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218)화 (218/385)
  • 218화. 맞기는, 개똥이 맞아!

    “음, 루씨 가문은 우리 대순(大舜)의 건국에 한마지로(汗馬之勞)한 가문이다. 태비 역시 직접 전장에 선 바 있으니 직접 해명하는 것은 당연하다.”

    “윤허해주셔서 감사하옵니다, 폐하.”

    감사 예를 올린 북양태비가 허리를 펴고는 루안과 시선을 마주쳤다. 이어서 모여 있는 신료를 훑던 그녀의 입이 열렸다.

    “누가 본 태비를 발고한 것인가? 내 면상을 봐야겠으니 직접 나서게!”

    “…….”

    풍 어사의 안면 근육이 꿈틀거렸다.

    ‘말투가 어찌 저런 것이야? 대체 저 분위기는 무엇이고? 아니, 저 여자는 이곳이 어디라 생각하는 것이야! 부녀자가 전장이나 돌아다니더니 역시나 행실이 어처구니가 없구먼!’

    그에 고개를 빳빳이 세운 풍 어사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공수하며 거만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관은 풍창(馮昌)이라 합니다. 어사 직을 맡고 있습니다.”

    북양태비가 그를 살피듯 훑었다.

    “자네가 본 태비를 발고한 것인가? 어디 무슨 죄로 발고했는지, 들어나 보세.”

    풍 어사가 콧방귀를 풍하고 뀌었다. 그리고 제가 올린 다섯 가지 대죄가 쓰인 발고문을 내시로부터 받아 읊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북양태비는 고개까지 주억이며 그가 읊는 발고문을 들었다.

    “옳거니, 내 이제 알겠구먼. 겉으론 본 태비를 발고한 듯하지만, 기실 발고하려고 한 이는 내 아들이었구먼, 맞는가? 저런, 일찍 말하지 그랬나! 내 그런 줄 알았으면 덜 고생했을 게 아닌가! 새벽 댓바람부터 단장에, 예복까지 챙겨 입느라 본 태비가 얼마나 피곤했는지 아는가?”

    “…….”

    이 무슨 황당한 소리란 말인가?

    ‘뭔 소리를 하는 것이야? 본인을 발고하나, 제 아들을 발고하나 마찬가지 아닌가!’

    설마 제 아들을 발고하려는 줄 알았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란 말인가?

    황당한 말에 당황한 풍 어사의 심경은 아랑곳없이 북양태비의 말이 이어졌다.

    “자네가 발고한 이가 내 아들이었다니, 그럼 내가 사사로이 도성에 온 일은 자네도 중히 보지 않는 것이겠지? 풍 어사, 내 자네 생김이 상당히 흉흉해서 생각을 못 했는데, 인제 보니 자네 꽤 사리에 밝은 사람이로구먼?”

    ‘잠깐, 잠깐만. 갑자기 사리에 밝다니?’

    풍 어사의 머릿속이 꼬인 실타래처럼 엉켰다.

    ‘아니, 이게 아니지!’

    제 생김새가 흉흉하다니, 대체 어딜 봐서 흉흉하단 말인가? 사건 이야기면, 사건만 언급하면 될 것이지, 생긴 것 가지고 인신공격이라니?!

    ‘아니, 이도 아니지!’

    자신이 사리에 밝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게 사리에 밝고 안 밝고를 논할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풍 어사는 혼돈으로 가득했던 머릿속을 간신히 정리했다.

    ‘나타나자마자 말 몇 마디로 계획을 다 꼬아놓다니, 북양태비……!’

    딱딱하게 얼굴이 굳은 풍 어사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태비마마, 사사로이 도성에 입성한 일이 어찌 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관은 그런 말은 한 적이 없습니다.”

    “오호, 그래?”

    북양태비가 반문하며 그의 손에서 발고문을 채갔다. 발고문을 훑은 북양태비의 입이 열렸다.

    “그런데 그 일을 그리 중하다 말하는 자네가 쓴 다섯 가지 대죄는 어찌 전부 내 아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가? 몰래 도성에 온 사람은 내 아들이 아니라, 나일세. 본 태비가 칼부림이나 하는 거친 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두 일이 서로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구실 하나 붙들어 생트집을 잡는 것 같은데……. 이는 자네 같은 문인들이 잘하는 짓 아닌가.”

    “…….”

    풍 어사는 저 자신을 설득하듯 내심, 뭣 모르는 저런 여자와 똑같이 행동하지 말자며 끊임없이 되뇌었다.

    북양태비는 척 봐도 훼방을 놓으려고 일부러 찾아온 것이었다. 이러다 말다툼이라도 벌이면, 그것이야말로 저 여자가 바라는 바가 아니겠는가!

    ‘참아야 하느니라!’

    반드시 절차대로 증거를 들이밀어야만 했다. 그래야 일격필살로 입을 다물게 할 수 있을 터였다.

    다짐을 굳힌 풍 어사가 엄히 입을 열었다.

    “태비께서 이해하지 못하시니, 하관이 다시 말씀을 드리도록 하지요!”

    북양태비의 눈이 게슴츠레 가늘어졌다.

    “좋아! 그럼 본 태비는 귀를 씻고 경청(傾聽)하겠네!”

    그러자 풍 어사가 황제를 향해 읍을 하고는 밀어붙이려는 듯 다시금 꼿꼿이 자세를 잡았다.

    “이 사건의 시작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대 북양왕께서 자객의 공격으로 세상을 떠나시고, 왕위계승을 놓고 다툼이 벌어지게 되었지요. 당시 루 통정은 아직 왕부의 넷째 공자였습니다. 독자도 아니고, 장자도 아니었지요. 그러나 루 통정은 제 야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부친의 영전에서 형님과 다툼을 시작…….”

    그때 북양태비가 갑자기 손을 흔들며 끼어들었다.

    “그만! 내 집안일을 자네에게 들어야 하겠는가? 그런데 자네 아주 그 광경을 본 사람처럼 말하는구먼? 누가 보면 풍 어사 자네가 우리 집안 침상 밑에 사는 줄 알겠어!”

    귓가를 스치는 다른 신료들의 작은 웃음소리에 풍 어사는 이를 바드득 갈았다.

    ‘이제 한 소절 시작했을 뿐인데 벌써 반박하다니, 귀를 씻고 경청하겠다며!’

    치미는 화를 다시 꾹 참은 풍 어사가 물었다.

    “태비마마, 하관이 한 말에 잘못된 곳이 있습니까?”

    북양태비가 유유자적 여유롭게 답했다.

    “기왕 자네가 잘못 안 것이 있는지 입을 뗐으니, 본 태비가 알려주도록 하겠네. 잘못된 곳이 아주 많아. 첫째로, 이 일의 시작은 3년 전이 아닐세. 왕작을 두고 다툼을 벌인 것이 원인인 것도 아니지. 그리고 야심을 주체하지 못해? 전부 자네 머릿속에서 나온 환상일 뿐이로구먼. 자네 상상력이 아주 풍부한 것 같은데 소설 한 번 집필해보는 게 어떤가, 풍 어사? 본 태비가 아는 이 중에 서책방을 하는 자가 있으니, 내 고료도 잘 쳐주라 하겠네!”

    풍 어사는 북양태비의 혀끝에서 날아온 말에 머리가 다 아찔했다. 그가 분노하여 입을 열었다.

    “태비마마! 중요한 사건을 보는 중에 소설이니 뭐니,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것입니까! 이상한 말로 훼방 놓지 마십시오!”

    북양태비가 양어깨를 으쓱 올리며 대답했다.

    “자네가 내게 잘못된 곳이 있냐 묻지 않았나?”

    “…….”

    어이가 없어서 잠시 침묵하던 풍 어사가 대답했다.

    “태비마마 말씀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지 않습니까. 왕작을 두고 다툼을 벌인 것이 아니라니요? 그럼 그 해 루 통정이 천 리 밖 먼 곳으로 도망친 연유는 뭐란 말입니까? 형제가 반목하여 다툼을 벌였다는 것이 거짓이란 말입니까?”

    북양태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방금 그 말은 또 맞는 말이로구먼.”

    “형제가 반목한 일 말입니까?”

    풍 어사가 콧방귀를 뀌었다.

    “마마께서도 인정하셨군요. 그러나 다른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마마께서는 함부로 봉지를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보고도 없이 도성에 드셨지요. 누구 때문이셨습니까? 이미 가문의 족보에서 이름이 지워진 루 통정이 아닌지요? 

    루 통정은 마마를 충동질하여 이런 일까지 벌였습니다. 이것이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까? 이 모든 사건이 형제간의 다툼으로 벌어진 일인데, 하관이 그를 발고하는 것이 도리에 어긋난단 말입니까? 말씀해주십시오, 마마!”

    풍 어사의 말에 북양태비는 뭔가 크게 깨달은 표정이었다.

    “풍 어사, 자네 말을 듣고 나니 이제 알겠구먼. 아주 도리에 딱딱 맞아. 엉망으로 꼬여 있는 사건이었는데, 그 와중에 자네가 기어코 실마리를 찾아냈구먼, 아주 대단해!”

    득의가 양양한 표정을 지은 풍 어사는 마무리 보고를 위해 황제에게 몸을 틀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가 입을 열려던 찰나, 북양태비가 들고 있던 발고문을 북 찢어 버리는 게 아닌가! 찢은 발고문이 풍 어사를 향해 날아들었다.

    북양태비가 어떤 위인이던가? 창을 쥐고 말을 몰고 나가 한판 승부를 벌일 수 있는 거친 여인이 아니던가!

    패대기쳐져 날아온 발고문에, 풍 어사가 쓰고 있던 관모가 하늘을 날았다. 심지어 그가 벌러덩 넘어지는 바람에 병풍처럼 주변에 서 있던 신료는 다급히 물러나야만 했다.

    전(殿)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모두가 속으로 외쳤다.

    ‘대질(對質) 중에 갑자기 폭력을 쓰다니?!’

    “맞기는, 개똥이 맞아!”

    그러나 아랑곳없이 욕설을 쏟는 북양태비였다.

    “형제의 반목이니, 강상(*綱常: 삼강과 오상을 아울러 이름.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함)의 윤리니 떠드는 자네가 어찌 부모의 마음은 헤아릴 줄을 몰라!”

    북양태비가 신료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신료 하나하나를 집어내듯 손을 뻗었다.

    “자네들 집안은 전부 형제끼리 사이가 좋은가? 믿지 못할 소리지! 부모가 되어 제 자식들의 불화를 보는 게 어떤 마음인지 아는가? 자식 녀석들이 서로 다툼을 벌였네. 그렇다면 어미 된 나는, 그러니 남이 함부로 떠드는 말도 그저 옳다 옳다 맞장구나 치며 듣고만 있어야 한단 말인가? 이대로 일생이 다하도록 제 아들 얼굴도 볼 수 없단 말이야?!”

    욕설을 쏟은 북양태비의 얼음장 같은 시선이 다시 풍 어사에게로 향했다.

    “본 태비가 자네 눈엔 남이 떠드는 대로 가만히 고개를 숙이는 우매한 여인이었나 보구먼. 자네가 내 자식들 일을 알면 얼마나 아는가? 근거 없는 풍문 몇 가지 주워들은 것으로 발고했겠지, 아닌가? 어떻게 해서든 형제 사이를 찢어놓으려 안달이로군. 왜, 그리되면 신나게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려고? 내 알려주지. 본 태비는 바로 그 저열한 욕망이 현실이 되는 것을 막으려,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도성에 든 것이야!”

    북양태비의 이런 모습은, 모인 신료 가운데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그때, 어사 중 하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전에서 함부로 손을 쓰다니, 무엄하십니다!”

    북양태비가 그를 향해 눈을 부릅떴다.

    그녀의 손에 들렸던 발고문은 이미 조각나 사라졌지만, 전장을 누비며 뿜어내던 살기와 위세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문신(文臣)이 감히 버티기 어려운 기운을 고스란히 맞은 어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가, 가, 감히 이곳에서…… 정녕 사람을 치기라도 하시겠단 것입니까!”

    북양태비의 입꼬리가 삐죽 올라갔다.

    같잖은 것을 보았다는 듯 가볍게 콧방귀를 뀐 그녀는 황제를 향해 몸을 틀었다. 그녀가 단정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예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폐하. 신부(臣婦), 사사로이 도성에 든 죄는 달게 받을 것이옵니다. 하지만, 그리했던 것은 정녕 나이든 어미로서 품은 사심 때문이었사옵니다. 안이는 착한 아이라 형제끼리 우애가 깊었던 적도 있었지요. 하오나 소인배들의 이간질로 서로 의심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이젠 물과 기름처럼 섞이려야 섞일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만 것이옵니다. 

    지난 3년간, 신부(臣婦)는 걱정으로 밤마다 쉬이 잠들 수도 없었사옵니다. 홀로 도성에서 잘 지내는 것인지, 집이 있어도 돌아올 수 없단 마음에 슬퍼하고 있진 않은지, 나이는 들어가는데 어찌 부인을 맞지 않는지, 여러 가지로 심히 걱정하였지요. 저 아이는 신부(臣婦)가 배 아파 낳은 골육이옵니다. 귀한 보배 보듯 고이 품에 안고 키웠던 제 자식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있겠사옵니까? 보고도 없이 도성에 든 것은 신부의 잘못이옵니다. 그러나 사전에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저 아이가 어찌 남들 모르는 음모를 꾸밀 수 있겠사옵니까? 폐하, 부디 명철히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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