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06)화 (306/385)
  • 306화. 작별

    지온은 천천히 밤 껍데기를 까면서 하나씩 전해지는 소식을 듣고 있었다.

    “루 통정께서 도착하셨어요.”

    북양왕이 자신이 살아있는 한 루씨 가문의 사람들은 그 거리를 지나다닐 생각을 하지 말라며 큰소리쳤다.

    “상황이 안 좋아요, 싸우기 시작했어요!”

    지온은 양미간을 문지르고 한숨을 쉬며 차를 마셨다.

    지서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물었다.

    “큰언니, 어째 전혀 걱정을 안 하는 것 같은데?”

    지온이 말했다.

    “걱정해도 소용없잖아! 내가 달려가서 그들과 함께 싸울 수도 없고.”

    ‘그거야 그렇긴 하지만, 약혼자가 남하고 싸운다는데 여기서 한가롭게 차나 마시고 있는 것도 이상한 거 아닌가?’

    지서는 그리 생각하며 물었다. 

    “루 통정이 다칠까 봐 걱정도 안 돼?”

    “걱정되지.”

    지온이 말을 마치고 밤을 하나 더 까며 그녀에게 물었다.

    “먹을래?”

    지서는 할 말을 잃고 손만 휘저으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드디어 마지막 소식이 전해졌다.

    “원 재상께서 보다 못해 오셔서 두 분을 궁으로 압송했습니다.”

    지온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까던 밤을 던지고는 말했다.

    “됐어, 별일 아니야.”

    그리고 생각했다. 

    ‘북양왕께서는 꼭 북양으로 돌아가셔야겠어요.’

    * * *

    황제는 앞에 서 있는 골칫덩어리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자네들 왜 또 싸웠는가? 지난번에 짐이 중재해 주지 않았는가?”

    루안의 얼굴은 냉랭했다.

    “폐하, 이 문제는 북양왕 전하께 물어야 합니다. 내일이 신의 혼례가 치러지는 날이라 오늘 최장(*催妆: 옛날에 신부가 시집을 갈 때 여러 번 재촉해야만 몸치장을 하고 출발하는 것)을 하는데 최장례가 가는 도중에 북양왕 전하 때문에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신도 정말 물어보고 싶습니다. 도대체 뭘 어쩌자는 건지? 한도 끝도 없지 않습니까?”

    루혁이 마지못해 말했다.

    “네 하인이 본왕한테 와서 부딪친 것인데 그게 왜 본왕 잘못이냐? 탓하려면 아랫사람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너를 탓해야지!”

    루안이 고개를 돌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그렇게 아닌 척하면 재밌습니까? 날 괴롭히러 온 게 뻔한데 그것조차 인정을 못 하시겠다?”

    루혁이 침묵을 지키다 고개를 쳐들었다.

    “그래! 본왕이 널 골탕 먹이려고 했다. 누가 너더러 본왕을 기분 나쁘게 하랬어? 그러니 본왕도 똑같이 해준 거지!”

    루안이 비웃음을 날리며 고개를 돌려 황제를 향해 말했다.

    “폐하, 들으셨지요. 신이 말썽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북양왕 전하가 신을 쫓아다니며 놓아주지 않는 것입니다.”

    황제가 불쾌해하며 말했다.

    “북양왕, 지난번에 짐이 분명히 말했네. 자네 형제의 일은 이제 완전히 끝났으니 앞으로는 더 이상 상관하지 말라고. 근데 이번에 또 일부러 골탕을 먹이려 하다니 짐이 말해도 소용없다는 것인가?”

    루혁이 즉시 억울함을 호소했다.

    “폐하! 폐하의 말씀은 당연히 따라야지요. 하지만 설명을 좀 드리자면 이건 신이 일부러 말썽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루안이 먼저 저를 건드린 겁니다!”

    루안이 눈을 찌푸렸다.

    “무슨 헛소립니까? 내가 언제 형님을 건드렸다고요? 그렇게 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 앞에서 형님이 일부러 와서 훼방 놓은 거잖습니까!”

    루혁이 말했다. 

    “지난번 신정 연회 때, 나를 음해한 것이 네가 아니라고 말해 보시지?”

    이에 루안이 크게 화를 냈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함부로 지껄이지 마시죠. 그 일이 나랑 무슨 상관입니까?”

    루혁은 차가운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폐하, 신이 나중에야 생각이 났습니다. 문제는 정방(净房)에서 생겼는데 그곳에 피워져 있던 향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신이 향냄새를 맡자마자 꼭 술에 취한 것처럼 변하고야 말았습니다. 이런 향 제조는 조방궁에서 가장 잘하는 것이 아닙니까? 듣자 하니 네 약혼녀가 향에 아주 조예가 깊다던데!”

    “헛소리하지 마십쇼!”

    루안의 이마에 핏줄이 돋았다.

    “이 세상에 조향하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왜 내 약혼녀한테 갖다 붙입니까?”

    “그리고 내시.”

    루혁은 하찮다는 듯이 말했다.

    “너는 매일 궁중을 드나드니 내시 두 명쯤 매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 내가 생각해보니 모든 조건이 다 너한테 딱 들어맞는구나!”

    루안은 극도로 화가 나서 뒤돌아서며 말했다. 

    “폐하, 북양왕은 아무런 증거도 쥐지 않고 의심만으로 신이 본인을 해쳤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신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폐하께서 바른 도리로 이끄시어 신의 결백을 밝혀주십시오!”

    루혁도 뒤따라 외쳤다.

    “폐하, 생각해보십시오. 신은 계속 북양에 있었는데 이 조정에서 누가 신을 모함하겠습니까? 루안 말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증거도 없이 아무렇게나 모함을 한다고? 폐하, 신은 북양왕이 사사건건 이러는 것을 정말 참을 수가 없습니다! 폐하께서 신의 결백을 밝혀주십시오!”

    “폐하! 루안이 저를 먼저 모함하였습니다! 신은 단지 그의 선물 수레를 몇 개 차서 부쉈을 뿐입니다. 떳떳하게 드러내놓고 했지 루안처럼 음침하고 악랄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저놈은 모략을 꾸며 신을 사지로 몰아넣으려 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폐하의 곁에 있는데 안심이 되십니까? 폐하, 절대로 속으시면 안 됩니다!”

    황제는 두 사람의 고함에 머리가 다 아파져서 결국 화를 내며 말했다.

    “그만! 둘 다 이게 명문가 자제들이 할 짓인가? 모두 입 다물어라!”

    루씨 형제는 마침내 조용해졌지만, 여전히 눈빛으로 싸우며 상대방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었다. 

    이때 원 재상이 들어와 정무를 보고했다.

    황제는 그들을 편전으로 몰아넣고 원 재상에게 대책을 물었다.

    “원 재상, 저 형제들이 이리 소란을 피워대니 어찌하면 좋겠소?”

    황제가 원 재상에게 토로했다.

    “북양왕은 아무런 증거도 없으니 짐은 당연히 그의 말을 들어줄 수 없네. 하지만 그는 확실히 지난번에 누군가에게 음해당했고 그 주동자를 아직 찾지 못했네. 게다가 태후께서 이미 한바탕 때리고 벌을 주셨으니 짐이 또 벌을 주기도 곤란하지.”

    원 재상이 반문했다.

    “폐하께서는 어떤 결과를 원하십니까? 진실을 밝히길 원하십니까?”

    황제는 눈을 반짝이면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원 재상이 또다시 말했다.

    “그 일은 정확하게 조사하기 어렵습니다. 북양왕도 그 두 내시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겁니다.”

    “짐도 그렇게 생각하네. 이렇게 계속 싸워도 결말이 나지 않을 것이야. 설령 루안이 했다고 해도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진즉에 증거가 없어졌겠지. 짐이 아무런 증거도 없이 함부로 벌을 줄 수는 없지 않겠나?”

    원 재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북양왕을 하루빨리 돌려보내십시오. 경성에서 겨울을 보내고 충분히 즐겼으니 북양왕께서는 돌아가셔서 진수(*镇守: 군대를 주둔시켜 요처를 지킴)하셔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네, 두 형제를 떼어놓으면 아무 일도 없을 것 아닌가?’

    황제는 기분이 상쾌해져서 즉시 명령을 내려 북양왕에게 봉지로 돌아가라고 했다. 루혁은 여전히 불복하여 와서 해명하려고 하였지만, 황제가 문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다.

    호은이 가서 루혁에게 말을 전했다.

    “북양왕 전하, 폐하께서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전하께서 상경한 지 이미 3개월이나 되었습니다. 전에는 겨울이라 길이 막혔었기 때문에 너그럽게 경성에서 며칠 더 머무르게 해주셨으나 이제 봄이 되어 날씨가 따뜻해지고 꽃이 피었으니 돌아가야 한다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일은…….”

    호은이 웃으며 말했다.

    “폐하께서 사람을 시켜 조사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전하께서도 직무를 소홀히 하시면 안 됩니다!”

    “며칠 더 머무르며 결과가 나온 다음에 가면 안 되는가?”

    호은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전하께 숨김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미 진즉에 전하께서 상경하신 뒤 돌아가지 않는다고 탄핵한 사람이 있습니다. 경성에 머무르며 가지 않는 것은 본래 규율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폐하께서 내일 가시라고 하셨습니다. 남들한테 빌미를 만들어주지 마십시오.”

    “내일?”

    루혁이 소리를 질렀다.

    “그건 너무 급하지 않은가?”

    “그럴 리가요? 폐하의 하사품은 노비들이 이미 다 포장해두었습니다.” 

    호은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전하, 솔직히 말씀드리면 루 통정께서 경성 안에 인맥이 넓으십니다. 때가 되면 매일 사람을 시켜 전하를 탄핵할 것인데 그럼 괜한 말썽만 더 생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폐하께서도 전하를 생각해서 빨리 가라고 하시는 겁니다.”

    루혁이 여전히 불복하며 말했다.

    “그럼 본왕이 그놈한테 쫓겨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나?”

    “그렇지 않습니다. 전하께서 남아계시면 예물 수레를 차서 부수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으시지 않습니까. 하지만 전하께서 북양으로 돌아가시면 사람들이 루 통정께서 형님을 괴롭힌 것이라고 수군댈 겁니다.”

    루혁의 눈빛이 환해졌다.

    “그러고 보니 그렇구나.”

    호은이 마침내 이 북양왕 전하를 설득하는 데 성공하고 한숨을 돌렸다.

    * * *

    그날 밤.

    루안이 등불 밑에 앉아서 내일 해야 할 일들을 확인하는데, 창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 누군가가 미끄러지며 안으로 들어왔다.

    “형.”

    루안이 손에 들고 있던 전표를 내려놓았다.

    루혁은 평소 깝죽거리던 모습과는 다르게 그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 형님은 내일 간다!”

    루안은 침묵했다.

    “네 혼례식에는 참석하지 못하니 일부러 오늘 밤에 작별 인사하러 온 거다.”

    루혁이 손을 뻗어 그의 머리 위에 놓았다.

    그들 형제는 나이 차이가 제법 나서 루혁의 기억 속에 있는 어린 동생은 항상 자기보다 훨씬 어렸다. 하지만 사실 그들의 키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세월이 정말 빠르네, 네가 혼례를 다 치르다니.”

    루안이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형은 6년 전부터 나한테 결혼하라고 재촉하더니, 지금은 왜 세월이 빠르다는 건데?”

    루혁이 그의 얼굴을 꼬집었다 놓았다.

    “못된 놈, 꼭 분위기를 깨.”

    그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어머니는?”

    “옆방에서 예단을 확인하고 있어!”

    루혁이 어린아이처럼 달려 나가며 말했다.

    “어머니한테 할 말이 있어!”

    그가 쏜살같이 가버리자 루안은 잠시 조용히 앉아 있다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냥 울고 싶은 게 아니고? 어머니한테 무슨 할 말이 있어, 거짓말하기는!”

    그는 천천히 물건을 챙겨 문을 열고 나갔다.

    루혁은 아마 다 울었는지 북양태비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머니, 정말 저랑 같이 안 가실 겁니까?”

    “너나 가거라! 내일 안이가 혼인하는데 어른이 없으면 어떡하니?”

    “그럼 역참에서 기다리면 되잖습니까? 혼례식 끝나고 오십쇼.”

    “싫다, 너무 힘들어.”

    “이틀 드리겠습니다. 이틀이면 되지요?”

    북양태비가 짜증을 냈다.

    “너 왜 이렇게 치근덕대? 어미가 아들 녀석과 며칠 더 있고 싶다는데 그것도 안 되느냐?”

    “예, 예, 알겠습니다, 어머니 마음대로 하세요.”

    두 사람은 투닥거리며 예단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한참 후 루안은 루혁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어머니께서 며칠 더 안이와 함께 있어 주세요. 안이가 너무 불쌍하잖습니까. 매번 그 아이만 희생되고 버려지고…….”

    내부가 잠시 조용해진 후 북양태비의 목소리가 들렸다.

    “굳이 말해 뭐해? 어미도 다 아는걸.”

    잠시 후,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도 마찬가지지! 어깨가 아주 무겁잖아!”

    루혁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어머니한테 칭찬을 다 듣네요. 저한테는 욕만 하시는 줄 알았는데.”

    “흥! 욕이 듣고 싶은 거면, 이 어미가 지금 바로 해주마.”

    이때, 루안이 문을 밀고 방으로 들어가 물었다.

    “다 확인하셨습니까?”

    “다했다.”

    북양태비가 말했다.

    “내일 아주 떠들썩한 혼례식을 하게 해주마.”

    루안이 활짝 웃었다. 

    “알았어요. 어서 주무세요. 아침 일찍 일어나셔야 하잖습니까!”

    “그래, 그래,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야 하니 서둘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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