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186)화 (186/385)
  • 186화. 잡혀가는 소년들

    지장 역시 황당한 것은 마찬가지였던지라, 고함을 질렀다.

    “이게 무슨 짓들이오! 난 거인(*擧人: 향시에 급제한 사람)으로, 앞으로 관리가 되어 공명(功)을 세울 사람이오! 그런 내게 칼을 씌우려 하다니!”

    “나리들! 제발 사정을 좀 봐주시지요! 저희 노야도……!”

    장씨 부인이 뭐라 사정을 해보려 했지만, 누군가 그녀의 말을 사정없이 잘랐다.

    “자네 집안 노야래봤자 겨우 글이나 베껴 쓰는 칠 품 관리 아닌가? 편액(扁額)이 떨어져도 고관대작 하나쯤은 깔려 죽는다는 곳이 바로 도성이네. 그런데 겨우 칠 품 관리 주제에 왕실의 법도를 무시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말을 마친 관리가 눈짓을 보내자, 수하 두 사람이 손에 들었던 칼을 거뒀다. 관리는 전보다는 공손한 말투로 말했다.

    “그래도 지 공자께서 거인으로 앞으로 공명(功名)을 떨친 분이라 하니, 칼은 면하게 해드리지요. 하지만 관부는 가셔야겠습니다. 공자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직접 걸음을 하시는 편이 좋으시겠지요?”

    장씨 부인은 더는 방법이 없자 집안의 총관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총관이 관리에게 다가가 웃으며 주머니 하나를 찔러 넣었다.

    “이게 다 어찌 된 일인지 소인은 도통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지 뭡니까, 나리. 그래도 뭐라 언질이라도 해주실 순 없겠습니까? 진짜 잘못을 저질러도 죄명이 있는데, 저희 공자님께서 무슨 잘못을 한 것인지, 뭐라도 알려주셔야지요. 아니 그렇습니까, 나리?”

    그러나 예상 밖에 주머니를 도로 밀어낸 관리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간도 크군! 감히 관리에게 뇌물을 주려는 것인가! 크게 벌을 받아야 정신을 차리겠는가!”

    총관이 얼어붙은 듯이 딱딱하게 굳었다.

    성정이 그렇게 가혹하고 냉엄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루 낭중조차, 지난번 다수전(*茶水錢: 시중드는 이에게 주는 봉사료, 지금의 팁)을 얼마나 호쾌하게 받았던가! 그런데 이번 관리는 어째 기름칠이 전혀 되질 않는 것이, 바늘 끝도 안 들어갔다.

    ‘설마, 공자께서 진짜 큰일을 벌이신 게야?’

    관리는 더는 이들과 씨름을 하고 싶지 않다는 듯, 바로 명령을 내렸다.

    “가자! 부윤 나리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우리는 명을 따를 뿐이다!”

    “장아! 장아!”

    장씨 부인은 속에서 불이 새카맣게 올라왔지만, 지장이 그들에게 붙잡혀가는 것을 그저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지장이 관리들에게 연행된 뒤 장씨 부인은 급하게 하인들에게 외쳤다.

    “어서, 어서 노야를 부르거라!”

    * * *

    한편, 관리에게 잡혀간 지장도 영문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욱한 안개 속을 걷는 기분으로 부아(*府衙: 옛날 중국 부의 관부)에 도착한 지장은 그곳에서 제 동창들을 만났다.

    “공몽! 네가 여기 왜 있어!”

    “환봉? 상우, 너도?!”

    그렇게 하나둘 모이다 보니, 그날 장락지로 뱃놀이를 나갔던 소년들 중 대희만 뺀 전부가 모이게 되었다.

    그제야 지장은 깨달았다.

    “그 일 때문이었군.”

    집안의 세가 좋은 대희는 부윤도 미움을 살 것이 두려워 감히 잡아 올 수 없었을 것이다.

    환봉이 분한 마음을 토로했다.

    “이런 법이 어디 있지? 거만하고 횡포한 탕아들이 뭐라고 우릴 잡아들여! 그리고 소 공자가 물에 빠진 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단 건데? 저자들 편에게 맞아서 빠진 거잖아!”

    “그러니까! 우린 그걸 돕겠다고 한참이나 고생까지 했잖아! 대희는 물에 들어가기까지 했고!”

    그렇게 반나절을 갇혀 있던 그들에게 드디어 기다리던 부윤의 심문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부윤의 심문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간단했다.

    부윤은 경당목(*警堂木: 중국 과거 관리가 재판할 때 위엄을 나타내기 위하여 탁자를 내려치는 장방형의 목판)을 내려치며 고함을 질렀다.

    “자네들은 학자로서 발전을 꾀할 생각은 하지 않고, 사사로이 모여서 주색잡기에 전념하다 분쟁을 일으켰다. 그리고 주먹다짐 중에 사람을 때리고 물에 빠트렸다. 그 죄를 인정하는가?”

    당연히 죄를 인정할 수 없었던 소년들은, 저마다 입을 열어 변론했다.

    “저희가 놀잇배에 오른 것은 문회(文會)를 위해서였습니다. 방탕했던 공자들이야말로 주색잡기를 위해 사사로이 모였겠지요.”

    “저들이 먼저 저희의 배를 박았습니다.”

    “욕을 먼저 한 것도 역시 저들이 먼저입니다.”

    “사람이 물에 빠진 것도 저희가 빠뜨린 것이 아닙니다.”

    “부윤 나리, 설마 권력이 두려워 이렇게 앞뒤가 다른 상황으로 몰고 가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설마 그래서 저희에게 칼을 휘두르려 하시는 것입니까?”

    부윤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가 아래로 길게 늘어졌다.

    “다들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도리어 본관을 모욕하다니! 혹독한 죗값을 치러야 정신을 차리겠군!”

    부윤은 이 사건의 증인과 증거를 찾는다는 포고를 걸고, 증언을 들은 후에 판결을 내리겠다며 소년들을 옥에 가뒀다.

    소년들은 크게 분노했다.

    부윤이 말하는 증인이 누구겠는가? 소염과 같이 어울리던 방탕한 공자 놈들 아니면, 평왕부의 화방에서 일하는 일꾼들이 아니겠는가? 그들이 어느 편을 들지는 뻔했지만, 소씨 가문의 청탁을 받은 게 분명한 부윤은 자신들의 말은 들어주지도 않았다.

    * * *

    한편, 소식을 알아보고 돌아온 지익이 소식을 전하자 장씨 부인의 마음은 더없이 급해졌다.

    “우리 지장이가 앞뒤 없이 일을 벌이는 아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 아이가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만 봐도, 그 일은 지장이가 저지른 일이 절대 아니에요!”

    지익이 대답했다.

    “나도 장이를 믿소. 작은 사고라면 모를까, 그 녀석이 어찌 살인 같은 일을 큰일을 저지른단 말이오?”

    “그럼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관직이 낮긴 했지만 그래도 관밥을 먹은 세월이 있으니, 지익도 돌아가는 사정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

    “내 부윤 쪽에 아는 사람과 말을 해보니, 우리가 가서 말을 꺼내봐야 아무 소용없고, 아무래도 부탁을 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알아봐야 할 것 같소.”

    그 말에 당황한 장씨 부인이 물었다.

    “저희가 누굴 찾아 부탁한단 말입니까? 노야, 노야가 아시는 분이라도…….”

    지익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이 모든 게 자신이 못난 탓이리라.

    아버님과 큰형님께서 세상을 뜨신 후로, 그동안 왕래가 있던 이들의 걸음이 점차 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그나마 남은 사람들이라곤 부윤 앞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는 이들뿐이었던 것이다.

    “이 일 뒤에 소씨 가문이 있단 것이 분명하지 않소? 그러니 우리가 소씨 가문보다 더 세가 강한 인사(人士)를 찾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을 것이오.”

    애만 태우던 장씨 부인이 돌연 입을 열었다.

    “유씨 가문에 부탁을 해보면 어떻겠습니까? 부아(府衙)에서도 유씨 가문이라면 체면치레를 해줄 겁니다.”

    지익의 마음이 흔들렸다. 유씨 가문은 그럴만한 충분한 힘이 있는 집안이지 않은가.

    ‘하지만…….’

    “아이고, 노야! 지금 노야의 체면을 따질 때입니까! 그리고 제 아들 구하려고 부탁하는 것인데 노야의 체면이 상할 게 뭡니까!”

    속이 타들어 가는 제 부인을 바라보며 지익이 미간을 구겼다.

    “내 체면 때문에 망설이는 게 아니라, 이 일이 그리 간단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서 그런 게 아니오! 유씨 가문이라면, 소씨 가문 정도는 무서울 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이 일에 나서면 소씨 가문과 척을 지게 되지 않소. 유씨 가문이 굳이 그럴 이유가 뭐가 있겠냔 말이오…….”

    “그래서 이대로 손 놓고 가만히 있겠다는 말입니까! 되든 안 되든 일단 부탁이라도 해봐야지요! 해보지도 않았는데, 유씨 집안에서 들어줄지 안 들어줄지 노야께서 어찌 안 단 말입니까!”

    장씨 부인이 제 남편을 내쫓듯 밖으로 밀어내며 소리쳤다.

    “지금 당장 태사부로 가세요! 내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날에는 내, 당신과 끝장을 볼 것입니다!”

    그러나 장 씨가 그리 으름장을 놓지 않아도 지익은 당연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터였다. 그에게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지 않은가? 어린 나이에 거인(擧人)까지 된 제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역시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 리 없었다.

    장씨 부인은 홀로 남아 좌불안석이었다.

    그렇게 유씨 가문을 생각하던 장씨 부인은 자연스레 지온을 떠올렸고, 지온을 떠올리니 자연스레 대장공주가 떠올랐다.

    “그래, 온이에게 이야기를 해보자! 어쩌면 온이가 대장공주마마께 부탁을 드릴 수도 있고, 그리되면 이대로 조용히 없던 일이 될지도 모르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장씨 부인이 대뜸 소리쳤다.

    “마차를 준비하거라!”

    * * *

    소식을 들은 지온은 몹시 의아했다.

    “소씨 가문에서 정말 그런 일을 벌였단 말인가요?”

    “그렇다니까!”

    장씨 부인은 곧 오열이라도 할 기세였다.

    “장이는 벌써 잡혀갔다. 듣자니 물증이나 증언도 다 있다 하고, 이제 판결만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야. 소 공자란 사람도 노에 맞아 쓰러진 모양인데, 누가 그런 것인지는 모른다는 것 같았다. 여하튼 그 싸움에 연루된 이들은 전부 잡혀갔다더구나. 

    온아, 우리 장이는 정말 아무 관련이 없어. 그 아이는 어려서부터 성정이 워낙 착해서 길을 가다 만난 거지에게도 꼭 동전 두 닢씩 주고 가던 아이다. 그런 아이가 어떻게 그리 악랄하게 복수를 한단 말이냐? 더구나 사람을 죽이려 들었다니!”

    “저도 알고 있어요, 작은 숙모님.”

    지온이 장씨 부인을 위로하며 말했다.

    “그날 밤에 저도 오라버니와 같이 있었거든요. 오라버니께서 소 공자를 건드리지 않았다는 건, 제가 누구보다 잘 알지요.”

    깜짝 놀란 장씨 부인이 되물었다.

    “네가 그곳에 있었단 말이냐?”

    지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우선 말을 돌렸다.

    “일단 숙모님은 안심하고 돌아가 계세요. 이 일은 제가 해결할게요.”

    분명 지온을 구명줄로 생각하고 찾아온 장씨 부인이었다. 하지만 지온이 단번에 자신이 해결해주겠다며 나서자 도리어 그녀의 마음이 불안해졌다.

    제 남편조차 속수무책으로 두 손 놓고 있는 판에, 어린 소녀가 대체 무슨 수로 해결을 한단 말인가?

    “대장공주께 도움을 구하려는 것이지? 도와주실 것 같으냐?”

    지온이 웃음을 지었다.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니 숙모님은 돌아가 막내 숙부님께 다른 분을 더 찾아가지 말고 집에서 기다리고 계시라 말씀을 전해주세요.”

    “이를 어쩌지? 네 막내 숙부가 이미 태사부에 찾아갔는데…….”

    “유씨 가문과는 제가 의논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 하겠느냐?”

    얘기를 마친 장씨 부인은 돌아가면서도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지온이 생각보다 쉽게 부탁을 들어주어 한편으론 안심이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지온이 말을 너무 가볍게 뱉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소씨 가문이 평범한 집안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다가 장씨 부인은 지온이 가문으로 돌아온 후, 반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벌어졌던 일들을 떠올렸다. 덕분에 그녀는 곧 불안을 잠재우고 다시 마음을 강하게 먹을 수 있었다.

    ‘온이가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손에 뭐 하나 쥔 것이 있기나 했어? 그런데 지금 어떤지 봐봐. 차남가는 쭈그러들었고, 조방궁도 제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하고 있는 데다, 공주마마를 양어머니로 모시기까지 했어. 온이는 복이 많은 아이다. 온이를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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