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08)화 (308/385)
  • 308화. 화촉

    경관걸이 먼저 문 앞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손님들의 눈빛이 반짝하고 빛났다. 

    “저건 정국공 세자 아닌가? 그가 여기 와서 결혼 축하주를 마실 줄은 몰랐는데.”

    “그리고 회영왕! 군왕의 종친까지도 와서 북양왕가 넷째 공자의 체면을 세워주는구려.”

    뒤이어 유신지 일당도 들어왔다.

    “저 사람은 유씨 가문의 대공자 같지 않습니까? 루 통정과 벗이라고 들었는데 진짜인 줄은 몰랐습니다.”

    “장(蒋) 장원(*状元: 옛날 과거의 최고 시험에서 1위로 합격한 사람)도 왔소. 성격이 강직하고 악인을 혐오한다고 들었는데 루 통정과 어울리다니?”

    손님들은 서로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루안의 평판이 엉망이라 아무도 그와 사귀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보아하니 다 그런 것만은 아니구나.’

    ‘온 손님들을 좀 봐라, 훈귀 세력의 종친도 있고, 청렴한 관리와 명사도 있으니 이 얼마나 체면이 서는가!’

    북양태비는 이 소식을 듣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하하하, 누가 우리 안이가 평판이 나빠서 축하주를 마시러 안 올 거라 했어? 이 정도면 엄청 좋은 것 아니냐?”

    “아쉽게도 모두 손아랫사람들인지라, 만약…….”

    곧이어 밖에서 누군가 선물을 보내왔다고 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림학사 여강께서, 화호월원도(花好月圆图) 한 폭을 보내셨습니다.”

    접객을 하는 사람이 목소리를 길게 끌며 소리쳤다.

    좌중이 떠들썩해졌다.

    “여(吕) 장원(状元), 정말 여 장원이라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원 상야께서, 시를 한 수 보내셨습니다.”

    이번에는 유신지가 데려온 제자들마저 동요했다.

    “원 상야의 시? 빨리빨리, 빨리 읽어봐라!”

    여 장원의 축하 그림, 원 상야의 축시, 이것 참 너무 체면이 서는 게 아닌가!

    소식은 아주 빠르게 퍼져 항간에 한가한 사람들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태감 한 무리가 찾아와 혼례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성지가 도착했습니다.”

    황제가 약속을 어기지 않고 지온을 현군(*县君: 현명을 봉호로 하는 군주)으로 봉했다. 

    심지어 태후도 축하예물을 하사했다.

    하객들이 처음에 보였던 동정은 부러움으로 바뀌었다.

    손님의 신분이며, 축하 선물의 질이며, 요 몇 년 동안 치러진 혼례 중에 따라잡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루 통정은 그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루안이 나와서 객들에게 술을 권했다. 

    경관걸을 본 그가 잠시 어리둥절해했다. 경관걸은 아주 다정한 모습으로 웃으며 일어났다.

    “루 통정, 혼인을 축하하오. 앞으로 내 여동생에게 잘해 주시오.”

    정국공부에서 이렇게 와서 그의 체면을 세워주니, 루안은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다음 좌석에 도착해 그는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유신지가 하하 웃으며 그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내가 일부러 늦게 왔는데, 어째 애가 좀 탔나?”

    루안이 그와 잔을 부딪치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자네가 오지 않을 줄 알았네.”

    유신지가 흥 하고 말했다.

    “내가 왜 안 오나?”

    루안이 말했다.

    “자네 마음이 편치 않을 텐데 굳이 올 필요가 없지 않은가?”

    유신지의 눈가가 좀 시큰해졌다.

    앞서 유민에게 그런 말을 했을 때 비록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마음이 불안하기도 했다.

    자신들 사이의 친분은 원래 유신지가 적극적으로 원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많은 것을 내준 사람은 같은 보답을 받지 못할까 봐 두렵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이 한마디를 듣고 나서 유신지는 오늘 온 것이 헛수고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안 왔으면, 이 연회에 뭐 볼 거나 있었겠나?”

    유신지가 말했다.

    “자네 요 몇 년 동안 되는대로 살더니 이것 좀 보게, 초라하지 않은가?”

    루안이 가만히 그를 쳐다보았다.

    유신지가 입을 삐죽거렸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 안 그래도 오늘 충분히 힘드니까. 아니면 날 울려서 망신 주려는 속셈인가?”

    루안이 웃으며 그를 향해 잔을 들었다.

    “정말 고맙네.”

    루안이 잠시 멈추었다 말했다.

    “자네가 내 가장 친한 친구야.”

    유신지가 갑자기 웃었다. 눈물이 터질 것 같아서 유신지는 루안을 세게 한 대 쳤다.

    “혼인을 축하하네.”

    유신지가 자리에 앉자 같이 온 동료들이 놀리기 시작했다.

    “유 대공자, 사람들이 다 자네가 루 통정을 좋아한다고 해도 난 안 믿었거든. 근데 오늘에야 믿을 수 있게 됐네. 왜 루 통정이 혼인하는데 자네가 다 울 것 같은 표정인가.”

    유신지가 자포자기한 듯 말했다.

    “맞네! 내가 루 통정을 좋아하지. 비록 날 볼 때마다 늘 싫은 기색이었지만, 난 그와 함께 어울리는 것이 좋았어. 자네들이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나?”

    동료들이 하하 웃었다.

    “자네 정말 형편없는 사람이구먼! 우리 중에 누가 자네를 홀대했나? 누가 자네를 따돌렸나? 참 잘하는 짓이네, 한사코 자네가 싫다는 사람을 좋다고 하다니!”

    유신지가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그러게, 내가 형편없는 인간이라 스스로 무덤을 팠군.”

    “됐네! 루 통정이 혼인했어도 자네에겐 우리가 있지 않나! 자, 자, 자, 술이나 마시자고!”

    “성칠(盛七)! 루 통정은 이제 막 혼인했다 치지만 자네는 이미 애가 몇이나 있으면서 아직도 유 대공자를 뺏으려고 하나?”

    “그래, 자네가 혼인을 하지 않았대도 비교가 안 되지. 북양왕가 넷째 공자는 잘생기기라도 했는데 자네는 볼 게 뭐 있나?”

    “됐어, 됐어. 자네들 유 대공자 좀 그만 건드려. 이러다 정말 울겠네…….”

    * * *

    친지와 친구들이 많지 않아서 좋은 점은 신방에서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을 쫓아버리기 쉽다는 것이다.

    루안의 좋지 않은 평판 때문에 반 정도는 그를 보면 무서워했다.

    두려워하지 않는 다른 절반도 북양태비가 몽둥이를 들고 설치자 소란을 피우지 못했다.

    한가한 인간들을 쫓아내고 나서 북양태비는 이상한 기운을 내뿜으며 루안을 차 방으로 끌고 갔다.

    “왜요?”

    루안이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어 물었다.

    북양태비가 밖을 내다보며 아무도 없는지 확인한 뒤 그에게 물었다.

    “네 형한테 물어보라고 해야 했는데 어미가 깜빡 잊었다. 너…… 신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아니?”

    루안이 어머니를 보는 표정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이 복잡했다.

    북양태비가 아들의 시선에 민망해하며 재촉했다.

    “빨리 말해! 모르면 아직 안 늦었으니 조 선생을 불러…….”

    조 선생은 그가 북양왕부에서 데리고 나온 부하로 그의 부하 중 몇 안 되는 혼인을 한 자였다.

    루안이 말했다.

    “어머니, 저 스물네 살이에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가 나이하고 무슨 상관이냐?”

    북양태비가 당당하게 말했다.

    “너 모르면 아는 척하지 말고 모른다고 해, 그때 가서 신부를 놀라게 하면…….”

    “…….”

    루안은 평생 다른 사람한테 모르면서 아는 척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런 일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는 그저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께서도 종일 피곤하셨을 테니 가서 쉬세요. 이렇게 걱정하지 마시고요. 늙겠어요.”

    그리고는 차 방에서 나왔다.

    북양태비가 그의 뒤를 쫓아 나오며 뒤에서 욕을 했다.

    “이 못된 놈아! 어미가 신경 써 주는 건데도 싫다는 거냐!”

    그래도 루안이 신방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북양태비는 아마 문제없을 거라고 짐작했다.

    * * *

    이때, 지온은 막 옷을 갈아입고 앉아 있었다.

    루안이 들어오더니 물을 준비하라고 명했다. 방금 술을 마셨는지라 그는 지온이 술 냄새를 싫어할까 걱정이었다.

    루안이 정결히 씻고 옷을 갈아입으니 부엌에서 준비한 음식도 도착했다. 루안이 지온에게 물었다.

    “배고프지 않소? 계속 아무것도 못 먹은 거 아니오?”

    지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장실이 불편해서 물도 마시지 못했고 마른 음식을 먹으면 목이 말라서 아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곤 출발하기 전에 간단히 요기한 것이 다였다.

    “자, 우선 먹어요.”

    주방에서 보내온 죽이 아주 맛있어서 지온은 말할 틈도 없이 두 그릇이나 먹었다.

    루안이 그녀를 보고 웃는 것을 보니 왠지 좀 쑥스러웠다.

    “당신 집 죽이 아주 맛있어요.”

    “당신 집이 아니라 이제 우리 집이오.”

    루안이 또 물었다.

    “아직 배고프오? 더 먹겠소?”

    지온이 그만 먹겠다며 손을 저었다. 루안이 사람을 불러 그릇을 치우자 방안에는 그들 두 사람만 남았다.

    지온은 책상 가에 앉아서 턱을 괴고 루안이 손을 씻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일부러 그가 다 씻고 나서야 물었다.

    “시녀를 불러올까요?”

    루안이 그녀를 쓱 보고 눈치 있게 말했다.

    “아니오, 나도 평소에 혼자 했소.”

    지온이 그제야 웃었다.

    “참, 큰형님은 돌아가셨어요?”

    “응.”

    “별일은 없었죠?”

    “방금 소식을 들었는데 이미 경성 밖으로 나갔다더군.”

    지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했다.

    “매복에 당하거나 하지는 않겠죠?”

    “괜찮소, 지원병들이 있으니.”

    잡일들을 다 처리하고 루안이 걸어와서 지온의 곁에 앉았다.

    지온은 아무것도 자각하지 못하고 계속 말했다.

    “도대체 누가 그런 거예요? 한참 생각해봤는데도 전혀 이해가 안 돼요. 강왕세자가 지금 문제를 일으키는 건 무슨 목적일까요?”

    “맞소! 정말로 그럴 이유가 없지.” 

    루안은 말하면서 지온이 편하게 기대도록 팔을 뻗었다.

    지온이 계속 말했다.

    “아무래도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응.”

    루안이 무성의하게 대답했다.

    “맞다, 거기 누구 없니…… 아!”

    말을 잇던 지온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고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제 옷으로 들어간 손을 잡았다. 

    “당신 왜 알려주지도 않고……?”

    루안은 눈을 내리깔고 지온을 보고 있었다.

    “어떻게 알려달라는 거요? 신방에 화촉을 밝힌 첫날 밤인데 속으로 생각도 안 해봤소?”

    그는 말이 끝나자 지온을 안아 들어 가볍게 침상에 던지고 일어나 침상의 휘장을 내렸다.

    지온이 발버둥질 치며 일어나 말했다.

    “잠깐만요, 나 아직 못 봤어요……!”

    “뭘 말이오?”

    루안은 말을 하면서 그녀를 끌어당겼다. 그는 조금도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

    지온이 말했다.

    “어젯밤에 보려고 했는데 일이 너무 많아서 잊어버렸어요…….”

    대부인 정씨는 계모인데다 겨우 스물 몇 살의 나이였다. 죽은 지 노야와도 이삼 년 동안 부부로 지낸 것이 다여서 ‘그런 것’을 가르치기에는 좀 난감했다.

    “볼 필요 없소.”

    루안이 말했다.

    지온이 의심했다.

    “당신 어떻게 알아요?”

    루안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내 학습 능력이 얼마나 좋은지 당신은 아직도 모르오?”

    ‘아주 좋긴 하지요…….’

    그녀가 다시 물어보려 했지만 루안은 이미 인내심이 사라지고 없었다.

    “말이 많은 걸 보니 긴장한 거요?”

    “누, 누가…… 긴장했다고 그래요?”

    지온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긴장한 게 아니라면 됐소.”

    루안이 씩 웃었다. 루안은 이번에는 지온이 다시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얼마 후 마침내 말할 틈이 생긴 지온이 말했다.

    “불 좀 꺼줄래요……?”

    안타깝게도 이 요구는 바로 거절당했다. 

    “저건 용봉초(*龙凤烛: 결혼을 상징하는 초)라 끄면 안 되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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