 않으시잖아요!”

    대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자네 무슨 말이 그런가? 나야 이 집에서도 계속 잘 지냈지, 다만 어미로서 딸이 걱정스러워 따라가는 것뿐이네.”

    위씨 부인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이 말은 아주 그럴듯하게 들렸다. 그야말로 자애로운 어머니와 효성 지극한 딸이었다.

    문제는 대부인이 계모이며, 딸을 직접 키운 것도 아니면서 이렇게 짧은 몇 달 동안 모녀의 정이 깊어진 것처럼 이야기하는 데 있었다. 

    ‘남들이 바보인 줄 아는가 보지?’

    위씨 부인이 한참 동안 침묵하다 물었다.

    “그럼 다시 돌아오실 거예요?”

    대부인이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상황을 봐서.”

    위씨 부인은 노비가 짐 한 상자를 들고 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정씨가 희화원의 시녀들을 정리하여 내보낼 사람은 내보내고 데려갈 사람은 데려가는 것을 보고 거의 돌아올 가능성이 없다는 걸 짐작했다.

    이 큰집은 딸도 이상하고 계모도 이상했다. 위씨 부인에게 있어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큰아주버님의 미망인이 차남의 기권을 강탈해갈지도 모른다는 오랜 걱정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정씨 부인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 집을 떠나버렸다.

    ‘소인의 마음으로 군자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대부인이 가마를 타고 떠났지만, 위씨 부인은 아직도 기분이 우울했다.

    장씨 부인이 다가와 야유하며 말했다.

    “어머, 둘째 형님, 서운하세요? 큰형님이 우리 집에서 5, 6년이나 사는 동안 저희를 한 번 거들떠보지도 않으셨던 걸 형님은 아직도 모르고 계셨나 봐요.”

    위씨 부인은 그녀를 힐끗 쳐다본 뒤 반격은 하지 않고 오히려 한숨만 내쉬었다.

    그녀의 이런 태도에 셋째 부인은 오히려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왜 그러세요?”

    위씨 부인이 말했다.

    “동서 말이 맞아, 큰형님이 한참을 우리 집에 계시며 서로 화목하게 지냈는데 이렇게 그냥 가버리시니 정말 서운해서 그래.”

    말을 끝내고 위씨 부인이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장씨 부인이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는 것을 곁눈질로 흘끗 보고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어쩐지 그 계집애가 의외의 수를 두는 걸 좋아하더라니, 다른 사람을 기막히게 하는 게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 * *

    지온 일행은 조방궁으로 갔다.

    첫째로는 대장공주의 이사를 도와야 했고, 둘째로 또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패방(*牌坊: 남의 모범이 될 만한 행위나 공로가 있는 사람을 표창하기 위해 세운 문짝 없는 문)에 도착하자 청옥과 함옥이 여도사 한 무리를 이끌고 기다리고 있었다. 

    지온이 오는 것을 보고 다들 질서정연하게 인사를 했다.

    “사저께 공손히 인사드립니다.”

    지온은 참지 못하고 픽 웃었다. 이런 모습은 유신지 공자의 화본에 나오는 대마왕을 떠오르게 했다. 그런 장면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겉치레였다.

    “너무 예의 차리지 마요.”

    지온은 청옥을 일으키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물었다.

    “나 없는 동안 도관은 별일 없었죠?”

    청옥이 대답했다.

    “예, 전부 다 순조로웠어요. 화조절(*花朝节: 천상화신의 생일, 매년 음력 2월 12일)에 사저가 말씀하신 대로 저희가 화신연(花神宴)을 열어 온갖 꽃들을 선보이고 기도하러 온 손님들에게 선물을 드렸어요. 그때 만들었던 꽃떡과 화과자가 지금 없어서 못 팔정도로 유명해졌지요.”

    지온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할 줄 알았어요.”

    청옥이 연신 감탄하며 말했다.

    “생각해보면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에요. 작년 이맘때 저와 함옥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이 도관에서 괴롭힘이나 당하고 있었잖아요. 근데 이제는 조방궁 전체가 제 말대로 움직이고 하고 싶은 일도 마음껏 할 수 있게 됐어요. 살면서 좋은 기회를 만난다는 건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일인 것 같아요.”

    지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사매가 힘든 시간을 잘 견뎌주었죠.”

    “아니에요.”

    청옥이 진지하게 말했다.

    “사저를 만난 거야말로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사저가 아니었으면 저와 함옥이는 아직도 잡일이나 하고 있었을 거예요!”

    지온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사매에게 길을 안내하긴 했지만, 사매도 그만큼 잘 버텨주었어요. 솔직히 이 조방궁을 사매들에게 맡길 때 나도 자신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이건 다 사매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이 기회를 잡은 거죠.”

    처음에 그녀는 단지 그녀들의 도움을 원했을 뿐이었다. 만일 사저와 사매들이 이쪽 방면으로 능력이 없었다면, 지온도 어쩔 수 없이 다른 방법을 생각해내야 했을 것이다. 

    “능양 사숙께서 유람을 떠나게 되어 얼마 안 있으면 여기 지주가 바뀔 거예요. 청옥 사매, 자신 있으면 한번 해볼래요?”

    청옥은 아주 기뻐했다.

    “사저,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사매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만 한다면요.”

    청옥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할 수 있어요! 할 수 있어요!”

    지온이 웃었다.

    “그래요.”

    작년 한 해 동안 청옥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이런 자신감은 주눅 들어 위축되어 있던 예전 모습이랑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녀는 또 함옥에게 당부했다.

    “조향에 대해서는 이미 사매한테 다 가르쳐줬어요. 어디까지 성장할지는 이제 자신한테 달린 거예요.”

    함옥이 정중하게 대답했다.

    “사저의 말씀대로 꼭 열심히 연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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