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164)화 (164/385)
  • 164화. 싹트는 황제의 의심

    잠시 생각을 하던 황제가 물었다.

    “황숙, 황숙과 소염이 마구를 했던 겁니까?”

    “네.”

    회영왕이 대답했다.

    “소 장군, 자네는 소염과 정국공 세자가 마구 경기 중에 충돌이 있었고, 세자의 여동생이 그것 때문에 소염을 때렸다고 했네.”

    “네.”

    소달이 대답하자 황제가 물었다.

    “그럼 두 경기가 같은 경긴가?”

    회영왕이 먼저 선수를 쳤다.

    “신이 정국공 세자와 잘 아는 사이인데, 소염이 신을 계속 괴롭히는 것을 보다 못한 그가 신의 마구 경기에 힘을 보태주기로 했던 것입니다. 경 소저는 경기를 관람하던 중이었는데, 소염이 일부러 구장을 던져 제 오라버니를 때려 말에서 떨어뜨리고, 그것도 모자라 계속 말을 몰아 정국공 세자를 밟으려고까지 하자 그만 화를 못 이겨 소염을 때렸던 것입니다.”

    “오호라!”

    황제는 그제야 이해가 갔다.

    소달이 얼른 나섰다.

    “폐하, 군왕께서 저리 말씀하시는 것은 옳지 않사옵니다. 마구는 본래 경기 중에 충돌이 많이 벌어지는데 어찌 그것이 고의라 할 수 있겠습니까? 다치는 것이 두려웠으면 처음부터 마구를 하지 말았어야지요. 그러나 경 소저는 시시비비를 분간하지 못하고 바로 사람을 때렸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고의적인 상해가 아니겠습니까!”

    그리 말을 하니 또 일리가 있었다.

    황제가 물었다.

    “그럼 자네는 정국공부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 생각하는 것인가?”

    소달이 분개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사옵니다! 소장의 아들은 의식을 차리지 못한 채 누워만 있는데, 이러다 만일 좋지 않은 일이라도 생긴다면 신은…….”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에게 아들은 그 아이 하나였었지? 마음이 조급할 법도 하군.”

    “그렇습니다, 폐하.”

    소달이 상심이 가득해 대답했다.

    “신, 젊은 날을 내내 병사들을 이끌고 밖으로 다니느라 남은 후사가 이 아이 하나뿐입니다. 하여 만일…….”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그 마음에 공감이 가는 황제였다.

    하여 그가 정국공을 부르려던 그때, 내시가 또 들어왔다.

    “폐하, 정국공 부부가 죄를 청한다 하옵니다.”

    정국공 부부는 안으로 들자마자 두말없이 머리부터 땅에 박았다.

    “신이 자식들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여 이런 큰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죄를 청하옵니다.”

    “신부의 집안 교육이 엄하지 못하여 여식이 죄를 지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책임을 통감하고 있사옵니다.”

    “여식이 소 공자를 다치게 했단 것을 알게 되자마자 소씨 가문으로 사죄를 드리러 갔습니다. 그런데 소 장군께서 이미 출타하여 댁에 계시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어 바로 폐하를 찾아뵙게 된 것입니다.”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린 정국공이 간절하게 말했다.

    “모두 성정이 충동적인 여식의 죄입니다. 신, 내리시는 벌을 달게 받겠사옵니다.”

    “…….”

    전 안에 있던 세 사람은 정국공 부부의 태도에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미 정국공과 한바탕, 제대로 싸워볼 생각으로 만반의 준비를 끝낸 소달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오자마자 잘못을 인정해버린 사람과 어떻게 싸운단 말인가?

    그리고 정국공의 말도 가만히 들으니 좀 이상했다.

    ‘지금 나더러 사죄할 시간도 못 기다리고 쪼르르 고해바치러 달려왔냐, 그 뜻 아닌가?’

    일반적으로 자녀 간의 충돌이 생기면 가장끼리 먼저 대화를 했다. 그 대화로 사안이 해결되지 않을 때, 다른 이에게 중재를 청하는 것이 순서였다.

    정국공 부부가 보여준 반응이 사리에 딱 들어맞으니, 이는 소달 자신의 행동이 사리에 어긋났단 반증이 되는 게 아닌가?

    역시나, 황제의 얼굴에 따뜻한 기운이 내려앉았다.

    “짐은 정국공이 언제나 사리와 이치에 밝은 이란 것을 알고 있었네. 소 장군, 들었는가? 자네도 그 성격 좀 고쳐야 해. 그리 급할 게 뭐가 있다고. 이리 사죄하러 오지 않았는가?”

    소달의 입이 떡 벌어졌다.

    ‘내 잘못이 된 게야?’

    “소 장군.”

    몸을 일으켜 소달을 향한 정국공이 기운을 빼 낮아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식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것은 부모의 잘못이라 했소. 집안 자식들이 잘못한 것은 어른들의 가르침이 그만큼 엄하지 못했기 때문이오. 소 공자가 다쳤으니, 소 장군이 노한 것도 당연하오. 하지만 젊고 철없어 저지른 잘못인 걸 봐서라도 아이들 일이니 그냥 넘어가 주길 부탁드리겠소. 원하는 것이 있다면, 노부가 그대로 해드리겠소.”

    “그리 해드리겠습니다!”

    정국공 부인 역시 얼른 나섰다.

    “소소, 그 아이가 그렇게 성정이 충동적입니다. 두 남매가 어려서부터 사이가 유달리 좋았습니다. 아무래도 제 오라버니가 말에 밟혀 자칫 목숨을 잃을 뻔한 모습을 보곤 순간 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손을 쓴 모양입니다.”

    정국공 부인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지씨 가문의 소저도 그렇습니다. 그 아이가 소 공자의 말을 쏘아 죽인 것도 상황이 급하여 정말 어쩔 수가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자칫, 말발굽에 제 아들 녀석이 밟히기라도 했으면 목숨도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이 아니었습니까. 그랬으면 저희 두 가문이 척을 지고 원수가 되었을 테니, 장군께선 그 아이를 나무라지 말아주세요.”

    “그 바보 같은 것이, 스무 살이 훌쩍 넘었으면서 아직 제 성질을 그리 주체하지 못하오. 소 공자가 저보다 나이도 어리니, 혈기를 부릴 때도 있을 것이고 말도 험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오? 그런데 소 공자가 따진다고 해서 그걸 어찌 진지하게 받아서 싸우려고 드는지…….”

    “소 장군, 저희 그 녀석도 낙마하며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지금 와병 중입니다. 아마 한 달은 요양을 하여야 할 것 같은데, 고생한 것으로 벌을 받았다고 생각하시고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유 추승과 루 대인은 노부의 못난 아들놈이 청해 온 이들로, 그들과는 상관이 없소.”

    부창부수도 이런 부창부수가 없는 정국공 부부의 만담이 이어질수록 소달은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을 쏴 죽인 이야기는 할 생각이 없었는데? 유 추승과 루 통정까지 끌어들일 생각 또한 없었거늘!’

    자신이 바보도 아니고, 정국공 하나 발고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을, 거기다 태사부와 루 통정까지 왜 끌어들인단 말인가? 지려고 안달이 난 게 아니라면 말이다! 심지어 회영왕조차 끌어들일 생각이 없지 않았던가!

    그때 한쪽에서 정국공 부부의 사죄를 듣고 있던 회영왕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아니요. 이 일은 모두 본왕 때문에 생긴 일이오. 정국공 세자야말로 아무런 죄도 없이 엮인 것이니, 무고하오. 폐하, 벌을 내리셔야 한다면 신에게 내려주십시오! 모두 신의 잘못입니다, 신이 소염의 도발에 넘어가는 바람에 이런 사달을 낸 것입니다.”

    그리곤 그가 용문패를 꺼내 두 손에 받쳐 들었다. 가슴이 미어지는 듯 아팠지만 용케 견디는 모습이 단호했다.

    “신, 신이 졌다고 인정할 것을 그랬습니다. 흐으흑, 신이 잘못했습니다, 폐하. 신이 이리 찾아와 폐하께 말을 아뢰면 안 됐던 것입니다. 정국공 세자는 다쳐서 자리에 누웠고, 경 소저는 벌을 받게 되었으니 신의 죄가 너무 큽니다. 폐하, 제발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콧물을 찔찔거리며, 닭똥 같은 눈물을 후두두 떨어뜨리는 회영왕의 모습이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황제는 점점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무리 회영왕이 대단찮은 존재라도 그렇지, 그는 황실의 군왕이 아닌가? 그런데 겨우 이런 같잖은 일 하나에 그가 쫓기듯 찾아와 도움을 요청해야 할 정도로 그를 몰아붙이다니. 그것도 모자라 천자가 하사한 옥패까지 내줘야 한다니?

    ‘그 정도인가?’

    소씨 가문의 공자가 머리를 맞아 다친 것은 확실히 과한 부분이 있으나, 조금 전 사정을 들으니 정국공의 세자 역시 다쳤다고 하지 않던가?

    말에게 활까지 쏴야 했을 정도라면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급했을지 파악이 되었다.

    ‘그리 생각하니 정국공의 여식이 화가 나 손을 쓴 것도 충분히 이해되는군.’

    오히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소염이 다친 것이, 제 머릴 제가 깬 꼴이라는 생각이 드는 황제였다.

    회영왕을 도발하여 가진 재물을 빼앗고, 정국공 세자에게 몹쓸 소릴 하더니 결국 여아에게 맞아 머리가 깨지게 된 게 아니겠는가?

    황제의 얼굴에 그늘이 내려앉는 것을 본 소달의 가슴에 불쑥, 불안한 예감이 찾아들었다.

    “폐하! 소장의 아들이…….”

    황제가 그의 말을 끊었다.

    “황숙, 일단 눈물을 그치세요. 짐이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연루된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조금 전 들었던 내용을 다시 떠올리며 황제가 입을 열었다.

    “조금 전 말한 지씨 가문의 소저가, 혹시 짐의 고모이신 대장공주께서 슬하에 거두신 양녀를 말하는 것인가? 그리고 유 추승이라면, 태사부 유씨 가문의 대공자인가? 루 대인은 또 누구고?”

    정국공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지 소저는 신의 여식인 소소와 함께 있었습니다. 유 추승은 제 아들의 부탁으로 오게 되었고, 루 대인은 통정사에서 근무하는, 북양왕의 동생분을 말함입니다. 루 대인도 유 추승과 함께 왔습니다.”

    “루안이?”

    황제는 매우 놀랐다.

    “그가 마구를 하러 갔단 말인가!”

    회영왕이 끼어들었다.

    “폐하, 두 사람 모두 신이 도와 달라 요청해 온 것입니다.”

    미세하게 달라진 표정으로 황제가 호 공공을 불렀다.

    “루 통정을 불러라.”

    호 공공이 미소를 지었다.

    “폐하, 루 통정께선 이미 궁문 밖에서 폐하의 접견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바로 모셔오겠사옵니다.”

    ‘역시 루안이지.’

    황제가 내심 만족스럽게 중얼거릴 때, 소달의 심장은 쿵, 떨어지고 있었다.

    심상찮았다.

    루안이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은, 일찌감치 이 진흙탕에 발을 담글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게 아닌가?

    ‘루안, 그놈 어떻게 된 거야? 이런 일엔 전혀 간섭 안 하던 게 아니었나?’

    갑작스레 달라진 상황에 소달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가 감히 발고하러 올 수 있었던 것은 정국공부가 성심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끼게 되면…….

    ‘아! 벌써 걱정할 것 없지! 루안 그놈이 꼭 정국공부 편에 서리라는 보장이 없지 않나? 폐하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리던 놈이었으니…….’

    소달이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켰을 때, 루안이 들어왔다. 그의 뒤엔 유신지가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신, 루안. 폐하를 뵙습니다.”

    “신, 유신지. 폐하를 뵙니다.”

    고개를 끄덕인 황제가 말했다.

    “일어들 나게.”

    일어나던 루안이 몸이 다소 불편한 듯 허리를 눌렀다.

    그것을 본 황제가 물었다.

    “루 통정, 왜 그러는 것인가?”

    “신, 조금 전 마구 경기에서 실수로 다쳤습니다.”

    황제가 미간을 좁혔다.

    “누가 때린 것인가?”

    잠시 말이 없던 루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금군통령의 소 공자입니다. 구장엔 눈이 없으니 실수로 부딪힌 모양입니다.”

    황제의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루안이 소씨 가문을 감싸다니?’

    군왕에 이어 국공이 그러더니, 이젠 자신의 심복이자 아끼는 신하까지 금군통령과 척을 지는 것을 피하고 있었다.

    천자가 내린 옥패마저 잃게 생긴 회영왕의 첫 번째 행동은, 당장 입궁하여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들이라곤 하나밖에 없는 정국공이, 제 아들이 말에서 떨어져 다쳤는데도 곧장 입궁해 죄를 청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신임을 크게 받는 루안마저 직언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씨 가문의 세가 언제부터 이렇게 커졌단 말인가?’

    차가워진 황제의 음성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유신지였다.

    “유 추승, 자네는 초대를 받아 마구 경기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들었네. 자네가 한 번 이야기를 해보지. 당시 상황이 어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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