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224)화 (224/385)

224화. 죽음을 자초하겠다니

소식을 전해 들은 주인장이 몹시 놀라자 이상함을 느낀 정씨가 물었다.

“왜요?”

주인장이 루안을 가리켰다.

“루 대인이 이미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 온이를 찾겠다고 도성 전체가 지진 난 것처럼 난리야.”

내심 안심이 되면서도 동시에 놀란 정씨가 감탄해 마지않았다.

“동상이몽이 아니라, 이상동몽을 하는 사람을 만나다니. 온이가 사람 하난 제대로 찾은 것 같네요.”

루안이 옅은 미소를 띠며 물었다.

“저택은 어디에 있습니까?”

정씨가 위치를 전했다.

“오, 그곳이라면 거기와 가깝겠습니다…….”

* * *

성문 근처 노점 다관.

대장공주가 그늘진 얼굴로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장공주에게 성큼 걸어 다가온 북양태비가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찾은 지 꽤 시간이 흘렀어. 이 정도면 난리도 크게 쳤고.”

“백성들 반응은 어떤가?”

“다들 네가 침소봉대(針小棒大)한다고 떠들지. 겨우 귀가를 좀 늦게 한 걸 가지고 이 난리라니, 어디 가서 신나게 놀고 있는지 누가 알겠냐는 반응이야.”

대장공주가 안도했다.

“그럼 되었어.”

저를 두고 황당한 위세를 부리고 있다 떠들어 댈수록 지온의 진짜 실종에 대한 관심은 멀어질 터였다.

‘하지만 이 일을 완벽하게 덮기 위해선 최대한 빨리 온이를 찾아야 해.’

“그 녀석에게선 무슨 연락이라도 왔나?”

“성 밖으로 데리고 나간 것은 거의 확실한 모양이야. 행적을 쫓을 단서를 찾았다며 우리보고는 최대한 크게 일을 키워달라고 했어. 그래야 움직이기 좋다고.”

고개를 끄덕인 대장공주가 차 한 모금을 들이켰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시위들을 향해 대찬 고성을 질렀다.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겠느냐? 이리 굼떠서야 어느 시일에 찾는단 말이야!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면, 네놈들이 책임질 수 있겠느냐?”

욕을 먹은 시위들은 더욱 공격적으로 수색하기 시작했다.

시위들의 수색이 강해질수록 질문을 받는 이들의 기분도 덩달아 상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쌓인 불만은 점점 커져만 갔다.

‘높으신 분들이란! 사람 피곤하게시리!’

‘겨우 귀가가 좀 늦은 걸 가지고 이 난리를 쳐야겠어?’

그때, 어디선가 마차 행렬이 다가왔다. 길이 막힌 것을 확인한 듯, 곧 마차에서 누군가 내리더니 대장공주에게 예를 갖췄다.

“공주마마를 뵙습니다.”

저를 향한 음성에 대장공주가 흘끔 시선을 보냈다.

“자넨 누군가?”

마차에서 내린 귀부인은 바들거리긴 했지만, 얼굴에 띤 우호적인 미소마저 잃지는 않았다.

“신부(*臣婦:기혼녀가 자신을 신하로서 부르는 호칭)는 금군부통령, 소씨 가문의 안주인입니다…….”

“오…….”

대장공주는 금방 그녀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소달의 부인이로군? 밤이 이리 늦었는데 성을 나서는가? 지금 나서면 오늘 밤엔 돌아오지 못할 것인데?”

소 부인은 이를 꽉 물었다.

“집안에 일이 생겼습니다. 일이 다급하여…….”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대장공주가 불퉁한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그럼 가야지, 내가 성을 나서지 못하게 막는 것도 아니고.”

“감사합니다, 공주마마.”

시위가 비켜서자 소씨 가문 사람이 성문지기에게 직접 손으로 쓴 명령서를 건네 보였다.

마차가 떼 지어 성 밖으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게 빈틈없이 막힌 마차 안에서 몽롱한 음성이 들려왔다.

“어머니, 저희 어디로 가는 건가요…….”

닫힌 성문 너머에서 끝 간 데 없이 무겁게 가라앉은 대장공주의 냉혹한 음성이 울렸다.

“이럴 작정이었군. 저 죽을 자릴 찾는 줄 모르고…….”

* * *

야탁이 초경(初更)을 알렸다.

조용한 밤이 내려앉은 장원 창가에, 처량한 신색의 강왕비가 달빛을 받고 앉아있었다.

시비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날이 서늘합니다, 왕비마마. 쇤네가 창을 닫아드리겠습니다.”

강왕비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 말거라. 창을 닫으면 달빛을 볼 수가 없지 않느냐?”

시비가 그녀를 다독였다.

“몸도 좋지 않으신데, 한기라도 드시면 어쩌시려고요.”

“한기가 들면 드는 것이지. 그래서 병이라도 들면, 녀석이 날 놔주는지 내 확인할 수 있을 게 아니냐!”

강왕비가 부들거리며 화를 냈다. 시비가 황공해하며 입을 열었다.

“어찌 마마의 귀중한 몸을 그리 다루려 하십니까! 얼마간 시일이 흐르면 다시 강왕부로 돌려보내주실 거라, 세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물며 요의 공자께서도 마마의 손이 필요하신 것을요.”

제 아들 요의를 떠올린 강왕비는 전처럼 마음 아파하지 않았다. 도리어 왈칵 역정부터 나지 않던가.

강왕부에서 지낼 적엔 그녀와 요의 두 사람 모두 시중들 이가 빼곡하게 많아서 자질구레한 잡일 따윈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니 요의는 강왕비 앞에서 아양이나 떨면 되었고, 그녀 역시 제 심장이라도 내어줄 듯 애정 가득한 말로 혀만 놀리면 되었으니 모자(母子), 두 사람의 사이가 나쁠 일이 뭐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장원으로 나오고부터 사정은 달라졌다.

요의는 칼침을 맞은 후로, 목숨은 건졌으나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하루하루를 장원에 갇힌 채 침울해하며 허우적댔고, 움직이질 않다 보니 그의 몸은 더욱 약해져 수시로 앓았다.

장원의 종들은 강왕부만큼 유능하질 못했다. 무슨 일이든 제 책임이 될까, 걱정이 태산이었던 총관은, 작은 일만 생겨도 강왕비를 찾아와 고했다.

강왕비는 요의를 다독여 기운을 불어넣어 주고 싶다가도, 요의가 늘 어둡고 우울한 얼굴만 보여주니 그럴 마음이 싹 사라졌다.

그렇지 않아도 본성이 이기적인 두 사람이, 뱃속 가득 불만까지 쌓였으니 말 몇 마디만 걸치면 싸움이 되지 않겠는가.

강왕비는 요의가 전처럼 다정하고 착하지 않다고 불평했고, 요의는 그녀가 제 마음을 몰라준다며 소리를 쳐댔다.

그렇게 모자, 두 사람은 원수지간이 되어갔다.

강왕비는 후회했다.

‘얼간이 같은 놈. 저놈이 아니면 내가 여기까지 왔겠어?’

요의가 이런 아이인 줄 미리 알았다면 자신도 굳이 요의를 위해 복수하려 들지 않았을 터였다.

그러나 후회는 언제나 늦기에 후회가 아니던가.

그녀는 제 큰아들로부터 저를 데려간단 소식이 오길 오매불망 기다리는 것 말고, 달리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시비가 계속 그녀를 설득하려 했지만, 강왕비는 괴팍스레 굴었다.

“침수를 안 들면 또 어떻다고! 어차피 여기 처박혀 먹고 자는 것 말고 하는 일도 없지 않아! 찾아오는 손님도 없는데, 시간은 무슨 시간 타령이야! 다들 물러가거라!”

욕을 먹은 시비가 어쩔 수 없이 떠난 후 강왕비는 다시 달구경에 빠졌다.

다들 달에는 신선이 산다고 했는데, 어찌 저를 구해주러 오지 않는지 알 길이 없었다.

상념이 깊어질수록 슬픔도 함께 불어나 주르륵, 기어코 강왕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훌쩍이고 있자니, 문득 처마에 내려앉은 달빛 가운데 까만 점이 불쑥 나타나는 게 아닌가! 까만 점 같던 그것은 점점 선명해지며 인형(人形)에 가까워졌다.

멈칫한 강왕비가 제 눈을 비볐다.

‘신선께서 정말 날 구하러 오신 게야?’

채 눈을 비비던 손이 떨어지기도 전, 까만 신형은 이미 그녀가 있는 창가 앞에 당도했다.

신형이 손날을 내려침과 동시에 강왕비가 끙 하는 소리를 내며 넘어갔다.

까만 점, 정씨는 재빨리 방을 훑었다.

시비들이 막 강왕비에게 욕을 먹고 내쫓긴 뒤가 아니던가. 벌어진 일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대충 모포를 가져다 강왕비를 둘둘 만 정씨가 그녀를 둘러메고 조용히 장원을 빠져나갔다.

* * *

루안은 장원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씨를 본 루안이 다가갔다.

“아무런 문제도 없었습니까?”

정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대답을 들은 루안은 한등에게 눈짓해 강왕비를 넘겨받았다. 일행은 다시 몸을 숨겼던 곳으로 돌아갔다.

“공자님.”

야우가 쪽지를 건넸다.

“태비께서 전해오신 소식입니다.”

건네받은 쪽지를 일별한 루안의 얼굴에 냉소가 들어찼다.

“역시 그랬군.”

“뭔데, 뭔데?”

유신지가 몸이 달아서 묻자 루안이 숨기지 않고 말했다.

“소 부인이 소염을 데리고 성을 벗어났다는군.”

잠시 멈칫했던 유신지가 어찌 된 일인지 깨달은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가 노성을 토했다.

“염치를 모르고 그런 수치스러운 짓거리를!”

루안이 비웃음을 흘렸다.

“목숨을 해치지 않고 도리어 며느리로 삼는 것이니, 저들은 손에 사정을 뒀다고 생각하겠지.”

소식을 들은 정씨는 경악을 금치 못하다 믿을 수 없단 듯 입을 열었다.

“소씨 가문은 다들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닙니까? 온이를 며느리 삼았다가, 그 아이가 집안을 멸문시켜 버리면 어쩌려고요?”

무덤 풀이 세 치는 자랐을 화옥과, 기르는 개 마냥 얌전해진 능양진인을 떠올리던 정씨는, 소씨 가문 사람들이 인생을 말아먹으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루안의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머리가 있다면 이런 일을 벌였겠습니까? 처음부터 실현할 수 없는 계획이었습니다.”

저들은 이 혼사를 깰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신경을 쓸 줄 알았겠지. 그러나 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기든 반드시 그녀를 신부로 맞이할 것이다.’

루안이 시선을 내려 둘둘 말린 강왕비를 보았다. 모포를 발로 툭 차는 그의 시선이 새파랗게 시렸다.

“운이 없다고 생각하시오. 인질로 교환하려 했는데, 이리되면…….”

‘그리 죽고 싶어 하니, 내 죽을 자릴 알아봐주지!’

* * *

소씨 가문은 많은 인력을 데려왔다.

셀 수도 없는 호위가 마차를 물 샐 틈 없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그들도 오늘 일이 벌어지리란 것을 아는 듯했다.

장원 근처에 도착했을 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챙챙!

호위들이 검, 창 할 것 없이 제 무기를 뽑아 들었다.

“멈추시오, 일행이오!”

불쑥 모습을 드러낸 이가 작게 소리치자 호위대장이 상대의 신분을 확인하고는 그를 소 부인에게 데려갔다.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건장한 사내를 본 소 부인은 다소 겁을 먹었다.

“자, 자네가 노야가 말한 그…….”

“부인을 뵙습니다.”

털보가 예를 갖췄다.

“준비는 끝났으니, 시작하시면 됩니다.”

“오…….”

정신이 없는 듯, 소 부인이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 호위에게 명을 내렸다.

“저택으로 들어가게.”

호위대장이 슬쩍 입을 열었다.

“부인, 저희 마차에 문제가 생겨 장소를 빌리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 후에 장원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아, 그렇지, 그렇지!”

소 부인이 얼른 말을 바꿨다.

“먼저 마차 바퀴에 문제가 생겨야겠군. 자네가 손 좀 쓰게.”

차고 있던 칼을 빼든 호위대장이 마차 바퀴에 대고 칼을 몇 번 휘둘렀다. 슥슥하는 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바퀴가 빠지며 마차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소 부인은 미처 대응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정신을 놓고 있다가 마차가 기울자 벽에 머리를 박고 아픔에 비명을 질렀다.

그녀가 하는 것을 본 호위대장은 차라리 제가 일을 주도하기로 했다.

“여봐라! 마차가 망가져 움직일 수 없으니 유숙할 만한 장소를 빌려라!”

“네!”

호위들이 대답했다.

호위대장은 이미 언질을 해두어 준비가 된 호위 몇명에게 지시를 내렸다.

“너희! 너희는 가서 보고를 올려라.”

“네!”

각자 횃불을 든 호위들이 장원 앞에 당도했다. 이윽고 소란스러운 고함 소리가 터져나왔다.

“비적(匪賊)이다!”

“인질을 잡고 있다!”

“어서 구해라!”

흔들리는 횃불 빛과 날카로운 고함에 어두운 밤이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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