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139)화 (139/385)
  • 139화. 미친 듯이 팔리는 산해검협전

    장사라 불린 소년 서생의 입이 열렸다.

    “당연히 재밌지! 요즘 이 소설 저잣거리에서 미친 듯이 팔리는 거 모르냐? 나도 서책방을 몇 군데나 돌았는데 다 팔려서 못 구했어. 이것도 아는 사람한테서 겨우 빌려온 거다.”

    “그렇게 재미있단 말이야?”

    동창 서생이 못 믿겠다는 듯 의심의 눈초리로 장사를 흘겨보았다.

    “제목만 봐도 내용 딱 나오네. 문파 몇 군데 나와서, 저들끼리 서로 치받다가 죽고 죽이는 거 아니냐.”

    그러자 장사가 입을 삐죽이 비틀었다.

    “그럼 안 보면 되는 거지, 거 말들이 많으시네? 어차피 나도 빨리 돌려줘야 해서, 빨리 봐야 하는데, 잘됐네.”

    장사가 그렇게 나오자 다른 소년들의 궁금증이 더욱 커지고 말았다.

    “에이, 치사하게 그러지 말자! 같이 보고 그러는 거지…….”

    소설책을 두고 벌어진 소년들의 치열한 공방은, 결국 장사가 소설책을 빼앗기면서 일단락이 되었다.

    소설을 읽기 시작한 소년들의 입에선 연신 비웃음이 터졌다.

    “크하핫, 이 문장 거친 거 봐라! 단어 좀 좋은 거로 가려서 쓰지!”

    “수사 쓴 것도 너무 어색하지 않냐? 고수가 등장할 때마다, 뻑 하면, 두려울 정도였다, 겁이 날 정도였다. 크하하!”

    “작가가 시를 못 쓰나 본데? 새로 나오는 인물마다 어떻게 시호(詩號) 하나가 없냐?”

    장사가 소설이 재미있다 했을 때만 해도 하늘 끝으로 날아갈 것 같던 유모지였지만, 저들의 입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비웃음에 주체할 수 없이 얼굴이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유모지의 입술이 꿈틀거리며 말소리가 새어 나왔다.

    “시호, 그까짓 게 뭐가 필요하다고…… 좋은 단어는, 누가 못 쓰는 줄 아나. 작문 실력으로 치면 내가 쟤들보다 훨씬 나은데…….”

    유모지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유모지는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다음 달에 있을 향시에 무리 없이 붙을 수 있을 거라 보고 있어, 내년에 있는 회시를 생각하며 준비하고 있지 않던가.

    그 정도 실력은 9할의 원생을 앞지른, 뛰어난 수준이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를 다시 기분 좋게 만드는 말이 장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웃기지? 네, 지금 많이 웃으세요, 서생 여러분. 이따가 제게 다음 권 빌려달란 소리만 안 하시면 됩니다.”

    장사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비웃음을 흘려가며 소설을 읽던 소년들의 조롱이 점점 줄어들었다. 드문드문 내용에 대한 제 감상을 언급하던 것도 잠시, 곧 완전히 입을 닫고 소설에 완전히 몰두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 소년들의 입은 마지막 한 장까지 모두 읽은 후에야 다시 열렸다.

    “장사, 왜 이거 한 권밖에 없어? 다음 권은?”

    “흐름 보니까 뒷내용이 훨씬 더 많을 것 같은데, 빨리 꺼내!”

    어깨가 으쓱해진 장사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내가 재미있다고 했냐, 안 했냐? 이 어르신이 재미있다고 했을 때 믿었으면 지금처럼 창피할 일이 있었겠어, 없었겠어?”

    “미안하다, 미안해! 그러니까 빨리 다음 권이나 꺼내보라니까?”

    “그러니까! 약 그만 팔고, 꺼내라고!”

    장사를 둘러싼 소년들의 원성이 컸다.

    제 턱을 쓸어가며 그 모습을 보던 유신지는 지온이 보기에 조금 놀란 듯했다.

    “그렇게 인기가 많습니까?”

    지온의 얼굴에 웃음이 맺혔다.

    “그럼요! 공자님, 차라리 향시 접으시고 이쪽으로 나가시는 게 어떠세요? 오히려 이쪽이 장래성도 더 좋을 것 같은데요?”

    그러자 유신지가 눈을 희번덕거렸다. 자기도 그러고 싶다는 듯, 눈을 반짝이는 유모지를 본 유신지가 다시 유모지에게 꿀밤을 때렸다.

    “뭔 생각을 하는 게야! 간이 아주 배 밖으로 나온 게냐? 향시가 아니라 회시까지 치르기 전에는 몰래 글쓰기 금지다! 네가 원하는 일을 하고 싶거든, 앞으로 열심히 시험 준비를 해. 내년에 있는 회시에 붙고 나면 네가 무슨 일을 하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그러고는 유신지가 지온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온 소저도 아우를 그만 꼬드기세요! 안 그래도 잡생각이 많은 아이인데, 여기서 더 다른 생각을 했다간 진짜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단 말입니다!”

    지온이 유모지를 바라보며 뭔가 의미가 잔뜩 담긴 듯한 말을 건넸다.

    “들으셨지요? 제가 둘째 공자님을 돕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란 것을 꼭 알아주세요. 그저 둘째 공자님의 형님께서 너무 강한 분이시다 보니, 저도 어쩔 수가 없네요.”

    유모지는 햇빛에 삼 일쯤 내다 말린 배추처럼 축 늘어졌다.

    “알겠소.”

    그러자 유신지가 무슨 가면이라도 바꿔 끼듯 반짝 웃음을 짓더니 지온에게 물었다.

    “그런데 소설이 그리 잘 팔린다면 배당금도 적지 않겠습니다.”

    지온이 느릿느릿 자그마한 상자를 꺼내어 두 사람 앞에 내밀었다.

    “보세요.”

    상자 안에는 서책 몇 권이 들어있었는데, 장부들과 몇 장의 은표들이었다.

    은표에 적힌 숫자를 확인한 유모지의 턱이 빠질 듯 벌어졌다.

    “뭐야, 뭐가 이렇게 많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돈이 늦게 들어온다며 불평하던 자신이 아니었던가! 더구나 지온이 권당 열 냥에 본인이 모두 매수한다 했던 터라, 그는 돈은 얼마 벌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짧은 며칠 사이 배당받은 이익이 무려 이백 냥이라니!

    “잘 팔리니까요!”

    지온이 웃었다.

    “물건이 남쪽에 도착하면 그때 진짜 제대로 돈을 벌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앞으로 어떻게 돈을 세면 좋을지 궁리나 하고 계세요.”

    유모지는 기쁨이 솟구쳐 주체가 안 될 지경이었다.

    “으하하! 앞으로 용돈에 쩔쩔매지 살지 않아도 되겠네! 조야백(*照夜白: 백마)도 사고, 옥조궁(*玉雕弓: 옥 세공 장식품)도 사고! 그리고…… 어? 혀, 형?”

    태연하게, 당연한 듯 은표를 집어 제 품으로 집어넣은 유신지가 유모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향시 결과방이 붙기 전까지 네 앞으로 나오는 고료는 형이 챙겨두도록 하마.”

    * * *

    우거지상을 한 유모지가 서원으로 향했다.

    ‘조야백이고, 옥조궁이고 뭐고 끝났네, 끝났어.’

    하지만 그렇다고 형님과 싸울 수도 없었다. 만에 하나 형님이 집에다 말이라도 흘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땐 돈을 못 버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둘째 공자는 일단 억울함을 참고 와신상담, 절치부심하기로 했다.

    ‘그래 봐야, 시험이 시험이지! 대단한 게 뭐가 있다고! 향시, 회시 둘 다 씹어 먹어주면 될 거 아냐!’

    그리고 가문에 말해 한직(閑職)이나 한자리 얻어 달라 하면 되지 않겠는가?

    ‘거기 눌러앉아 쓰고 싶은 글 마음껏 쓰는 거지! 흥!’

    눈물인지 땀인지 알 수 없는 것을 흘리며 멀어지는 유모지를 바라보며, 지온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까지 자극해도 될까요?”

    스무 장이나 되는 은표를 자꾸 세어보는 유신지는, 제 돈을 번 것처럼 즐거워 보였다.

    “걱정하지 마시지요! 둘째 녀석이라면 다른 생각을 하지는 못할 테니까요.”

    돈을 다 세었는지 그가 손에 든 은표를 만족스럽게 툭툭 쳤다.

    “그렇게 안 봤는데, 녀석도 대단하지요. 대충 쓴 소설이 이리 큰 돈을 벌어다 줄 줄은 정말 몰랐는데 말입니다.”

    그러고는 진지한 얼굴이 되어 지온에게 말했다.

    “앞으로 계약은 제가 하는 것이 어떠신지요, 지온 소저? 녀석이 원고를 제때 전달하는 것을 보장할 테니, 제게 수익의 1할을 주시지요.”

    “…….”

    지온은 침묵했다. 자신이 이미 3할을 가져가고, 유모지는 2할을 받는 상황이지 않던가? 유모지가 받는 2할에서 1할을 더 가져간다고 하면…….

    ‘갑자기 둘째 공자가 퍽 불쌍해지네…….’

    유신지가 떠드는 수다를 들으며 지온은 빙수를 입으로 가져갔다.

    “아, 그러고 보니 축하도 드리지 못한 듯합니다. 앞으로 지온 소저를 뵈면 예를 올려야겠군요.”

    지온이 과일 껍질을 뱉어내며 말했다.

    “봉호를 받은 것도 아닌데 제가 감히 대공자님께 어떻게 예를 받겠어요.”

    유신지가 미소지었다.

    “그래도 그게 아니지요! 이제 지온 소저도 반은 황실의 종친이 아닙니까! 누가 그런 소저를 쉽게 볼 수 있을까요?”

    유신지가 복숭아 과육을 건져 올리더니 제 입속으로 쏙 가져가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단 말이지요.”

    “뭐가 이상하신가요?”

    유신지가 말했다.

    “조경 장군 부인이 소저에게 해코지하려던 이유는 그나마 알 것 같은데, 강왕비는 왜 소저를 해코지하려 했던 것입니까?”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설마 그 일이 새어나간 겁니까?”

    ‘그 일’이 요의의 돼지뽀뽀 사건을 말하는 것이란 걸, 지온도 금방 깨달았다.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마 아닐 거예요.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면 강왕부에서 이미 크게 난리를 쳤겠죠. 절대 지금처럼 가만히 있을 곳이 아니에요.”

    가만히 생각하던 유신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요.”

    그러다 또 생각해도 신기하고 어이가 없는지,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결국 조방궁 주지가 똑똑한 척 해보려다, 도리어 제 머리가 깨지는 상황이 됐다는 거죠?”

    “그렇지요!”

    지온이 빙긋 웃었다.

    “제가 정말 운이 좋다니까요? 공주마마께서 그저 핑계로 둘러대신 말이 진짜 사실이었고, 무속의 죄도 아무 탈 없이 덮어쓰지 않았고, 거기다 예상치 못한 커다란 선물도 받았잖아요.”

    유신지가 감탄을 마지않았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생각지도 못하게 대장공주님을 그리 노하게 하다니. 강왕부에게 본보기를 보일 필요가 있던 차에,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겨 지온 소저를 위해 나서신 거였겠죠.”

    타고나길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태어난 대공자는, 뱃속에 온갖 구렁이가 가득한 사람이라 다소 생각이 과하게 나가는 경우가 있었다.

    모든 사고가 음모나 계략 쪽으로 기울다 보니, 대장공주가 지온을 양녀로 삼은 것 역시, 강왕부를 끌어내리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는 그다지 놀라거나 신기해하지 않았다.

    “아, 참. 황궁에서 지온 소저를 위해 연회를 열어준다 들었습니다.”

    지온이 손을 흔들었다.

    “저만을 위해서는 아니고요, 곧 칠월칠석이잖아요. 그때 원래 궁에서 연회를 여는데 저도 그때 불러서 다른 분들께 인사를 시키시려는 거죠.”

    유신지가 빙그레 미소지었다.

    “흐흐, 폐하께서 이제 소저의 사촌 오라버니가 되신 게 아닙니까? 하루아침에 출세하셨습니다! 우리 바보 둘째가 후회하고 있지나 않을는지요. 혼약을 물리지 않았으면 지금쯤 본인도 같이 벼락출세하였을 터인데, 어허!”

    지온이 꺄륵, 웃음소리를 흘렸다.

    “둘째 공자님께 여쭙느니, 공자님께 여쭙는 게 낫지요. 공자님은 후회하지 않으세요?”

    지온은 아무런 생각 없이 던진 질문이었지만, 유신지의 심장은 쿵 하고 떨어졌다.

    ‘후회하지 않냐니, 무슨 뜻이지? 왜 말 속에 다른 의미가 숨은 것 같냐고! 둘째의 혼약을 파기한 걸 말하는 거야 아니면…… 날 두고……?’

    엉망진창인 생각을 이어가던 유신지의 눈에, 문득 익숙한 신형이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루안! 자네가 여긴 또 왜 와!”

    루안의 눈썹이 위로 쑥 치켜 올라갔다.

    “내가 못 올 곳인가? 그리고 왜 반말을……?”

    “아, 아니…….”

    유신지가 겨우 말을 짜냈다.

    “내 오늘은 루 형과 약속을 안 잡았잖소.”

    “저와 잡은 약속이에요.”

    끼어든 지온이 루안에게 시선을 돌렸다.

    “물건은 가져왔어요?”

    고개를 끄덕인 루안이 들고 있던 문서를 지온에게 건넸다.

    “잃어버리지 말고, 내일 가져다주시오.”

    “그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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