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193)화 (193/385)
  • 193화. 내 자식 교육은 내가

    궁문 밖으로 나간 소달이 본 광경은 가족 상봉이 이루어지고 있던, 바로 그 광경이었다.

    오만한 시선으로 궁문 앞을 훑은 소달이 피식, 냉소를 짓고는 서생들 앞에 섰다.

    “황궁의 요지(要地)인 궁문 앞에서 감히 누가 소란을 일으킨단 말인가! 당장 해산하지 않으면 화살 받이가 될 것이다!”

    소달의 이런 태도는 서생들을 분노에 휩싸이게 했다. 서생 중 하나가 소달을 향해 따지듯 물었다.

    “당신이 금군통령, 소달이십니까?”

    “그렇다, 본 장군이 소달이다!”

    소달의 차가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간이 큰 것이냐? 일개 평민 주제에 본 장군의 존함을 함부로 입에 올리다니!”

    그러나 소년의 의기(義氣)가 어디 누른다고 눌러지는 것이던가! 소달이 안하무인으로 나올수록 서생들의 분노는 더욱 커져만 갔다.

    ‘저, 저 횡포하게 구는 꼴이라니! 저런 자니 손속이 그리 잔인했던 것이로구먼!’

    “소 장군, 마침 잘 오셨습니다! 장군께서 짓지도 않은 죄를 지장과 공몽 일행에게 씌워 옥에 가두신 것이 아닙니까? 여기 모인 저희에게 그에 대한 답변과 보상을 말씀해 주셔야지요!”

    그러나 소달은 어린 서생이 하는 말을 귀담아들을 위인이 아니었다.

    차가운 눈으로 그를 훑어 내린 소달이 입을 열었다.

    “그놈들이 내 아들을 구타하여 중상을 입혔다! 그런 놈들이 하옥되는 것이 마땅치 않단 말이냐? 생트집을 잡는 너희들도 하옥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경험해보고 싶은가 보구나!”

    그러자 분노한 대희가 자신을 잡고 있던 관복들을 밀치고 일어났다.

    “소 장군, 장군은 이품(二品)이나 되는 조정의 고위 관리인 통령(統領)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그런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하십니까! 소 공자는 그 일행중 누군가의 손에 다친 것이지, 저희가 구타한 것이 아닙니다! 믿지 못하겠으면 장락지에 가서 물어보십시오. 당시 우리는 물에 빠진 소 공자를 구하는 것을 돕기까지 했습니다! 시시비비를 구분하진 못할망정, 증거를 조작하여 무고한 이들을 모함까지 해놓고 이리 뻔뻔하게 나오다니, 양심이란 것이 있기는 하신 것입니까?”

    “맞습니다! 금군통령이란 분께서 어린 서생들을 모함하다니, 체면도 양심도 없으십니다!”

    “부아에서 열린 판결에서 이미 소씨 가문의 증인이 가짜란 것이 밝혀졌습니다! 판결 기록도 모두 남아있으니 이제 와 잡아뗄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횡포가 하늘을 찌르는군! 단정치 못한 인품으로 법도와 규율마저 저버리고 온갖 악행을 저지른 게 아닌가! 당신은 조정에 설 자격이 없습니다!”

    “무고죄로 벌하여 법도를 바로 세워야 한다!”

    “옳소! 소달을 처벌하라! 소달을 처벌하라!”

    서생들이 입을 모아 세차게 외치기 시작하자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 소달이 노성을 토했다.

    “지금 너희들이 하는 짓이야말로 본 장군을 무고(誣告)하고 있는 짓이다! 그놈들이 구타한 것이 분명한데,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다고 아닌 것이 될 것 같으냐? 계속 이리 고성방가하며 소란을 일으키겠다면 너희들 모두 잡아들이겠다!”

    한기 가득한 눈빛으로 서생들을 훑은 그의 입에서 차가운 말이 떨어졌다.

    “궁문 앞 요지까지 나와 정좌를 하는 것은 폐하께 시위를 한다는 것이다! 이리 철없이 세상 물정 모르고, 무덕(無德)한 벌거숭이들이 미래의 동량이라 할 수 있는지 모르겠군. 다시 말하겠다. 당장 해산해라!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하는 일 처리가 무엇인지 본 장군이 직접 경험하게 해주겠다!”

    소달의 말에 머리 뚜껑이 열린 대희가 입으로 불을 뿜으려던 바로 그때였다. 제 팔을 잡고 있던 아버지, 대 대인이 돌연 기가 찬 듯 콧방귀 소리와 함께 소매를 떨치더니 저보다 먼저 소달을 향해 입을 여는 것이 아닌가!

    “소 장군의 위세가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장군, 지금 말한 무덕한 벌거숭이는 누굴 가리키는 것입니까? 제 아들더러 철도 없고 세상 물정도 모른다고 한 것은, 지금 제가 자식 농사를 잘못 지었다 훈계하시는 것입니까?”

    순간 소달이 멈칫하며 미간을 좁혔다.

    “자네의 아들이었나? 다른 집안사람들까지 끌어들여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그만 집으로 데려가 다시 교육하는 것이 좋겠군!”

    대 대인이 차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관(下官)이 자식 교육을 어찌하든, 장군께서 충고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소 공자가 밤낮으로 주색에 골몰하느라 온갖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던데, 이번 다툼과 비슷한 일이 처음은 아니지 않습니까? 

    지난번 소 공자가 정국공의 세자를 모해하려 했다가 도리어 세자의 여동생에게 맞아 머리가 터지는 일이 있었지요. 이것만 보아도 소 공자는 상습적입니다. 그런데 이번 일이 벌어지고도 장군께선 제 자식을 제대로 훈계하실 생각은 안 하시고 도리어 그 화를 다른 이들에게 전가하고 계시니, 참! 장군의 자식 교육법은, 하관의 경지가 얕아 그런지 배우지 못할 것 같습니다!”

    문관이 마음먹고 놀리기 시작한 혀에 말리지 않을 무장이 어디 있겠는가?

    비꼬는 말에 분기가 탱천하여 노기가 하늘로 치솟은 소달이 고개를 쳐들었을 때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좌정한 서생들을 집으로 데려가려 안간힘을 쓰던 관리들이 이젠 화가 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소달마저 일순 당황했을 정도였다.

    ‘다들 왜 이러는 게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고 치고 있다며 욕하던 놈들이, 왜 갑자기 녀석들을 돕고 나섰어?’

    “소 장군, 하관 역시 제 동생의 말이 도리에 어긋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시비비는 분명하게 가려야 함이 옳지 않겠습니까? 장군께서 무고(誣告)하셨다면, 관직이 높다고 그 책임을 피해가선 안 되겠지요! 범법을 저질렀다면 법에 따라 벌을 받아야 함이 옳을 것입니다!”

    “옳소!”

    집안 가장들의 지지까지 얻자 더욱 기세가 오른 서생들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소달을 처벌하라! 소달을 처벌하라!”

    그리고 성루 위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황제의 얼굴엔,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 * *

    여강이 입을 열었다.

    “신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처음 이 일은 어린 소년들 간의 다툼으로 큰일이 아니었사옵니다. 잡혀간 서생들과 공자들 모두 소년들이었던지라 서로 감정이 격해지자 손부터 나가 주먹다짐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지요. 폐하께서도 무애해각에서 수학한 경험이 있으시니, 그런 경우를 많이 보셨을 줄 아옵니다.”

    황제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서생들이 악의를 가지고 음모를 꾸며 소 공자를 해치려 했단 소리는 말도 안 된다는 거로군.’

    차라리 서생들이 다툼 중 실수로 소 공자를 때렸다 했다면 몇 푼, 가능성이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씨 가문에서 증언을 조작했단 것이 만천하에 드러나지 않았던가? 이젠 누구를 붙잡고 물어도 소달이 무고(誣告)한 거라고 생각할 터였다.

    “그러나 그 일로 서생들이 정좌시위까지 하게 되었으니, 이젠 큰일이 되어버리고 말았사옵니다.”

    여강의 말이 이어졌다.

    “보시옵소서, 폐하. 이제 일은 문무의 대립으로까지 번져가고 있사옵니다.”

    왜 아니겠는가? 그 자신도 소달이 이리 횡포한 자인 줄 몰랐다. 저리 많은 이들이 호통치며 하는 질책을 들으면서도 눈앞의 문관들은 애초에 안중에도 없지 않은가!

    한숨을 내뿜은 황제가 호은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호은이 공손히 허리를 굽히고 말을 전하러 내려가려던 그때, 여강이 붙잡았다.

    “폐하, 폐하께선 소 장군을 불러 하문하실 생각이시옵니까? 그렇다면 저 서생들은 어찌하실 생각이신지요?”

    “당연히 빠르게 해산시킬 생각이네.”

    황제가 입을 열었다.

    “정양문 앞을 막고 있으면 체통이 상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겠나? 다른 이가 보면 짐이 덕이 없는 일이라도 저지른 것이라고 생각할 게 분명하네.”

    여강이 빙긋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폐하, 신은 폐하께서 차라리 이리 하시면…….”

    * * *

    “소달을 처벌하라! 소달을 처벌하라!”

    서생들이 고성을 지르는 와중에 얼굴을 부들거리던 소달의 눈으로 살기가 흘러나왔다. 그가 손을 들자 완전무장한 금군(禁軍)이 대열을 갖춰 밖으로 달려 나오더니 서생들을 향해 칼을 겨눴다.

    ‘안 돼!’

    대 대인이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일이 이렇게까지 커졌으니 좋게 끝나지 않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을 알고 소달이 이판사판으로 먼저 손을 쓴다면 어찌 되겠는가?

    앞으로 그가 어찌 되든, 지금 이 피해는 서생들이 고스란히 받게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자신의 관직은, 소달을 저지하기엔 너무도 부족했다.

    ‘지금이라도 더 높은 관료를 모셔야 하나? 늦지 않으려나?’

    대 대인이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멈추게!”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몰린 곳에 원 재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원 재상?!’

    서생들의 정좌를 해결하라 명을 받고 온 대리시의 소경(*少卿: 관직 명)이 원 재상이 도착한 것을 보고는 급히 찾아와 예를 올렸다.

    “원 재상님, 하관이 이제 막 해결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재상께선…….”

    원 재상이 그만하란 듯이 손을 흔들더니, 당장 서생들이 있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려 사방을 훑었다. 아니나 다를까 제 아들인 원겸이 서생들 틈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본 원 재상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이들이야 자식들이 많은 탓에 문제를 일으킨다지만, 자신은 자식도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이리 문제를 일으키다니, 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인가?

    ‘어쩔 수 없지. 내 자식이 사고를 쳤으니 아비가 나서서 수습하는 수밖에!’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아끼는 법이었다. 이는 소달도 아는 바가 아닌가?

    “소 장군, 이게 무슨 짓인가? 정양문 앞을 핏물이 흐르는 강으로 만들 셈인가?”

    아무리 기고만장하여 위세를 부려대는 소달일지라도 재상 어르신 앞에선 일단 고개를 숙여야 했다.

    딱딱하긴 했지만, 예를 올린 소달이 입을 열었다.

    “원 상야, 서생들이 정좌하여 시위를 벌이기에 소장은 그저 쫓아내려 했을 뿐입니다.”

    그 말에 원 재상이 웃으며 대답했다.

    “일이 벌어진 것엔 반드시 그 원인이 있을 게 아닌가? 이렇게 많은 이가 정좌를 했네. 그 이유를 소상히 밝히지 않는다면, 앞으로 말이 퍼졌을 때 사람들이 죄를 탓할 대상으로 폐하를 찾게 될지도 모르네. 자네나 나나 모두 천자(天子)의 신하가 아닌가? 심사숙고하여 움직여야 할 것일세!”

    “원 재상님…….”

    그때였다.

    마치 원 재상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돌연 황궁의 문이 활짝 열리더니, 안에서 내시 하나가 총총, 모습을 드러냈다.

    내시를 확인한 소달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폐하까지 알게 되셨다!’

    황궁 문 앞의 다리를 건너 금세 다가온 호은이 외쳤다.

    “황제 폐하의 성지(聖旨)를 받으시오!”

    호은의 외침에 자리에 있던 모든 신하와 서생들이 제 의관을 정리하더니 허리를 굽혀 황제가 내린 성지를 받을 준비를 했다.

    “이 자리에 있는 서생들은 학자들로서 법과 규율에 익숙한바, 신원(伸冤)이 필요하다면 지역의 부아(府衙)가 먼저요, 그 후에 삼법사(*三法司: 중국 중세시대 형부, 도찰원, 대리시의 통칭)를 찾는 것이 정도(正道)임을 알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듯 경솔히 정양문 앞에 정좌한 것은 짐을 위협하려는 의도로 의심될 수 있다.”

    여기까지 들은 소달은 내심 안심하고 있었다.

    ‘폐하께서 역시 내 편을 들어주시는구나. 역시…….’

    그러나 그의 생각이 미처 마무리를 짓기도 전에 호은의 뒷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동창의 신원(伸冤)을 위한 서생들의 진심을 짐이 통촉(洞燭)하였으니, 오늘 그대들이 정좌하며 시위한 일은 짐이 더는 추궁하지 않겠다.”

    소달이 멈칫했다.

    ‘진심? 진심이라니? 폐하! 이게 무슨 뜻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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