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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 (292)화 (292/385)
  • 292화. 지금껏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

    태후는 사람들 앞에서 이 일을 공개하여 다시는 옥비가 자신들을 속이지 못하게 하리란 것을 분명히 알렸다. 

    황후가 한참을 멍하게 있다가 갑자기 소리쳤다.

    “그럼, 옥비는 옥씨 가문 소저가 아닙니까? 그럼 대체 누구입니까?”

    “누구긴? 주인의 이름을 사칭하는 시녀에 불과하지.”

    태후가 담담하게 말했다.

    이 말은 마치 벼락이 치듯 귓가에 떨어져 사람들을 놀라게끔 했다.

    황후에서부터 궁녀들까지, 모든 사람의 시선이 옥비에게로 쏠렸다.

    이 눈빛에는 놀람, 조롱을 비롯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멸이 담겨 있었다.

    “아니야……!”

    옥비가 중얼거렸다.

    옥비는 본인이 시녀가 아니라고 해명하고 싶었다. 일찍이 돌아가시긴 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직위가 낮은 관리였기 때문에 자신도 엄연한 관리 가문의 아가씨였다. 하지만 누가 들어주겠는가?

    무애해각에 있을 때도 그녀는 시녀가 아니었음에도, 모두가 옥종화 옆에 있는 시녀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왜? 정말 이런 낙인에서 벗어날 수 없단 말인가?’

    신비는 불현듯 깨달았다.

    “그래서 그랬구나. 그렇게 명성 높은 옥씨 가문의 소저가 왜 이런가 했더니…….”

    신비는 말을 더 잇지 않았지만, 눈빛과 말투로 이미 그녀의 의도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옥비는 이 말에 자극을 받아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내가 뭘요? 언니는 그냥 뒷북이나 치는 거죠. 지금까지 몰랐잖아요! 아직도 인정하지 못하겠어요?”

    “그래!”

    신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어찌 이렇게 신분을 사칭하는 일이 있을 줄 알았겠느냐? 여기는 후궁이라 누가 들어오든 조상 3대를 샅샅이 뒤지고 조사하는데? 이럴 거라곤 정말 생각지도 못했지…….”

    전부터 신비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설령 소문이 좀 과장되었다고 해도 선대 황제께서 선대 태자의 짝으로 그녀를 점찍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선대 황제가 태자를 매우 아꼈기 때문에 옥 소저는 당연히 지금의 황후보다 더 훌륭해야 했다. 하지만 옥비는 어느 방면이든지 평범해서 특별할 것이 없었다. 그녀처럼 엄선된 명문가의 규수들과 비교해도 현저하게 차이가 났다.

    그래서 신비는 옥비가 자신의 총명함을 숨기고 있는 거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3년 동안 함께 지내면서도 옥비가 숨기고 있는 재능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니 그저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달라서 그런 것이라고 치부해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가 가짜였던 것이다! 불쌍한 옥씨 가문 아가씨는 죽어서도 옥씨 가문의 명성을 망치는 데 이용당하고 있었다!

    저쪽에 있던 황후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이건 정말 황당하면서도 가소로운 일이었다. 예전에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일이 한순간에 모두 이해가 되었다.

    옥비가 감히 그녀들과 왕래하지 못한 것은 자신이 고고하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들킬까 봐 두려워서 그랬던 것이 아닌가? 어쩐지 전부터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더라니, 결국 남을 사칭이나 하는 가짜였던 것이다.

    ‘만복경륜(*满腹经纶: 학식, 정치에 경륜이 있음), 칠요영롱(*七窍玲珑: 총명하고 영리함), 지서달례(*知书达礼: 학식과 교양이 넘치고 예절에 밝음)라더니…… 허, 완전히 헛소리였구나.’

    황제는 머릿속이 온통 옥종화가 바다에 떨어진 그날의 일로 가득 차서 여전히 그 문제에 매달려 있었다.

    “네가 한 짓이냐? 네가 밀었느냐?”

    “아닙니다! 아닙니다!”

    옥비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인정할 수 없었다. 이 일은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 옥종화는 황제의 역린이었다. 인정하면 그녀는 죽은 목숨이었다.

    “너……!”

    “황상!”

    태후가 그를 제지했다.

    “황상이 이렇게 계속 묻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 아이가 철저히 부인하는데 믿을 수 있어요? 이 아이는 황제의 아이와 비를 독살했어요. 증거가 확실한데 황제는 아직도 남의 신분을 걸치고 존귀한 옥비마마 노릇을 하게 둘 겁니까?”

    황제는 이미 너무 놀란 데다가 연거푸 충격을 받아 마음이 너무 심란했다.

    태후가 추궁했다.

    “멍하니 뭐 하는 겁니까? 당장 이 여자를 처리하지 않고!”

    ‘처리? 어떻게 처리를 한단 말입니까?’

    황제는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되어 본능적으로 도움을 청했다.

    “어머니, 후궁의 일은 어머니께서 결정하십시오!”

    태후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처리해 줄 수는 있지만, 황상이 내 말을 들을 겁니까?”

    “당연합니다.”

    황제가 급히 말을 이었다.

    “어머니는 짐과 가장 가까운 분이십니다.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으면 짐이 또 누구의 말을 듣겠습니까?”

    “좋아요.”

    태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옥비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옥비는 마음이 악랄하고 수단이 잔인하다. 그러니 영수궁으로 돌려보내 처벌이 내려질 때까지 가두어 두어라. 나머지 사람들은 기다리되 옥비와 왕래했던 자들은 모두 자세히 조사하라!”

    태후가 말을 했으니 이 일은 확정된 셈이었다.

    사람들이 잇달아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태후마마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옥비는 대세가 이미 기울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으로서는 황제의 감정에 기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녀는 끌려가면서 처량하게 외쳤다.

    “폐하! 폐하 안됩니다! 신첩은 정말 아가씨를 해치지 않았습니다. 신첩을 믿어주셔야 합니다. 신첩이 잘못했습니다. 평생 폐하와 함께하려는 욕심을 부리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제발 3년간의 정을 생각해서 신첩을 살려주십시오…….”

    황제는 마음이 심란해 등을 돌리고 서서 듣지 않았다. 내시에게 끌려가는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3년 동안 의심해 본 적 없던 사랑이 눈 깜짝할 사이에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 * *

    옥비가 끌려가는 것을 보고 지온은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다.

    태후는 손을 대지 않을 때는 괜찮았지만, 한 번 손을 대기 시작하자 정말이지 천하를 다 뒤집어 놓았다. 

    그녀는 옥비의 과거를 폭로하고 황제의 약점을 틀어쥐었다. 이 상황은 정말 발본색원(拔本塞源)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만큼 옥비가 빠져나갈 구멍을 파괴해버렸다. 오늘 이후로 옥비는 다시는 옥종화의 이름을 빌려 풍파를 일으킬 수 없을 터였다.

    옥비를 처리한 태후가 황제를 위로했다.

    “황제도 너무 상심하지 말아요. 그저 나쁜 마음을 품고 반역을 저지른 여자일 뿐이에요. 버려버리면 그만입니다. 후궁에는 황제에게 일편단심인 여자들이 많아요. 황후는 황제를 위해 궁무에 최선을 다하고 신비는 비빈들과 총애를 다투지 않지요. 다른 미인이나 재인들도 총애를 다투기는 하나 이렇게 흉악한 사람은 없어요. 남을 사칭한 가짜 때문에 슬퍼할 이유가 있습니까?”

    황제는 고개를 숙이며 수긍하는 듯했지만, 수년 동안 꾸던 꿈이 하루아침에 깨졌으니 몇 마디 말로 위로되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태후도 더는 달래고 싶지 않아 이 난장판을 그냥 내버려 둔 채 말했다.

    “황후.”

    황후가 대답했다.

    “신첩, 여기 있습니다.”

    “황상께서는 오늘 화춘궁으로 가서 쉴 터이니 자네가 잘 보살피게.”

    이는 그녀를 이 난장판에서 풀어준다는 의미였기 때문에 황후는 뛸 듯이 기뻐하며 공손히 응대했다. 

    태후가 상냥한 얼굴로 말했다.

    “신비도 수고했다. 오랫동안 고생이 많았구나.”

    신비는 태후의 감사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태후는 또 몇 사람의 이름을 불러 한참 위로해주었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루안에게 말했다.

    “이리 추운 날씨에 루 통정이 눈까지 맞으며 궁문 밖에서 기다리느라 정말 고생했네. 이제 일이 다 마무리됐으니 일찍 돌아가서 쉬게. 지온 소저, 나를 대신해서 배웅해주게.”

    태후는 지금까지 여러 사람을 격려하면서도 지온에게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녀에게 루안을 배웅하라 시킨 것은 태후가 지온을 자신의 사람으로 여긴다는 뜻이 담겼다고 볼 수 있었다.

    지온이 몸을 낮추고 예를 표했다.

    “예.”

    황제의 가마가 출발하자 장복궁 안의 사람들이 서서히 흩어졌다.

    지온은 우산을 들고 복도를 따라 루안이 출궁할 때까지 전송했다.

    눈치 빠른 내시는 뒤에서 멀리 떨어진 채 그들을 방해하지 않았다.

    한동안 걷고 있는데 갑자기 지온의 손이 가벼워졌다. 그녀가 우산을 힘들게 들고 있는 것을 본 루안이 우산을 가져간 것이었다. 그가 고개를 돌리고 그녀를 보며 말했다.

    “이쪽으로 좀 오시오.”

    지온이 조금 가까워지자 그는 우산을 기울여 지온에게로 몰아치는 눈보라를 막았다.

    “한참 동안 말하지 못했으니 당신 마음이 아주 복잡하겠군?”

    루안이 물었다. 

    지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그녀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

    루안이 웃었다.

    “태자께서 아직 살아계셨다면 아마 당신과 같은 생각을 했을 거요.”

    지온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의안왕은 선대 태자 앞에서는 그저 귀여운 동생이었다. 비록 공부를 좋아하지 않고 좀 산만한 구석이 있었지만 태자는 활발한 성격을 가진 그를 깊이 신뢰했다. 

    예전의 금벽 역시 성품이 온순하고 충심이 깊어 사람들은 그녀를 착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당신이 바다에 빠졌을 때, 정말 그녀가 밀었소?”

    “아니에요.”

    지온이 말했다.

    “태후마마께서 일부러 폐하의 의심을 부추기고 그 아이의 모든 행동을 의심하게끔 했어요. 금벽이가 나를 구하러 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걸 탓할 수는 없어요.”

    그날 밤은 정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이미 바다에 빠진 옥종화를, 금벽이 뛰어들어 구해내야 했단 말인가? 그건 너무 가혹한 요구였다.

    “그런데 금벽이가 무해해각의 폐허에 나타난 시점이 확실히 좀 이상하긴 해요.”

    루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가서 알아보겠소.”

    지온이 알겠다고 대답한 뒤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이 일을 부추긴 건 옥비의 속셈을 드러내기 위해서였어요. 그런데 태후와 신비가 더 모질게 굴 줄은 몰랐네요. 다시는 일어서지도 못하게 이런 덫을 놓을 줄이야.”

    지온은 오늘 오후의 일을 떠올렸다.

    * * *

    옥비가 장복궁을 나가는 것을 보고 지온은 즉시 약탕기를 화로에서 꺼내 한쪽에 치웠다.

    “지온 소저?”

    궁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을 걸었다.

    지온이 궁녀에게 사람을 부르라고 지시하려던 차에 신비가 사람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신비마마? 벌써 깨셨습니까?”

    “궁 안에 독사가 숨어 있는데, 본궁이 어떻게 잠을 잘 수 있겠나?”

    신비가 말을 마치고 그녀가 들고 있는 약탕기를 보았다.

    “벌써 손을 쓴 건가?”

    “…….”

    지온이 잠시 침묵했다가 대답했다.

    “약 냄새가 이상합니다.”

    신비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이 춘효에게 지시하였다.

    “가서 태후마마와 장 원판을 모셔오너라.”

    “예.”

    신비가 돌아서 나가다가 반쯤 갔을 때 고개를 돌리고 그녀를 불렀다.

    “자네도 약탕기를 들고 따라오게.”

    “……예.”

    신비가 요청한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했다. 장 원판이 약을 검사한 뒤 보고했다.

    “낙태약을 넣었는데, 들어간 양이 적지 않습니다. 만약 신비마마께서 드신다면 혈붕으로 돌아가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태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지독하구나. 한 번에 두 명의 목숨을 빼앗으려 하다니.”

    신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신첩이 태후마마께 이 일을 말씀드렸을 때는 그저 이대로 가다가는 폐하께서 자식을 얻을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옥비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습니다…….”

    태후가 차갑게 말했다.

    “대담하게 후궁 전체에 약도 썼는데, 더 못할 짓이 뭐가 있겠느냐?”

    신비가 지시를 청했다.

    “마마,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태후가 잠시 조용히 있다가 말했다.

    “황제는 지금 옥비에게 정신이 팔려있어 극약을 처방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구나. 춘효야, 가서 피 한 대야를 준비해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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