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09)화 (309/385)
  • 309화. 데려온 시녀

    이때, 서아는 신방 밖에서 한참 동안 서 있었다. 의운이 나와 그녀를 불렀다.

    “여기서 바람맞고 있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

    서아가 말했다.

    “혹시라도 아가씨께서 부르시면…….”

    의운이 굳게 닫힌 방문을 보더니, 얼굴을 약간 붉히며 말했다.

    “아가씨께서 널 부르려면 좀 기다려야 해. 우리가 옆방에 있으면 들을 수 있을 거야.”

    서아가 머뭇거렸다. 의운이 물었다.

    “뭐 다른 걱정이 있어?”

    서아는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사위 되시는 분 말이야, 보기만 해도 무섭지 않아?”

    의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이 사위의 평판이 어땠는가? 루안이 태평사에 있을 때 그가 손아귀에 있는 범인의 가죽을 벗겼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서아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런 사람은 남모르는 취향 같은 게 있다고 들었어. 음…… 그러니까, 겉으로는 점잖게 보이지만 사실은 속으로는 좀…… 변태랄까……?”

    의운이 그녀의 말에 당황했다.

    “아니, 설마? 아가씨께 그렇게 잘해주시는데…….”

    “그걸 누가 알아? 위장일지도 모르지…….”

    의운은 이미 완전히 이야기에 몰입해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럼 어떡하지? 지금 아가씨를 불러내면 괜찮을까?”

    “그건 너무 티가 나잖아. 우리…… 아야!”

    한참 말을 하던 와중에 두 사람은 동시에 한 대씩 얻어맞았다. 어느새 하로가 와 있었다.

    하로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녀들을 노려보았다.

    “너희들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오늘은 아가씨께서 혼인하신 경사스러운 날인데 너희들은 사위가 변태네 아니네, 따지고 있어?”

    두 시녀가 고개를 숙였다.

    “너희들…….”

    하로가 말을 하려는 차에 갑자기 신방에서 비명이 들렸다. 세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고 일제히 얼굴색이 변했다.

    ‘아니지? 설마 서아가 말한 게 진짜란 말이야?’

    세 명의 시녀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더 이상 소리가 나지 않자 의운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무,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하로도 정확히 알 수 없어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했다.

    “한 번 물어볼까?”

    “누구한테 물어봐? 이 집에는 원래 막일을 하는 아주머니들 몇 명밖에 없어, 다른 애들은 우리보다 나을 게 없고.”

    대부인은 재야 출신으로 혼사를 처리한 경험이 없어서, 지온이 시집올 때 데려온 시녀들은 모두 어린 계집애들뿐이었고 경험이 있는 나이 든 시녀를 안배하지 않았다. 게다가 북양태비도 일을 대강 처리하는 성격이어서 애초에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안 했다.

    “내가 가서 문을 두드려 볼게.”

    결국 서아가 용기를 냈다.

    뭔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 하로가 다행히 그녀를 제때 저지했다.

    “만약에 아무 일도 아니면, 네가 이렇게 문을 두드려도 괜찮겠어?”

    “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정말 문제가 있으면 또 다른 기척이 있을 거야.”

    잠시 후, 정말 인기척이 났다.

    2월의 날씨는 분명 아직 추웠지만, 지온은 온몸이 땀투성이라 숨이 다 막힐 지경이었다.

    하지만 루안은 전혀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이러다 죽을 것 같아서 그가 부주의한 틈을 타 발로 퍽 걷어차고 침대의 휘장을 걷었다.

    아쉽게도 그녀는 머리를 내밀자마자 발목이 잡혔다.

    뒤이어 그녀의 몸은 통제를 잃고 그에게 끌려갔다.

    “어딜 도망가는 거요?”

    휘장을 다시 내린 루안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약간 잠겨있었다. 마치 술을 마신 것처럼 취기가 도는 목소리였다.

    짧은 비명이 들린 후, 휘장 꼭대기의 은 갈고리가 다시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이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서아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아가씨!”

    루안은 바빠서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 밖에 끈질기게 더 크게 외치는 음성이 밖에서 들려왔다.

    “아가씨, 아가씨!”

    루안은 짜증이 났다. 

    ‘저 계집애는 대체 뭐 하는 거야!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몰라?’

    그가 잠시 멈추고 휘장을 걷으며 소리쳤다.

    “무슨 일이냐?”

    화가 난 듯한 그의 말투에 서아는 더욱 무서워져서 우물우물 말했다.

    “소, 소인은 그저 아가씨께서 무슨 분부하실 게 있는지…….”

    “없다!”

    루안은 휘장을 내리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서아는 더 이상 문을 두드릴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자리를 떠날 수도 없었다. 세 명의 시녀가 다 같이 찬바람을 맞으며 방 밖에 서 있었다. 

    한참이 지나고 방안에서 마침내 사람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뜨거운 물을 가져오라는 명령이었다.

    서아가 이 기회를 틈타 몰래 흘끗 훔쳐보았다. 반쯤 걷어 올려진 휘장 안에 지온이 나른하게 누워있고 옷을 걸치지 않은 그녀의 맨 팔이 반쯤 보였다.

    뒤이어 루안이 팔을 휘장 안으로 거두며 지온에게 한마디 했다.

    “당신도 추위를 안타나 보군.”

    서아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서아가 일을 마치고 옆방으로 돌아가자 하로가 그녀에게 말했다.

    “거봐, 아무 일도 없는데, 괜한 걱정하기는.”

    서아가 민망해하며 작은 소리로 변명했다.

    “난 그냥 아가씨가 걱정돼서…….”

    * * *

    희미한 하늘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방안이 온통 흐릿했다.

    지온은 몽롱하게 눈을 떴다가 갑자기 눈이 마주치자 깜짝 놀라 잠이 확 달아났다. 

    “당신……!”

    지온의 목소리가 조금 쉬어있었다. 

    “벌써 일어났어요?”

    “그렇소.”

    루안의 옷은 반쯤 풀어져 있었다. 그는 침대 머리 가에 기댄 채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는데, 아직도 기력이 왕성해 보였다. 

    지온은 정말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은 허리가 다 부러질 것 같은데 그는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몇 시예요?”

    루안이 대충 창문 쪽을 보더니 말했다.

    “아직 괜찮소, 좀 더 자도 되오.”

    “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지온은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루안의 손이 지온의 등을 어루만지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통에 지온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지온이 다시 눈을 뜨자 루안이 몸을 숙이고 지온의 귀를 살짝 깨물며 물었다.

    “많이 잔 것 같은데 우리 다른 걸 하는 게 어떻소?”

    지온은 그의 말에 놀라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돼, 됐어요. 더 잘래.”

    그리고는 그의 손을 탁, 치며 떼어냈다. 

    “당신도 그만 만져요.”

    루안이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럽시다. 당신이랑 좀 더 자지 뭐.”

    이번에는 정말 깊게 잠들었다. 지온이 다시 깨어났을 때 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지온이 옆 사람을 밀어내며 물었다.

    “몇 시예요?”

    루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신선한 공기와 밝은 빛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벌써 날이 밝았구나.’

    루안이 말했다.

    “오시(午時)가 다 되어가는군.”

    지온이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앉았다.

    “벌써 그렇게 늦었다고요? 세상에! 태비께서 기다리실 거 아니에요? 서아야! 서아야!”

    서아는 한밤중의 소란에 이어 물을 가져다준 것을 마지막으로 잠깐 눈을 붙였었다. 서아는 날이 훤히 밝을 때까지 잠을 자서 자신이 늦잠을 잔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두 주인이 그녀보다 훨씬 늦게 일어났다. 

    서아가 한참을 기다리니 마침내 방안에서 사람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서아는 얼른 문을 열고 시녀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바탕 부산스럽게 옷을 갈아입은 지온이 급한 걸음으로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뒤를 따르는 루안은 오히려 아주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 * *

    두 사람이 정당에 도착했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지온은 어리둥절했다.

    “태비께서 화나신 건 아니겠죠?”

    지온이 루안을 잡아당기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

    루안은 그녀가 긴장하는 모습을 보고 아주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요? 어머니께서는 연무장(*演武场: 무예 연습장)에 계실 거요.”

    그렇게 말하며 그는 사람을 불러 어머니를 찾아오라고 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북양태비가 단정하게 기마복을 입고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녀의 이마에 아직도 땀이 흐르는 것을 보니 정말 무술을 연마하다 온 모양이었다. 

    두 사람을 본 북양태비의 눈이 밝아졌다. 북양태비는 아직 두 사람이 가까이 오지도 않았는데 그마저도 못 기다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

    “왜 더 자지 않고? 점심시간도 아직 안 됐는데! 내 너희를 방해하지 말라고 일러두었는데……!”

    지온은 부끄러워서 얼굴을 다 가리고 싶었다. 지온은 합방 다음 날부터 이렇게 늦게까지 잔 자신이 너무 민망함을 모르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북양태비는 자신보다 훨씬 더 민망함을 모르는지, 자신들을 점심까지 자게 할 생각이었을 줄 누가 알았으랴?

    루안이 말했다.

    “어머니께 차를 올려야 하지 않겠소?”

    “어, 그래!”

    북양태비가 흐뭇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며느리가 주는 차 한 번 마셔보자꾸나!”

    북양왕가인 루씨 가문의 가족과 친척들은 모두 북양에 있어 지금은 집안에 어르신이 태비 한 분밖에 없었다. 모양새가 좀 부족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번거로움을 많이 덜 수 있었다. 

    지온이 앞으로 나아가 차를 올리고 북양태비가 인사를 하자 그걸로 끝이 났다. 북양태비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기왕 일어난 김에 점심을 좀 일찍 먹자꾸나!”

    지온은 자연스럽게 동의했다. 지온은 정말 배가 고팠다. 어젯밤에 운동량이 너무 많아 온몸에 힘이 없었다. 

    이제 막 지온이 두 입 정도 먹었는데 밖에서 보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장공주께서 오셨습니다.”

    지온은 깜짝 놀랐다. 일반적으로 신혼 다음 날에는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것이 예의였다. 게다가 지온은 친정으로 인사 갈 때 조방궁에도 문안드릴 것이라고 미리 언질까지 해두었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지온이 마음을 졸이며 서둘러 마중을 나갔다.

    대장공주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와서 지온을 보더니, 한 마디 했다. 

    “온아! 본궁은 오늘 이사할 것이다!”

    당황한 지온은 아무 말이 없었다.

    “…….”

    대장공주가 지온에게 하소연했다.

    “네가 소년(小年)에 집에 왔다 가고 벌써 한 달이 넘었어. 본궁이 같이 바둑 둘 사람도 없고 매는 자꾸 잔소리나 해대고…… 정말 이상하지. 예전에는 이리 지루해서 어찌 살았을꼬?”

    지온은 웃음이 툭 터졌다.

    “어머니, 옆집이 아직 정리가 안 끝났어요!”

    대장공주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방 두 개 치우는 것이 뭐가 어렵다고? 우선 매만 데리고 들어가고 나머지는 천천히 정리하면 되지.”

    북양태비가 와서 빈정거렸다.

    “시집올 때 시녀를 데려오는 사람은 봤어도, 양어머니를 데려오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대장공주마마께서는 역시 대장공주이셔서 그런지 행동이 아주 범상치가 않으시군요.”

    양어머니뿐이랴, 며칠 후에는 대부인도 올 예정이었다. 

    루안은 대부인이 오는 것을 아주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정씨는 무공이 뛰어나고 강호의 문도에 정통했기 때문에 그녀가 있으면 지온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었다.

    행동파인 대장공주는 이사 온다고 말하자마자 옆집으로 직접 가서 청소를 시작했다.

    북양태비가 그녀를 따라가며 지온은 따라오지 못하게 했다. 

    북양태비가 말했다.

    “어제 많이 피곤했을 테니 너는 가서 쉬거라.”

    지온은 벌써 아주 뻔뻔해져서 예를 갖추고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루안이 지온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말했다.

    “내가 볼 때 한등이 당신 시녀한테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그 둘을 엮어주는 게 어떻겠소? 한등도 적은 나이가 아닌데, 나를 따라 줄곧 홀아비로 지내고 있어서 말이오.”

    지온이 대답했다.

    “서아가 그러고 싶다면 전 반대 안 해요.”

    그리고 또 물었다. 

    “근데 너무 급한 거 아닐까요? 제가 이제 막 집에 들어와서 아직 집안 상황도 잘 모르는데 꼭 서둘러서 내쫓는 것 같잖아요.”

    루안이 말했다.

    “내쫓는 게 좋겠소, 그리 방정을 떨어대니.”

    지온은 그제야 서아가 어젯밤에 무슨 짓을 했는지 생각나서 손을 뻗어 그를 꼬집고 화를 냈다.

    “어려서 그런 걸 잘 몰라서 그런 건데, 당신은 왜 어린 애한테 따지고 들고 그래요?”

    “따지는 게 아니라 그 아이도 시집을 보내 그런 걸 좀 이해하게 해주려는 거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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