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안 좋은 예감
조정에 발을 들이면 얼마나 높이 오르게 될지 감히 짐작조차 못 할 그 기재는, 조정에 발을 들일 기회조차 없는 처지라 마차 안에서 주전부리나 먹고 있었다.
“오늘은 등청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주전부리를 먹다 갈증을 느낀 지온이 제 찻잔을 채웠다. 차는 이미 식어 미지근했다.
‘일이 언제쯤 마무리가 되려나. 빨리 돌아가 밥이나 먹고 싶은데.’
그때 유신지가 대답했다.
“가끔 땡땡이도 쳐주고 해야 기분전환도 되는 것입니다.”
지온이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그게 무슨 해괴한 소리세요?”
그러나 유신지는 아주 당당하게 대답했다.
“어디가 해괴합니까? 아주 논리적이지요. 매일 일거리에 파묻혀있으면 어떻습니까? 짜증이 나겠지요? 짜증이 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집중력이 떨어지면 공무 중에 실수하기 쉽습니다. 사건 처리에 실수가 생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억울한 사람을 잡는 큰일이 벌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제가 이러는 것도 모두 참변을 당할지 모를 백성들을 위한 것이다, 이 말이지요.”
“구색이 참으로 휘황찬란하시네요. 쉬는 날도 있으시잖아요.”
“닷새 중 겨우 하루 쉬는 것으로 어떻게 충족이 되겠습니까? 나흘을 정신없이 공무에 시달렸는데 겨우 하루밖에 쉬질 못하면 어찌 되는지 아십니까? 지친 몸을 다 풀기도 전에 등청하면 처리할 공무부터 떠올리게 되는데, 그것이 기분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주겠습니까? 아니 그렇습니까?”
‘아니 그렇기는, 개뿔!’
지온은 그와 이 주제에 대해 더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튼, 다른 재상들과 당상관들만 누구처럼 땡땡이를 안 치면 되는 것이다.
서생들이 정양문에 당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관리의 이목이 쏠렸다.
* * *
그 시각.
소식을 접한 수상(*首相: 우두머리 재상), 상용(常庸)은 흠칫 놀랐다.
“서생? 서생들이 뭣 때문에 예까지 왔다는 겐가?”
하급 관리라 할지라도 정사당까지 들어온 관리의 능력은 예사 것이 아닌지라, 이미 그 연유는 물론이고 부아에서 있었던 일까지 모두 알아온 참이었다.
모든 보고를 듣고 난 상용의 미간이 좁아졌다.
“소달은 지금 어디에 있나?”
보고를 올린 하급 관리가 대답했다.
“아마도 궁에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은 소달이 애초에 이 일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단 의미였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
그때 탕 그릇을 손에 든 원 재상이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원 재상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상 재상, 이 일은 누가 가서 처리하면 좋겠소? 너무 늦으면 폐하까지 놀라게 되실 것이오.”
그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던 상용이 금방 다시 입을 열었다.
“서생들이 여기까지 와서 정좌(靜坐)한 것은 결국 한 사건 때문이 아니겠소? 그럼 사건을 볼 수 있는 이를 보내도록 합시다.”
상용이 하급 관리를 향해 말했다.
“자네는 가서 대리시에 말을 전하고 오게. 서생들을 빨리 해산시킬 수 있도록 처리하도록 해.”
하급 관리는 빠릿빠릿하게 대답을 하고는 금방 대리시를 향해 떠났다.
상용은 원 재상이 들고 선 탕 그릇을 흘끔 쳐다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은 구기은이탕(*枸杞銀耳湯: 구기자흰목이버섯탕)이오?”
“그렇소. 요즘 열 오르는 일이 잦으니, 내 미리 준비해둔 것이오.”
그 말에 상용이 허허, 웃음을 지었다.
현비가 벌인 멍청한 불장난이 태운 것은 후궁만이 아니었다. 불길이 조정까지 덮쳤던 것이다.
현비가 사형을 당해 죽고, 완씨 가문은 또다시 제 집안 여식을 궁으로 들이려 했다. 그러나 황후의 집안인 심씨 가문이 반대하고 나서자, 얼마 전부터 두 집안은 거센 세력 다툼을 벌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대체 언제까지 서로 아귀다툼을 벌일 생각인지, 앞으로 다시 조용한 날을 보낼 수 있을지조차 막막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몇 마디 한담을 나눈 두 재상이 막 각자의 공무로 돌아가려던 찰나, 누군가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상 재상님! 원 재상님!”
두 재상을 본 그는 더욱 속도를 높여 빠르게 다가오더니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 입을 열었다.
“여 학사(吕學士)가 입궁했습니다.”
그 말에 두 재상의 표정이 미세하게 달라졌다.
여 학사, 여강.
그가 복상(服喪)을 마치고 다시 조정으로 돌아온 지 이제 겨우 석 달이었다. 그러나 그사이 여강을 향한 황제의 신임과 중용은 하루가 다르게 무게를 더해 가지 않았던가? 만약 여강의 경력이 부족한 것만 아니었다면, 지금 그들이 있는 재상직에 여강이 비집고 들어오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었다.
주변을 물린 상용이 조용히 말했다.
“무슨 생각인 것 같소? 서생들을 대신해 나서려는 거겠소? 여 학사가 그리 심장이 뜨거운 사람이었단 말이오?”
눈꼬리를 길게 늘이며 주변을 살피던 원 재상이 입을 열었다.
“확실히 좀 이상하긴 한 것 같소. 소달이 여 학사에게 특별히 실수한 일은 없지 않소?”
“그런데 왜 갑자기 이리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인지.”
부딪히는 두 사람의 시선 속에 알 수 없는 갑갑함이 흘렀다.
소달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여강이 왜 하필 지금 이 시기에 입궁한단 말인가?
‘소달을 위해 사정을 해보려는 것인가? 아니면 그를 완벽히 끝내기 위한 확인 사살?’
* * *
정양문 밖에 도착한 서생들은 한 사람씩 정좌하고 앉았다.
움직임 자체는 조용했으나 그들이 일으킨 소동까지 조용한 것은 아니었다.
금위(*禁衛: 황궁을 수호하는 군대)는 곧바로 보고를 올렸다.
처음엔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소달도 파악을 끝내자마자 벌컥 화를 쏟았다.
“감히 그딴 짓을 하고 있단 말이냐! 내 아들은 침상에서 기침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데, 감히 어전 앞까지 굴러와 억울함을 호소하겠다고?! 당장 쫓아내라, 당장!”
그러나 다행히 소달의 부하 중에 냉정하게 상황을 바라볼 줄 아는 이가 있어 급히 그를 말리고 나섰다.
“장군, 서생들이 벌이는 정좌시위는 절대 강제로 움직이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온갖 관청들이 바로 앞에 있는데, 행여나 장군께서 빌미라도 주시면 문신(文臣)들이 장군께 곧장 칼을 들이댈 것입니다.”
“그래도 저놈들을 가만히 앉아있게 할 수는 없다! 폐하께서 아시면 내가 소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하실 것이 아니냐!”
부하의 권고에도 소달은 끝내 문밖으로 나섰다.
“가자! 내 눈으로 봐야겠다!”
한편, 궁문 안으로 들어서던 여강은 때마침 소달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는 걸음을 멈췄다.
“여 대인?”
걸음을 멈춘 여강을 본 내시가 그를 채근하자 여강이 미소를 지어 보이곤 다시 몸을 돌렸다.
“미안하오.”
* * *
전(殿) 앞에 도착한 내시가 여강의 당도를 알렸고 황제는 바로 여강을 안으로 들였다.
전(殿)에 들어 대례(*大禮: 황제에게 큰절로 올리는 인사 예)를 올린 여강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폐하. 신(臣), 폐하께서 성루(城樓)에 오르시어 성문 밖을 봐주실 것을 간청 드리옵니다.”
여강의 요청에 순간 멈칫했던 황제가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오?”
여강이 대답했다.
“궁문 밖에 서생들이 정좌를 하고 있사옵니다.”
“뭐라!”
황제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생들은 이 나라의 동량(棟梁)들이 될 인재가 아니던가! 앞으로 자신이 나라를 다스릴 때 제 옆에서 힘이 되어 줄 관리가 될 이들인데, 그들이 궁 문 앞에 나와 정좌시위를 하고 있다니! 이는 절대 사소하게 볼 일이 아니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 그들이 왜 정좌를 하고 있는 것이야!”
‘설마 짐의 행적이 온당치 못하다 생각해 항의하러 온 것인가? 아니겠지?’
차오르는 불안과 초조함에 황제의 미간이 주름으로 빼곡하게 채워졌다. 다행스럽게도 여강의 대답이 바로 이어졌다.
“정사에 관한 것 때문이 아니니 마음을 놓으십시오, 폐하. 그러나 걸음은 하시어 직접 보시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 * *
대희와 다른 서생들은 모두 정양문 밖에 정좌(靜坐)한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정양문 밖은 관청이 즐비한지라, 구경삼아 삼삼오오 몰려들 관리들로 북새통이었다.
“무슨 일이라던가?”
“자네 소식 못 들었나? 향시 합격방이 붙은 후에 장락지로 뱃놀이를 갔던 서생들이 다른 무리와 마찰이 있었던 모양이네. 그런데 상대 무리 중 하나가…… 자네 금군통령 소달 알지? 그 소달의 아들이었다는구먼.”
“요즘 다들 입만 벌어지면 이 이야기만 하더구먼. 외지에서 과거를 보러 온 고시생들이며, 이름난 문사들까지 다들 서생들을 지지하고 나섰다고 하네.”
“소씨 가문이 과하긴 했지. 사내 녀석들 어린 혈기에 싸움 좀 한 걸 가지고 앞길을 끊어놨으니, 쯧쯧.”
“말이야 그렇긴 하네만, 그래도 그렇지. 거, 정양문까지 와서 정좌시위라니! 이게 무슨 난리들인가?”
“그러게 말이네! 집안에서 이리 생각 없이 행동하는 걸 알기라도 해보게! 부모가 얼마나 속이 터지겠는가?”
“내 새끼였으면 아주 다리몽둥이를 두 동강 내버렸을 것이네!”
“우리 집안 아들 녀석은 제대로 관리를 해서 다행일세. 허허…….”
자신과 딱히 관련이 없었기에 관리들은 구경하며 잡담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웃으며 한담이 오가는 중에, 누군가 봐서는 안 될 것을 보고야 말았다.
“내 아무리 봐도 가장 앞에 있는 서생이 눈에 너무 익은데, 저 녀석 자네 집 대희가 아닌가?”
그 말에, 제 새끼였으면 다리몽둥이를 두 동강 냈을 거라던 이가 눈을 비비고 확인을 하더니 금방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아니나 다를까 진짜 ‘제 새끼’가 아닌가!
‘저 녀석이 기어코 이 아비 얼굴에 똥물을 끼얹는구나!’
바드득, 이를 간 대 대인(戴大人)이 뛰는 듯이 대희에게 다가가 한 대 치기라도 할 듯 물었다.
“대희, 이놈! 여기서 뭘 하는 것이냐!”
고개를 들었다가 상대가 제 아비인 것을 본 대희가 손을 모아 공수를 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버지, 비상(非常)한 시기이니 예를 갖추지 못함을 용서하십시오.”
예고 나발이고, 대 대인은 당장 대희를 일으켜 세우려고 손을 뻗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여긴 왜 온 것이냐? 할 일이 그렇게 없는 것이냐? 당장 돌아가거라!”
본래도 고집이 쇠심줄이라 말을 듣는 법이 없던 대희였으니, 지금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대희는 자리에 꿈쩍하지 않고 앉아서 막무가내로 굴기 시작했다.
“아버지, 오늘은 정말 중요한 일이 있으니 난동 그만 부리시고 돌아가십시오.”
‘이놈의 자식이! 지금 아비더러, 뭐라? 난동?’
분노한 대 대인이 제 뒤에 선 관복(*官僕: 재직한 관청에서 붙여준 하인)을 향해 소리쳤다.
“가만히 서서 뭣들 하는 것이냐! 당장 녀석을 끌고 가!”
대희는 상황이 좋지 못하자 얼른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지! 평소 아버지께서 저를 어찌 가르치셨습니까! 공정치 못한 일을 보거든 나서서 도우라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지금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희가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렀던지, 모여 있던 이들의 이목이 순식간에 집중되었다. 그러자 창피함을 느낀 대 대인은 더욱 화가 났다.
“아비에게 대드는 건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
“아버지를 화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대희가 엄숙한 얼굴로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그저 실천하고 행할 뿐인 것이지요! 아버지께선 제가 어려움을 당한 동창을 보고도 수수방관하는 아들이 되길 바라는 것입니까? 평소 아버지께선 저를 그리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이, 이 녀석이…….”
대 대인은 제 아들의 말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주변에 모인 이들은 강 건너 불구경에 신이 났다.
“대 대인께서 저리도 강직한 분이셨구먼! 대 공자가 부친을 쏙 빼닮았네, 그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옆에 있던 이가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네, 저기. 저기 좀 보게나. 자네 동생이랑 닮지 않았나?”
흠칫 놀란 사내의 표정이 순식간이 일그러졌다.
‘이런 젠장! 진짜 내 동생이잖아!’
“야! 너 이 자식 여기서 뭘 하는 게야!”
두 사람이나 눈앞에서 같은 일을 겪고 나자, 집에 서생을 키우고 있는 이들이 돌연 제 가족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여기저기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한 난데없는 가족 상봉에 정양문 밖이 시끌벅적해진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 소식을 접한 정사당의 재상들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강 건너 불구경에 그리 고소해들 하더니만, 본인들 집이 타는 줄도 모르고 말이야.”
탕 그릇을 든 채 빙글빙글 웃으며 말을 보태려던 원 재상의 눈으로 제 집안에 줄을 댄 관리 하나가 황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순간 가슴이 철렁하며 좋지 않은 예감이 원 재상을 감쌌다.
‘설마 우리 집 녀석도…….’
그러나 좋지 않은 예감은 어째서 틀리는 법이 없는 것인지, 관리가 입을 열었다.
“재상 어르신, 큰공자님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