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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 (170)화 (170/385)
  • 170화. 합격한 사람은 누구?

    공자 두 사람이 과거를 보는 터라 올해 중추절은 중추절 같지 않았다.

    집안사람들 모두 중추절을 제대로 보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시험이 끝나는 날, 다들 시험장 밖을 서성이며 과거장 안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수험생들이 거의 떠났음에도 지염과 지장이 보이지 않자, 차남가와 삼남가 사람들 모두 몸이 달았다.

    “어찌 아직도 안 나오는 게야?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니겠지?”

    “아까 시험 보다가 쓰러진 이들이 여럿 실려 나가던데, 설마…….”

    “거, 좀좀좀! 재수 없는 소리 좀!”

    마침내, 지염을 부축한 지장이 모습을 드러내자 두 집안 식구들이 얼른 달려가 두 사람을 에워쌌다.

    “지장, 괜찮은 게냐?”

    장씨가 묻자, 지장이 손을 흔들며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그저 많이 지쳐서 그래요.”

    과거장 안이 얼마나 열악한지는 과거장에서 나오는 누굴 보든 알 수 있었다.

    과거를 보는 이들은 먹고 자는 것을 모두 과거장에서 해결해야 했는데, 이곳에서는 씻을 수도 없다 보니 날이 지날수록 과거장에서 버티기가 더욱 힘들었다. 맡을 수 없는 온갖 고약한 냄새들이 뭉치는 것도 모자라, 제대로 잠도 잘 수 없는 곳에서 크고 작은 사내들이 같이 참고 지내야 하는 고통은 거의 피부 껍데기가 벗겨질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지염의 얼굴은 지장보다 더욱 좋지 않았는데, 눈은 거의 풀려 있었다.

    그러나 지염의 상태는 사실 피곤함보다도 시험에서 나온 문제 때문이었다.

    책론 문제를 보자마자, 지염은 머리가 윙윙 울리기 시작했다.

    문제가 지장이 자신에게 준 예상 문제집의 문제와 거의 비슷하지 않은가!

    그들처럼 우수한 학생들은 앞서 본 경의(經義)와 같은, 그저 서책에 나온 그대로를 베껴 쓰는 과제로는 점수 차를 벌릴 수가 없었다. 뒤에 오는 시부론(詩賦論)과 책론(策論)이 진짜 점수에 영향을 주는 과제였다.

    특히, 책론은 최근 몇 년 동안 점점 중요해지고 있었다.

    지염은 지장이 전해준 예상 문제집이 진짜일 것이라곤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오히려 선생에게 얻은 것이 실제 향시에 나온 문제와 전혀 다르지 않은가!

    그러나 이제 와 후회해도 늦은 일이었다.

    뒤로 갈수록 정신 상태도 나빠진 그는 마지막엔 자신이 뭐라고 썼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지염은 지장을 한 번 쳐다보았다.

    ‘저놈은 그래도 정신이 좀 멀쩡해 보이잖아?’

    그때 지장이 입을 열었다.

    “지온이가 준 향낭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안에 정신이 드는 분가루가 들어있어서 힘들 때 냄새를 맡으면 매우 편해졌거든요. 형님도 그랬죠?”

    지염이 우뚝 멈췄다. 그의 머릿속에 고람을 검사하며 자신이 버린 향낭이 떠올랐다.

    “형님?”

    지염은 그저 작게 그렇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우선 집부터 가자, 집부터.”

    장씨가 그를 챙기며 말했다.

    “시험 한 번 보고 나니 살이 쏙 빠졌네.”

    * * *

    집에 돌아온 후 지장은 잘 먹고, 잘 자며 며칠 푹 쉬었다.

    그 후에 공몽과 대희가 그를 찾아왔다.

    대희는 문을 들어서자마자 가벼운 입을 놀렸다.

    “지장, 낙방했냐?”

    지장이 재수 없는 소릴 들었다는 듯, 퉤퉤퉤 침을 뱉고는 말했다.

    “아직 시권에 먹물도 덜 말랐겠구먼, 아주 낙방하라고 저주를 해라!”

    대희가 낄낄 웃으며 말했다.

    “아니면 왜 답 맞춰보러 서원에도 안 오는 거냐?”

    지장이 대답했다.

    “피곤해서 그런지, 머리 쓰는 게 싫네.”

    말을 마친 지장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너희는? 잘 본 게냐?”

    대희가 손을 흔들었다.

    “내 실력 알면서 그러냐. 수재(*秀才: 가장 낮은 등급의 시험을 통과한 자를 이르는 말)만 돼도 잘한 거야, 나는.”

    공몽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저는 제가 쓴 답지를 베껴 쓴 것을 선생께 보여드렸더니 선생께서 제가 낸 답지가 너무 답안에 딱 들어맞는 답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붙을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나도 비슷할 거다.”

    대희가 물었다.

    “그나저나, 네가 가져온 예상 문제집은 어디서 난 게냐? 예상문제라더니 진짜 비슷하게 나왔잖아. 나도 이번에 시험 운은 참 좋았는데, 글재주가 떨어져서 시를 엉망진창으로 써서 냈다. 경의에서도 몇 문제를 틀렸고. 어휴, 기회를 놓쳐 아쉽게 됐지, 뭐냐?”

    지장이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안 알려준다, 이놈아!”

    “너 그 예상 문제집 네 형님에게도 줬지? 그 인간이 거인이 되게 생겼구먼. 쯧쯧쯧, 열일곱에 거인이 되면 아무래도 자만심 가득한 인간 눈에 평범한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겠냐? 지장, 이 바보 같은 것아, 사람만 좋은 이 바보 같은 인간아! 나중에 그 인간한테 뒤통수 맞고도 후회 안 하나 보자, 이놈아!”

    지장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대답했다.

    “나도 떨어지면 삼 년 뒤에 다시 보면 되는 거지, 뭐가 무서우냐?”

    장씨의 말처럼 열 몇 살에 거인이 되는 사람은 원래 소수였으니, 그는 견딜 수 있었다.

    더구나 이번 시험을 무리 없이 치르며 제 실력도 크게 성장한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 이런 경험을 했으니 다음번에 다시 과거를 치를 때는 더욱 잘 볼 자신이 있었다.

    ‘스무 살에 향시도 늦은 건 아니잖아?’

    그리고 세 사람은 시험에 관한 일은 모두 잊고 놀러 나갔다.

    지장뿐만 아니라, 지익과 장씨 역시 아들의 과거 성적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지장의 성적이 어떠했는지, 그들이 더 잘 알지 않던가?

    그런 아이가 단번에 향시에 급제하여 거인이 될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그리고 지익 본인 역시 그 큰 노력을 기울이고서야 간신히 합격하여 거인이 되었으니, 그것을 아들에게 그리 쉽게 바라면 아니 된다고 생각했다.

    * * *

    그렇게 날이 흘러 합격방이 붙던 날.

    “합격입니다! 합격이오!”

    방을 보고 오던 시종은 돌아오는 내내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좌불안석으로 앉아있던 차남가 사람들은 그 소리에 마음을 놓았다.

    위씨가 웃느라 가늘어진 눈으로 지염을 보며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염아, 들었느냐? 네가 합격했다는구나!”

    그러나 지염의 얼굴엔 조금의 기쁨도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알 수 없는 불안만이 지염의 마음에 가득했다. 지염의 시선은 문에 틀어박혀 떨어질 줄을 몰랐다.

    지염을 흘낏 본 장씨는 내심 구시렁거렸다.

    ‘큰아이가 진짜 합격한 게야? 차남가도 운이 너무 좋구먼. 내년 회시에도 붙어 열여덟에 진사가 되면, 아주 사람들한테 치이겠어.’

    “형님, 형수님, 축하드립니다.”

    지익이 손을 모아 공수하며 축하했다.

    제 수염을 쓸어내리는 지형은 기분이 좋아 웃느라고 눈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헛기침을 해대며 말했다.

    “같이 축하할 일이지. 염이는 자네들 조카이니 같이 축하하면 될 일이야.”

    그리곤 제 여동생과 놀아주고 있는 지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장이가 이번에 합격을 못 했어도 괜찮아. 삼 년 뒤에 다시 응시해도 늦지 않다.”

    지익은 그 말에 맞장구치긴 했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차남가와 비교를 당하니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는가?

    달려오던 시종이 드디어 도착했다.

    안으로 뛰어 들어온 시종이 무릎을 털썩, 꿇곤 크게 외쳤다.

    “감축드립니다, 둘째 공자님! 합격하셨습니다!”

    웃고 있던 모든 이들의 미소가 일순 정지하여 굳었다.

    제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위씨가 다시 물었다.

    “지금 누가 합격했다고 했느냐?”

    “둘째 공자님이십니다.”

    간신히 숨을 돌린 시종이 대답했다.

    “둘째 공자님께서 합격하셨습니다.”

    “대공자는?”

    시종이 고개를 흔들자 위씨가 버럭 화를 냈다.

    “고개를 흔드는 게 무슨 뜻인 게야! 제대로 확인을 한 것이냐?”

    울상을 한 시종이 대답했다.

    “제대로 살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번 훑었는데 대공자님의 이름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지장이는 합격하고 지염이는 낙방을 했단 말인가?’

    기분이 순식간에 좋아진 지익이 히죽히죽 웃으며 제 아들의 어깨를 토닥거리더니 말했다.

    “녀석, 운도 좋구나! 시험을 보자마자 나가 놀기 바쁘기에, 난 네가 시험을 망쳐 다른 이들 뵐 낯이 없어 그러는 줄 알았거늘!”

    지장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였지만, 제 생각에도 제가 낸 답이 나쁘지 않았던지라 웃음을 지었다.

    “지온이가 예상 문제집을 전해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 안에서 많이 나왔습니다.”

    그 말에 위씨가 발작하듯 소리를 질렀다.

    “예상 문제집이라니! 왜 네 형님에겐 보여주지 않은 것이야!”

    지장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대답했다.

    “전해주었습니다! 그랬지, 형님?”

    얼굴색이 무척 나빠진 지염은 윙윙거리는 소리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자신이 가장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야 만 것이다.

    바로 자신만 시험에서 떨어지고, 지장만 합격하는 것 말이다.

    지장의 성적은 늘 자신보다 못했다. 그런데 하필 가장 중요한 시험에서 자신을 앞서버리고 말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제 머리를 움켜쥔 지염은 한 달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이 저주스러웠다.

    ‘그 예상 문제집!’

    그 문제집을 왜 보지 않았단 말인가? 그의 학문은 늘 지장보다 뛰어났기에 조금만 봤으면 분명 지장보다 더 뛰어난 시권을 제출할 수 있었을 터였다.

    ‘그리고 그 향낭!’

    제 집안 체면을 모두 바닥에 떨어뜨린 지온이었기에, 지염은 어쩐지 지온이 자신에게 나쁜 마음을 품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자신을 해치려고 할 수도 있단 생각에 그 향낭을 버려버렸는데…….

    만약 그 향낭을 가지고 있었다면 마지막에 자신이 무엇을 썼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정신이 혼미해지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랬다면 예상 문제집이 없더라도, 제가 가진 진짜 실력으로 합격의 기회를 노려볼 수도 있었을 터였다.

    그러나 그 두 번의 기회를 자신은 모두 날려버리고 말았다!

    위씨는 여전히 난리를 부리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다! 염이가 어떻게 장이보다 시험을 못 볼 수가 있단 말이야!”

    그 말에 장씨가 기분이 상해서 말했다.

    “시험을 누가 예측할 수 있답니까? 천하에 이름 높은 기재들도 떨어지는 이들이 부지기수인 시험이 과거인데, 염이가 무조건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기라도 해야 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시험장에서 제 실력을 더 발휘하는 이들도 있는 것이지요! 저희 장이가 과거장에서 주눅 들지 않고 평소보다 더 잘 보면 안 됩니까?”

    눈썹을 양껏 치켜세운 지익이 제 속을 긁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장이도 두 분의 조카이니, 같이 축하하면 될 일입니다. 염이도 이제 겨우 열일곱이니 삼 년 뒤에 다시 응시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 * *

    소식을 듣던 지온은 마시던 차가 목에 걸려 캑캑 기침을 하고 말았다.

    “둘째 오라버니가 합격하고, 큰오라버니가 떨어졌다고요?”

    소식을 전하러 온 장씨는 만면에 웃음꽃이 가득했다.

    “그렇다니까! 네가 둘째 형님 얼굴을 못 봐서 그렇지, 처음에 합격한 사람이 염인 줄 알았다가 나중에 우리 장이가 합격한 걸 알고는 아주 얼굴이 새파랗게 변하더라니까.”

    지온이 물었다.

    “제가 드렸던 예상 문제집을 둘째 오라버니가 큰 오라버니에게 안 보여드린 건가요?”

    “왜 안 보여줘!”

    장씨가 펄쩍 뛰었다.

    “장이가 얼마나 마음이 따뜻한지, 그걸 베껴서 제가 남기고 염이에게 보냈지. 나중에 시험에 몇 문제가 나와서 염이도 맞았으리라 생각했는데, 알고 봤더니 염이는 그 책자를 보지도 않았더구나.”

    제 이마를 친 지온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네가 준 향낭도 있지 않니? 알고 봤더니 그것도 버렸다더라. 그래서 시험을 보다 끝에 가서는 정신이 혼미해서 제대로 답도 쓸 수가 없었다는 거야.”

    지염은 이 모든 사실을 말다툼 중에 실수로 말했고, 사실을 알게 된 삼남가 사람들은 이 사실에 화도 나면서 웃기기도 했다.

    난리를 치고 보니, 지염이 낙방한 것은 모두 자초한 것이 아니던가?

    지온도 황당하긴 마찬가지였다.

    “제가 향낭을 만든 건 지장 오라버니가 최선을 다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어요. 둘째 오라버니에게 드릴 거면 큰 오라버니에게도 드리면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는데, 큰오라버니도 참…….”

    지온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백기를 들고 아래로 들어온 차남가에게 귀찮게 이를 왜 또 드러낸단 말인가? 그들에게 낭비할 시간이 어디 있다고?

    “내년 회시는 오라버니도 보실 생각이세요?”

    지온이 묻자 장씨가 대답했다.

    “장이가 여 선생께 감사하다 인사를 드리러 가서 그것을 여쭌 모양이야. 그때 선생께서 이번에 합격할 수 있었던 건 어느 정도 운이 따랐던 것이고, 진사가 되기 위한 학문적 소양은 아직 부족하다고, 최소 삼 년 정도는 더 갈고 닦아야 한다고 하셨다더구나.”

    지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좋지요. 오라버니는 아직 나이가 많이 어려 진중하지 못하거든요. 아직 조정에 나아갈 때는 아닐 수 있어요.”

    “여 선생께서도 그리 말씀 하시면서 장이에게 선생 한 분을 추천하셨다. 앞으로 반년간은 서원에 가지 않고 그 선생님 밑에서 수학할 생각이야.”

    지온이 미소를 지었다.

    “여 선생님 뜻대로 하시면 되겠어요, 숙모님.”

    역시나 지온이 예상한 대로 이번 회시의 주 시험관으로 여강이 임명되었다. 괜히 두 사람의 관계를 두고 다른 이들이 말들을 지어낼 우려가 있었기에, 지장은 이번에는 회시를 보지 않는 편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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