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07)화 (307/385)

307화. 혼례식

북양태비가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눈으로 전송하고 루안이 말했다.

“형, 내가 배웅해줄까?”

루혁이 손을 내저었다.

“아니, 몰래 왔는데 벌써 들켰을까 봐 걱정이다. 네가 배웅하면 사람들한테 들키지 않겠느냐?”

루안은 말이 없었다.

루혁은 그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을 보고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결혼은 기쁜 일이지. 이 형이 비록 참석하지는 못하지만 멀리서라도 너희를 축복할게.”

“응…….”

“사실 나는 네 혼례식을 북양에서 해주고 싶었어. 너희가 북양의 모든 백성으로부터 축하를 받게 하고 아버지께도 안이가 이만큼이나 자랐다고 보여드리고 싶었지.”

“응…….”

“하지만 어쩔 수 없구나.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으니 그럭저럭하는 수밖에. 이 일들이 끝나고 때가 되면 부인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오는 것도 괜찮을 거다.”

“응…….”

루혁이 마지막으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형은 간다!”

“응.”

루안은 처마 밑에 서서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담 위로 뛰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림자는 금세 보이지 않았다. 

* * *

다음날 신부를 맞이하러 가는 행렬이 길을 나설 때, 북양왕부의 가마도 성문을 나섰다. 북양왕 루혁이 말을 탄 채 고개를 돌리고 바라보았다.

고홍이 물었다. 

“전하, 뭘 보시는 겁니까?”

“쉿!”

루혁이 그를 꾸짖었다. 

“소리 내지 말거라.”

고홍은 말을 참았다.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무 일이 없자 그가 참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전하, 도대체 뭘 보고 계시는 겁니까?”

“폭죽 소리.”

루혁이 말했다. 

“폭죽 소리 들었느냐?”

고홍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들었다!”

루혁이 웃으며 말했다.

“북도 치고 징도 치고 아주 떠들썩하군!”

“…….”

고홍은 마음속으로 좀 무서워졌다. 

루혁이 마침내 고개를 돌리고 말을 몰아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 자식, 지금쯤 아주 신나겠지? 그 녀석이 누굴 이렇게 좋아하는 건 정말 오랜만에 보는데 말이야.”

고홍이 말했다.

“전하, 길 조심하십시오!”

루혁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에이, 저리 가거라. 본왕의 좋은 기분을 망치지 말고.”

고홍이 입을 삐죽거리며 말머리를 돌려 뒤로 갔다.

* * *

2월 초파일, 대길(大吉).

등불을 달고 오색 천으로 장식한 지씨 가문 저택은 손님들로 가득했다.

시집을 보내는 것이 장가보내는 것과 비교가 되지는 않지만, 대장공주는 지온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정국공부(郑国公府)의 사람을 불렀다.

정국공 부인(郑国公夫人)이 오면 다른 사람들도 소문을 듣고 움직이지 않겠는가?

그런 연유로 희화원이 가득 차서 누가 누구 집 여인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었다. 

지씨 가문의 둘째 부인, 위씨 부인은 몹시 마음이 쓰려서 말했다.

“평소에 우리 가문에 친척이 이렇게 많은 걸 본 적이 없는데 다들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르겠네.”

셋째 부인인 장씨 부인이 그녀의 속마음을 간파하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요! 생각해보니 예전에 큰아주버님께서 아직 살아계셨을 때는 친척이 그래도 많았는데 큰아주버님께서 돌아가시자마자 몇 군데 말고는 왕래가 끊겼지요.”

이는 차남가가 집안일을 잘 처리하지 못해 인정을 잃었다고 조롱하는 것이었다. 

위씨 부인은 딱히 반박할 말이 없어 화를 참다 얼굴이 다 빨개졌다.

장씨 부인은 오늘 기분이 좋아 그런 그녀를 한 번 봐주기로 했다.

“시간이 늦었으니 꽃가마가 곧 들어올 거예요. 형님, 우리 얼른 들어가서 큰 애를 축하해줍시다!”

아무리 마음이 쓰려도 가문의 친척을 정말 끊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위씨 부인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지온은 혼례복을 입고 방안에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지온은 자신이 긴장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일이 닥치니 손과 발이 차가워지고 덜덜 떨렸다.

대부인 정씨가 말했다.

“왜 이렇게 얼굴이 하얘? 분을 잘못 발랐나? 서아야, 볼에 연지를 좀 더 발라라!”

“됐어요!”

지온이 황급히 말했다.

“이 정도가 좋아요.”

대부인이 지온의 손을 어루만지며 웃었다.

“무서워하지 말고 앉아서 기다리게. 이따가 도착하면 따라서 가마에 올라타면 돼. 그쪽 집은 식구가 적고 손님들도 눈치가 있으니 자네를 곤란하게 하지는 않을 거야.”

지온이 웃었다. 

‘무서운 것은 그게 아니에요…….’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아서 너무 현실감이 없었다.

정국공 부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우리 온이가 이렇게 예쁜데 누가 곤란하게 하겠어요? 시집가면 분명히 받들어 모실 거예요.”

징과 북소리가 가까워지고 폭죽 소리가 들렸다. 손님들이 즐거워하였고, 어린아이가 뛰어 들어오며 외쳤다.

“왔어요! 신랑이 도착했어요!”

지온이 고개를 들자 빨간 옷을 입은 루안이 천천히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혼례복은 그가 평소에 입던 관복보다 훨씬 화려해서 그의 약간 음울해 보이는 얼굴마저 밝아 보였다.

그가 길을 걸어오자 주변에서 이따금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났다.

루 통정의 외모가 출중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혼례복을 입었을 때 이렇게까지 눈부실 줄은 정말 몰랐다.

지온이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잊은 채 바라보고 있는데 귓가에 경소소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지온 언니, 넋 놓고 보는 거야?”

지온의 얼굴이 자기도 모르게 빨개졌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망할 계집애, 사람들 앞에서는 체면을 좀 생각해 주면 안 되니?’

뒤이어 루안이 그녀를 향해 시선을 던지며 웃었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얼떨결에 그를 따라 일어나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섰는데 발밑은 솜을 밟는 것처럼 푹신했고 온몸이 구름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꽃가마에 올라타서야 지온은 비로소 약간 실감이 났다.

드디어 시집을 가는구나!

‘할아버지, 보고 계시죠? 분명 아주 기쁘실 거예요. 그렇죠?’

자신은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에게 시집갔다.

폭죽 소리가 울리고 꽃가마가 움직이자 지씨 가문 사람들이 문 앞에 서서 눈으로 신부의 가마를 배웅했다.

대부인은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섭섭해했다.

위씨 부인이 그런 그녀를 보며 시샘하듯 말했다. 

“큰형님이 이렇게 우시니,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온이가 형님 친자식인 줄 알겠어요!”

장씨 부인은 대부인을 가슴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즉시 말대꾸했다.

“큰형님께서 이렇게나마 어미로서 책임을 다하시는 거지요! 자기가 낳지 않았다고 안중에도 없는 누구랑은 다르게요.”

이에 위씨 부인이 벌컥 화를 냈다.

“동서, 그게 무슨 뜻이야?”

“아무 뜻도 없어요!”

장씨 부인이 손수건을 휘두르며 말했다.

“손님이나 배웅해야겠어요. 둘째 형님, 형님네 지서도 곧 시집갈 텐데 그때도 분명 이렇게 성대하겠지요?”

위씨 부인은 말문이 막혀 얼른 표정을 숨기고 손님들에게 가서 친한 척을 했다.

‘설령 오늘만 못하더라도 반드시 지서를 호화롭게 시집보내리라!’

* * *

북소리와 함께 신부를 맞이하는 행렬이 천천히 지나가자 길가에 있는 술집에 많은 사람이 몰려와 구경했다.

“와, 신랑이 참 잘생겼네. 어느 집의 사람이야?”

“그것도 몰라? 루 통정이잖아! 북양왕부의 그분, 어제도 아주 난리가 났었어!”

“아 그 사람이구나! 몇 년 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더니 이제 장가를 가는 거야? 근데 어느 집 아가씨한테 장가를 드는 거야?”

“돌아가신 지 재상의 적손이자 대장공주의 양녀인 아가씨지.”

“오, 그럼 두 집안 수준이 얼추 맞네.”

“…….”

유민은 매운 훠궈를 훌쩍거리며 먹는 큰 오라버니를 보며 동정하듯 손수건을 건넸다.

“큰 오라버니, 울고 싶으면 울어!”

유신지가 얼굴을 닦으며 불만스럽게 말했다.

“내가 왜 울어! 그냥 너무 매운 걸 먹어서 그렇다.”

“그래, 그래!”

유민이 체면을 세워주었다. 

“이 고추는 정말 중독성이 있어서 눈물이 다 나올 정도라니까.”

“누가 아니래!”

두 남매가 말없이 마주 보았다. 

잠시 후 유민이 물었다.

“큰 오라버니, 루 통정하고 친구 사이 아니었어? 오늘 가서 술 안 먹어도 괜찮아?”

유신지가 흥 하더니 욕을 했다.

“내가 왜 술을 먹으러 가느냐? 그놈이 가인(佳人)을 얻었다고 내가 가서 억지로 웃으며 축하라도 해줘야 해? 꿈 깨라고 해!”

유민이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어? 내 말이 틀렸어? 그놈도 남을 그렇게까지 괴롭히면 안 되지, 안 그러느냐?”

유민이 맞장구를 쳤다.

“맞아! 세상에 그렇게 쉬운 게 어디 있겠어.”

유신지가 훌쩍훌쩍 울며 음식을 두 입 먹더니 눈물을 닦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북양왕가 넷째 공자는 그런 건 신경도 안 쓸 게다. 겉은 냉담해도 속은 따뜻한 사람이라 정말 나를 벗으로 생각했다면 내 마음을 이해해주겠지.”

유민이 웃었다.

“왜 웃어?”

유민이 말했다.

“큰 오라버니가 부러워서! 둘이 정말 좋은 친구 사이네. 마음이 통하고 서로 배려해주고.”

유신지가 고개를 떨구며 불평했다.

“내가 훨씬 많이 배려해줬지! 내가 체면을 버리고 매일 다가서지 않았으면 어디 친구 사이가 될 수나 있었겠느냐?”

“그렇게 말하면 큰 오라버니가 불쌍해지잖아!”

유신지가 또 되받아쳤다.

“왜 불쌍해? 자주 바람맞힌 것만 빼면 둘 다 나한테 잘해줬어.”

유민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큰 오라버니도 바람 한 번 맞추는 거네, 그 사람들 집에 술을 차려 놓았는데 아무도 먹으러 안 가는 거잖아.”

유신지가 갑자기 젓가락질을 멈췄다.

* * *

북양태비가 바짝 긴장하여 총관을 붙잡고 물었다.

“손님은 다 오셨나? 꽃가마가 곧 들어올 거야.”

총관이 대답했다.

“약속한 분들은 거의 다 왔는데, 그게…….”

“그게 뭐? 우물쭈물하지 말고 빨리 말해.”

총관이 솔직하게 말했다.

“오신 하객들이 신분이 높지 않아서 영 체면이 서질 않습니다.”

루안이 가문에서 쫓겨난지라 친족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루안과 친척 관계가 있는 훈귀(*勋贵: 공훈이 있는 귀족)들조차 아무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게다가 루안의 평판이 좋지 않아서 청렴한 문관들도 발을 들이려 하지 않았다.

북양태비가 곽씨 가문의 인맥으로 모셔온 옛 친구들만으로 겨우 사람을 채울 수 있을 뿐이었다.

북양태비가 한숨을 쉬었다.

“그거야 뭐 별 수 있나? 북양에서 하면 거창하게 혼례를 치러줄 수 있겠지만 하필이면 경성에서 하는 바람에…….”

말하는 도중 밖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신부가 왔습니다, 신부가 도착했습니다!”

북양태비가 급히 옷차림을 정돈하고 다시 앉았다.

밖이 한바탕 떠들썩해지고, 잠시 후, 루안이 신부를 데리고 들어와 북양태비와 어른들에게 절을 했다.

하객들은 신랑 신부가 신방에 들어가길 기다렸다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중 서로 잘 아는 사람들은 한데 모여 소곤거리며 이야기했다.

“쭉 보니 하객들이 다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라 아쉽구려.”

“그러게 말이오! 저기 앉은 손님들은 서로 아주 어색해 보이는 것이 분명히 아랫것들이 모아온 사람들인 것 같소.”

“높으신 분들은 하나도 안 온 것 같습니다.”

“훈귀도 태비의 오랜 지인이 와서 억지로 체면치레나 한 것 같고.”

“평판이 이리 안 좋으니 성총을 받은들 뭐한단 말이오?”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을 때 밖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아니, 두 무리였다. 두 무리는 방금 문 앞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었다. 

한 무리는 정국공 세자 경관걸(耿冠杰)이 이끌고 있었다.

다른 한 무리는 유신지가 선두에 있었다.

두 무리는 서로 쳐다보며 경계했다.

한쪽은 왕이나 공신이 있는 훈귀파의 귀족 공자님이고, 다른 한쪽은 명문 학자 집안의 재주가 뛰어난 공자였다. 둘은 서로 전혀 상관이 없는 사이였다!

‘소란 피우러 온 건 아니겠지?’

결국 유신지가 먼저 침묵을 깼다.

“경 세자, 참 공교롭습니다! 세자께서도 술을 마시러 오셨습니까?”

경관걸이 그를 보며 웃었다.

“그렇소, 유 대공자는?”

“저희도 당연히 술을 마시러 왔지요! 루 통정이 저희와 함께 과거에 급제한 사이인데 결혼 축하주를 놓칠 수야 있겠습니까!”

말썽을 피우러 온 것이 아니라면 괜찮았다.

쌍방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하여 두 무리는 서로 양보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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