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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 (243)화 (243/385)
  • 243화. 미복(微服) 암행

    최근 소씨 가문은 여러모로 웃음거리였다.

    소 공자가 패싸움에 휘말려 물에 빠진 일이 있었다. 그 뒤엔 소달이 서생들을 모함하여 죄를 씌우려다, 서생들이 궁문 앞에서 정좌 시위까지 벌이지 않았던가. 결국 황제가 직접 나선 끝에 소달만 볼기짝을 맞게 되어, 한동안 이 일은 식사 때마다 모두를 즐겁게 하는 우화로 전락했다.

    그런데 이번엔 소씨 가문의 공자가 혼인할 부인을 찾는다는 소식으로 도성이 떠들썩해졌다.

    민보를 발행하는 주인은 열광하는 소식을 다루는 것에 빈틈이 없었다. 소씨 가문 앞으로 사람을 파견해 어제는 소 부인이 누굴 만났고, 오늘은 또 누굴 만났는지 낱낱이 기록해 연재를 하는 통에, 누가 며느리가 될지 내기판까지 벌어진 것이었다!

    ‘소씨 가문의 며느리 찾기’로 민보의 발행량도 크게 늘었다. 유명한 주루와 다관에서는 민보 전용석까지 만들어 매일 올라온 소식을 읽어가며 즐길 정도였다.

    매일 아침 따끈따끈한 민보가 나올 때면 앞집 뒷집 옆집 할 것 없이 싹 다 주루나 다관으로 몰리다 보니 장사까지 흥해, 주인들의 입꼬리가 내려올 줄을 몰랐다.

    뿌리 있는 집안은 소씨 가문과의 혼인이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니었지만, 소씨 가문의 대단한 권세마저 부정하지는 못했다. 뿌리 없는 집안은 더욱이 그들의 재력에 눈이 팽팽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소 부인은 미친 듯이 바빴다. 너무 많은 이들이 몰려 모든 이들을 일일이 만날 시간조차 없었던 것이다. 결국, 손 이모가 방법을 냈다.

    “난난,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씩 보고 만나다간 다 보지 못하겠구나.”

    소 부인은 눈이 다 풀려있었다.

    “그럼요? 달리 어떻게 본단 말이에요?”

    “폐하께서 비를 간택하실 때를 생각해 보거라. 그때도 많은 이들이 몰리지 않더냐? 그때 어떻게 하시는지 알아보고 우리도 그리하면 되지 않겠느냐?”

    소 부인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왕후부의 공자들 역시 혼사를 이리 계속 지켜보지는 않을 게 아니냐?”

    소 부인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들은 대부분 꽃놀이 연회 같은 것을 열어 마음에 든 가문의 소저를 초대했다. 그 연회 중에 서로 만나보고 마음에 들면 상대의 의중을 알아본 후에 마지막에 혼사를 논했다.

    그리하면 설사 눈에 차는 이가 없어도 감정 상하지 않고 일을 아주 점잖게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우리도 꽃놀이 연회를 준비할까요?”

    막 말을 꺼내던 소 부인은 금세 고개를 저었다. 날씨가 이런데 꽃을 어디서 가져온단 말인가? 국화도 끝물이었고 매화는 아직 피지 않아 꽃놀이할 만한 계절이 아니었던 것이다.

    ‘무장 집안이라 시회를 여는 것도 맞지 않고…….’

    그녀가 고민을 말하자 손 이모가 웃으며 대답했다.

    “여긴 없어도 다른 곳엔 꽃이 피어있지 않으냐?”

    “어디요?”

    “조방궁 말이다. 그곳이 도성에게 꽃을 제일 잘 가꾸는 곳이지 않으냐?”

    조방궁이란 말에 소 부인은 대장공주와 지온이 떠올랐다. 그리고 곧바로 납치에 실패한 일까지 연이어 떠오르자 소 부인은 저도 모르게 밭은기침이 나왔다.

    그녀가 죽어라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거긴 제가 절대 못 가요.”

    손 이모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뭣 때문에?”

    망설이던 소 부인이 꽥 소릴 질렀다.

    “대장공주가 있잖아요!”

    “아!”

    그제야 깨달은 듯 손 이모가 입맛을 다시고는 재차 그녀를 설득했다.

    “네 생각이 너무 멀리 갔다. 아무리 조방궁에서 수행하고 계시다지만 공주마마께서 어떤 신분이신데 함부로 뵐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향객이 오는 곳엔 나오시지도 않는다.”

    “하지만…….”

    “일을 보는 건 주지야.”

    손 이모가 그녀의 손등을 도닥거렸다.

    “조방궁이 얼마나 큰 곳인데, 외부 행사와 관련된 일은 능양 주지가 다 보는 게야. 네가 능양 주지에게 말만 잘하면 꽃놀이 연회도 열 수 있지 않겠느냐?”

    “그, 그게 될까요?”

    소 부인이 망설였다.

    “되다마다!”

    손 이모가 단언했다.

    “못 믿겠으면 능양 주지에게 사람을 보내 가능한지 묻기만 해도 되지 않겠느냐?”

    끝내 설득된 소 부인은 조방궁에 바로 사람을 보냈다.

    능양진인은 딱히 위세를 떨지도 않고 바로 나와 맞았다.

    소 부인의 의견을 들은 그녀가 흔쾌히 대답했다.

    “어려울 게 무엇이겠습니까? 난지원을 내어 드리겠습니다. 그곳은 대장공주마마께서도 자주 오지 않으시니 마음 푹 놓으세요!”

    * * *

    회색 종이를 든 어린 내시가 종이에 적힌 내용을 황제에게 읽어주고 있을 때 루안이 입궁했다. 장주(章奏)를 황제에게 전달한 루안은 중요한 정무를 하나하나 보고했다.

    황제가 모든 장주를 다 검토할 때까지 기다리던 루안은 황제가 일을 마무리 짓자 그에게 물었다.

    “폐하, 혹 민보(民報)를 듣고 계십니까?”

    이에 황제가 웃으며 말했다.

    “자네도 민보(民報)를 아는군?”

    루안이 대답했다.

    “궁 밖에서 민보가 흥행하는지라 신 역시 보았습니다.”

    그러며 루안은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폐하께서 듣고 계시는 그 민보 역시 제가 들여온 것이지요.’

    황제는 웃으며 말했다.

    “민보가 꽤 재미있더군. 먼지 같은 일을 기록했다지만, 내용이 파란만장하여 사람의 이목을 당기고도 남아. 아, 듣자니 소씨 가문에서 며느리를 찾는다지? 짐이 민보를 보니 매일 진행 상태를 알려주고 있더구먼. 그 바람에 짐도 요 며칠 소달을 볼 때마다 자꾸 묻고 싶어져.”

    루안이 입꼬리를 삐죽 올리곤 웃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소 부인께서 내일, 조방궁에서 군방연(群芳宴)을 연답니다. 곧 결론이 나겠지요.”

    “그러한가?”

    흥이 도는지 황제가 덧붙였다.

    “짐 역시 구경하러 가고 싶구먼.”

    루안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폐하께서 대장공주마마를 뵈러 가시면 보실 수 있지 않으시겠습니까?”

    “흐음…….”

    황제의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그저 황제란 자리가 자리이다 보니 억지로 정무를 보고 있을 뿐, 본래 정무를 보는 것을 즐기는 이가 아니었다. 황궁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황제는 가슴이 뛰었다.

    “짐이 자주 미복(微服) 암행을 나서는 것도 신하들 보기에 좋지 않을 게 아닌가?”

    황제가 슬쩍 뺐다. 그는 사실 루안이 한두 번은 더 권하리라 생각하고 자중하는 척을 했던 것인데, 뜻밖에 루안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닌가?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말문이 콱 막힌 황제는 애꿎은 목만 꿀렁이며 복잡한 눈으로 루안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루안은 다른 의도는 전혀 없다는 듯, 그저 황제가 검토를 마친 장주만 도로 받아들더니 곧 물러났다.

    루안이 그리 떠나고 황제는 좀체 마음을 잡을 수가 없었다. 계속 봐야 하는 장주가 있었지만 더는 보고 싶지 않아진 황제는 어린 내시에게 민보를 계속 읽으라고 지시했다.

    얼마 후, 호은이 식사 준비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어린 내시가 말했다.

    “폐하, 민보를 모두 읽었사옵니다.”

    그때까지도 황제는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갈 곳을 알지 못하는 방랑자처럼 그의 손이 어안(*御案: 황제 전용 탁자) 위에서 이리저리 방황했다.

    황제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어린 내시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폐하, 아니시오면 대장공주마마를 뵙고 오시는 게 어떠하신지요? 지난번 비적 사건으로 공주마마께서도 몹시 놀라셨으니, 찾아뵙고 안부를 전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사옵니까?”

    이는 예상 밖의 의견이라 황제는 조금 놀랐다.

    비적 사건이 있고 황제는 강왕비를 다독이기 위해 강왕부에 들렀었다. 그리고 대장공주에게는 견백(*絹帛: 과거 중국에서 직물로 만든 물건)을 하사했는데, 겉으로는 강왕비를 구해줘 감사하단 명분을 내세웠으나 실은 그녀의 마음을 다독이기 위함이었다.

    대장공주도 황제의 친모를 그리 만들었으니,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더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렇게 양측 모두 마치 그런 일이 없었던 듯 그 일에 관해 거론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 없던 일이 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루안이 한 이야기를 떠올린 황제는, 이 일로 인해 가장 크게 손해를 입은 이가 바로 자신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대장공주가 자신을 도와준 게 몇 번이던가? 그런데 강왕세자가 일을 이리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바람에, 앞으로는 제게 문제가 생겨도 과연 대장공주가 도와줄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황제는 계속해서 그 일을 마음에 두고 고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린 내시가 바로 그 마음을 파고든 것이다. 그의 마음은 더욱 흔들렸다.

    거기에 어린 내시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내일은 마침 조회가 없는 날이오니, 정무를 조금 일찍 끝내시면 조방궁에 다녀오실 시간이 되실 것이옵니다. 어떠하시옵니까?”

    어린 내시를 흘끔 쳐다본 황제가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어린 내시가 웃으며 대답했다.

    “소인, 소희라 하옵니다.”

    황제가 주억이며 말했다.

    “작은 기쁨이라! 길한 이름이로구나.”

    그리고 황제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 * *

    다음 날 오전.

    황제가 정무를 끝내자 호은이 그에게 물었다.

    “폐하, 수라를 드시겠사옵니까?”

    황제가 손을 흔들었다.

    “오후에 특별한 일이 없으니 고모님께 들려야겠다.”

    호은이 멈칫했다.

    현재 황제에게 ‘고모님’은 대장공주뿐이지 않은가!

    ‘출궁하시겠다는 말씀이신가? 어제는 가지 않으시겠다고 하시더니?’

    “멍하니 뭘 하는 것이냐? 어서 가서 채비하거라. 소희, 넌 짐의 환복을 돕거라.”

    그 말인즉슨, 미복(微服)을 하고 나가겠단 말이었다.

    호은이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리하겠사옵니다.”

    * * *

    황제가 궁을 나선 그 시각.

    소식을 접한 루안은 제 일을 고찬에게 모두 넘기고, 역시나 조방궁으로 향했다.

    그가 조방궁 입구에 내렸을 때 마침 황제는 호은과 조방궁 입구에 있는 계단에 올라서고 있었다.

    “루안?”

    황제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루안은 황제보다 더욱 놀란 눈이 되었다. 곧이어 주변을 휙휙 둘러본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폐하, 미복(微服) 암행은 좋지 않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민망한 표정을 한 황제가 대답했다.

    “마침 정무를 모두 끝낸 참이라 고모님을 뵈러 온 것이야. 그런데 자네는? 관아에 있지 않고 왜 여기 있는 것인가?”

    잠시 머뭇거린 루안이 황제와 똑같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최근 어머니께서 조방궁에 자주 걸음을 하고 계시온데, 조금 전에 갑자기 신을 부르셨사옵니다.”

    황제가 물었다.

    “북양태비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인가?”

    루안이 두루뭉술 대답했다.

    “역시 그 일 때문입니다.”

    “무슨 일 말인가?”

    어리둥절 묻던 황제가 퍼뜩 무언가를 떠올렸다.

    “오, 자네의 혼사말인가?”

    고개를 끄덕이는 루안은 다소 불편해 보였지만 황제는 그저 웃었다.

    “자네 나이가 어린 것도 아니니 당연한 게지. 내 벌써 몇 년 전부터 그리 중매를 서겠다고 나섰는데, 기어코 싫다더니만.”

    루안은 딱딱한 웃음과 함께 황제와 조방궁의 대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득 궁금한 것이 떠올랐는지 황제가 물었다.

    “태비가 마음에 둔 이는 어느 집안 소저라던가?”

    “폐하께서도 아시는 소저입니다.”

    “오?”

    황제는 더욱 호기심이 동했다.

    “대체 어느 집안의 소저인가! 어서 말해보게.”

    루안이 슬쩍 고개를 들어 조방궁의 대문을 향해 시선을 들자 황제는 깨달았다.

    “고모님의 그…….”

    황제는 기억해냈다.

    북양태비는 대장공주와 어린 시절을 함께한 사람이었다. 당시에는 친우라 하긴 어려웠고 오히려 배척하는 사이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번에 도성에 돌아온 후로 북양태비는 대장공주와 마치 한 몸이라도 된 듯 가깝게 지냈다.

    조방궁에 자주 드나들며 이곳에 있는 선고를 마음에 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유일하게 출가하지 않은 바로 그 사람일 터!

    ‘지온 소저.’

    지온 소저의 외양이 얼마나 출중하던가! 그 역시 얼굴을 본 것은 겨우 몇 번이었지만, 기억이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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