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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 (276)화 (276/385)
  • 276화. 가서 조사해보게

    지온이 소식을 듣고 놀라서 얼어붙었다. 

    “뭐라고요? 신비가 회임했다고요?”

    “예.”

    과자점에 있는 그녀의 앞에는 어린 내시 소희가 앉아 있었다. 

    “류 마마께서 지금 혼란스러워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지온 역시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준 약방문은 정말 보통의 보양약일 뿐이었다! 황제가 3년간 자식이 없는 것은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을 터인데 어떻게 자신의 약방문 하나로 바로 고칠 수 있겠는가? 

    ‘도대체 중간에서 무슨 문제가 생긴 거지?’

    그녀가 정신을 가다듬고 물었다. 

    “폐하께서 요즘 류 첩여에게 자주 가시나요?” 

    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께서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초하루와 보름에는 화춘궁에서 주무십니다. 한 달에 두 번은 신비마마께 가시고 가끔은 다른 마마님께도 들르십니다. 남은 날들은 기본적으로 류 마마와 옥비마마에게 균등하게 나누고 있습니다.”

    지온은 할 말이 없었다. 

    시침이 그렇게 빈번한 류명주와 옥비도 회임하지 못했는데 하필이면 신비가 회임했단 말인가?

    하물며 이렇게 중요한 때에 말이다. 

    ‘궁에 들어가서 상황을 살펴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 * *

    그 시각, 누군가의 마음은 그녀들보다 훨씬 더 혼란스러웠다. 

    감당궁에서 돌아온 옥비는 창문 밑에 멍하니 앉아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마마.”

    금벽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옥비가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폐하는?”

    금벽은 난처했다. 폐하는 지금 당연히 장복궁에 있었다. 신비가 회임하였다는데 폐하가 곁에서 보살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옥비도 스스로 깨닫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상을 차리거라.”

    금벽이 궁녀들에게 상을 차리라고 분부하고 나서 옥비의 기분이 여전히 가라앉은 것을 보고는 작은 소리로 위로하며 말했다. 

    “마마,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폐하께서 그것이 마마의 공로임을 아시니 분명히 더욱 마마를 아끼실 것입니다. 또 마마를 아주 소중히 여기시니 제 생각에 마마께도 곧 소식이 있으실 겁니다.” 

    옥비는 이런 말이 듣기 불편하여 자제하지 못하고 말투가 거칠어졌다. 

    “됐다, 알았다.”

    금벽은 어리둥절했다. 그녀가 3년 동안 마마를 곁에서 모셨지만 이렇게 욱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금벽은 지난번 총애를 잃었던 일 때문에 마마의 마음에 응어리가 생긴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황제는 역시 오늘 오지 않았다. 

    옥비는 저녁밥을 먹었지만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었다. 그녀가 밥을 먹고 나서 한참 앉아 있다가 잠자리에 들 때까지 황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그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다. 

    황제는 태의로부터 신비가 회임했다는 기쁜 소식을 들은 뒤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현비가 회임하기 전까지 황제는 아버지가 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때 그는 옥종화에 대한 감정에 몰두해 다른 것을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비의 갑작스러운 회임은 그의 남자로서의 번식 본능을 크게 자극했다. 

    그는 비로소 환상에서 깨어나 피와 살로 이루어진 현실의 희로애락에 적응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비의 임신에 대한 쓰라린 진실은 그의 기쁨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다.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황제의 마음은 극심한 공허감에 빠졌다.

    옥비는 그가 지금 아이를 몹시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황제가 모든 비빈의 처소에 행차하는 횟수가 늘어난 것이었다. 만약 신비가 정말로 이 아이를 낳는다면, 그것이 공주일지라도 황제의 마음속에서 그녀의 지위가 크게 달라질 것이 분명했다. 

    옥비는 진정한 옥종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옥비에 대한 황제의 감정이 옥비가 낳을 아이에게까지 이어지기에는 부족했다. 첫 번째가 되어야만 영원히 특별해질 수 있었다.

    옥비가 갑자기 일어나 앉아 결연한 눈빛을 하더니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일은 절대로 일어나선 안 돼!”

    * * *

    신비의 회임 소식은 전혀 발표되지 않았다. 태후가 황제를 불렀기 때문이었다.

    “듣자니 신비가 회임하였다더군요?”

    황제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태후가 느릿느릿 말했다.

    “아이가 놀라 배 속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면 안 되니, 이번에는 좀 늦게 발표하는 것이 좋겠어요.”

    황제가 잠시 멈추었다가 고개를 들었다.

    태후가 껄끄러운 화제를 피하지 않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지난번 현비의 일은 힘을 아주 많이 들여서 겨우 덮었어요. 이번에는 절대로 실수하면 안 됩니다.”

    현비의 외도 사실을 다시 상기시키는 태후의 말에 황제는 마음이 좀 불편했지만 그래도 고개는 끄덕였다. 

    “어머니께서는 정말 빈틈이 없으십니다.”

    태후는 기쁘고 안심한 것 같은 얼굴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황상에게는 지금 황자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절대 조급해하지는 마세요. 천자인 황제의 주변을 온 세상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어요. 황제의 마음이 어지러우면 그때를 틈타 빈틈을 노릴 거에요.”

    황제는 이 말을 듣고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마음은 전혀 심란하지 않았다. 그리고 황자를 회임한 일이 어찌 남이 빈틈을 노릴만한 일이란 말인가? 현비 같은 사람이 또 있을 리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태후가 하는 말이니 그는 그저 듣고 있는 편이 나았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어머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태후는 이런 황제를 보고 그가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에 아주 실망한 태후의 말투도 시들해졌다.

    “바쁠 테니 가보세요.”

    황제는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 황급히 인사를 드리고 청녕궁을 떠났다.

    황제는 전조(*前朝: 궁전의 바깥채 거실)에 도착했을 때 장주를 올리러 온 루안을 보고 입을 열었다.

    “루안, 짐을 위해 알아봐 줄 일이 있다.”

    루안이 막 대답을 하려고 입을 떼는데 황제가 루안을 끌어당기더니 귓속말을 했다.

    “가서 신비의 태아에 문제가 있는지 좀 조사해보게.”

    루안이 얼빠진 모양으로 물었다. 

    “신비마마께서 회임하셨습니까?”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안은 난처했다. 

    “폐하, 폐하께서 신비마마와 궁 밖의 연관성을 조사하신다면 신이 조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것이라면 신이 후궁전에 들어가기 힘들기에 조사하기 어렵습니다.”

    황제가 생각해도 그랬다. 

    신비가 현비처럼 바람을 피웠을 리는 없지 않겠는가? 그런 방면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면 루안이 조사해봤자 헛수고일 뿐이었다. 

    원칙대로라면, 이 일은 내시가 처리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즉위한 이후 몇 년 동안 후궁에 신경을 쓴 적이 없었고, 그의 곁에는 호은 등 몇 명의 심복만 있어서 호은이 직접 움직이는 것은 다른 사람의 눈길을 지나치게 끌 터였다. 

    황제는 금세 다른 방법을 생각해냈다. 

    “자네는 후궁에 들어가기 어렵지만,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루안은 알아듣지 못했다. 

    황제가 말했다. 

    “자네 약혼녀 지온 소저 말이네. 능운진인의 제자가 아닌가? 태후께서 요즈음 마음이 불편한 일들이 있으시니 짐이 모후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자 지온 소저를 초청하는 것이지, 마침 구실이 딱 좋지 않은가?” 

    루안이 황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황제는 자기가 좋은 방법을 생각해낸 것 같아 손뼉을 치며 말했다. 

    “짐도 그녀가 아주 영특한 것을 보아서 알고 있지. 자네가 주의해야 할 사항을 알려주고, 그녀가 가서 알아보면 한 삼 일에서 오 일 정도면 틀림없이 단서를 잡을 수 있지 않겠나?”

    루안이 심각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폐하, 이 일은 대장공주마마께서 동의해주셔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이 가서 여쭤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고모님께서는 반드시 동의하실 거네.”

    황제가 당부했다. 

    “이유는 일단 말하지 말게, 태후 쪽에도 알리지 말고.”

    자신의 비에게 문제가 있다고 의심하면서 이렇게 스스로 신비를 바람난 아내로 만들려는 황제의 행동에 루안은 정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루안이 대답했다. 

    “신은 지온 한 사람에게만 알려줄 것입니다.”

    황제는 매우 만족했다. 

    * * *

    관아로 돌아간 뒤 루안은 즉시 조방궁으로 갔다. 

    지온은 또다시 깜짝 놀랐다.

    ‘방금까지 궁에 들어가서 상황을 좀 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기회가 이렇게 제 발로 찾아오다니. 정말 하늘에서 나를 보살펴 주고 있는 거 아닌가?’

    루안은 조금 우스웠다. 

    “폐하의 마음에 드리운 그림자가 깊은 것 같소! 또 신비의 태아에 문제가 있는지 의심을 하시는군.”

    지온이 말했다. 

    “그런 말 말아요. 나도 그 아이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의심했어요. 지금 이 시기는 너무 공교로우니까요.”

    “그럼 마침 당신이 알아보면 되겠구려.”

    그는 생각해보더니 물었다. 

    “대장공주마마께 말씀드려 같이 가는 게 어떻소? 그럼 보호도 해주실 텐데.” 

    지온이 웃으며 말했다.

    “됐어요. 매번 사고를 치고 어머니를 곤란하게 해서 이미 너무 죄송한걸요. 이런 작은 일은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요.”

    * * *

    대장공주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예리했다.

    지온이 그 일에 대해 말하자 그녀가 물었다.

    “궁에 무슨 일이 생긴 게냐?”

    “어…….”

    지온이 핑곗거리를 찾으려 했지만 대장공주는 단서를 잡자 바로 낚아챘다.

    “본궁을 속일 생각 마라! 궁중의 일은 내가 너보다 훨씬 전문가야. 우리의 폐하께서 아무 이유도 없이 태후의 마음까지 염려하신다고? 난 못 믿는다.”

    지온은 어찌할 방법이 없어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신비가 회임했어요. 폐하께서 아이가 문제가 있다고 의심하셔서 저보고 궁에 들어가 알아보라고 하세요.”

    “하?”

    대장공주가 깜짝 놀랐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더니, 현비의 그 일 때문에 신비마저 의심한다는 것이냐?”

    어차피 사실대로 말해 버렸으니 지온은 내친김에 전부 털어놓았다. 

    “폐하께서만 의심하시는 것이 아니라, 저도 의심하고 있었어요…….”

    그녀의 말을 들은 대장공주가 중얼거렸다.

    “시기가 참 공교롭긴 하구나. 이제 한 달 정도 된 거지? 어찌 폐하께서 약방문을 바꾸자마자 신비가 바로 회임을 한 게지? 해독도 이렇게 빠르지는 않은데 말이야.”

    “그러게 말이에요. 게다가 그 약방문은 정말 일반적인 보양용 약방문인데 어떻게 병을 고치겠어요.”

    대장공주가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지온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 

    “첫 번째는, 시기가 정말 공교롭지만 너의 처방과는 상관없이 신비가 지금 임신을 하게 된 게다. 폐하는 자식을 얻기가 어려울 뿐이지 낳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니까.”

    지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좀 이상하긴 했지만 때로는 우연한 일도 발생하니까 말이다. 

    대장공주가 손가락 두 개를 들어 올렸다.

    “두 번째는, 이것이 함정이라는 거지.”

    지온은 멍해졌다.

    “함정이요? 누가 누구에게요? 무슨 의도로요?”

    “글쎄다.”

    대장공주가 말했다. 

    “이런 일은 하찮은 비빈 한 명이 감히 쓸 수 있는 속임수가 아니야. 만약 거짓말이라면, 신비한테 분명히 공범이 있을 게다. 그 공범은 황제, 황후, 태후 중 한 사람일 것이고. 그러니 너는 태후 쪽에 착 달라붙어서 잘 보여야 해. 태후가 공범이라면, 너를 난처하게 하지는 않을 게다. 만약에 황제나 황후라면, 태후께서 너를 보호해주시면 안전할 거야.”

    지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장공주가 그녀의 머리를 쿡쿡 찔렀다. 

    “웬 공손한 척이야? 본궁이 너를 보호하지 않으면 또 누굴 보호하겠느냐?”

    지온은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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