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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 (262)화 (262/385)
  • 262화. 가루약의 시험

    술렁이는 가운데 루안의 목소리가 차갑게 울렸다.

    “북양왕께선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제가 언제 서영왕께 뇌물을 받았습니까? 북양왕께서 그렇다고 하시면 그게 사실이 되는 것입니까?”

    “허!”

    루혁이 코웃음을 쳤다.

    “서영왕의 뇌물을 받지 않았으면 어젯밤엔 뭐 하러 그곳에 간 것이냐? 본왕이 짚어주자면, 왕부가 밖에 있는 운무다관이다.”

    루안의 얼굴색이 순식간에 변하자 루혁이 의기양양 입을 열었다.

    “생각지도 못했겠지! 본왕이 왕부로 돌아가는 길에 네 녀석이 다관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얼마 안 있으니 서영왕이 나타나더군. 다른 이들이야 본왕이 잘 못 볼 수 있겠지만, 그게 네놈이라면 활활 타 재가 되어도 못 알아볼 리가 없어!”

    조정 신하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본 황제가 미간을 좁혔다.

    “루안, 북양왕의 말이 사실인가?”

    표정을 푼 루안이 몸을 돌려 황제를 향해 공손히 대답했다.

    “사실이옵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입을 열기 전에 곧장 말을 이었다.

    “하오나 신이 지금 판결을 내리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는, 서영왕세자가 무고하다 생각하기 때문이옵니다.”

    듣고 있던 대리시경이 입을 열었다.

    “루 통정, 본관도 자네가 잘못된 판결이 내려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네. 그러나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자네의 생각을 증명할 증거가 없다면 함부로 말을 하지 않는 게 좋겠네.”

    그러나 들려온 루안의 대답은, 대리시경의 예상을 벗어난 대답이었다.

    “증거라면, 확실히 제게 있군요.”

    루안이 황제를 향해 말했다.

    “폐하, 서영왕께선 누군가 서영왕세자에게 약을 먹이는 바람이 일이 그리되었다고 완강하게 주장하고 계십니다. 신 역시 본래 믿음 반 의심 반이었으나, 누군가로부터 실제 그러한 약이 존재한다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오?”

    루안은 더 설명하지 않고 말했다.

    “폐하, 대장공주마마를 모셔 주십시오.”

    황제가 의아해 물었다.

    “고모님과 무슨 상관인가?”

    “모시면 아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황제가 말했다.

    “들라 하라.”

    조정 대신들의 얼굴에 호기심들이 떠올랐다.

    ‘마마께서 그런 약을 가지고 계신 것인가?’

    ‘설마 궁중의 비약?’

    ‘그게 사실이라면 누가 서영왕세자에게 독을 썼단 말인가?

    ‘요즘 들리는 소문을 생각하면, 설마……?’

    황제는 더욱 어리둥절했다.

    신하들이 어찌 된 일인지 제 눈치를 흘끔거리다 눈만 마주치면 고개를 푹 숙이며 눈을 피했기 때문이었다.

    ‘내 얼굴에 뭐가 묻은 것인가?’

    이윽고 서영왕과 함께 대장공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폐하를 뵙습니다.”

    “일어나게.”

    황제가 손을 내저으며 물었다.

    “고모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루안에게 들으니 고모님께서 복용하면 술에 취한 것처럼 변하는 약을 가지고 계시다고요?”

    대장공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서영왕이 상을 걸고 찾는 그 약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본궁도 얼마 전 민보를 통해 퍼진 소문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그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데 같이 듣고 있던 온이가 그러한 약이 실로 있다지 않겠습니까?”

    대장공주의 말에 신하들의 시선이 일제히 몰렸다.

    대리시경이 다급히 그녀에게 물었다.

    “마마, 그것이 사실이옵니까?”

    대장공주가 그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사실이 아니면, 본궁이 여기까지 와서 자네들을 놀리기라도 한단 말인가?”

    대장공주가 눈을 부라리고 나서는데 누가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단 말인가?

    대리시경이 얼른 대답했다.

    “서영왕세자의 결백이 달린 일인지라, 공주마마, 혹시 약을 보여주실 수 있으시겠는지요?”

    그러자 대장공주가 소매에서 가루약을 휙 꺼내어 건넸다.

    “가져가게.”

    가루약을 받아든 대리시경이 황제를 향했다.

    “폐하, 하면…….”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을 골라 시험해 보게.”

    “폐하.”

    그때 루안이 다시 나섰다.

    “신의 결백을 증명하고자 직접 시험을 해보고 싶사옵니다.”

    “흐음…….”

    루혁도 빠지지 않고 나섰다.

    “네놈이 시험을 한다니, 네가 연기를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

    루혁을 향해 돌아선 루안의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북양왕께서 그리 하관을 못 믿으시겠다면 함께 복용해 시험을 해보시든지요?”

    루안이 비웃듯 도발하자 루혁이 당장 달려들었다.

    “하면 하는 것이지! 누가 무섭다더냐?!”

    황제가 말릴 틈도 없이 두 형제가 맞붙었다.

    “자네들……!”

    “폐하!”

    그때, 대장공주가 황제의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해보라 하시지요.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대장공주의 눈짓을 받은 황제는 금방 공주의 의도를 눈치를 챘다.

    ‘둘이 진짜 척을 진 것인지 지금까지 계속 의심하는 이들이 있었지? 이 기회를 통해 알아볼 수 있으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야!’

    “두 사람이 그리 원한다면, 짐도 허락하겠다.”

    황제의 말에 내시가 따뜻한 물을 대령했다. 루씨 형제는 각자 한 그릇씩 물을 받아 약을 조금씩 타고는 한입에 깨끗이 비워냈다.

    그리곤 시간이 조금씩 흘러갔다.

    꽤 시간이 지났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신하들이 막 무어라 입을 열려던 그때였다. 콰당하는 소리가 조당을 울렸다.

    루안이 들고 있던 옥홀(玉笏)을 바닥에 떨구더니 옆으로 쿵 쓰러졌다!

    황제는 몹시 놀랐다.

    ‘루안은 술이 센 자인데, 대체 약이 얼마나 강한 것인가?!’

    하나는 쓰러졌고, 남은 하나는…….

    모두의 시선이 루혁에게 향했다.

    천천히 고개를 든 루혁은 붉디붉게 달아오른 얼굴에 눈이 흐리멍덩하게 풀려있었다. 이윽고 휘청휘청 쓰러진 루안에게 다가간 루혁은 루안을 발로 툭툭 차기 시작했다.

    “이 나쁜 새끼, 일어나라, 일어나!”

    루안이 낮은 신음과 함께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얼굴은 루혁보다 더욱 붉었으며 눈은 역시나 풀려있었다.

    루혁은 그런 루안을 발로 차대다 갑자기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내 오늘 너 이 몹쓸 놈을 차 죽일 게다! 네놈 어릴 적에 이 형님이 얼마나 잘해줬는데! 머리 굵고는 어찌 이리 말을 안 듣는 것이야! 내가 아버지를 죽이고 작위를 빼앗았다고? 에라이, 퉤! 북양왕 작위는 본래 내 것이었다! 네놈이 내 것을 빼앗고 싶었던 것이겠지!”

    그리고 다시 루안을 뻥 차려던 그가 다리를 붙들려 옆으로 콰당 넘어졌다.

    일어난 루안이 그에게 손가락질했다.

    “아비를 죽인 불효자! 아버지를 쏜 화살은 분명 뒤에서 날아온 것이었다! 그 화살을 날린 기술이 네놈 문하에만 있는 것인 줄 내가 정녕 모르리라고 생각했느냐? 개량한 기술은 하물며 내가 네게 가르쳐준 것이었다! 네놈이야말로 몹쓸 놈이지! 아버지께서 오래 사시는 게 싫었느냐? 그렇게 전하 소리가 듣고 싶었냔 말이다! 날 죽이겠다고? 그렇다면 내가 네놈을 죽일 것이다!”

    평소 늘 침착하고 냉정하던 루안이 이리 추태를 보이니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엄마야, 그거 약발 한 번 거하구먼?’

    ‘아니, 아니지! 중요한 건 지금 이게 아니지!’

    ‘3년 전엔 루혁의 심복이 고발하러 왔던 것만 보았지, 지금은 두 형제의 불화를 직접 확인한 게 아닌가?’

    ‘루씨 가문의 은밀한 비밀을 두 눈으로 보는구먼!’

    “헛소리!”

    루혁이 비틀비틀 일어나 꽥 소리를 질렀다.

    “난 그런 적 없다! 모함하지 말아라! 모함하지 마!”

    “내가 널 모함해서 뭐 한다고? 난 애초에 북양에 남을 생각도 없었는데 내가 왕의 자리를 빼앗으려 했다고? 그거야말로 헛소리지!”

    “빼앗을 생각이 없었다는 자식이 장례에 와서 난동을 벌여? 그리고 날 암살하려고 사람까지 보내고 독을 타지 않았느냐! 네놈의 그 독이 든 차 때문에 내 심복은 목숨을 잃었다! 이것도 시인하지 않을 것이냐?”

    “내가 한 게 아닌데 내가 왜 시인을 한단 말이냐? 네 녀석이야말로……!”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던 황제가 돌연 입을 열었다.

    “그만! 두 사람을 혼절케 하라. 조당에서 이리 난장을 피우다니, 될 말인가!”

    명을 받은 시위가 두 사람을 쳐 혼절시키고는 벽에 기대어 눕혔다.

    그리고 이 틈에 시위대의 누군가가 조용히 어디론가 사라졌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은 황제가 신하들을 향해 물었다.

    “모두 이 약을 어찌 보았는가?”

    잠시 정적이 흐르고, 대리시경이 목소리를 냈다.

    “폐하, 루 통정과 북양왕이 보인 모습을 볼 때, 술에 취한 듯이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말은 과연 거짓이 아닌 듯하옵니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서영왕세자가 누명을 썼단 말이 되겠군. 그렇다면…….”

    “폐하!”

    판결을 듣기 위해 자리하고 있던 임창백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설사 이러한 효과가 있는 약이 있다 한들 이것이 서영왕세자가 약을 먹었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하옵니다! 더구나 누명을 쓴 것이라면 대체 누가 누명을 씌웠다는 말이옵니까? 그러한 이가 없다면 그마저도 그저 말뿐인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황제가 멈칫했다.

    ‘그 말도…… 맞군!’

    당시 상황이 어떠했는지는 누구도 보지 못했다. 그러니 서영왕세자가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모함한 사람을 찾아야만 모든 의혹이 벗겨지겠군.’

    그러나 당시에도 찾지 못한 이를 지금 어찌 찾는단 말인가?

    그 와중에도 서영왕은 혼백이 날아간 듯이 그저 바깥만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꼭 정신을 놓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임창백이 제 아들을 흉수라 말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정신을 놓은 것이 아니었다. 사실은 초조하게 연신 눈을 굴리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내시 하나가 모습을 보이더니 그를 향해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확인한 서영왕의 정신이 번쩍 돌아왔다.

    “폐하!”

    황제의 시선이 서영왕을 향했다.

    “폐하, 신, 폐하께 옥으로 행차해주실 것을 요청하옵니다!”

    황제는 또다시 어리둥절해졌다.

    “그게 무슨 말인가? 짐이 옥에 가서 무엇을 해?”

    서영왕이 임창백을 흘긋 보곤 입을 열었다.

    “임창백, 자네 증인이 필요하다 했는가? 지금 옥에 가면 그 증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네!” 

    * * *

    옥사 안.

    밖에서 소리가 들리자 옥졸이 소리를 높여 물었다. 

    “누구냐?”

    “식사 배달입니다.” 

    두 옥졸이 눈을 마주치더니 옥졸 하나가 문을 열러 갔다.

    나타난 이는 시위복을 입고 손에 식사 바구니를 들고 있는 평범한 얼굴이었다. 그는 옥졸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주 교두님의 사람인데 오늘 마침 당직이라 밥을 배달하러 왔습니다.” 

    그는 옥졸의 주머니에 은냥을 조금 넣어주면서 말했다.

    옥졸은 주 교두라는 말을 듣고 무언가 알아차린 듯이 물었다.

    “자네, 석씨 집안 사람이오?”

    시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패를 보여주었다.

    옥졸은 그제야 그를 데리고 옥사로 들어가더니 자연스럽게 물었다.

    “석씨 가문 사건은 언제 끝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설마 실형은 안 내려지겠지요?”

    “이 일로 엄청 소란스러운데 아마 며칠 안으로 결정이 날 것입니다. 실형이 내려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대인의 속마음을 어찌 알겠습니까?”

    옥졸도 그 말에 동의하듯이 감방문을 열면서 말했다.

    “들어가시오.”

    이곳에 수감 된 범인은 대부분 서영왕세자처럼 신분이 좀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환경은 그럴듯하게 깨끗하고 책상과 의자도 갖추어져 있었다.

    식사도 괜찮은 편이지만 귀족들은 워낙 진수성찬으로 식사를 해온 사람들이라 이런 음식들은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수감자들은 늘 옥졸들을 매수하여 좋은 음식을 자신이 갇힌 옥사로 들여보냈다. 물론 아무나 옥사 안으로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먹다가 탈이 날 수도 있으니 항상 조심해야 했다. 

    이들 같은 옥졸들을 제외하고는 이들과 잘 아는 시위만이 옥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를테면 이들과 아주 오랜 기간 협력해온 주 교두 말이다. 서영왕부는 예전부터 주 교두를 통해 옥졸들과 관계를 맺어 왔었다. 풀이 죽어있던 서영왕세자는 들리는 말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세자 전하, 어서 식사하시지요.”

    시위는 온화하게 말을 건넸다.

    “전하께서 소인을 보내시어 말씀을 전하라 하였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곧 나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서영왕세자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정말이오?”

    “물론이지요.”

    그는 닭을 고아 만든 국 한 그릇을 올리면서 말을 이었다.

    “며칠 동안 정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닭국을 드시고 몸을 좀 추스르시지요.”

    서영왕세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닭국을 받아서 마시려다가 무슨 생각이 떠올라 또 물었다. 

    “밖에 상황은 어떠한지요? 증거는 찾았답니까?”

    시위는 인내하며 말했다.

    “곧 찾을 겁니다. 닭국부터 어서 드시지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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