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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 (275)화 (275/385)
  • 275화. 태의를 부르다

    며칠 지나지 않아, 궁 안의 미인들은 잇달아 새로운 향을 쓰기 시작했다. 

    류명주 또한 사용했는데 옥비는 이에 아주 만족했다. 

    황후와 신비에게서만 그 향을 맡을 수 없었다. 

    옥비는 매우 유감스러웠지만 두 사람의 신분이 너무 높은 탓에 향환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이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완벽하게 할 수 없다면 모험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옥비는 자신의 시침(侍寝) 빈도가 다른 비빈들과 비교해 적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황제가 다시 영수궁에 왔을 때 처방전 한 장을 건넸다. 

    “폐하, 신첩이 근래에 낡은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이 처방전을 발견했습니다.”

    황제가 건네받아 눈으로 훑어보고는 물었다.

    “어디에 쓰는 것인가?”

    “보신용입니다.”

    옥비는 쑥스러운 듯한 눈길로 그를 보았다. 

    황제는 그녀의 눈빛을 보고 깨달았다. 

    “아…….”

    그는 조금 싫은 티를 내며 말했다.

    “항상 이런 것들을 먹어서 짐은 이제 먹고 싶지 않네.”

    황제는 젊은데도 아이가 없어 이미 큰 문제였기 때문에 태의가 처방한 약을 계속 먹고 있었다. 

    옥비가 그의 팔뚝을 잡으며 애교를 부렸다. 

    “폐하, 이것은 제 할아버님의 처방전입니다. 한 번만 드셔보시지요?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녀는 또 목소리를 낮추고 얼버무리듯 말했다.

    “폐하께서 이러시니 신첩이 정말 걱정이 됩니다. 폐하께서는 후궁들에게서 본 자식이 없으시지만, 폐하께는 자식이 많은 형제가 계시지요. 설마 선황의 일이 또 한 번 재연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이 말이 황제의 약점을 찔렀고 그는 한숨을 쉬며 호은을 불렀다. 

    “태의원에 가져가서 문제가 없으면 내일 이 처방으로 바꾸라고 해라.”

    “예.”

    호은이 대답하고 물러갔다. 

    황제는 눈앞에 있는 옥비를 보며 말했다. 

    “비는 지금껏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는데 왜 갑자기……?”

    옥비가 고개를 숙이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예전에는 신첩이 철이 없어, 폐하께서 늘 신첩 곁에 있어 주시기만을 바랐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폐하의 고충은 생각도 하지 않고 너무 이기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후궁이 이렇게 오래 한산하니 어서 아이를 낳으셔야지요. 누구에게서 낳으시든 폐하께서 아버지가 되시면 좋겠습니다.”

    황제는 크게 감동했다. 

    “아금…….”

    * * *

    며칠 후, 대(戴)씨 가문의 부인이 입궁하여 신비를 문안했다. 

    궁녀들을 물린 후, 부인은 문제의 향환 상자를 꺼냈다. 

    “네 아버지께서 사람을 찾아가 알아보았는데, 향환에는 독이 없다더구나.”

    신비가 웃었다.

    “진짜로 독을 넣었으면 제가 오히려 감탄할 일이지요.”

    그리고 신비는 또다시 물었다. 

    “어머니, 더 하실 말씀이 뭔가 있으신 것 같은데요?”

    대(戴) 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필요 없는 몇 가지 재료가 향에 섞여 있는데 아무래도 향환에는 다른 용도가 있는 것 같다더구나.”

    “무슨 용도요?”

    “부인병을 관리하는 용도 말이다.”

    잠시 멍해졌던 신비가 물었다.

    “그럼 정말 몸에 좋은 약이라는 건가요?”

    “의원의 말로는 그렇지.”

    신비는 놀랐다. 

    “설마 그녀가 정말 그냥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아니겠죠?”

    대 부인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 부인병을 관리하는 기간에는 임신이 쉽지 않다더구나.”

    신비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야 맞지요! 잠깐만요!”

    그녀가 펄쩍 뛰었다. 

    “그러니까 그녀가 후궁의 모든 여인에게 피임약을 주었다고요? 정말 미쳤나 봐요?”

    대 부인이 급하게 신비의 몸을 잡고 쉬쉬하며 말했다. 

    “조용히 해라! 다른 사람들 다 들으라는 것이냐? 입궁한 지 이리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이리 경솔하게 구는 게야?”

    신비가 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자신의 입을 막고 좌우를 둘러보았다. 신비는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앉아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어머니, 이 일은 다른 사람들 모르게 하셨지요?”

    “당연하지.”

    대 부인이 물었다. 

    “이것을 누가 보낸 것이냐? 앞으로 그 사람을 아주 조심해야겠구나.”

    “누구겠어요? 영수궁의 그분이죠!”

    신비는 논할 가치도 없다는 듯 말했다. 

    “그동안 계속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짓을 하고 있었네요. 하하, 옥씨 집안사람이 이런 일을 하다니 제 조상의 얼굴에 먹칠을 했어요!”

    “너 혹시 이 일을 들출 생각은 아니지?”

    신비의 얼굴이 화난 얼굴로 변했다. 

    “저도 남의 일에 참견하고 싶지는 않지만, 저한테 해를 끼치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

    ‘내가 총애를 다투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을 마음대로 음해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 

    대 부인이 얼굴에 난처한 기색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그건 좀 힘들 것 같구나.”

    “어째서요?”

    신비는 제 어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저에게만 보낸 게 아니라 황후마마나 류 첩여, 몇몇 총애 받는 미인들한테까지 빠짐없이 보냈어요. 증거가 도처에 있는데 뭐가 어렵다는 건가요?”

    대 부인이 한숨을 쉬었다. 

    “이것이 몸을 보양하는 처방이기 때문이야! 평범한 의원은 이것을 모를 수도 있어. 몇 가지 재료는 안식국에서 온 것이고 너희 아버지도 의원을 몇 명이나 찾아다닌 끝에야 겨우 실마리를 찾아냈다. 네가 이 일을 폭로한다고 해도 옥비는 변명거리를 쉽게 찾을 거야.”

    신비가 진정하고 입술을 오므리더니 이어서 말했다.

    “폐하께서는 우리보다 옥비를 더 믿으시겠죠.”

    “바로 그래서야.”

    딸이 순순히 충고를 받아들이자 대 부인이 딸을 위로하며 말했다.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강하게 주장할 테지. 그럼 폐하께서 옥비를 용서할 것이고 그때가 되면 손해를 보는 것은 네가 될 게야.” 

    신비는 분노했다.

    “설마 본궁이 헛되이 손해만 보겠습니까?”

    대 부인이 다독였다.

    “인내심을 가지려무나. 궁에서의 생활을 어찌 하루아침에 길고 짧다 논할 수 있겠니? 옥비가 오래 날뛰지는 못할 게다. 이미 한번 총애를 잃은 적도 있지 않으냐? 그런 걸 보면, 폐하께서도 끝없이 옥비를 용인하지는 않으실 것 같구나.”

    * * *

    대 부인이 돌아가고 나서 신비는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수행 궁녀를 데리고 산책을 하러 나갔다. 

    폐하는 기껏해야 한 달에 한두 번 장복궁에 오시는데, 이 정도의 은총만으로도 자신에게 향환을 보내는 것을 잊지 않다니. 그야말로 황제보다 자신을 더 생각해주는 것이 옥비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은가.

    신비는 화를 내다가 또 홧김에 웃음이 나왔다.

    자신을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해준 사람은 처음이었는데, 결론적으로는 이렇게 더러운 이유 때문이었다. 

    “신비마마?” 

    그때, 신비의 귓가에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비는 고개를 들고서야 자신이 무심결에 어화원까지 걸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비를 부른 사람은 태후를 수행하는 늙은 궁녀였는데, 그녀는 신비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신비가 다시 보니, 태후가 정자에 앉아 있었다. 

    태후는 줄곧 처소에만 틀어박혀 밖에 잘 나오지 않았는데, 문안 인사조차도 받지 않아서 간혹 산책 나왔을 때 우연히 만나는 것이 다였다. 

    신비가 황급히 앞으로 나가 예를 올렸다.

    “신첩, 태후마마를 뵙습니다.”

    태후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일어나거라. 신비, 무슨 일인 게야? 이리 급하게 다 걷고.”

    급하게 걸었던가? 신비가 멍하게 태후의 눈빛을 따라 고개를 숙여보니 자신의 신발에 흙먼지가 묻어 있었다. 

    궁 안의 길은 아주 편평하게 닦여있는 데다가 청소도 자주 하는데 대체 자신이 얼마나 급하게 걸었길래 이렇게 흙먼지가 묻었단 말인가?

    “제가 생각을 하느라 저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져 태후마마께 웃음을 드렸습니다.”

    태후는 신비에 대한 인상이 나쁘지 않아 웃으며 말했다.

    “별일 없으면 나랑 여기 잠깐 앉았다가 가거라.”

    신비도 그럴 마음이 들어 대답했다.

    “감히 명을 거역하겠습니까!” 

    * * *

    드디어 감당궁의 수리가 끝나 류명주의 새 궁을 선보이는 날이 되었다.

    황제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심리적인 요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요즘 유난히 정력이 왕성하다고 느꼈다. 

    거기에 더해 후궁이 화목하고 비빈들의 다툼도 적었다. 

    이것은 모두 옥비 덕분이었다. 그녀가 마음을 바꾼 이후로, 그녀가 여러 비빈과 왕래하기 시작하면서 다툼들이 줄어들었다.

    황제는 더욱더 자신이 옳았다고 느꼈다.

    평생 꿈만 꾸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예전의 그런 관계는 자신을 괴롭히고 옥비를 해치는 일이었다.

    지금처럼 하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제왕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폐하,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호은이 들어와서 보고했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그는 가마에 올라 골목길을 가로질러 감당궁 앞에 멈추었다. 

    이때 감당궁은 이미 떠들썩해져서 각 궁의 비빈들이 모두 와서 축하하고 있었다. 

    황제를 보자 그녀들은 기뻐하며 나와서 맞이했다. 

    “폐하를 뵙습니다.”

    황제가 먼저 황후를 부축하여 일으킨 후 류명주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체면이 좀 서겠구나, 사람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봐라.”

    류명주가 웃으며 말했다.

    “다 자매님들께서 제 체면을 생각해주신 덕입니다.”

    사람들이 앉자 황제가 물었다. 

    “새로운 궁은 어떠하냐? 살만은 한가?”

    류명주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폐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여기는 백옥헌보다 훨씬 넓은 데다가 담도 있어 종일 따뜻합니다. 방에서 숯도 피울 필요가 없습니다.”

    황제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좋으면 되었다. 호은아.”

    “예.”

    호은이 손짓을 해 내시들에게 물건을 가져오게 했다. 

    몇 개의 큰 상자가 가운데에 놓이자 황제가 말했다. 

    “짐의 생각에 네가 막 이사한지라 틀림없이 집을 꾸밀 장식품이 부족할 것 같더구나. 그래서 호은한테 아무거나 몇 개 가져와 채워보라고 했다.”

    상자 안의 물건을 본 비빈들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류명주가 황제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이것을 여기에 놓네, 저기에 놓네 하며 비빈들과 재잘거렸다.

    황후만이 웃으며 쳐다볼 뿐, 그 틈에 끼어들지 않았다. 

    아니, 이 틈바구니에 끼어들지 않는 한 명이 더 있었다. 

    황후가 의아한 눈빛으로 왼쪽을 쳐다보더니 물었다. 

    “신비, 오기 전에 굶었는가?”

    문에 들어서고 난 이후로 신비의 입은 먹느라 멈출 줄을 몰랐다. 

    신비는 과자 한 조각을 삼키고 겸연쩍게 웃었다. 

    “마마, 양해해주십시오. 신첩, 요즘 계속 배가 고프고 졸려서 꼭 겨울이 온 것 같습니다. 겨울잠이라도 자야 하나 봅니다.”

    황후가 그녀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헛소리인가? 자네가 곰이라도 되는가?”

    하지만 이 말을 들은 옥비는 갑자기 이야기를 멈추고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말입니다!”

    신비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첩이 자주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늦잠을 자서 몇 번은 하마터면 마마께 문안도 못 드릴 뻔했습니다.”

    황후가 막 대답을 하려는 차에, 신비가 갑자기 입을 가리고 큰소리로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이 모습에 깜짝 놀라, 황제와 비빈들이 전부 그녀를 쳐다보았다.

    신비는 구역질이 멈추자 멋쩍게 웃었다. 

    “다들 놀라셨습니까, 괜찮습니다. 너무 많이 먹어 속이 좀 안 좋아서…….”

    옥비의 안색이 점점 더 하얗게 질렸다. 

    황후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잠에서 덜 깬 듯한 말투로 물었다.

    “폐하, 태의를 불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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