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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 (289)화 (289/385)
  • 289화. 증인이 있습니다

    옥비는 마음속으로 미칠 듯이 기뻤다. 그녀는 황제가 몹시 심란한 것을 보고 혼란을 틈타 소리를 질렀다.

    “폐하! 신비 언니가 너무 비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언니를 위해 반드시 복수를 해주십시오!”

    황제는 충격에 빠져 있다가 서서히 이성을 되찾았다.

    ‘그래, 신비는 살해당했어. 그냥 넘어갈 수 없지.’

    그는 무거운 눈빛으로 눈앞의 모든 사람을 훑어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누구냐? 도대체 누가 신비에게 약을 준 게야?”

    호은이 작은 소리로 알려주었다.

    “폐하, 좀 전에 약을 담은 병을 찾지 않았습니까.”

    ‘아, 그렇지.’

    황제가 손을 떨면서 작은 도자기병을 들었다.

    “지온 소저는?”

    호은이 대답하기도 전에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폐하, 신녀 여기 있습니다.”

    황제가 눈을 들어보니, 지온이 침전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웃지도, 그렇다고 크게 슬퍼하지도 않는 얼굴로 그저 조용히 인사를 했다. 황제는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생각해보니 지온은 그의 명을 받고 궁에 들어와 일하게 된 것이므로 신비에게 손을 댔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렇게 확실한 물증이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장복궁과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 해선 안 될 짓을 할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지 않은가? 

    그는 고민하던 차에 흘끗 옥비를 보았다.

    그녀는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입을 벌리고 소리 없이 몇 글자를 말했다.

    ‘뭐라고? 지금 하는 말이…… 대……대장공주?’

    황제는 마치 찬물을 머리에 끼얹은 듯 순식간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대장공주? 그래, 지온의 뒤에는 대장공주가 있지. 내가 황위에 앉은 후, 분개하여 조방궁으로 피신한 대장공주. 내 아버지와 형님을 기피하는 것도 모자라 떠나기 전에 제거하라고 지시한 대장공주 말이야.’

    비록 서로의 관계가 이미 좋아졌고, 심지어 최근에도 그에게 적지 않은 일들을 조언해주고 있긴 했지만, 황제는 아직 잊지 않고 있었다. 처음에 자신과 대장공주는 원수지간이라고 불러야 마땅한 사이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대장공주는 본인의 가문에서 황실의 혈맥이 끊기니, 강왕부의 자손도 끊어지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그리 생각해보니, 지온이 신비를 해치는 것이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구나! 내가 이 아이를 궁으로 들여보냈으니, 스스로 늑대를 집안으로 끌어들인 격이 아닌가?’

    황제의 손이 심하게 떨리고 지온을 바라보는 눈빛에도 의심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태후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소리쳤다.

    “황제!”

    황제가 깜짝 놀라 몸을 흠칫하고는 멍청한 얼굴로 태후를 바라보았다.

    태후는 그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자 화가 나서 주도권을 빼앗아 물었다.

    “지온 소저, 옥비가 네가 신비에게 약을 먹여 해를 끼쳤다고 의심하는데, 너는 뭐라고 해명할 테냐?”

    지온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옥비마마 어찌 그리 생각하십니까? 신비마마께 무슨 일이 생기면 신녀에게 좋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태후께서 신녀를 보내 신비마마를 돌보라 하셨고 신녀는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두려워 정말 모든 것을 다 조심했습니다. 태후마마, 솔직히 말씀드리면 신녀는 벌써부터 마마께 책망을 받을까 봐 두렵습니다.”

    지온은 여기까지 말하고 눈물을 닦는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태후는 지온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네가 한 일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저 몇 마디 묻는 것일 뿐이야.”

    옥비는 태후가 그녀의 편을 드는 것을 보고 마음이 급해져서 재빠르게 덧붙였다.

    “태후마마, 여기 물증이 있습니다. 지온 소저 말고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폐하! 신비 언니를 위해 책임지고 진상을 밝혀주셔야 합니다!”

    황제가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물었다.

    “지온 소저, 이 약병을 알고 있지?”

    호은이 도자기병을 받아 지온 앞에서 두 손으로 받쳐 들고 그녀가 자세히 볼 수 있게 했다.

    지온이 슥 보고는 말했다.

    “이 약병은 저희 조방궁에서 자주 쓰는 것입니다.”

    “좋다, 그럼 이 약병이 차 방에 나타난 것은 어떻게 해명하겠느냐?”

    지온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신녀도 모르겠습니다. 어, 어쩌면 약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현장에서 그냥 버려버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황제는 말이 없었다.

    이 해명은 너무 억지스러워서 의심이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태후가 잠시 생각을 한 뒤 입을 열었다.

    “조방궁의 능양주지가 향환을 자주 궁으로 보내지 않느냐? 간혹 직접 만든 알약을 바치기도 하고. 궁에 약병이 있는 게 이상할 일은 아니지.”

    “네! 맞습니다!”

    지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에 신녀가 약을 넣었다면 이렇게 중요한 증거물을 왜 남겨두었겠습니까?”

    “그걸 누가 아느냐? 네가 너무 긴장해서 흘렸는지도 모르지.”

    옥비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폐하, 제발 저 아이의 궤변을 듣지 마십시오. 신비 언니는 조용한 것을 좋아해서 오후 내내 궁에 아무도 드나들지 않았습니다. 그 차 방에도 궁녀 한두 명만 왔다 갔다 했을 뿐입니다. 오직 저 아이만이 어떤 구실을 붙여 사람을 다른 데로 보내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여기까지 말한 옥비가 차갑게 웃었다.

    “지온 소저, 본궁의 말이 맞는가?”

    ‘네가 또 어떻게 변명하는지 어디 한번 보자! 이 세상에서 어떤 죄가 가장 벗기 어려운지 아느냐? 바로 누명이다.’

    황제의 마음속에 대장공주를 꺼리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설사 증거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계속 허점이 있더라도 그는 믿을 것이 분명했다.

    옥비는 고개를 숙이고 남들이 보고 있는데도 입꼬리를 추켜올렸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지온의 목소리를 들었다.

    “맞습니다. 알고 보니 이 일은 옥비마마께서 벌인 짓이었군요.”

    옥비의 웃음이 입가에서 얼어붙었다. 그녀는 고개를 불쑥 쳐들고 지온을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냐? 도리어 본궁을 모함하려는 게야?”

    지온이 웃으며 시선을 아래로 흘끗 내리고 물었다.

    “옥비마마, 오후에 차고 오셨던 진주 팔찌는 어찌하셨습니까?”

    옥비가 손목을 쥐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끊어진 거 아닙니까? 그리고 녹하에게 한참 동안 주워달라고 하셨지요.”

    옥비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네. 하지만 본궁은 계속 옆에 서 있었고 차 방에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어.”

    “정말입니까?”

    “당연하지.”

    옥비는 이 말에 개의치 않고 말했다.

    “시치미 떼며 다른 사람한테 떠넘기려 하지 마라. 여기 물증이 있으니 혐의가 가장 큰 사람은 바로 자네야.”

    지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옥비마마께서는 장복궁에서 외부인인 제가 가장 쉽게 약을 넣을 수 있었을 거라고 말씀하셨지요. 하지만 마마께도 같은 혐의가 있지 않습니까? 차 방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신녀가 녹하에게 물어보았더니 진주를 주울 때 한동안 계단 아래로 내려갔었다고 하더군요. 그때는 차 방에 아무도 없었고 마마께서 들어가셨더라도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을 겁니다.”

    옥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자네의 일방적인 추측일 뿐이지. 본궁은 무슨 낙태약 같은 것을 아예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반대로 그 약병은 자네가 약을 넣었다는 증거가 되지.”

    그녀가 고개를 돌려 황제를 향해 엎드렸다.

    “폐하, 폐하께서는 신첩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계시지요. 만일 신첩이 손을 쓴 것이 맞다면 그 약이 어디서 났겠습니까? 폐하께서 영수궁에 사람을 보내 수색하고 물어보셔도 됩니다. 조금이라도 혐의가 있다면 신첩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지온이 그 말을 듣고 웃기 시작했다.

    “옥비마마, 마마께서 일을 깨끗하게 처리해서 오점이 하나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옥비는 고개를 들어 정면으로 지온의 눈을 마주 보았다.

    지온이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마마께서 착각하셨습니다. 신녀의 손에 증인이 한 명 있습니다.”

    너무나 확고한 그녀의 태도에 옥비가 갑자기 번쩍 눈을 크게 떴다. 왠지 일이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온은 이미 몸을 돌려 황제에게 지시를 청하고 있었다.

    “폐하, 루 통정이 궁문 밖에서 기다리고 계시니 입궁을 허락해 주십시오.”

    황제는 그녀가 루안의 말을 듣는 사람임을 깨닫고 나서야 옥비 때문에 어지러워졌던 마음이 다시 회복되었다.

    ‘그렇지, 루안도 있었구나. 내 설령 대장공주를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루안은 믿을 수 있지.’

    “호은아, 사진궁으로 루안을 마중 나가거라.”

    “예.”

    기다리는 동안 침전 안에서 계속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황제는 신비를 떠올렸다. 그녀는 지난 3년 동안 자신을 모셨다. 비록 총애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정은 있었다. 그는 안으로 들어가서 신비를 한 번 보려 했지만, 태후에 의해 가로막혔다.

    “어머니?”

    태후가 말했다.

    “안이 온통 피투성이일 테니 좀 치우고 나서 들어가시게.”

    황제는 장 원판의 몸에 묻은 피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호은이 돌아왔다.

    “폐하, 마마, 루 통정께서 도착했습니다.”

    “어서 들라 하라.”

    루안이 문으로 들어섰다.

    그는 모피 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부숭부숭한 옷깃의 털 때문에 옥처럼 깨끗하고 빛나는 그의 얼굴이 돋보였다. 아직 털지 못한 어깨 위의 눈송이가 약간 고독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모피를 벗어 내시에게 건네준 뒤 몸을 숙여 인사했다.

    “신 루안, 폐하를 뵙고 태후마마, 황후마마를 뵙습니다.”

    황제는 마치 한 가닥의 생명줄이라도 발견한 듯 급하게 말했다.

    “일어나게.”

    그를 본 태후의 표정도 누그러졌다. 오직 옥비만이 아까의 그 통제력을 상실한 것 같은 느낌에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녀는 루안이 두려웠다.

    일찍이 무애해각에는 천하의 영재가 모여 있었다. 옥비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루안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와 자신을 견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이 일이, 루 통정한테 들통이 날까?’

    “루안, 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가?”

    루안이 고개를 숙이고 보고했다. 

    “신, 이미 호 공공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황제가 말했다.

    “지온 소저가 증인이 있다는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루안은 지온과 눈을 마주친 뒤 시선을 옥비 쪽으로 내리깔며 말했다.

    “예, 신이 증인을 데리고 왔습니다. 바로 밖에 있습니다.”

    옥비의 눈이 커지고 황제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데려오라.”

    뒤이어 낯익은 그림자 하나가 내시에게 압송되어 위축된 모습으로 들어왔다.

    옥비가 상대를 알아본 순간, 위잉대는 소리와 함께 옥비는 잠시 인지력을 상실했다.

    ‘그럴 리가? 능양진인이 얼마나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인데, 설마 말할 수 있겠어?’

    황후가 놀라 물었다.

    “능양주지?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설마…… 옥비가 가지고 있던 약을 자네가 들여보냈단 말인가?”

    능양진인이 무릎을 쿵, 꿇으며 소리쳤다.

    “폐하, 마마! 빈도는 협박당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옥비마마께서 빈도에게 강요하여 저지른 일입니다. 옥비마마가 빈도에게 약을 먹였다고 거짓말했습니다. 빈도는 정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폐하와 마마께서 명명백백하게 조사해주십시오!”

    황제는 너무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다 한참이 지나서야 물었다.

    “그러니까, 이 약을 정말 옥비가 넣은 것이고 병에 조방궁 표시가 있는 이유는 능양주지 자네 때문이라고?”

    능양진인은 고개를 숙인 채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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