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263)화 (263/385)
  • 263화. 범인을 잡다

    서영왕세자는 국을 마시려던 참에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너무 기름지군요. 요즘 입맛이 없어서 안 넘어가오.”

    시위는 입을 삐죽거리면서 말했다.

    “그럼 제가 기름을 걸러내겠습니다.”

    “그리 해주시오.”

    시위가 숟가락을 들어 거칠고 재빠르게 기름을 두어 번 휘두르는 바람에, 기름이 탁자 위에 튀었다. 이를 본 서영왕세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 됐습니다. 어서 드시지요.”

    “그러죠.”

    그는 닭국을 뜨면서 시위에게 말을 걸었다.

    “난 정말 정 공자를 죽이지 않았소. 그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안 납니다.”

    “그렇고말고요.”

    시위는 옥문을 힐끔 보더니 조바심이 들어 다그쳤다.

    “어서 드시지요! 닭국이 다 식어버립니다.”

    서영왕세자가 비로소 대답하던 참에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폐하께서 들어오신다!”

    감옥 안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옥졸이 머리를 내밀고 밖을 보더니 외쳤다.

    “정말로 황제 폐하께서 오셨소! 어서, 어서!”

    시위는 갑자기 안색이 변하여 탁자 위의 국그릇을 쓸어 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서영왕세자가 돌연 국그릇을 들고 몸을 피했다.

    “뭐 하시는 겁니까?”

    “나한테 보낸 닭국을 왜 쏟으려는 겁니까!”

    황제의 시위가 곧 옥으로 들어오려고 하자 시위는 이유를 생각할 틈도 없이 그저 국그릇을 빼앗으려고 했다. 하지만 서영왕세자는 그릇을 꼭 끌어안으며 주려고 하지 않았고, 두 사람은 몸싸움이 붙었다. 서영왕세자도 어려서부터 무술을 연마한 사람이다 보니 지지 않았다. 

    “그만!”

    시위대장이 큰소리를 지르며 두 사람을 떼어놓았다.

    그런데 그 시위의 모습을 누군가 알아보더니 놀란 기색으로 말했다. 

    “축평이구나, 너 왜 여기 있는 게야?”

    당황하던 시위가 어색하게 웃으며 막 말하려던 차에 황제가 느린 걸음으로 옥사에 들어왔다. 서영왕세자는 황제를 보더니 무릎을 꿇으면서 말했다. 

    “폐하! 이 국에 독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저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황제는 서영왕세자와 축평이란 시위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여봐라, 독을 검사해라!”

    다른 시위가 살아 있는 닭 한 마리를 가져왔다. 그가 흘러서 반 그릇만 남은 닭국을 닭에게 먹였더니 바로 닭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안색이 어두워진 황제는 옆에 있는 축평을 쳐다보았다. 

    “폐하!”

    서영왕세자는 이때가 기회라는 듯이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폐하께서 보시다시피 이런 대낮에 소인을 죽이려고 하다니, 함정이 있는 것이 분명하옵니다. 부디 진실을 밝혀주시옵소서!”

    두 옥졸은 바로 끌려와 경위를 말하였다. 

    “……저, 저 자가 세자한테 음식을 주겠다고 하여 소인은 그저 눈으로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 들여보냈사옵니다.”

    황제는 축평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무슨 할 말이 있느냐?”

    현장에서 붙잡힌 축평은 고개를 푹 떨구고 가만히 있었다. 

    시위대장은 무언가 이상하다고 여기고 축평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축평은 눈을 감고 입가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는데 이미 독이 퍼져 죽은 상태였다. 

    ‘이런, 범인이 딱 걸렸는데 하필이면 눈앞에서 죽어버리다니!’ 

    황제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라 소리쳤다.

    “당장 조사해라! 제대로 알아보거라! 짐의 옆에 있는 사람도 죽을 수 있다니! 어느 날 이 닭국이 짐한테도 올려질 수 있지 않겠느냐?”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그냥 넘어갈 수 없게 되었다. 

    수상 상용이 급하게 사람들을 제치고 황제의 옆으로 다가왔다.

    “노여움을 가라앉히옵소서. 폐하!”

    “어찌 화를 가라앉히란 말인가!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황공하옵니다. 폐하!”

    상용은 그저 위로의 말만 하였다.

    “폐하의 말씀이 옳으시옵니다. 어전에서 문제가 생기다니 반드시 엄중히 조사하겠사옵니다.”

    “그럼 그리하게.”

    황제는 그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꼭 말한 대로 하게.”

    황제는 머리를 돌려서 서영왕과 그의 아들에게 물었다. 

    “자네들은 어떻게 독이 들어있을 줄 알았는가?”

    서영왕은 아들이 곧 혐의를 벗어날 것이라는 예감이 들자 마음을 안정시키며 허리를 굽혀 말했다.

    “그날 돌아가던 중이었지요. 신은 생각할수록 이상했습니다. 저희 부자는 일 년 내내 도성에 있지 않은데 이 아이를 모함하여 무엇합니까? 그리고 소문이 그렇게 빨리 퍼진 것은 분명 우리 서영왕부를 겨냥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은 이 아이가 형을 받으면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를 생각했습니다.”

    천천히 냉정함을 되찾은 황제는 무언가를 생각했고, 이윽고 황제의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저희 서영왕부는 남서쪽에 있어서 수도와는 거리가 아주 많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이 아이가 만약 수도에서 죽는다면 물론 신은 감히 원망할 수 없겠지만, 서남쪽의 세력가들이 어찌 생각하겠습니까? 아마도 신, 서영왕이 폐하의 노여움을 샀기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변방은 아마도 다시 혼란에 빠지겠지요.

    마침 루 대인이 찾아와서 제게 이에 관해 물어봐서 신은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루 대인도 공감해주더군요. 루 대인은 저한테 조심하라고 당부하면서 상대방의 목적이 이것이 확실하다면, 설사 제 아들이 무고하다는 증거가 나오더라도 상대는 계속 모험을 마다하지 않고 제 아들을 죽여 입을 틀어막으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아이가 옥에서 죽으면 신이 폐하를 믿든 말든 서남쪽에서 꼭 일이 터질 것입니다. 그래서 신이 이 아이에게 꼭 독을 조심하라고 슬쩍 당부했던 것입니다.”

    서영왕세자가 말을 이었다.

    “폐하, 신은 이 닭국을 보자마자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왕부의 사람들은 신의 입맛을 모두 알기에 이처럼 기름진 닭국을 사람을 시켜서 보내올 리가 없습니다.”

    상황이 여기까지 오다 보니 모든 것이 명백히 밝혀진 셈이었다.

    서영왕세자는 무죄로 석방되었고, 시위대 전체는 조사대상이 되었다.

    * * *

    루씨 가문의 형제는 별전에서 깨어나더니 서로 눈길을 마주쳤다.

    “두 분, 깨어나셨습니까?”

    호은이 들어오더니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십니까?”

    두 사람은 머리를 흔들었다. 루안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노야, 혹시 제가 무슨 실례라도 범한 일이 있는지요?”

    호은이 대답했다.

    “별거 아닙니다.”

    안도의 숨을 내쉬던 루안은 곧 호은의 말을 듣게 되었다.

    “그저 폐하가 보는 앞에서 북양왕 전하를 때리셨을 뿐입니다.”

    “뭐라고요?”

    루혁이 소리를 지르며 자기 몸을 만지더니 큰소리로 물었다.

    “어디요? 네 이놈, 어디를 때렸어? 약 기운을 빌려서 행패를 부리다니!”

    호은이 허허 웃으면서 위로하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하께서도 손해 보지는 않으셨습니다. 전하께서는 루 대인한테 욕 한 바가지를 퍼부었습니다.”

    “그렇군요!”

    루혁이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물었다.

    “제가 뭐라고 욕했습니까? 속이 아주 시원하게 욕했습니까?”

    호은은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이건 전하께서 다른 분한테 물어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참, 루 대인께서는 휴식을 취하셔야 하시는지요? 폐하께서 공무가 있으신데…….”

    “괜찮습니다.”

    루안이 일어나며 말했다. 

    “바로 가겠습니다.”

    호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루혁에게 말했다.

    “전하께서는 돌아가셔도 됩니다. 소인이 사람을 보내어 궁 밖으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이에 루혁이 투덜대며 말했다.

    “이놈이 폐하를 뵙는다는데 어찌하여 신이 출궁해야 한단 말입니까? 이건 차별입니다. 참, 사건은 어떻게 됐는지요?”

    “이미 종결되었습니다. 서영왕세자는 모함당한 것으로 밝혀져 바로 석방되었습니다.”

    “그렇습니까?”

    호은이 대략적인 현재 상황을 이야기하여 주자 루혁이 잔뜩 궁금해하며 물었다. 

    “그래서 정말 어떤 이가 독을 넣은 것입니까? 누가 그런 짓을 한 것입니까?” 

    “아직 조사하는 중입니다.”

    호은은 넌지시 한마디 하고는 얼른 공공을 불러들여 루혁을 모시고 나가게 했다. 그는 이 북양왕의 잔소리가 이만저만이 아니니 빨리 돌려보내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 * *

    루안이 어서방(*御书房: 황제의 서재)으로 들어가니, 황제가 화난 표정으로 있었다.

    “폐하.”

    루안이 예를 올렸다.

    황제는 머리를 돌려 루안을 보더니 이마를 누르면서 물었다. 

    “괜찮은 건가? 묘한 약이로군.”

    “괜찮습니다. 그저 조금 어지러울 뿐입니다.”

    통제할 수 있는지 먼저 시험해 보았기 망정이지, 말이 새기라도 하면 큰일 날 뻔했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서영왕세자 모함 사건을 언급하며 물었다.

    “자네는 어찌 문제가 있음을 알고 서영왕을 찾아간 것인가?”

    “신은 서영왕세자가 술에 취한 모습을 두 번 뵌 적이 있는데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서영왕께 세자의 주량이 어느 정도인지를 물었는데 서영왕께서 답해주시더군요. 신이 듣고 생각을 해봤는데, 정말 세자가 누명을 썼다면 세자를 모해한 이가 궁 안에도 반드시 사람을 심어 놓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약을 찾는다면 상대방이 또 술수를 부리게 될 터이니, 그리하라고 서영왕께 조언했습니다.”

    황제는 한숨을 내쉬면 말했다. 

    “짐은 참말이지, 이 궁궐 안에서도 이렇게 위험할 줄 몰랐다. 저자는 짐의 어전 시위인데도 말이다.”

    루안이 침묵하자 황제가 물었다. 

    “자네 생각은 어떠한가?”

    루안은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신은 아무런 생각이 없사옵니다.”

    황제는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자네와 짐이 오랜 세월 같이 지내온 것도 인연이지. 자네 얼굴을 보니 할 말이 있는 듯한데 짐이 이를 모를 줄 아는가?”

    루안은 잠자코 있다가 말했다.

    “신은 그저 이상할 뿐입니다. 누가 궁 안에까지 사람을 심어놓고 서영왕을 해치려는지, 그것으로 또 무슨 이득을 얻을 수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황제는 문득 뭔가를 알아차린 듯이 말했다.

    “바로 그거일세! 이리하여 무엇을 얻으려는지 말이야. 서남쪽이 요동치는데 혹시 적국의 첩자가 일부러 이간질하려는 것인가?”

    루안은 머리를 저으면서 말했다.

    “북방 이민족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비록 신이 북양과 반목했지만, 한마디 하자면, 그자들은 북양도 넘어서지 못하는데 이런 일을 일으킨들 뭐하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루안은 무언가 떠올랐는지 말했다.

    “혹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은 남서쪽을 동요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서영왕부의 병권이 아닌지요?”

    “병권을 노린다고? 이건 어느……?”

    황제는 이상하다는 듯이 말하다 말고 손을 저으며 말했다.

    “자네도 피곤하니 오늘은 그만하지.”

    루안이 대답했다.

    “신은 물러가겠습니다.”

    그가 나가자, 황제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잠시 후, 황제는 여전히 노여움이 가시지 않아 찻잔을 들고 힘껏 던져 산산조각을 냈다.

    “폐하!” 

    호은이 들어와 급히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폐하, 고정하시옵소서!”

    한참 만에 황제는 평온을 되찾고 손사래를 쳤다.

    “됐다, 치우거라.”

    “예.”

    호은이 소 공공을 불러 깨진 조각을 치웠다.

    황제는 용좌(*龙椅: 황제의 의자)를 바라보며 차갑게 웃었다.

    ‘필요한 것이 병권이 아니라 이 용좌인 게로군? 서남 지역에 문제를 일으켜 소란을 피워야 선제의 영전에 고할 수 있으니 말이야! 어전 시위까지 매수하다니 대체 누가 한 짓인 게야? 만일 형님이라면…… 소달은 각별하게 그를 따르지 않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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