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165)화 (165/385)

165화. 자식의 죄는 부모의 잘못

“네, 폐하.”

유신지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머릿속을 한 번 정리한 그가 입을 열었다.

“어제 신이 퇴근할 때쯤 서신을 한 통 받았사온데, 회영왕 전하와 소 공자의 마구 시합이 있어, 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마침 다음날이 신이 쉬는 날이었던지라 그에 응하였고, 소신은 가는 길에 루 대인을 불러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유신지의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 

“…반나절 간 모두 함께 훈련하였고, 합도 무척 좋았습니다. 경기가 시작된 후로도 저희가 계속 경기를 주도할 수 있었지요. 아마 그 때문에 마음이 조급했던 것인지 소 공자의 동작이 거칠어졌습니다. 소 공자는 구장으로 먼저 루 대인을 쳤고, 그 후 정국공 세자의 뒤를 쫓다 그를 치고 말에서 떨어뜨리게 되었지요…….”

눈이 가늘어진 황제가 그의 말을 반복했다.

“경 세자를 치고 말에서 떨어뜨렸다?”

“그렇습니다.”

고개를 들어 황제와 시선을 마주하는 유신지의 모습 어디에도 흔들림이라곤 없었다. 소달을 끝내려는 고발을 하는 중이라는 자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그러나 앞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셋보단 유신지의 이런 직설적인 태도가 황제는 오히려 마음에 쏙 들었다.

‘할 말이 있으면 해야지, 숨길 게 무엇이냐? 짐이 옳게 판단하지 못할까 봐?’

소달이 급히 끼어들었다.

“폐하, 소장의 아들은 고의가 아니었습니다! 마구장에서 손이 잘못 나가는 경우는 자주 있는 일…….”

“맞습니다.”

유신지가 말을 받았다.

“그래서 신도 처음엔 깊이 생각하지 않았으나, 정국공 세자가 말에서 떨어진 후에도 소 공자는 말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의도가 너무도 명백한 말에 소달이 화를 토했다.

“유 추승! 지금 그게 무슨 뜻인가?! 내 아들이 고의로 사람을 밟으려 했단 것인가!”

가벼운 미소를 지은 유신지가 태연자약하게 대답했다.

“소 장군, 하관(下官)은 대리시에서 일하는 추승입니다. 사건을 보고 추론을 하는 것이 습관이지요. 당시의 정황으로 보아, 소 공자에게 고의성이 없었다는 것을 믿기 어렵습니다.”

“사람 모함하지 말게!”

소달이 황제를 향해 소리쳤다.

“폐하! 유 추승은 회영왕이 초청했던 사람이니 처음부터 회영왕 전하의 편이었을 겁니다! 공정한 판단을 하기 어렵습니다!”

유신지는 부정하지 않았다.

“폐하, 소 장군께서 하신 말씀이 아주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신이 소 공자와 대립하게 된 것 역시, 그의 행위를 본 후 악감정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온 소저가 말을 쏘아 죽이지 않았다면 지금 폐하께서 판결을 보고 계신 사건은 아마 살인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폐하!”

소달이 고함을 질렀다.

“저자는 지금 과격한 말로 소신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소달이 이렇게 나올수록 황제는 더욱 반감이 일었다.

황제가 차갑게 말했다.

“과격한 말로 위협을 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고, 먼저 끝까지 듣지.”

말을 할 수 없게 된 소달은 괴로워 죽을 것 같았다.

유유자적하게 소달에게 손을 모아 공수까지 해 보인 유신지가 계속 말을 이었다.

“그 후, 말에서 내린 신은 소 공자를 찾아가 이리 경기를 하는 것은 위법이 아닌지 따졌습니다. 그러나 소 공자는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것인지, 전혀 거리낄 것 없다는 듯 행동하였습니다. 심지어 신과 루 대인에게 자신은 사람을 때릴 수 있는데, 너희들도 그럴 수 있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이는 게 아니겠습니까?”

잠시 말을 멎었던 그가 한숨 쉬었다.

“소 공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관직을 가진 신과 루 대인이 어찌 그와 분별없이 언쟁을 벌이겠습니까? 혈기 넘치는 시기의 소년이니 천방지축 굴 수도 있지요. 못된 말 몇 마디에 저희가 달려들어 언쟁을 벌어야 하겠습니까? 하여,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만 풀려던 찰나, 신경을 못 쓴 사이 경 소저가 달려들었던 것입니다. 사건은 이렇게 된 것입니다, 폐하.”

천천히 고개를 주억이던 황제가 소달에게 물었다.

“소 장군, 할 말이 있는가?”

유신지가 한 말 대로라면, 소염은 제 발등을 제가 찍은 정도가 아니라 도리어 중벌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은가!

사람을 말로 밟으려 했다니, 마음에 어떤 악의를 품었을지는 말로 설명할 필요조차 없지 않겠는가? 진짜 밟히기라도 했으면 어찌 되었겠는가! 가벼우면 불구요, 심하면 모살이었다!

관직도 없는 소염이 국공의 세자를 상대로 이렇게 뻗댈 수 있는 배짱이 어디서 나왔겠는가? 모두 아비인 자신 때문이 아닌가!

황제가 화가 났음을 알아본 소달의 등으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털썩, 무릎을 꿇은 소달이 항변했다.

“폐하! 유 추승의 의견은 그저 일방적인 의견일 뿐, 소장의 아들은 절대 고의가 아니었습니다.”

“한 번은 고의가 아닐 수 있지. 그러나 그것이 두 번, 세 번이라면? 그것도 고의가 아닌가?”

황제가 추궁하듯 물었다.

“어제 소염이 황숙에게 간계를 부렸다고 이미 황숙에게 들었네. 그리고 오늘 연달아 루안과 정국공 세자를 향해 흉수를 썼다는데, 짐이 고의가 아니란 것을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그것은…….”

소달은 계속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폐하께서 대체 왜 이런단 말인가? 하잘것없는 회영왕에, 마음에 들어 하시지도 않던 정국공부인데 왜 갑자기 저들 편에서 나를 질책하신단 말인가? 설마 루안, 저 녀석 때문인가? 그러나 저 녀석은 별다른 말도 하지 않지 않았던가? 그러면 유신지, 저놈의 한 마디 때문에? 황제가 태사부를 그렇게 신뢰하고 있었던가?’

복잡한 생각을 비집고 황제의 목소리가 소달의 귓가에 들려왔다. 

“소 장군, 소염이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그런 상태라니, 짐도 그 아이가 훈계가 되었으리라 여기겠네. 허나, 지금과 같은 소염의 주제넘은 행동을 벌하지 않고 넘어간다면 아무래도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군.

조금 전 정국공이 말을 잘했네. 자식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것은 부모의 잘못이라 했나? 그렇다면 장군 가문 출신인 소염이, 몸에 익힌 무예를 정도에서 벗어나 잘못 휘두르게 된 것 역시, 모두 아비 된 자네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짐은 자네에게 반년 치 녹봉을 삭감하는 벌을 내리는 바이니, 돌아가 반성하도록 하게!”

소달은 입술을 파들파들 떨며 무어라 말을 해보려 했지만, 음산하게 내려앉은 황제의 낯빛에 더는 변론을 이어가지 못하고 그저 감사하다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회영왕은 기쁨에 냅다 소리를 질렀다.

“영명하십니다, 폐하!”

정국공 부부 역시 감사와 감동으로 눈물이라도 흘릴 듯 입을 열었다.

“폐하의 성은에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황제는 다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역시, 아무리 굳게 믿는 신하라도 한 번씩 담금질을 해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소달에게 선을 넘어선 안 된단 것을 확실하게 인지시켜야겠지.’

“정국공, 소달이 삭감당한 녹봉을 가져가 자네 아들의 치료비로 쓰시게! 그러나 자네의 여식이 분명 심하게 충동적이긴 했네. 여아가 그리 거칠어서야 앞으로 어찌 한 사람의 부인이 되겠는가? 정국공 부인은 돌아가 제대로 단속하도록 하게.”

“명을 받잡겠습니다, 폐하.”

정국공 부부는 여러 번 거듭 감사 인사를 올렸다.

황제는 다시 유신지를 몇 마디 말로 칭찬하고는 말했다.

“이제 나가들 보시게. 이 일 때문에 짐의 정무가 많이 밀려 이러다 또 밤을 새우게 생겼네.”

다들 연신 죄송하다고 하자 황제가 손을 흔들었다.

“루안, 자네는 마침 짐이 정리해야 할 상소가 있으니 남게.”

“알겠습니다.”

황제가 손을 저어 호 공공까지 내보내고 나자 전 안엔 곧 두 사람만 남았다.

“왜 소달을 감쌌나?”

황제가 입을 열자마자 물었다. 그러자 루안이 말했다. 

“신은 폐하께서 소 장군을 벌하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황제의 차가운 대답이 돌아왔다.

“왜 벌하지 못해! 그의 아들이 감히 군왕까지 건드릴 정도였다. 과하지 않았느냐!”

루안이 숨을 깊게 내쉬며 말했다.

“금군통령은 황성의 진수(鎭守)를 맡은 자입니다. 폐하와 소 장군이 멀어지게 되면 신은 다른 이가 이득을 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황제가 눈을 부릅떴다.

“자네가 말하는 다른 이가 누구인가?”

“…….” 

고개를 숙인 루안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황제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네도 뭘 숨기는 건가?”

루안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누구를 말함인지, 폐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소 장군은 폐하께서 직접 선발한 이가 아닙니다.”

황제도 모르지 않았다.

황제는 삼 년 전, 자신이 황위를 계승했을 당시를 떠올렸다.

소달은 의안왕이었던 자신이 도성을 떠나기 전, 강왕부에서 도성에 심어 둔 사람 중 하나였다.

과거엔 소달이 황성을 수호하고 있어서 황제는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강왕세자가 도성으로 돌아온 직후, 더는 전처럼 안심할 수 없었다.

소달은 돌아온 강왕세자를 가장 먼저 보러 간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폐하, 오늘 이 일이 소 장군에겐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황제가 차게 웃었다.

“흥, 황제인 짐이 그의 뜻에 따랐어야 했단 말인가?”

잠시 침묵하던 루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차라리 잘하셨습니다, 폐하. 소 장군도 제 주제를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그가 계속 제 주제를 모르고 방자하게 군다면, 폐하께선 금군통령의 자리를 맡을 만한 다른 이를 알아보시어 처리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황제의 간지러웠던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한 마디였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짐 역시 같은 생각이야. 금군통령은 자고로 입안의 혀 같아야지…….”

* * *

궁문을 나온 정국공은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소달을 향해 두 손을 모아 공수를 취한 그가 말했다.

“소 장군, 고맙소이다!”

가히 썩었다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은 표정을 짓던 소달은, 씩씩거리며 콧방귀를 뀌고서는 소매를 떨치고 돌아섰다.

본래 소달은 이번 기회에 정국공을 한 번 눌러 둘 생각이었다. 그런데 황제가 이런 반응을 보이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반년 치 녹봉 삭감이야 간지러운 수준도 아니었지만, 이건 자신의 체면을 땅에 처박은 게 아닌가!

더구나 소염에게 자리 하나 알아봐 줄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황제가 직접 소염 더러 주제넘게 행동하며 정도를 벗어난 길을 갔다 했으니, 그것 역시 어그러진 것과 다름없었다.

결론적으로 이번 고발로 오히려 피만 본 것이다. 

소달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황제가 왜 정국공 편을 든단 말인가? 황제의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달려온 유신지의 태도 때문인가? 아니면 세자가 뭔가 말이 있었던 것인가…….’

* * *

정국공부.

소식을 전해 받은 노부인은 그제야 안도하며 숨을 내쉬었다.

대장공주가 미소를 지었다.

“그것 보세요, 아무 일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반년 치 녹봉 삭감이라니, 폐하께서 소씨 가문의 체면을 챙겨 준 게 아쉽습니다.”

“그거면 됐네.”

노부인이 말했다.

“겉보기엔 단순한 녹봉 삭감일지 몰라도, 사실은 소씨 가문이 받은 피해가 클 것이야.”

어려운 산을 넘어 기쁨이 넘쳤던 정국공의 가족들은, 대장공주와 지온에게 청해 식사를 함께했다.

식사 후, 정국공부의 노부인은 지온에게 진주가 담긴 상자를 하나 건넸다.

“착한 것. 가져가 장신구 만들 때 쓰거라.”

경관걸을 도와준 것에 대한 감사의 선물이었다.

지온은 웃으며 선물을 받았고 대장공주와 정국공부를 나섰다.

마차에 오르려던 그때, 지온이 말했다.

“어머니, 먼저 돌아가시지요. 제가 아직 처리할 일이 남아서요.”

대장공주가 고개를 끄덕이곤 당부하듯 말을 남겼다.

“일찍 돌아오거라.”

떠나는 그녀를 배웅한 지온이 손을 흔들어 제 마차를 불렀다.

“성 밖으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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