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265)화 (265/385)
  • 265화. 후회하다

    사고가 난 이후로 사고가 났었던 어화원의 호수에 가까이 오는 사람은 줄어들었다.

    궁녀들은 일이 있어도 호수 멀리 돌아다녔다. 그리고 가끔 사람이 많을 때만 모여서 그날 일을 이야기했다. 

    “봤어요? 바로 저기야! 임창백 가문의 소공자가 저기서 익사했어. 아직 범인도 못 잡았대.”

    “세상에! 듣자니 흉수가 시위를 매수했다던데, 너무 무서워.”

    “그러니까! 그리고 이 일을 혼자서 한 게 아닐 거라던데. 범인이 아직 궁 안에 있을지도 몰라.”

    이슬을 채취하러 나온 궁녀 몇 명이 여기까지 듣고는, 일제히 꺅하고 소리를 지르며 한데 모여 벌벌 떨었다.

    “너무 무서워!”

    “그럼 우리도 위험한 거 아니야?”

    “그런 말 하지 마! 기절할 거 같으니까!”

    마침 겁이 없는 한 궁녀가 생생하게 묘사하며 말했다.

    “정 공자가 물에 빠진 걸 본 궁인을 내가 알거든. 그날 어화원을 지나다 고개를 들었는데 저쪽에서 두 손이 허우적대는 걸 봤다더라고. 그땐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오줌을 다 쌀 뻔했다지 뭐야. 급히 달려가 시위를 불렀는데…… 맞다, 그게 바로 이 자리였던 것 같아.”

    “아아악……!”

    궁녀들이 놀라 비명을 질렀다.

    “무서워할 거 없어.”

    사람을 놀라게 하고는 궁녀가 웃으며 말했다.

    “그건 그날의 일이지 오늘 일도 아닌데, 손이 있겠어?”

    누군가 고개를 들어 호수를 빠르게 흘끗 쳐다보고는, 꺄악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었다.

    겨우 진정해가던 궁녀들은 또다시 깜짝 놀라 그녀를 찰싹 때리며 말했다.

    “깜짝이야! 너도 우릴 놀라게 할 작정이니!”

    그러나 그 궁녀는 두려움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동공이 풀린 채로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두서없이 말했다.

    “아니, 진짜, 진짜로 손이 있어! 빨리 봐!”

    궁녀들이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쪽을 보니, 진짜로 수면 위에 허우적대며 파닥거리는 두 손이 보였다.

    “아아악……!”

    궁녀들은 소리를 크게 지르며 뿔뿔이 흩어졌다.

    그 가운데 두어 발자국쯤 뛰던 몇 명이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아니! 대낮에 무슨 귀신이야? 혹시 또 누가 빠진 거 아니야?”

    “빨리빨리, 사람을 불러서 구해야지!”

    말이 끝나자마자 그들은 그림자 하나가 자신들을 스치고 호숫가로 달려가 주저 없이 신발을 벗고 풍덩 물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보았다. 

    뛰어든 것은 여자였는데, 궁복을 입고 있었지만, 궁녀들의 것보다 훨씬 화려한 양식이었다. 

    누군가가 알아보고는 놀라서 소리쳤다.

    “저, 저기 옥비마마 아니셔?”

    다른 궁녀가 즉시 부인하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어? 옥비마마가 어떻게 직접 물에 들어가시겠어?”

    “그렇지만, 닮은 것 같아!”

    그녀들이 이러는 동안,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마, 마마!”

    뒤에서 궁녀 몇 명이 급히 달려와 호수를 보고 식은땀을 흘리며 소리쳤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사람이 물에 빠졌어요!”

    그녀들이 외치는 소리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이쪽으로 몰려왔다.

    앞서 말했던 그 궁녀가 놀라서 중얼거렸다.

    “저 아이는 옥비마마의 시녀 추아네. 이래도 옥비마마가 아니라고 할 거야?”

    “마마! 마마!”

    추아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어서 올라오십시오! 다른 사람이 구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옥비는 아랑곳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헤엄쳐 가서 물에 빠진 사람을 뒤에서 안고 기슭 쪽으로 끌고 왔다.

    풍덩! 풍덩!

    공공들이 급히 물에 들어갔다.

    누군가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러 가고, 또 다른 누군가는 옥비를 구하러 갔다.

    마침내, 두 사람 다 뭍으로 끌어올려졌다.

    십일월의 호수는 얼어붙을 것처럼 추웠다. 물에 빠진 궁녀는 나이가 어려 보였는데 얼굴이 하얗게 질려 움직임이 없었다.

    옥비도 온몸이 흠뻑 젖고 얼굴에 화장이 다 지워졌다. 그녀는 두 번 정도 기침을 해 입안에서 물을 토해내고는 공공을 밀어젖히고 그 궁녀를 보러 갔다.

    “이 아이는 어떠하냐? 아직 살아 있느냐?”

    사람 구하는 일을 맡은 공공이 궁녀의 콧김을 살피고 입을 벌려보며 말했다.

    “아직 숨이 붙어있습니다.”

    옥비는 눈동자조차 움직이지 않고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얼마 후, 궁녀는 크게 기침을 하고 한참 물을 토해내더니 정신이 돌아왔다. 

    “살았다! 살았어!”

    궁녀가 눈을 뜨자 주위 사람들이 모두 기뻐했다. 

    옥비도 같이 웃다가 그제야 한기를 느끼고는 두 팔로 자기 몸을 감싸며 재채기를 했다.

    “마마!”

    추아가 얼른 달려와 망토를 옥비에게 건네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마마, 어째서 그렇게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십니까? 귀하신 분이 무슨 사고라도 나면 어쩌시려고요? 다른 사람이 구하게 하면 되지 않습니까?

    옥비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급한 상황이라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었겠느냐? 다 같은 사람 목숨인데 누가 더 귀하고 아니고 그런 것은 없다.”

    그녀가 막 이렇게 말했을 때, 귓가에 사람들의 놀란 소리가 들려왔다.

    “폐하!”

    “폐하를 뵙습니다.”

    옥비는 멍하니 고개를 들어 황제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입술을 움직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 *

    영수궁으로 돌아온 뒤, 옥비는 추아의 시중을 받으며 뜨거운 물로 목욕을 했다. 그런데도 옥비는 연신 재채기를 했다. 

    정실에서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황제는 궁녀에게 말했다.

    “생강탕 가지고 되겠느냐? 가서 태의를 불러와라.”

    “하지만 마마께서…….”

    “지금 누구 명령을 따르겠다는 게야?”

    궁녀는 그제야 두말없이 무릎을 꿇고 말했다.

    “예, 폐하.”

    옥비는 멍하니 서서 황제가 고개를 돌리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곧바로 그가 물었다.

    “괜찮소?”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흐느끼며 황제에게 안겨들었다.

    갑작스레 붙잡힌 황제는 조금 자세가 불편했지만 밀어내지는 않았다.

    황제는 그녀의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천천히 등을 두드려 주었다.

    “괜찮소, 괜찮아.”

    옥비는 빨갛게 부은 눈으로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폐하, 제가 아까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십니까? 만약에 제가 조금만 늦었어도 그 궁녀는 물에 빠져 죽었을 겁니다. 그 아이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니 마치, 마치……!”

    그녀는 고개를 돌려 눈물을 닦았다.

    아마도 지금이 궁궐에 들어온 이래로 그녀가 제일 못생겨 보이는 때일 터였다. 얼굴엔 화장기가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안색은 창백하고 초췌했고 눈빛은 눈물 때문에 흐릿했다.

    그러나 황제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그녀에게 따뜻했다. 

    황제는 가볍게 그녀를 안고는 따뜻한 비단 이불에 앉아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짐도 알고 있소, 그때 그녀를 못 구했던 것처럼……. 그렇지 않소?”

    옥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쏟았다.

    그녀는 띄엄띄엄 말했다.

    “폐하는 모르실 겁니다, 그때 제가 얼마나 무서웠는지요. 아가씨가 바다에 빠졌는데 날은 무섭도록 어둡고, 사방엔 해적들이 있고 여기저기엔 불이 나고……. 소리 지르면 해적들이 나타날까 두려워 소리도 못 지르고 배에서 숨죽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아가씨를 구하러 가지 않은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럽습니다. 그때 구할 수 있었다면 지금 이렇게 매일매일 후회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설령 구하지 못했더라도, 아가씨와 함께 죽을 수 있었을 텐데……!”

    황제의 눈도 젖어 들었다.

    그도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그가 도착했을 때 해적은 이미 뿔뿔이 흩어진 뒤였다. 바다 위에는 산산 조각난 배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신들이 널려있었다. 그는 그녀를 찾아보았으나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 * *

    금벽이 돌아왔을 때, 방안은 조용했다.

    그녀는 침대 위로 넘어지는 두 사람의 인영을 보고, 멍하니 있다가 물러났다.

    추아가 급하게 물었다.

    “언니 왜 그래요? 태의 어른께 얼른 들어가 보시라고 해요!”

    금벽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나중에.”

    그녀는 돌아서서 태의에게 예를 갖추며 미안한 듯이 말했다.

    “수고스럽게 오셨는데, 마마와 폐하께선 이미 잠자리에 드신 것 같습니다. 상황을 보니 큰 문제는 없는 듯합니다.”

    마마가 황제를 모신다는데 태의가 어찌 감히 불평하겠는가? 태의는 다만 이렇게 말했다.

    “그럼 볼 필요 없겠구려. 마마의 의안(*医案: 진료기록부)은 내가 관리하고 있고 근래에는 별문제가 없었다오. 만약에 추워하시면, 약차를 마셔서 추위를 쫓으면 될 것이오.”

    약차의 처방전을 주며 태의는 지시했다.

    “마마께서 깨어나시면 우선 약차를 한 그릇 드시게 하고, 내일 상태가 좋지 않으면 그대가 태의원으로 날 찾아오시오.”

    금벽은 태의에게 고마워하며 정중하게 배웅했다.

    고개를 돌리자, 추아가 웃음꽃이 핀 얼굴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언니, 폐하가 정말 마마와 함께 계시는 거예요?”

    “내가 거짓말하겠니?”

    금벽은 웃으며 처방전을 들었다.

    “빨리 약이나 지어와야겠다.”

    추아가 처방전을 가로챘다.

    “내가 갈게요! 언니는 상처가 아직 안 나았잖아요, 어서 쉬세요.”

    추아는 웃으며 말을 끝내고선 뛰어가며 생각했다.

    ‘마마께서 마침내 총애를 되찾으셨어, 정말 잘 됐어.’

    * * *

    한밤이 되어 금벽은 자러 갔다. 추아는 꾸벅꾸벅 졸며 약차를 지키고 있었다.

    갑자기 들린 작은 소리에 추아가 고개를 들자 옥비가 나오는 것이 그녀의 눈에 보였다.

    “마마!”

    추아가 급하게 일어나 망토를 가져왔다.

    “마마, 옥체에 한기가 든 지 얼마 안 되었어요. 옷을 따뜻하게 입으셔야지요!”

    조금 붉어진 안색으로 옥비는 추아의 손을 밀어내며 말했다.

    “춥지 않아.”

    “하지만…….”

    옥비가 손을 내젓자 추아는 하는 수 없이 손을 내리고는 약차를 한 그릇 따라 조심스럽게 들고 왔다.

    “마마, 이건 태의가 처방해준 약차입니다, 추위를 쫓는 것이니 얼른 드세요. 드시면 내일 아프지 않으실 거예요.”

    옥비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됐어, 찬물이나 한잔 다오.”

    추아는 멍하니 서 있었다.

    “마마…….”

    옥비는 그녀를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어서.”

    “예…….”

    추아가 찬물을 가지고 왔을 때, 옥비는 얇은 옷을 입고 문에 기대어 있었다.

    으스스한 찬바람이 불어오자 한기가 든 옥비의 몸이 추위에 부들부들 떨렸다.

    추아는 넋을 놓고 있다 다시 웃음을 지으며 옥비를 불렀다.

    “마마, 차가운 물입니다.”

    “응.”

    옥비는 잔을 조용히 받아 천천히 물을 다 마시고는 잠시 앉아있다가 다시 침소로 들어갔다. 추아는 앉아서 옥비가 마시지 않은 약차를 묵묵히 바라보다 왠지 모를 추위를 느꼈다.

    * * *

    황제는 이날 잠을 깊게 푹 잔 덕에, 근래 쌓였던 피로가 싹 사라졌다.

    그가 눈을 떴을 땐 아직 날이 어두웠다.

    아직 깨우러 오지 않은 것을 보니, 아침 정무 시간이 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황제는 미소를 지으며 옥비를 깨우려고 돌아누웠다. 돌아눕자마자 황제의 시야에 옥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것이 보였다. 

    황제가 깜짝 놀라 손을 뻗어 옥비의 이마를 만져보니, 이마는 불같이 뜨거웠고 내뱉는 숨에서도 열기가 느껴졌다.

    ‘열이 나는구나!’

    황제는 급히 일어나 밖에다 대고 소리쳤다.

    “여봐라! 여봐라!”

    밖에서 기다리던 호은이 곧장 들어와 황제의 시중을 들려고 하였으나, 뜻밖에도 황제는 이렇게 말했다.

    “태의를 불러와라! 어서 태의를 불러와!”

    호은이 흘끗 보니 옥비가 황제의 품에 안겨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즉시 소리쳤다.

    “소희, 빨리 태의원으로 가거라! 추아, 뜨거운 물을 가져와서 마마를 닦아드리거라.”

    “예.”

    모두 각자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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