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155)화 (155/385)
  • 155화. 누가 누굴 밀었다는 거야?

    지온을 밀었던 이는 지온이 제 옷자락을 쥘 줄은 몰랐는지, 매우 놀라서 어떻게든 지온을 밀어내려고 했다.

    ‘오, 수영을 할 수 있단 말이지?’

    자신을 호수로 민 사람이 수영을 할 수 있단 것을 알게 된 지온은 더욱 죽자사자 상대의 옷자락을 붙들고 늘어졌고, 두 사람은 물속에서 한 덩이가 되어 돌돌 뭉쳤다.

    이내 지온은 상대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얘는 완씨 가문의 여섯째잖아?’

    상대는 현비의 동생으로 칠월칠석날 자신을 모욕하다 결국 배로 당했던 그 소저였다.

    이미 복수도 했겠다, 지온은 이미 그깟 일은 다 잊은 뒤였다.

    그런데 이 소녀는 지온의 생각보다 더 진한 복수심을 품었던 모양이었다.

    ‘몰래 호수로 밀어버릴 생각을 하다니! 좋은 건 안 배우고, 어디서 이런 것만!’

    지온은 더욱 그녀에게 매달린 채, 심지어 일부러 그녀를 아래로 끌어내려 호수 바닥까지 데리고 내려갔다.

    이에 완 소저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물이랑 안 친하다며! 이 거짓말쟁이!’

    본래 그녀는 지온을 몰래 밀어버리고 지온이 고생하는 꼴을 구경하려던 생각이었다.

    그런데 상대가 이렇게 빠르게 제 옷까지 붙잡을 수 있을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결국, 함께 물에 빠질 줄이야!

    나쁜 짓까지 한 마당에 현장에서 그것을 들키기까지 했으니, 치밀던 짜증이 분노가 되어 솟았다. 거기다 지온이 호수 위로 올라가려는 자신을 일부러 가지 못하게 잡아 내리고 있지 않은가!

    당연히 완 소저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게 놔둘 수 없었던 지온은, 부여잡은 옷자락을 절대 놓지 않았다.

    상대가 자신을 밀어내려 할수록 지온은 더욱 강하게 상대를 부여잡았다.

    하나는 수면 아래로 내려가고, 다른 하나는 올라가려 애쓰는 상황이었다.

    완 소저의 앞섶이 결국 힘을 견디지 못하고 순간 커다랗게 찢어졌다.

    그때, 두 사람을 구하기 위해 호수로 뛰어들었던 서정후부의 여종들이 드디어 두 사람을 찾아냈다.

    “푸하아!”

    간신히 밖으로 빠져나온 완 소저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신선한 공기가 이렇게 귀하게 느껴졌던 적은 처음이었다.

    수각에서 놀던 소저들은 이미 모두 밖으로 뛰쳐 나와 있었다.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완씨 집안 여섯째를 보자마자, 그녀들은 소리를 질러댔다.

    “완 언니!”

    “여섯째야!”

    “켁! 켁켁! 우웩!”

    호숫가에 도착한 완 소저는 물부터 토해냈다.

    유민과 경소소가 다른 이들을 밀어내며 다가와, 역시 물에서 건져진 지온의 곁으로 다가왔다.

    “지온 언니, 괜찮아요?”

    시녀가 주는 수건을 받아든 지온이 얼굴에 주렁주렁 달린 구슬 같은 물방울들을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물에 빠지고 다시 물 밖으로 오르기까지, 실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지온은 빠지면서 들이마신 숨을 모두 사용하지 않았던 참이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이 ‘지온 소저’의 튼튼한 몸에 감사했다. 옥종화였던 자신보다 잠수 실력은 정말 뛰어났던 것이다.

    다급하게 달려온 장기가 두 사람의 안부를 묻고는 연신 사과했다.

    “정말 미안해, 초대해놓고 제대로 관리하지도 못하고……. 두 사람이 이렇게 고생을 해서 어쩌지…….”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제 막 숨을 돌린 완 소저가 입을 열었다.

    “장기 언니, 언니 때문 아니니까 사과할 필요 없어. 저게 날 밀었다고!”

    그 말에 자리에 있던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그녀와 가까이 지내는 다른 소저가 황급히 물었다.

    “지금 누가 완 언니를 호수로 밀었다는 거야? 어떻게 그렇게 악랄하지? 너무하잖아!”

    누군가 차갑게 말을 받았다.

    “알면서 뭘 물어? 조금 전에 물에 빠진 사람이 두 사람이잖아. 그 중에 한 사람이 완 언니를 밀었을 테니, 악랄한 짓을 한 사람이 누구겠어?”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지온에게 가서 꽂혔다.

    성격이 급한 경소소는 당장 화부터 쏟아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온 언니가 그런 짓을 왜 해!”

    “못할 건 또 뭔데?”

    누군가 반문했다.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그렇게 감싸기부터 하다가 괜히 창피당하지 말고.”

    화가 난 경소소가 부들거리며 지온에게 물었다.

    “지온 언니, 언니가 민 거 아니잖아, 그치?”

    지온이 물이 떨어지는 앞머리를 옆으로 흔들며 대답했다.

    “응, 내가 밀지 않았어.”

    “그것 봐…….”

    그러나 지온의 뒷말이 곧 이어졌다.

    “그런데 내가 잡아끌어서 물에 빠진 거야.”

    지온의 인정하는 듯한 발언에 소저들의 얼굴 위로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웬일이야! 옆에서 도와주려고 하는데 아무리 대장공주마마의 양녀라고 해도 그렇지 저렇게 오만하게 나오면 안 되는 거 아냐?’

    그러자 경소소에게 반문했던 소저의 얼굴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바로 이렇게 스스로 자백하다니, 내가 귀한 장면을 보네. 밖에서 들인 것들은 다들 이렇게 예의가 없나 봐.”

    미간을 좁힌 유민이 입을 열었다.

    “여기 계신 분들 다들 함부로 판단하고 먼저 입부터 놀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지 않으세요? 조금 전에 지온 언니가 잡아끌어서 물에 빠졌다고 했잖아요. 그 말을 듣고도 다른 생각이 안 들어요?”

    완 소저가 차갑게 웃었다.

    “유민, 너 그게 무슨 뜻이야? 날 공격하려거든 제대로 말해, 괜히 엄한데 손가락질하지 말고!”

    유민은 기분이 상했다.

    “내가 언제 엄한데 손가락질을 했다고 그러세요? 이치를 따져보잔 거잖아요! 오히려 지금 이렇게 조급해하는 거 보니까, 오히려 완 언니가 켕기는 게 있는 거 아니에요?”

    “내가 켕길 게 뭐가 있어?”

    완 소저가 분노한 얼굴로 유민을 바라보았다.

    “너희 셋이 지금 똘똘 뭉쳐서 날 공격하니까 그러는 거잖아! 지금 힘 좀 있다고 사람 한번 괴롭혀 보겠다는 거야?”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말이 나오자, 경소소가 냉소를 흘렸다.

    “힘 가지고 사람 괴롭힌단 소리를 들으니까, 지난번엔 누가 신분 타령하면서 지온 언니한테 함부로 대했는지 모르겠네. 그러다 결국 본인 뺨, 본인이 때려놓고 어떻게 저런 소릴 직접 하냐. 참, 비위도 좋지.”

    유민이 한 마디를 보탰다.

    “소소 언니, 어떻게 아픈 곳을 그렇게 찌르세요. 아무리 힘으로 사람을 괴롭히고 싶어도, 힘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거죠. 어머, 사실 본인이 그런 힘을 쓸 신분도 아니어서 모르는 건가?”

    유민이 강조한 신분이란 두 글자는 무척이나 크게 들렸다.

    그러자 완 소저의 얼굴에 사람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주변 소저들의 눈빛이 또다시 기묘하게 달라졌다.

    유민의 저 말엔 다른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비의 친정인 완씨 가문의 세력은 작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조상은 내관 출신으로, 내관 총관을 했던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완씨 가문은 내시들의 우두머리를 조상으로 두고 있다는 소리였다.

    비록 그 후, 완씨 일족들이 과거를 보고 벼슬길에 올라 지금은 제대로 된 관인들이 되긴 했지만, 여전히 뿌리는 변치 않고 남아있는지라, 완씨 일족은 진짜 세가의 일원들을 만나면 아무래도 밀리는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지금은 완씨 세력이 워낙 강하다 보니 그런 것들을 언급하는 이들이 없었다. 그런데 유민이 그런 것 따윈 전혀 고려도 하지 않고, 완씨 일족의 체면을 잘근잘근 밟아버린 것이다.

    완 소저가 크게 화를 내며 소리쳤다.

    “유민! 너……!”

    상황이 좋지 않자 초대한 주인인 장기가 나섰다.

    “완 소저, 화 풀어. 유민, 너도 말 좀 줄이고…….”

    “장기 언니.”

    그녀의 말을 끊은 것은 유민이었다.

    “전이었으면 언니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완 소저가 뭐라고 하든 참고 넘어갔을 거예요. 그런데 오늘 이 문제는 지온 언니의 결백과 연결된 문제라 이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겠어요. 미안해요, 언니.”

    “그렇지!”

    경소소가 같이 나섰다.

    “완 소저, 지온 언니가 소저를 밀었다고 맹세할 수 있어?”

    완 소저가 차갑게 대답했다.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내가 지금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단 거야?”

    경소소가 계속 말씨름을 하러 나서자 유민이 그녀를 막았다.

    욕도 해서 이겼고, 이대로 계속 말꼬리를 붙들고 늘어질 필요는 없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더러워진 평판을 깨끗하게 되찾는 것이었다.

    유민이 지온에게 물었다.

    “지온 언니, 조금 전에 누군가 잡아끌어서 물어 빠졌다고 했잖아요, 그 말은 언니가 먼저 물에 빠졌다는 거죠?”

    지온이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유민이 다시 물었다.

    “그럼 언니는 어떻게 물에 빠졌어요?”

    지온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연꽃을 꺾으려 손을 뻗었는데 누가 뒤에서 밀었어요. 그래서 물에 빠지면서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움켜쥐었는데 그게 완 소저의 옷가지여서, 완 소저도 같이 물에 빠진 거예요.”

    유민이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미묘한 표정을 한 채 완 소저를 바라보았다.

    “들었죠? 보아하니 그쪽이 먼저 사람을 호수로 밀어 놓고 도로 잡히는 바람에 같이 빠졌던 거였네.”

    완 소저는 당연히 인정하지 않았다.

    “쟤가 그렇다고 하면 그게 사실이라도 되는 모양이지? 왜? 그냥 내 말이 쟤가 한 말보다 믿을 수가 없어서?”

    “당연한 소릴!”

    유민이 지온의 왼손을 가리켰다.

    “지온 언니 손에 아직 연꽃이 그대로 있잖아요. 설마 지온 언니가 사람 밀고 호수로 떨어지는 김에 연꽃도 같이 꺾었을까 봐요?”

    완 소저는 말문이 꽉 막혔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 아니던가!

    “왜, 할 말 없으신가 보죠?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는 여기서 굳이 더 말할 필요도 없는 거 아닌가?”

    얼굴이 터질 듯 붉게 달아오른 완 소저가 강하게 부정했다.

    “물에 빠지면서 어쩌다 손에 잡혔던 걸 수도 있는 거 아냐?”

    그러나 유민은 완 소저의 변명에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놀라서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사람 말을 누가 믿겠어?’

    신나서 구경하던 소저들의 얼굴 위로 웃음을 참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조금 전까지 완 소저의 편에 서서 말을 해주던 몇 명은 금방 구경하는 소저들 뒤로 사라졌다.

    거짓말을 한 것이 현장에서 바로 덜미가 잡히지 않았던가? 이는 인품의 문제였다. 평소 완 소저와 잘 지내긴 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이름값까지 망가지도록 둘 수는 없는 게 아닌가?

    그렇게 홀로 남겨진 완 소저는 화가 났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다들 왜 내 말을 안 믿어주는 건데!”

    지온은 손에 들고 있던 연꽃을 유민에게 건네고는 경소소에게 도움을 받아 몸을 일으켰다.

    “완 소저, 더 말씀하지 마시고 그만 들어가시죠. 밖에 남아있어 봐야 좋을 게 없어요.”

    안 그래도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던 완 소저가 당장에 그 화를 지온에게 쏟아부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척, 넌 연기도 잘한다. 조금 전 물속에선 날 붙잡고 늘어져서 죽이려고 하더니, 인제 와서 착한 사람 행세를 해?”

    지온이 한숨을 쉬었다.

    “저는 정말 소저를 위해서 하는 소리예요.”

    그러며 지온이 수각이 있는 장원 입구를 가리켰다.

    “못 믿겠으면, 저길 보세요.”

    지온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던 소저들 사이에 짧은 정적이 흐르더니 곧이어 꺅꺅거리는 비명들이 터져 나왔다. 다급하게 제 얼굴을 감싸 쥔 소저들이 다들 수각 안으로 뛰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지, 수각이 있는 장원의 입구에 젊은 공자 몇 명이 서서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보고 낯빛이 대번에 달라진 완 소저는 바로 제 가슴께를 확인했다. 물에 빠지면서 지온이 죽자사자 잡고 늘어졌던 옷가지가 찢어지며 앞섶이 함께 찢어지지 않았던가!

    찢어진 앞섶은 반쯤 노출이 된 채 심지어 피부마저 보일 지경이었다.

    “꺅!”

    소리를 지른 그녀는 찢어진 앞섶을 가리더니 울며 수각 안으로 도망치듯 뛰어 들어갔다.

    “겨우 이런 일로 놀라서 운다고?”

    지온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담도 그리 작은 사람이 무슨 나쁜 짓을 하겠다고…….”

    “이게 바로 인과응보라는 거지!”

    경소소가 지온을 부축하듯 붙들며 말했다.

    “지온 언니, 우리도 그만 들어가자.”

    지온이야 살갗이 드러난 곳 하나 없긴 했지만,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보기 좋을 리가 없지 않은가?

    유민도 지온이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도록 경소소와 함께 지온의 양옆에 서서 그녀를 가려 주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장기는, 급히 소저들을 달래 진정시켰다. 그리고 제 차림을 정돈하고는, 조금 전 이 상황을 지켜본 공자들에게 따져 묻기 위해 자리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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