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197)화 (197/385)
  • 197화. 공개적인 형 집행

    지장과 대희 일행은 내시의 안내를 받아 궁을 나섰다.

    그들이 궁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서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대희가 서생들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공명정대하신 폐하께서 소달에게 벌을 내리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서생들에게서 기쁨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대희는 다시 몸을 돌려 궁문을 향해 감사의 예를 올렸다.

    “황은에 감사드리옵니다!”

    그러자 서생들이 그를 따라 허리를 굽히며 예를 올렸다.

    “황은에 감사드리옵니다!”

    보고 있는 이들의 마음마저 뭉클하게 만드는 감격스러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관리 중 하나가 감개무량한 듯 입을 열었다.

    “이리 감격스러운 장면을 본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 선제께서 계실 적이었던가…….”

    뒷말을 잇지는 않았지만,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선제는 백성들로부터 무척 사랑받던 황제였다. 작금의 황제와 비교하기가 미안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런 쓸데없는 소린 왜 하는가? 아무튼, 사건도 마무리가 된 것 같으니 괜히 우리까지 엮여 들어갈 일은 없겠구먼.”

    내심 걱정하던 관리들은 이제 제 집안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가 어떻게 두들겨 팰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황궁까지 움직일 정도로 야단법석을 부리다니, 내 자식 놈을 당장에……!’

    하지만 제가 큰일을 한 줄로만 생각하는 ‘자식 놈’들은, 제 다리몽둥이가 어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한 채 그저 득의양양 자랑하기 바빴다.

    그때 대희가 또다시 입을 열어 새로운 소식을 서생들과 공유했다.

    “폐하께서 소달을 장형에 처하셨습니다. 명일 이곳에서 형이 집행될 것이니, 잊지들 말고 와서 보시기 바랍니다!”

    대희가 공유한 소식에 소년 서생들이 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와야지! 소달이 볼기짝을 맞는 모습을 놓쳐서야 되겠나!”

    그러나 모두가 즐거운 와중에 류명주는 홀로 울상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후회했다.

    ‘내가 뭐 한다고 지온 소저의 말에 여기까지 와서 증언을 했을까?’

    소씨 가문이 무너지기는커녕, 그저 강등됐을 뿐이니 소씨 가문이 자신에게 복수하려 한다면…….

    “류 낭자, 류 낭자의 협의에 감사를 드립니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든 그녀의 눈에 깊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지장이 보였다.

    지장의 인사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다시 자유를 되찾은 다른 일행들도 그를 따라 류명주를 향해 예를 갖췄다.

    “협의지심으로 도움을 주신 류 낭자께 감사한 마음을 표합니다.”

    그리곤 다른 동창들에게 그녀를 소개했다.

    “류명주 낭자는 그날 소염의 놀잇배에 계셨던 분이십니다. 저희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말에 안위를 뒤로하고 저희를 위해 증언을 하러 와주셨습니다. 류 낭자가 아니셨으면, 오늘 저희도 이렇게 쉽게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류 낭자!”

    “감사합니다!”

    서생들이 하나씩 그녀를 찾아와 정중하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자 류명주는 도리어 어찌할 줄을 몰랐다.

    심지어 여강까지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모아 공수했다.

    “예로부터 협녀(俠女)는 속세에 많다더니, 그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류 낭자의 담대함에 이 여아무개, 크게 감탄했습니다.”

    여강이 하는 예를 가만히 받고 있을 수 없던 류명주가 황급히 말했다.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나리.”

    “과분하지 않아요. 옳지 못한 일을 보아도, 아무나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낭자와 같은 상황이라면 그 의로움이 더욱 빛을 발하는 법이지요.”

    여강의 말을 듣고 있던 대희가 역시 손을 모아 공수하며 말했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류 낭자.”

    다른 서생들의 가장들도 그녀를 찾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오늘 만약 지장 일행의 무고함을 증명하지 못했다면, 정좌했던 서생들의 마지막이 어찌 되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 한마디는 당연히 전해야 옳았다.

    * * *

    한편, 류명주는 태어나 이렇게 놀라고 당황했던 적이 없었다.

    정양문을 나서서 마차에 오르는 그 짧은 거리를 가는 내내, 그녀를 향한 인사가 이어졌던 것이다.

    류명주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이들은 서생 아니면 관리였는데, 그들은 본래 거만하여 그녀에겐 시선조차 주지 않거나, 하찮은 것을 보는 듯 비웃음 가득한 눈빛만을 주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부와 권력을 손에 쥔 제국의 귀한 분들이었지만, 자신은 가장 천한 기녀가 아니던가.

    겉으로는 비단옷에 기름진 것들로 배를 채우며 군중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듯 화려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그저 물 위에 떠가는 부평초처럼 누구에게나 무시를 당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런 자들로부터 기녀인 자신이 존중 받고 있는 것이다.

    마차에 오른 후에도 여전히 정신이 멍해 있던 류명주는 지온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낭자,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시지요?”

    그제야 어느 정도 이성이 돌아온 류명주가 조용히 지온의 맞은편에 앉았다.

    마부에게 가자고 말한 지온이 다시 류명주를 향해 말했다.

    “소달이 직위를 잃지 않은 모양입니다.”

    류명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를 예상한 듯한 지온의 모습에 류명주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지온 소저, 소저께선 소달이 직위를 잃지 않을 거란 걸 알고 계셨는지요?”

    “당연한 게 아닙니까?”

    지온이 대답했다.

    “금군통령이란 자리가 얼마나 높은 자리인데요. 겨우 이런 일로 잃게 되진 않겠지요.”

    “그걸 아시면서 제게 이런 일을 시키시다니…….”

    “제가 단번에 소달의 가문을 넘어뜨릴 수 있을 거라 말했던가요?”

    지온이 빙긋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낭자의 안위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이번 일로 명성이 크게 오르셨지요? 생각해보세요, 소달이 낭자를 건드릴 수 있을까요?”

    당연히 그럴 수 없었다.

    만약 그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모두 소씨 가문부터 의심하고 볼 것이기 때문이었다.

    류명주가 가진 것을 생각하면 소씨 가문이 그 정도의 희생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다.

    미소를 거둔 지온이 진중한 모습으로 그녀에게 차를 올렸다.

    “낭자의 협의지심에 감사드립니다. 제 오라버니께서 낭자 덕분에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내심 한숨을 쉰 류명주가 지온이 올리는 찻잔을 받아 들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결과도 나쁘지 않잖아.’

    그렇게 달린 마차는 장락지에 도착했다. 류명주가 마차에서 내리기 직전, 지온이 그녀에게 당부의 말을 건넸다.

    “아, 류 낭자. 한동안 누군가 낭자를 찾아와 속신(*贖身: 돈을 내어 기적에서 이름을 지워주는 일)을 해준다고 해도 웬만하면 따라가지 않는 게 좋을 것입니다.”

    멈칫한 류명주가 되물었다.

    “무슨 연유인지요?”

    “낭자가 속신하여 다른 이에게 의탁하게 된다면, 생각해보지요. 그가 소씨 가문에 잘 보이고 싶은 요량에 낭자를 그쪽으로 넘긴다면 어찌 될까요?”

    류명주는 저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렸다.

    “혹,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만나거든 절계루를 찾아 주인장에게 말을 전해 놓으세요.”

    그리곤 류명주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인 지온이 마지막으로 그녀를 향해 인사했다.

    “다음에 또 뵙지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마차는 금방 모습을 감추었다.

    류명주는 잠시 마차를 향해 정신을 팔았지만, 곧 장락지의 가장 높은 건물로 시선을 돌렸다.

    절계루의 주인장은 소문이 자자한 마당발로 뒷배가 무겁고 깊은 사람이었다. 그를 기반으로 삼는다면, 그녀는 앞으로 장락지에서 제일가는 화괴낭자가 될 수 있을 터였다.

    ‘지온 소저는 수완이 정말로 대단하구나.’

    * * *

    다음날.

    서생들은 친구의 지인의 팔촌까지 불러, 위풍도 당당하게 소달의 형 집행을 구경하기 위해 정양문으로 향했다.

    그렇게 서로를 만난 그들은 인사들을 나누었다.

    “너 걸음이 왜 그러냐? 맞았냐?”

    “나만 맞았냐? 밖으로 손은 꺼내지도 못하는 거 보니까 너도 매타작을 당했네.”

    “허허…….”

    서로 어색하게 바라보던 소년 서생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서생들은 서로 한패가 되어 큰일을 치르고 매타작도 같이 당하고 보니, 본래 친했던 사이는 더욱 각별해졌고, 소원했던 이들은 사이가 풀어져 다시 친해졌다.

    관리들은 입을 쉴 새 없이 나불거리며 구경을 나왔다.

    ‘금군통령이 볼기짝을 맞는 일을 언제 또 구경하겠어?’

    ‘소달이 우리 앞에서 위세 부리는 것도 오늘로 끝이로구나!’

    그때 성문이 열렸다.

    성문 안에서 속에 입는 중의(中衣)만 걸친 소달이 끌려 나오자 그 모습을 본 군중들이 우우, 야유를 보냈다.

    “나왔다, 나왔어! 저기 좀 보시게!”

    빽빽하게 선 구경꾼들을 발견한 소달은 머리끝이 쭈뼛 서는 듯했다.

    소달이 호은에게 물었다.

    “사람이 어찌 이리 많은 것입니까?”

    호은이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소달이 다시 물었다.

    “호 공공, 저들을 쫓아줄 수 있겠습니까?”

    호은이 공손히 대답했다.

    “소 장군, 정양문 밖은 백성들이 자유로이 다니는 곳입니다. 제겐 저들을 쫓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럼 다른 곳에서 형을 집행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호은이 고개를 저었다.

    “폐하께서 내리신 명입니다. 성지에 형을 집행할 장소가 명시되어 있어 함부로 바꿀 수 없습니다.”

    형틀까지 준비가 되자 소달의 얼굴에 절망이 내려앉았다.

    “소 장군, 폐하께서 장군의 체면을 생각하시어 특별히 옷은 벗지 않아도 된다고 명시하셨으니 조금만 참으십시오.”

    소달이 이를 악물었다.

    ‘그래. 해봐야 장형 오십 대지! 버틸 수 있어!’

    소달은 거북이처럼 머리를 안으로 최대한 밀어 넣으며 참을 준비를 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에게 곤장이 떨어질 때마다 구경꾼들이 함께 합창하듯 소리치는 게 아닌가!

    “한 대요!”

    곤장을 다시 내려치자 구경꾼들의 고함도 이어졌다.

    “두 대요!”

    소달은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볼 뻔했다.

    ‘숫자도 세는 것이냐?!’

    “여덟 대요!”

    “아홉 대요!”

    “열 대요!”

    곤장이 떨어질 때마다 숫자 세는 소리가 함께 울려 퍼졌다.

    나무토막처럼 굳어버린 소달은 지금 이 모든 상황이 현실 같지가 않았다.

    ‘여긴 어디냐? 나는 누구지? 내가 지금 뭘 하는……?’

    겨우 일다경 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소달은 지금이 해구(*海寇: 바다로부터 침입하여 들어오는 도둑 떼) 소굴에서보다 더 버티기 어렵게 느껴졌다.

    온몸으로 느끼는 고통은 두 번째였다. 그는 구경꾼들에게 둘러싸여 볼기짝을 드러낸 채 얻어맞고 있는 이 황당한 상황이 더할 수 없이 수치스러웠다.

    주변에서 외쳐대는 숫자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그의 몸을 비정하게 찔러왔다.

    이는 능지형(凌遲刑)과 다름없었다.

    “스물세 대요!”

    “스물네 대요!”

    “스물다섯 대요!”

    그러나 선혈이 낭자한 둔부(臀部)에서 느껴지는 고통으로 인해 정신은 말똥하니 더욱 선명해졌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인가? 겨우 서생 나부랭이 몇 명을 손보는 일이 대체 어쩌다 폐하 앞까지 가게 되는 큰일이 되었단 말이야!’

    더구나 폐하께선 자신의 체면 따윈 조금도 고려해주지 않았다.

    ‘그래, 폐하의 그런 태도에서 이 모든 게 시작된 것이야.’

    그럼 자신은 대체 언제부터 성총을 잃었단 말인가?

    “마흔일곱 대요!”

    “마흔여덟 대요!”

    “마흔아홉 대요!”

    소달이 불끈, 두 주먹을 말아 쥐었다.

    ‘드디어 이 수치스러운 짓거리도 끝이로구나! 마지막 곤장, 한 대만 더 맞으면…….’

     “마흔여덟 대요!”

    그때, 서생들이 숫자를 거꾸로 세기 시작했다.

    당황한 소달은 순간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했고, 형을 집행하던 내시조차 구경꾼들이 세주던 숫자에 적응했던 것인지 곤장을 다시 들어 올렸다.

    다행스럽게도 형을 집행하던 내시에게 호은이 허허 웃음을 지으며 늦지 않게 명령했다.

    “장 오십 대를 모두 채웠으니 그만하거라. 어서 소 장군을 의방으로 모시고 가.”

    “알겠습니다.”

    그렇게 소달은 내시의 부축을 받으며 궁문 안으로 사라졌고, 신나게 구경하던 서생들도 삼삼오오 짝을 이뤄 흩어졌다.

    어부지리로 불구경을 나왔던 백성들도 서생들만큼이나 만족스러웠다.

    죄 없는 이는 신원(伸冤)되었고, 악인은 심판을 받았으니 모두가 바라는 권선징악의 완벽한 결말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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