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246)화 (246/385)
  • 246화. 대공자가 질 테니까요

    북양태비는 요즈음 바빠졌다.

    그녀는 규모 있는 금은방과 포목점을 직접 돌아다녔다. 좋은 물건이 있다는 소리가 들리면 방문하여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북양태비가 그리 활개를 치며 돌아다니는데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녀의 아들이 혼인하게 됐단 소식은 곧 도성에 있는 콧대 높은 가문으로 퍼져 모두가 알게 되었다.

    그들은 함부로 입방아를 찧진 못했지만, 뒤에서 수군대는 소리마저 작은 것은 아니었다.

    “북양태비의 눈에 든 가문이 어디란 말인가? 그 루 공자에게 시집간단 사람이 있다니!”

    “그러게나 말일세. 가문에서 내쫓긴 이와 혼인이라니, 낯부끄럽지도 않은 것인지.”

    “어디 쥐꼬리만 한 가문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어쨌든 관직도 높고 권력도 있으니 그것에 욕심내는 이가 없진 않겠지. 아니 그런가?”

    “그도 그렇구먼. 그리 빨리 영전하는 것을 좀 보게. 폐하께서 중히 보고 계시니 하늘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력을 거머쥐긴 했어.”

    겉으로야 혀를 차듯 말했지만, 내심은 다들 루안은 꽤 좋은 혼처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보여준 능력을 생각하면 몇 년 지나지 않아 곧 정사당에 들어갈 터였다. 더구나 제가 속한 가문이 없으니 처가에 더욱 물심양면으로 잘 하지 않겠는가? 한 마디로, 지금은 명성이 좀 나쁠지 몰라도 앞으로 3년, 5년, 10년이 지나 제대로 날개를 펼칠 때가 되면, 혼인하고 이룬 가문이 곧 명문가로 자리 잡을 것이란 소리였다.

    ‘대체 누가 그런 노른자를 꿀꺽했느냔 말이지.’

    모두가 궁금해하던 드디어 누군가 입을 열었다.

    “북양태비가 요즘 조방궁에 얼마나 드나드셨는가? 그걸 보고도 다들 드는 생각이 없는 게야?”

    “무슨 생각? 북양태비와 대장공주께선 어릴 적 궁에서 함께 자란 분들이 아닌가? 그게 뭐 이상한 일인가?”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 생각해보게, 친한 두 사람이 각자 아들, 딸이 있으면 맺어주지 않겠나?”

    그 말에 다들 흠칫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공주마마께 무슨 딸이 있어?”

    “배 아파 낳은 아이는 없어도 수양딸이 있잖은가! 그리고 생각을 좀 해보게, 진짜 딸이면 루안에게 딸을 주겠나? 수양딸이라니 딱 좋지. 황가의 명성에 욕이 되지도 않고 루안도 데려올 수 있으니,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님도 보고 뽕도 딸 일이 아닌가!”

    그제야 다들 정신이 번쩍 든 듯했다.

    “아! 수양딸이 돌아가신 지 재상의 손녀라지? 이것 참…… 지 재상께서 살아생전 제 손녀가 그런 불효, 불의한 인간에게 시집가는 걸 보셨으면 뒷목 잡고 쓰러지셨을 것이야!”

    “자네 말이 맞네. 지 재상께서 살아계시지 않으니 가능한 일이지……. 지금 지씨 가문이 얼마나 몰락했는가? 그 가문 사정에 루안을 데려올 수 있는 것만 해도 부처 앞에서 3년 불공은 드려야 할 경사지.”

    “허허, 자네 말이 맞네. 지 재상의 명성만 아깝게 됐구먼.”

    껄껄 웃었지만 내심은 다들 생각이 달랐다.

    ‘사람 목숨, 죽으면 끝인 게지.’

    ‘지 재상이 세상을 뜨고 난 후 가문도 저리 쫄딱 망했는데, 명성은 무슨 놈의 명성이란 말인가?’

    ‘손에 잡히는 게 최고지. 지씨 가문이 아주 현명한 선택을 한 게야!’

    * * *

    지온이 양고기 탕을 파는 심기집에 들어갔다.

    양고기 탕 앞엔 유씨 가문 자제들이 앉아있었다.

    유민이 방실방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큰 오라버니, 오늘 무슨 바람이 불어 나까지 데려와 양고기 탕을 먹여?”

    펄펄 끓는 양고기 탕의 수증기에 가려 유신지의 얼굴이 흐렸다.

    유신지의 음성이 유유히 흘러나왔다.

    “이리 먹을 기회가 많겠느냐? 왔을 때 많이 먹거라.”

    유신지를 바라보며 유민이 대답했다.

    “말이 이상하네, 오라버니? 내가 꼭 금방 죽을 사람처럼…….”

    유민의 머리를 쓰다듬는 유신지의 표정이 자애로웠다.

    “너도 이제 다 크지 않았느냐? 내년이면 곧 혼담이 오갈 것이다. 시집을 가면 다른 집안사람이 되는 것인데, 이리 편히 나와 양고기를 뜯을 수 있겠느냐?”

    유신지의 말에 유민이 문득 슬퍼진 찰나, 그들이 앉은 방의 문이 열리며 지온이 들어왔다.

    “지온 언니? 언니가 어떻게 왔어?”

    지온은 반가운 기색이 얼굴 가득 번지는 유민을 보며 그녀 옆자리에 앉았다.

    “네 큰 오라버니가 불러서 왔지.”

    그제야 무슨 일인지 눈치챈 유민의 입꼬리가 쭉 찢어졌다.

    “이제 보니까 나한테 한 소리가 아니었네!”

    ‘어쩐지, 큰 오라버니가 왜 갑자기 나한테 잘하나 했다.’

    유신지가 점소이를 불러 그릇과 젓가락을 챙기며 지온에게 물었다.

    “드시고 싶은 게 있으십니까?”

    상 위를 훑은 지온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다 있네요. 충분해요.”

    그렇게 식사가 시작되고 유신지는 양고기를 먹으며 지온에게 물었다.

    “날은 잡았습니까?”

    “아직이요. 만수절이 지난 후에 잡으려고요. 제 스승님의 제사도 그즈음이라 그 후로 정하게 될 것 같아요.”

    유신지가 고개를 주억였다.

    “그럼 내년 봄에 혼례를 올리겠군요.”

    그러다 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말했다.

    “아니, 내년 봄은 시간이 촉박하겠습니다. 예물도, 지참금도 준비해야 할 텐데, 그때까지 준비가 되겠습니까?”

    지온은 그런 것은 신경조차 쓰이지 않는 듯 대답했다.

    “어머니가 몇 분이나 계시니 알아서 하시겠지요. 저희는 상관없어요.”

    유신지는 탕을 꿀꺽 삼켰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는 심기집 탕은 어찌 이리 매운 것인지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저도 소저께 무슨 선물을 드려야 할지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유신지와 지온을 바쁘게 보고 있던 유민이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 울어……?”

    유신지는 유민을 먼지 나도록 때려주고 싶었다.

    ‘되바라져 가지고! 설령 내가 진짜 울어도 그걸 입 밖에 내면 어쩌자는 거야?’

    제 사촌 오라버니의 아픈 곳만 찔러대는 이런 녀석,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다.

    지온은 유신지가 손수건을 꺼내 눈을 어르는 것을 보고는 물었다.

    “더 맵게 해달라고 할까요?”

    유신지가 고개를 끄덕이자 지온은 점소이를 불러 매운 양념을 더 추가했다.

    유신지는 편하게 울 수 있었다.

    그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양고기를 하염없이 먹었다. 마지막 남은 고기 한 점까지 그가 가져가자 유민이 꽥 소리를 질렀다.

    “오라버니, 난 몇 점 먹지도 못했단 말이야!”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유신지가 눈물을 그렁그렁 단 채 입을 열었다.

    “양고기 하나 가지고 왜 그러느냐? 더 먹고 싶으면 더 시켜라.”

    지온이 다시 점소이를 불러 고기를 추가했다.

    식사를 끝내고 세 사람은 퉁퉁하게 부른 배를 만족스럽게 두드릴 수 있었다.

    유민이 뒤뚱거리며 일어났다.

    “나, 나 손 좀 씻고 올게.”

    유민이 나가고 두 사람만 남았을 때, 유신지는 탕 그릇을 술잔처럼 지온의 것과 부딪혔다.

    “계속 친우로 지낼 수 있겠지요?”

    “당연하지요.”

    “앞으로도 오늘처럼 양고기 탕을 먹을 수 있는 것입니까?”

    지온이 웃었다.

    “왜 안 되겠어요?”

    유신지가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루안, 그 자식이 나오지 못하게 하면 제가 가서 때려주겠습니다.”

    지온이 고개를 흔들었다.

    “못할 것 같아 그러시는 겁니까?”

    유신지는 어쩐지 취기가 오르는 기분이었다.

    ‘이상하지,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설마 양고기 탕도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것인가?’

    지온이 유신지를 향해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며 대꾸했다.

    “아니요, 대공자가 지실 테니까요.”

    “…….”

    슬픔이 차오른 유신지는 말없이 국물만 삼켰다.

    * * *

    만수절이 며칠 앞으로 다가오자 도성은 사람들로 더욱 붐볐고 성문 앞엔 끊임없이 들어오는 마차 행렬로 매일 깃발이 휘날렸다.

    성문 근처 노점 다관에는 할 일 없는 이들이 그 광경을 구경하며 노닥거리고 있었다.

    “원 세상에나. 마차 열 한 번 길구먼! 저게 다 폐하의 생신 선물인가? 어느 가문인지, 위세 한 번 끝내주는구먼!”

    “표식을 보니 북양왕가의 행렬 같네.”

    “북양왕가? 거기가 그리 돈이 많았나?”

    “이 사람이, 당연하지! 북양왕은 실권을 가진 번왕일세. 대를 이어가며 북양을 다스리는데 가난할 리가 있나? 서영왕이나 비벼볼 수 있겠지.”

    “서영왕의 행렬은 며칠 전에 이미 도성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거기도 이렇게 길지는 않았는데…….”

    “그야 서영 지역은 산도 험준하고 물길도 안 좋지 않은가. 북양에 비해 모자람이 있으니 풍족함도 덜 한 게지.”

    “그렇구먼! 그래도 북양왕의 충심이 참으로 대단하구먼. 며칠을 봤지만 북양왕이 준비한 선물이 가장 많지 않은가.”

    “그렇구먼. 선제께서 계실 적에도 북양왕이 올린 선물이 가장 많았네.”

    길게 이어진 북양왕가의 마차 행렬은 늘어선 길을 따라 끝없이 이어졌고 과시하듯 줄줄이 움직이던 행렬은 도성 안의 북양왕부로 들어갔다.

    업무를 보기 위해 나왔던 관리 두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북양왕가의 행렬인가? 이번엔 북양왕이 직접 왔다던데, 여차하면 우리도 좋은 구경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구먼.”

    “무슨 좋은 구경?”

    “당연히 형제들의 집안싸움이 아니겠나!”

    “오! 그렇지! 그렇지!”

    서로 눈짓을 주고받은 두 사람은 뭐가 즐거운지 껄껄껄 웃음보를 터트렸다.

    그때였다. 

    옆을 지나던 마차 행렬이 돌연 멈추는 게 아닌가?

    ‘음? 무슨 일이지?’

    두 사람이 바라보니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오가는 인파로 가득한 점포 거리만 눈에 들어왔다. 아무 일도 없었다.

    “잠깐! 저길 좀 보시게!”

    그때 한 사람이 무언가를 보고는 손가락질하자 그의 동료도 그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각양각색의 상자와 꾸러미들이 가득한 마차 몇 대가 길을 지나고 있었다. 척 봐도 귀한 물건들을 옮기고 있었다.

    “뭐지?”

    나중에 마차들을 본 동료가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물었을 때였다.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그의 눈에도 바로 무언가 들어왔다.

    북양왕의 마차에서 누군가 내리더니, 시위들과 함께 지나려던 다른 마차 앞에 서는 것이었다.

    상자 꾸러미가 가득한 마차를 끄는 마부는 성격이 좋은 자가 아니었는지, 입을 열자마자 욕설을 터트렸다.

    “길 안 막는 개가 착한 개인 것도 모르나? 꺼져라!”

    그러나 시위대장으로 보이는 이는 비켜서지 않았다. 비켜서지 않았다 뿐인가, 아예 팔짱을 끼더니 짝다리까지 짚고 섰다. 그의 입에서 무척 성가시다는 듯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난 또 누구라고? 인제 보니 넷째 공자의 제일가는 수족, 한등 나리 아니신가? 그런데 어쩌다 마부 노릇까지 하게 됐나?”

    이름을 듣자마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관리가 흥분으로 손까지 쫙 펼치며 입을 열었다.

    “한등?! 루안 곁의 그 시종……!”

    “그냥 시종이 아닐세!”

    동료가 제 옷소매를 움켜쥐며 끼어들었다.

    “북양에 있을 적엔 품계까지 있었는데, 루안을 보호하려고 시종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더구먼.”

    그제야 놀라던 관리는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갔다.

    “시종이면서 시위라는 것이로구먼! 아무튼, 루안의 심복이란 소리 아닌가?”

    “그렇네.”

    동료의 눈이 새초롬하게 휘어지며 웃음을 머금었다.

    “북양왕가의 마차가 도성에 들어오자마자 이리 두 편이 만나다니, 이런 일이 있나!”

    “하하하, 정말 좋은 구경하게 생겼구먼!”

    날씨가 쌀쌀한지라 두 사람은 재미난 구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아예 길가에 있는 탕면 노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후루룩 탕면을 먹으면서도 이들은 여전히 시선을 그곳에 고정한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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