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222)화 (222/385)
  • 222화. 크게 벌어진 판

    경소소는 귀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장공주가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늘 무슨 날이기에 숙모님께서 다 찾아오셨지?”

    슬하에 자식이 없던 대장공주는 경소소와 경소소의 형제자매들에게 마음을 쏟으며 이 아이들을 아꼈고, 경소소는 제 ‘공주 숙모’를 무척 좋아했다.

    기분이 좋아진 경소소가 발을 동동거리며 전정(前庭)에 도착했을 때 경소소의 귀에 대화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단 말입니까? 감히 마마의 수양딸에게 마수를 뻗다니요!”

    정국공이었다.

    대장공주가 비소(誹笑)했다.

    “내 오래 숨죽이고 살다보니 우습게 보인 모양입니다!”

    정국공 부인이 말했다.

    “그보다 사람부터 찾는 것이 급합니다.”

    대화를 들은 경소소의 가슴이 쿵, 떨어졌다. 다급히 안으로 들어간 그녀가 물었다.

    “어머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셨던 것입니까? 지온 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에요?”

    경소소가 온 것을 본 대장공주는 급히 물었다.

    “소소야, 오늘 온이와 나갔을 때 혹 누구라도 만나지 않았느냐?”

    경소소가 멍하니 고개를 흔들었다.

    “없었어요. 꼬치구이를 먹고 같이 근처를 돌아다녔어요. 제가 지온 언니가 마차에 오르는 것도 봤는데……. 사람을 찾는다니, 지온 언니가 사라진 건가요?”

    정국공 부인이 대답했다.

    “지온이가 여태 돌아오지 않았어. 붙여 둔 암중호위는 공격당해 혼절했고, 마부도 이미 다른 사람으로 바꿔치기를 한 모양이다.”

    “네?!”

    경소소가 소리쳤다.

    “숙모님! 저도 숙모님과 함께 찾으러 가겠어요!”

    그러나 대장공주가 거절했다.

    “온이가 실종됐는데 너까지 그들 눈에 띄면 어찌해? 그러니 차분히 집에 머물러 있거라. 네 아버지가 도와주실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정국공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주버님께서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정국공이 끄덕였다.

    “바로 시위들과 집안 장정들을 불러 모으겠습니다. 모을 수 있는 최대한 불러 모아 데려가겠습니다.”

    그 말에 벅찬 얼굴이 된 대장공주가 고개를 주억였다.

    “감사합니다, 아주버님. 저는 그럼 다른 곳에 들러 인력을 더 모아야겠습니다.”

    그때 정국공 부인이 그녀를 불렀다.

    “그리하시면 일이 너무 커지지 않겠습니까? 미혼의 소저가 야밤에 실종됐단 소식이 퍼지면 좋지 않을 것입니다. 저희가 조용히 찾아 데려오는 것이 더 좋지 않을는지요?”

    이는 일반적이고 정석적인 방법이었다. 관가 소저의 실종엔 안전도 중요하지만, 명성도 못지않게 중요했다. 자칫 잘못하면 여생 전반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장공주는 그 역시 거절했다.

    “아니에요, 무조건 일을 크게 키워야 합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정국공 부인의 시선에 오만하게 고개를 든 대장공주의 얼굴이 들어왔다.

    “난 대장공주입니다. 그러니 내 수양딸이 실종된 것은 당연히 큰일이지요! 설령 그 아이가 놀이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던들, 그래서 한 두 시진 늦은 귀가를 한 것일지라도, 이는 큰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 * *

    이미 오랫동안 도성을 떠나있던 북양태비와 안면이 있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무장들 사이에서는, 과거 혁혁한 위명을 떨쳤던 곽씨 가문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녀는 그 중 연락이 되는 몇 가문을 택해 직접 대문을 두드렸다.

    옛정이든, 아니면 북양 루씨 가문의 눈치를 본 것이든, 그녀가 찾아간 곳 전부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 * *

    한편, 유신지는 친우의 초대를 받아 술자리에 가는 길이었다.

    주루에 당도하기 전, 한 무리 포리(捕吏)들이 그의 곁을 지나쳤다. 유신지는 미처 몇 발자국 떼기도 전에 다른 병사들의 무리가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길을 벗어나자 조사하는 무리는 여러 가문에서 나온 시위들로 바뀌었다. 여기저기 조사를 벌이는 이들로 거리가 북적이고 있던 것이다.

    부주가 의아한 듯 입을 열었다.

    “공자님, 탈옥한 죄인이라도 있는 걸까요? 다들 무척 긴장한 것 같습니다.”

    유신지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 같지는 않아. 잘 봐라, 다들 왕후부에서 나온 이들이 분명하지 않으냐? 그것도 한두 집이 아니야. 혹 어느 가문의 아이가 사라져 찾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군.”

    “소인이 가서 물어보겠습니다!”

    궁금증이 가슴을 간질이는 듯해, 부주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소리치며 뛰어나갔다.

    설레설레 고개를 흔든 유신지가 중얼거렸다.

    “저런 녀석이 시종이라니. 공자인 내가 말이 통해 망정이지.”

    그새 시위 하나를 잡은 부주가 몇 마디를 나누는 것 같더니 갑자기 고개를 돌려 크게 소리쳤다.

    “공자님! 어서, 어서 와보십시오!”

    연신 손을 흔들며 소리치는 부주가 왜 저러나 싶어 유신지가 다가갔다.

    “무슨 일이냐?”

    느긋한 걸음에 답답해하며 부주가 그를 바짝 끌어당겼다. 입을 여는 부주의 목소리가 초조했다.

    “사라진 게 지 소저입니다.”

    유신지의 신형이 멈칫했다.

    “지 소저라면…….”

    “누가 또 있겠습니까, 당연히 둘째 공자님과 혼약이 있었던 그분이시죠!”

    유신지의 표정이 단번에 굳었다. 그가 시위를 붙들고 물었다.

    “어떻게 된 것이오? 지온 소저가 어쩌다 사라져?”

    붙들린 시위는 북양태비의 부탁으로 온 이였다.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하는 그는 귀찮은 듯 손을 저었다.

    “나도 모르오, 아무튼 상부에서 우리에게 찾으라 명했소.”

    말을 마치자마자 시위가 돌아서서 가버리자 부주가 불안한 얼굴로 유신지를 바라보았다.

    “공자님…….”

    주변으로 연신 시선을 돌리던 유신지의 눈에 드디어 안면이 있는 이가 들어왔다. 그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동 형님!”

    동씨 집안의 사내가 돌아보았다.

    “자네는…….”

    유신지가 웃는 낯으로 공수했다.

    “오래 못 뵀네요, 저 유신지입니다.”

    “아, 유 대공자셨습니까!”

    그제야 유신지를 떠올리고 적잖이 놀란 동 공자는 감회가 남달랐다.

    무장 집안인 제 가문은 근 몇 년간 가세가 많이 기울어, 유씨 집안과 왕래를 바랄 처지가 아니었다. 같은 공간에 함께 있을 수 있었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거릴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유씨 집안의 대공자가 저를 알아보고 찾은 것이다.

    유신지가 다정스레 물었다.

    “마침 지나가는 길에 형님께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아서요.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혹, 무슨 일인지 알려줄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 말에 퍽 감동한 동 공자는 말도 부드럽게 나갔다.

    “제 집안일은 아니고, 그것이…….”

    주변을 두리번거린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실은 대장공주의 수양딸이 사라졌습니다. 저희는 공주마마를 도와서 찾고 있는 것이고요.”

    몹시 놀란 얼굴의 유신지가 물었다.

    “지온 소저가요? 저희 집안도 안면이 있는데, 어찌 된 일이랍니까?”

    손을 흔드는 동 공자의 표정이 어색해졌다.

    “오늘 정국공부의 소저와 만나 밖에서 놀다가 각자 헤어졌는데, 귀가하지 않았답니다. 대장공주께서 걱정이 되셨는지, 기어코 찾아야겠다고 나선 것이지요. 사실 사라진 지 아직 한 시진도 되지 않았다 합니다. 막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으니, 어쩌면 다른 곳에서 더 놀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그의 음성에 짜증이 섞여 있었다. 대장공주가 별것도 아닌 일을 크게 만든다며 불평하는 마음도 엿보였다.

    유신지가 웃으며 대꾸했다.

    “슬하에 아무도 없으셨던 대장공주께서 어렵게 들이신 수양딸이니 마음을 졸이실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지나가는 듯 슬쩍 질문을 던졌다.

    “어디서 없어졌다 합니까?”

    “화정교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동 공자와 다음에 얼굴을 보자며 약조하고 헤어진 유신지는 초대받은 술자리에는 가지 않기로 했다.

    그가 부주를 불러 지시를 내렸다.

    “넌 바로 집으로 돌아가 사람을 데려와 같이 찾거라!”

    그러나 부주는 떠나지 않고 물었다.

    “그러면 일이 더 커지지 않겠습니까? 나이도 어린 소저가 사라진 게 이리 크게 알려지면 평판에 흠이 될 텐데요?”

    유신지가 고개를 저었다.

    “아마 루안이 낸 방법일 거다. 그 녀석이 지온 소저의 평판을 고려하지 않을 리가 있겠느냐? 겨우 한 시진 밖에 안 됐는데 일을 이렇게 키운 걸 보면 지온 소저에게 문제가 생겼다 확신한 것이야. 지금 이리 움직이는 건 일부러 시선을 돌리고 흐트리려는 것이다. 상대를 압박해 대응을 유도하면 행적을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어리벙벙한 눈으로 부주가 고개를 흔들었다.

    ‘뭐가 이리 복잡하냐? 공자님은 그걸 또 듣자마자 루 대인의 속내를 알아보시네. 이게 바로 마음을 쏟으면 다 느껴진다는, 그런 것인가?’

    “그리고 사실 이렇게 일을 크게 벌여야 도리어 괜찮은 것이지. 실종된 시간이 짧으면 그 일이 진짜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는 이도 그만큼 많지 않을 것이다.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대장공주께서 소란을 피운다고 생각할 테니, 다들 황당해하겠지. 지금 모든 이들의 눈이 대장공주께로 향하지 않았더냐? 동 공자만 봐도 대장공주께서 일을 번거롭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느냐.”

    설명을 끝낸 유신지가 부주의 등을 떠밀었다.

    “빨리 가거라! 어서 가서 어머니께 저들을 도와 분위기를 조성하라고 전해!”

    “네.”

    몸을 돌리던 부주가 갑자기 떠오른 듯이 물었다.

    “그럼 공자님은요?”

    유신지는 지나가던 관졸을 붙들어 세워 신분패를 보이며 그의 말을 빌리고 있었다.

    “나? 당연히 루안을 찾아야지.”

    * * *

    얼굴을 가린 사내는 지온과 서아를 방에 넣고 곧 문을 닫고 사라졌다.

    밀려 넘어졌던 서아를 일으킨 지온이 손수건을 꺼내 서아의 목에 대고 지혈했다.

    “괜찮아. 피부만 긁힌 거니까, 이렇게 조금만 누르면 괜찮을 거야.”

    흥분하지 않은 지온의 덤덤한 음성에 서아도 덩달아 안정을 찾아갔다.

    고개를 든 서아가 사방을 둘러보았다.

    상당히 초라한 방은 창도 높은 곳에 작게 난 것이 전부였다. 보아하니 하인들이 지내는 방 같았다.

    “아가씨, 저 사람들은 누굴까요? 왜 저희를 납치한 거예요?”

    질문을 던진 서아는 자신이 너무 긴장해 정신이 없는 것을 깨달았다.

    ‘같이 잡혀왔잖아. 나도 모르는데 아가씬들 어떻게 아시겠어?’

    그때 지온의 대답이 들려왔다.

    “걱정하지마. 우리가 위험하지는 않을 테니까.”

    모르겠단 듯, 서아가 되물었다.

    “왜요?”

    “왜냐면…….”

    빙긋 미소를 지은 지온이 속으로 대답했다.

    ‘누가 벌인 일인지 알았거든!’

    그러나 지온은 밖을 지키고 선 이들이 있으니, 그 일은 우선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조금 전 그 사람도 우릴 건드리지 않았잖아. 아마 우릴 돈과 바꾸고 싶어 하는 걸 거야.”

    안도의 숨을 내쉰 서아가 벌떡 일어나더니 의자의 먼지를 털어 깨끗하게 만들었다.

    “아가씨, 여기 앉으세요.”

    의자에 앉은 지온은 어떻게 대처할지 천천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대장공주가 붙여준 암중호위를 이리 쉽게 제압한 것을 떠올리면, 이 일을 지시한 주모가 누구인지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상대는 저를 다치게 할 의도가 없었다. 그녀를 다치게 해봐야 대장공주의 분노를 사는 것 외엔 다른 이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제 날 어떤 식으로 쓰려고 잡아온 건지가 문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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