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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 (185)화 (185/385)
  • 185화. 싸움

    선실 밖에서는 상대가 탄 화방에서 평왕부 총관이 나서자, 이를 본 한등이 바로 뛰쳐나가 으름장을 놓고 있었다.

    “그쪽이 운행을 제대로 못 한 것 같소. 우리가 오는 것을 봤으면 알아서 피했어야 하는 게 아니오?”

    아니나 다를까, 남에게 건방을 떠는 것에만 익숙했던 평왕부 총관은 금방 한등과 말다툼하기 시작했고, 두 사람이 다투는 소리는 평왕부 화방의 선실에까지 들어갔다.

    그 소리에 공자들이 짜증을 부렸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일꾼이 대답했다.

    “눈이 어두운 놈들이 저희 놀잇배에 배를 박아놓고 도리어 저희더러 사과를 요구하지 뭡니까. 그 일로 총관께서 싸우고 계십니다.”

    대답을 들은 공자들은 그런 간 큰 놈이 있나 싶어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감히 우리더러 사과하라는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들이 있단 말이냐? 어느 집안 놈들이냐? 설마 강왕부는 아니겠지?”

    고결한 척하는 문신(文臣)들이 모이면 시나 쓰고 읊는 게 다가 아니던가? 이런 짓을 벌이는 건 평소 놈들의 행실과 맞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훈귀 가문뿐이었는데, 강왕부를 제외하면 도성에선 평왕부의 세를 넘을 가문이 없었다.

    “강왕부는 아니온데…….”

    “그럼 어디냐?”

    “서생 무리들로 보입니다.”

    일꾼 역시 곤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뭐야?”

    공자들이 술렁거렸다. 아직 관직에도 오르지 못한 서생 나부랭이들이 감히 자신들을 건드린단 말인가?

    “사는 게 지겨운가?”

    “가세! 가서 본때를 보여주자고!”

    소란을 떨며 공자들이 우르르 몰려나갔다.

    소염의 잔에 술을 채운 류명주가 웃으며 물었다.

    “공자님께선 나가보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소염이 나른하게 대답했다.

    “나갈 것이 뭐가 있겠느냐? 저놈들이 지겠느냐?”

    류명주는 다른 말로 토를 달지 않았다.

    “그렇겠습니다. 다투시면 괜히 공자 신분에 누만 되겠지요.”

    * * *

    한편, 한등은 제가 탄 놀잇배의 선실로 뛰어 들어갔다.

    한등이 분에 겨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공자님들, 조금 전에 평왕부의 배가 저희 배에 부딪혔는데, 저들 총관이 끝까지 트집을 잡고 늘어져 저희더러 비키라 하지 뭡니까. 죄송합니다, 공자님들. 아무래도 소인이 무능하여 저들에게 사과하고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금방 정리하겠습니다.”

    이는 혈기왕성한 소년들이 듣고 참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지 않은가? 한등의 말을 듣자마자 당장 소란이 일었다.

    “평왕부? 어떻게 이렇게 횡포를 부린단 말이야!”

    “우리가 왜 사과를 해야 하는가!”

    “가자! 가서 따져야지!”

    놀던 주령도 그만두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 소년들 역시 우르르 선실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두 놀잇배의 공자들과 서생들이 서로를 마주했다.

    상대의 수가 많은 것을 본 서로의 머릿속엔 비슷한 생각이 스쳤다.

    ‘허! 머릿수 많은 것 보게? 지금 사람 수로 괴롭혀보겠다는 거야?’

    ‘꿈들 깨라!’

    시비가 붙는 것은 당연했다.

    “당장 비켜라!”

    “우리가 왜 그래야 한단 말이오? 비키려면 그쪽이 비켜야 하지 않겠소?”

    “말라비틀어지도록 가난한 서생 나부랭이들이 기녀들이 올리는 술도 마시러 오고, 출세했구나! 술값 계산할 돈은 있느냐?”

    “방탕하신 공자 나부랭이들께서 부친의 음덕(*蔭德: 조상의 덕) 뽑아 먹는 재주가 출중한 건 아주 잘 알겠소! 그런데 천자문들은 떼셨소?”

    “감히 본 공자를 비웃어? 살기가 귀찮으냐?”

    “웃으면 안 되는 거였소? 천자문도 못 떼고, 사람 웃지도 못하게 하는구먼!”

    이어지는 입씨름에 서로 불이 붙은 그때, 누군가 뱃전에 있던 의자를 때려 부쉈다. 바로 사람들 사이로 끼어든 한등이 소리를 질렀다.

    “저놈들이 사람 친다!”

    그 말에 크게 분노한 서생들이 무기를 찾기 위해 주변으로 흩어졌다.

    그렇게 공자들과 서생들은 서로를 향해 온갖 잡동사니들을 던져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로 물건을 던지는 것만으론 성에 차지 않았던 그들은 결국 상대방의 배에 올라타 드잡이질을 시작했다.

    정통 서원의 원생들은 본래 기마와 궁술로 몸을 단련한다. 그래서 서생들은 전력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방탕한 생활에 젖어 지내던 공자들은 대다수가 주색에 빠져 지냈던 터라, 전력에 도움이 될 만한 이가 손에 꼽았다.

    보고 있던 한등이 슬쩍 손짓하자 일꾼 몇이 은근슬쩍 그 난리 통으로 끼어들었다. 그리곤 손짓, 발짓을 해가며 공자들에게 암수를 뻗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들겨 맞기 시작한 공자들의 신음이 사방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한편, 선실 안에 있던 소염은 밖에서 들리는 소리가 심상치 않단 것을 깨닫고, 류명주를 밀치며 선실 밖으로 나왔다.

    “소염, 빨리 와서 도와주게!”

    누군가의 고함에 소염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저 폐물 같은 놈들!”

    고작 서생들도 어쩌질 못하는 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소염이 금방 달려가 제 실력을 보여주려던 그때였다.

    맞은편 놀잇배에 탄 루안은 선실 뒤쪽 바깥벽에 기대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소염이 모습을 드러낸 것을 본 그는 고개를 들어 잔에 남은 술을 단번에 털어 마셨다. 술잔을 쥔 그의 손목이 쌩하니 돌아가자 곧 루안이 쥐고 있던 잔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뱃머리에 도달한 소염은 무릎에서 갑작스러운 통증을 느끼고 그대로 뱃전에 부딪혔다.

    기회를 포착한 한등이 공자 하나를 소염 쪽으로 밀치자 마침 손에 노를 들고 있던 공자가 그대로 밀려 넘어지며 노가 그대로 소염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쿵!

    둔탁한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소염이 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비틀비틀, 몇 걸음을 떼던 그가 그대로 물속으로 떨어졌다.

    풍덩!

    물에 빠지는 소리가 들리자 싸우고 있던 공자와 서생들의 동작이 일거에 멈췄다.

    그나마 소염 시종의 반응이 빨랐다. 뱃머리로 달려간 시종이 소리를 질렀다.

    “공자님! 공자님! 우리 공자님이 물에 빠지셨소! 빨리 구해주시오!”

    물 위가 너무도 고요했다.

    공자들은 다들 싸움을 멈췄고, 뱃사람들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줄줄이 옷을 벗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서생들이 서로 눈만 마주 보던 그때, 대희가 입을 열었다.

    “내가 수영을 좀 하네. 가서 도와줘야지.”

    “나도 도와줄게.”

    그러자 지온이 소년들에게로 다가가 말했다.

    “날이 어둡습니다. 수영을 하실 줄 알아도 사고가 생기기 쉬워요. 수영 실력도 매일 물질로 먹고사는 뱃사람과 비교가 되지 않으실 것이고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다른 분들도 안심하실 수 없으실 것입니다. 벌써 많은 사람이 구하러 뛰어들었으니, 반드시 구할 수 있을 거예요.”

    그녀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으나 대희는 생각이 달랐다.

    “저자가 물에 빠지게 된 것도 우리와 전혀 무관하진 않으니 응당 도와야지. 너희는 횃불이나 들어라. 나 혼자 물어 뛰어들 테니까. 그래도 최선은 다 해봐야지.”

    대희의 말에 다른 소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하나 맞는 것이 없어 서로 붙어 싸우긴 했지만, 그것은 소년다운 의기(意氣) 때문이었을 뿐,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는 것은 도의(道義)가 아니었던가.

    다들 저마다 생각이 있는지라, 다른 소년들도 더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 * *

    횃불이 사방을 밝히자 주변에 있는 다른 배들도 난데없는 소동에 놀라 관심을 보이며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이유를 알게 된 이들 중 의협심이 강한 이들은 함께 사람을 구하겠다며 물로 뛰어들어 장락지 전체에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선실 뒤쪽으로 이동한 지온이 루안의 옆에 앉았다.

    “아까 그가 신비의 집안인 대씨 가문의 일곱째 공자요?”

    지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재로군.”

    루안이 말했다.

    “아마 소염을 알아봤을 거요. 그러니 소씨 가문과 척을 지면 어찌 될지도 알았겠지. 본인은 대씨 가문이 뒤를 받쳐주고 있으니 두려울 게 없겠지만, 다른 한미한 가문의 동창들은 소씨 집안의 화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오.”

    가만히 생각에 잠겼던 지온이 입을 열었다.

    “지장 오라버니의 친우들이 나서서 소염을 구하는 것에 한 손을 보탠 것을 이미 많은 사람이 봤어요. 소씨 가문에서 아무리 화가 나도 저들이 그걸 증명해줄 거예요.”

    루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끼리 주먹다짐을 하는 것까지는 별일 아니지만, 거기서 사람 목숨이 나오면 그때부턴 큰일이지. 당신의 둘째 오라버니가 대씨 집안의 공자와 자주 어울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소. 아무래도 높은 집안의 공자가 보는 시야가 넓긴 하니까.”

    * * *

    한동안 난리가 이어졌고 마침내 일꾼 하나가 소염을 찾아내 물 밖으로 끌어 올렸다.

    노에 머리를 맞고 물에 빠졌던 소염은 금방 정신을 잃는 바람에 물을 얼마나 마셨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의원이 몇이나 나서서 손을 쓸 수밖에 없었으나 결국엔 그를 살려냈다. 

    그 소식에 지온은 크게 아쉬워했다.

    “소씨 가문에서 난리 칠 것을 생각하면 살린 것도 나쁘지 않소.”

    지장의 일행들은 다른 의미로 상당히 기뻐했다.

    ‘주먹다짐에, 사람도 구하고! 오늘 밤은 아주 끝내주네!’

    평범하게 주령이나 하고 놀던 다른 날보다 오늘이 훨씬 더 재미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너무 늦었다는 것을 깨달은 소년들은, 그들끼리 수다스레 이야기를 나누더니 젖은 옷들을 갈아입고 지온을 찾아와 작별인사를 건넸다.

    지온의 놀잇배에서 내리기 전에 지장이 따뜻하게 물었다.

    “지온아, 내가 데려다줄까?”

    지온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라버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따로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그럼 돌아가는 길에 조심해야 한다.”

    소년들이 모두 돌아간 후, 루안은 지온을 조방궁에 데려다주었다.

    그녀와 헤어지기 직전, 루안이 그녀에게 종이봉투를 건넸다.

    이에 지온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이게 뭐예요?”

    그가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하더니 말문을 열었다.

    “돌아가 먹으라고 가져왔소.”

    “아…….”

    루안과 헤어져 거처로 돌아온 지온이 봉투를 열어보니 밀과(*蜜果: 꿀이나 설탕에 잰 과일)가 들어있었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밀과를 보던 그녀는, 루안과 옷장 안에 있을 때 들었던 공자와 기녀의 대화가 떠올랐다.

    “공자님, 달콤한 게 필요하시면 밀과를 드셔야 하는 게 아니옵니까?”

    “밀과가 어디 너보다 달콤하겠느냐…….”

    지온이 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이 인간이! 그 얘기를 들은 지 얼마나 됐다고 그걸 이렇게 써먹어!’

    * * *

    역시나 소염의 집안에선 난리가 벌어졌다.

    이제 막 완치된 소염이 또다시 머리를 다쳐 돌아오다니! 더구나 이번엔 비단 머리만 다친 게 아니라 물에 빠져 혼절까지 한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소염은 열까지 나기 시작했다.

    결국, 어의를 청해 이틀을 치료받은 후에야 소염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소달에게 아들이라고는 소염 하나뿐이었으니, 그가 이대로 가만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장락지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에 잘 자고, 잘 먹으며 푹 쉬고 있던 지장에게 무서운 얼굴을 한 관원들이 날벼락처럼 들이닥쳤다. 게다가 그들은 지장의 신분을 묻더니 다짜고짜 그를 경조부(京兆府)로 끌고 가려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보고 매우 놀란 장씨 부인이 다급하게 물었다.

    “나리! 저의 어리석은 아들놈이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까? 왜 갑자기 잡아가시는 겁니까!”

    그러자 우두머리로 보이는 관리가 거만한 얼굴로 차갑게 대답했다.

    “자네 아들은 모살 사건의 혐의자네. 난 자네 아들을 잡아 오라는 부윤(*府尹: 부 최고 책임자) 나리의 명을 받고 잡아가는 것일세.”

    당황한 장씨 부인이 말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우리 아이가 얼마나 착한아이인데……. 가끔 싸우기는 하지만 사람을 죽이려 했다니요!”

    “그건 본인에게 물어봐야지. 나는 그저 명대로 일할 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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