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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 (269)화 (269/385)

269화. 조방궁의 비방(秘方)

과자 가게에 도착해서 지온은 주인과 몇 마디 나누고는 위층에 올라가 누군가를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 서아는 즐겁게 과자를 골랐다.

‘이 집은 소라 과자가 제일 맛있어!’

“목마르다! 옆집에 가서 음료수 두 개만 사 올래?” 

야우가 파리를 쫓듯이 손을 휘저으며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

“나 지금 생각하는 중이야, 바쁘다고!”

이에 서아가 흥 하고 싫은 티를 내면서 가버렸다.

‘정말 철이 없어, 한등보다 훨씬 못하네.’

* * *

지온은 가게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고 금방 나왔다.

그리고서 원 재상부로 가서 원씨 집안의 며느리 기문혜에게 문안인사를 올렸다.

기문혜의 배가 매우 커진 것을 보니 다음 달이면 출산할 것 같았다.

그녀는 지온이 오는 것을 보고는 빙그레 웃으며 지온을 정원으로 데리고 갔다.

“태의가 말하길 아이가 들어앉은 모양이 좋아서 지금 많이 움직여두면 낳기 편할 거라더군요.”

지온이 그녀에게 물었다.

“부인께서는 괜찮으시지요?”

기문혜는 질문에 담긴 속뜻을 알아채고는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저희 시어머니께서는 아주 좋으신 분이에요, 매일 몇 번이나 제게 인사하러 오신답니다.”

그렇게 말하던 그녀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는 목소리를 낮추며 재빨리 말했다. 

“실은 너무 간섭이 심해요! 조만간 시아버지께서 한번 말씀하시겠죠.”

지온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과자 한 상자를 건네주었다. 

“방금 길에서 샀어요. 뭘 드려야 좋을지 몰랐지만, 빈손으로 오는 것보다는 낫지 싶어서 산 거예요.”

기문혜는 웃으며 정자에 앉아 우유떡을 먹었다.

“아직 약혼 축하를 못 했네요! 난 지온 소저가 유씨 집안이랑 다시 혼인을 맺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 루 대인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어요.”

지온의 표정은 평온했다.

“한번 파혼한 이상 다시 혼인을 맺을 수는 없지요.”

기문혜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그렇지만 사람이 다르잖아요! 우리 부군이 그러는데 유씨 가문의 큰 사촌이 소저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다던데요.”

기문혜는 말을 끝내고는 자신의 입을 찰싹 때렸다.

“어머, 내가 이미 약혼한 사람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괜찮아요. 언니의 마음은 이해해요.”

지온은 우유떡을 집어 천천히 먹으며 말했다. 

“유씨 집안이 혼인을 무른 일은, 저도 이해해요. 유 대부인이 아들을 위해서 파혼이라는 구설도 감수하신 거겠죠. 그 일은 유씨 집안이 도리에 맞게 처리한 거예요. 제가 오히려 도리에 맞지 않았죠.”

기문혜는 어리둥절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지온이 웃으며 손에 묻은 떡가루를 탁탁 털고 일어났다. 

“우리가 안 어울린다는 뜻이에요. 저는 먼저 가볼게요. 날씨가 추우니 언니는 들어가세요.”

유 대부인의 아들을 위하는 마음은 진심이었으나, 지온은 예사롭지 않은 비밀을 가지고 있어 결코 좋은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 * *

날씨가 추워서 물이 빨리 식었다.

침전에서 인기척이 들려오자 금벽이 황급히 지시했다.

“빨리 물을 바꿔와.”

궁녀가 대답하고 물을 가지러 갔다.

침전에서 황제가 일어난 기색이 느껴지자 호은이 시중을 들러 들어갔다. 

잠시 후, 침전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금, 내 푸른색 허리띠 어디 있소?”

금벽은 하마터면 대답할 뻔했는데 그 말에 대답한 것은 그녀가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폐하와 마마의 사이가 다시 좋아지고 나서 호칭이 바뀌었다. 

황제는 더는 마마를 종화라고 부르지 않고 아금이라고 불렀다.

금벽이 마마에게 물으니 그녀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금은 마마의 어릴 적 이름으로, 일전에 폐하께 물어보니 그게 듣기 좋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금벽은 주인과 이름이 같은 것이 왠지 불경스럽게 느껴져 자신의 이름을 바꿔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마마는 그저 이름일 뿐인데 어떻게 부르든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다고 말했다.

더구나 금벽이라는 이름이 친근해서 좋다고 하는 것이었다!

금벽은 그녀가 친근하다고 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지만, 마마가 자신과 비슷한 이름을 쓸 수 있게 해준 것은 은총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금벽은 그저 황송할 따름이었다. 

이때, 마마가 요즘 드시는 약차를 손에 든 추아가 급하게 다가왔다. 금벽이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 꾸짖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너 요즘 너무 해이해졌어.”

추아가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죄송해요, 언니. 다음부턴 안 그럴게요.”

“알면 됐어.”

금벽은 추아를 한번 흘겨보고는 약차를 받아 침전으로 들어갔다. 

* * *

황제는 이미 옷을 다 차려입은 상태였고 옥비가 마지막으로 노리개를 달아주는 중이었다.

“자, 짐은 오전 정무를 보러 먼저 가겠소.”

옥비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아직 아침을 안 드셨습니다!”

황제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미 늦었소. 호은아, 만두 두 개만 챙겨오거라. 가는 길에 일단 요기하고 밥은 아침 정무 끝나면 챙겨 먹으면 되오.” 

옥비가 웃으며 말했다. 

“폐하는 어쩜 그렇게 예전하고 똑같으십니까? 폐하께서는 일전에 항상 아침도 못 먹고 급하게 수업을 들으러 가시고 또 이것저것 자주 잃어버리셨지요. 교재를 안 가져오시지 않으면 숙제를 안 가져오시고요. 일 각(*15분)만 일찍 일어나면 여유롭게 아침을 드시고 가실 수 있으시지 않습니까?”

“나는 그냥 일 각(*15분)이라도 더 자고 싶소! 아침의 일 각(*15분)은 저녁의 반 시진(*1시간)보다 더 귀하다오.”

황제가 웃으며 그녀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럼 짐은 먼저 가오. 비는 가서 다시 눈을 붙이시구려.”

옥비가 몸을 굽혀 인사했다.

“다녀오시지요.”

황제의 가마가 떠나자 금벽은 약차를 옥비에게 건네주었다.

“마마.”

옥비가 웃음을 거두더니 약차를 들어 한 번에 다 마셨다. 그녀가 앉으니 곧 궁녀가 와서 옥비의 소세 시중을 들었다. 

그녀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금벽에게 물었다. 

“본궁의 안색이 요즘 별로이지 않느냐?” 

금벽이 그녀와 두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마마께서는 얼마 전에 아프셨지 않습니까? 몸이 허약해지셨으니 잘 보양하시면 곧 좋아지실 겁니다.”

“역시 별로라는 말이구나?”

옥비는 중얼중얼 혼잣말하며 볼을 쓰다듬었다. 

자신의 피부는 하얀 편에 속했지만 그렇게 맑지는 않아서 아가씨와는 달랐다. 아가씨는 겨울에 너무 추워서 입술이 다 하얘질 정도가 되어도 피부가 마치 첫눈처럼 가녀리고 고왔다.

옥비가 웃음 지었다. 

‘괜찮아, 궁 안 여인 중에 타고난 미모를 가진 이가 얼마나 있다고. 다들 미모를 유지하려고 가꾸는 것이 아닌가? 천천히 약차를 마시고 많이 움직이면 안색은 자연스럽게 좋아질 거야. 맞아, 아가씨는 계속 마상궁술 연습을 하면서 땀을 흘려 독을 배출했었어. 나도 한번 시도해볼 만해.’ 

* * *

아침 식사를 한 후, 그녀는 정원으로 산책하러 나갔다. 

길을 걷는데 두 궁녀가 이슬을 따면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두 사람은 어디서 본 듯했는데 아마도 벽옥헌의 궁녀인 것 같았다. 

“언니, 우리가 딴 이슬은 어디에 쓰는 거야? 설마 마시는 건 아니지?”

“다른 궁은 모르겠는데 우리 마마는 이걸로 얼굴을 닦으셔.”

“와, 이슬로 얼굴을 닦다니! 엄청 신경 쓰시네! 근데 우리 마마는 도대체 어느 가문 규수이신 거야? 한 번도 못 들어본 것 같아.”

또 다른 하나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알려줄 테니까 다른 데 가서 말하면 안 돼!”

“응응.”

“우리 마마 말이야, 전에 폐하가 궁 밖에서 부양하셨대.”

“아?”

“쉿!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언니 걱정하지 마, 말 안 할게.”

옥비는 조용한 것을 좋아해 지금은 금벽만 데리고 산책을 나온 상태였다.

두 사람은 조경석(*假山石: 가산석, 조경용 돌) 뒤에 서서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예전의 마마가 누구였든, 지금은 마마가 되셨으니 그 얘긴 앞으로 꺼내지 마.”

“알겠어, 언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저 나이대의 궁녀들은 역시나 말이 많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굳이 마마의 출신까지 말할 필요도 없지. 폐하가 이렇게 총애하시는데 한 일 년 반쯤 지나면 아마 황자를 회임하시지 않겠니? 그럼 얼마나 더 귀해지시겠어.”

어린 궁녀가 말했다.

“하지만 이 궁에서는 몇 년 동안이나 아무도 회임하지 못했잖아!”

그러자 다른 궁녀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너 밖에 조방궁이라고 알지?”

“알지! 대장공주 마마께서 수행하는 곳이잖아! 갑자기 그건 왜?”

“조방궁에 화신첨이라고 있는데 너도 들어본 적 있지?”

“들어봤어, 아주 영험해서 뽑아서 당첨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던데. 지금까지 안 이루어진 적이 없었대.”

“그럼 그 제비에 제일 처음 당첨된 사람이 누군지도 알겠네.”

“응! 원 재상 댁 며느님이잖아. 결혼하고 3년 동안 임신하지 못했었는데 제비에 당첨되고 나서 회임한 거였어!”

어린 궁녀는 말했다.

“혹, 우리 마마도 당첨되실 수 있을까?”

다른 궁녀가 웃었다.

“마마께서는 궁 밖에 나가본 적도 없으신데 어떻게 제비를 뽑으시겠니? 사실, 간단해 말해서 화신첨이 그렇게 영험한 건 조방궁의 선고가 뛰어나기 때문이지. 원씨 집안 며느님도 주지의 향을 쓴 후에 임신했다더라고.”

“그래?”

어린 궁녀는 처음 듣는 소리였다.

“방금 향설 언니가 마마하고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주지를 초청해서 경전 강의를 들으신다던데!”

말하는 동안 이슬을 다 딴 두 사람은 곧 보고하러 돌아갔다. 

옥비와 금벽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금벽은 그들의 뒷모습을 보고 무시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전부 헛소리네요. 전에 능양주지가 자주 궁에 들어올 적에 마마께 경전 강의를 얼마나 많이 했는데 회임을 촉진하는 비방이 있었다면 저희가 몰랐을 리가 없잖아요?”

옥비는 말이 없었다.

능양진인을 생각하면 만수연의 꽃 사건이 생각나 마음이 좋지 않았다. 

능양진인 이 사람이야말로 자신과 폐하가 공유하는 비밀이지 않은가!

이런 사람을 궁 밖에 두는 것은 정말 불안한 일이었다. 폐하께서는 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사람을 시켜 그녀를 처리하지 않고 뜻밖에도 그대로 두었다.

‘혹시 폐하께서 요즘 너무 바빠서 손을 쓸 시간이 없으셨던 걸까?’

그녀는 몸을 돌려 보일 듯 말 듯 한 벽옥헌 쪽을 바라보았다. 

만약 능양진인이 류 첩여와 사이가 좋아진다면, 그건 류 첩여에게도 이런 비밀이 생겼다고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옥비는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자기도 모르게 벽옥헌을 향해서 걸어갔다.

옥비는 근처에 이르러 향설이 류명주를 모시고 나오는 모습을 보았는데, 역시나 두 사람은 그 일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마, 저는 궁에 무척이나 오래 있었지만, 능양주지에게 임신을 촉진하는 비방이 있다는 소리는 못 들어봤습니다. 혹시 잘못 아신 거 아니신지요?”

류명주가 웃었다.

“그 사람이 그걸 감히 쉽게 입 밖으로 낼 수 있겠느냐? 이 궁에 있는 여인들은 모두 황자를 회임하길 원하는데 조심하지 않으면 공연히 남에게 미움을 살 테지.”

“하지만…….”

“너는 본궁만 믿어라, 이렇게 명성이 자자한 화신첨을 지온 소저 같은 젊은 아가씨가 만들어낼 수 있겠느냐? 그것은 분명히 조방궁의 비방일 게야. 가서 물어보면 아마 틀림없을 것이다.”

여기까지 말하고 난 류명주는 옥비와 금벽을 보고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옥, 옥비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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