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132)화 (132/385)
  • 132화. 저들을 사주한 배후

    부인 앞에 다가간 루안이 물었다.

    “할 말이 있는가?”

    루안의 말에 그녀를 붙들고 있던 관병들이 손을 풀었다.

    그러자 털썩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박은 부인이 울먹이며 대답했다.

    “제가 죄를 지었으니 아무것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네들이 무고하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했단 것을 시인하는 것인가?”

    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열흘 전, 아들이 쓰러지자 어머님이 돈이 아까우시다며 떠돌이 의원을 불러오셨습니다. 의원이 약 몇 첩만 먹으면 된다고 하였는데 도리어 병세가 심각해졌지요. 하여 마음이 급해진 제가 의관에서 다른 의원을 모셔왔는데, 의원이 치료할 수 없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머님과 남편이 어차피 치료가 안 될 거라면 돈이라도 벌어야 한다며, 장돌이를 데리고 조방궁으로 왔던 것입니다.”

    그녀가 울며 머리를 조아렸다.

    “대인. 저는 죄인이며, 반드시 죗값을 치를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아들이 완전히 나은 것이 아니니, 제발 며칠만 말미를 주십시오. 장돌이가 다 나으면 다시 관아로 찾아가 죄를 청하겠습니다.”

    그녀가 모든 것을 털어놓자, 옆에서 듣고 있던 노파는 비명 같은 고함을 질러댔다.

    “대인, 헛소리입니다!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저희는 정말 아이가 잘못된 약 때문에 이리된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부적물 때문에 이리된 줄 알았는데……! 대인……!”

    루안이 차가운 눈빛으로 노파를 흘긋, 바라보더니 다시 부인에게 물었다.

    “약방문은 어디 있는가?”

    “여, 여기 있습니다!”

    부인이 급히 제 품에서 약방문을 꺼냈다.

    “이게 떠돌이 의원이 준 약방문입니다.”

    루안이 노 대인에게 약방문을 건넸다. 약방문을 받은 노 대인은 보자마자 분노를 토했다.

    “엉망진창으로 약을 썼구먼! 이 재료로 죽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일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루안이 입을 열었다.

    “이번 사건은 증거가 확실하여, 명확하게 드러났으니 죄인을 관아로 압송하라!”

    “네!”

    관병들은 늑대나 호랑이처럼 사납게 이대복 모자를 향해 달려들어 그들을 꽁꽁 묶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능양진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자신이 좀 더 강하게 손을 쓰지 않은 것을 자축해야 하는지, 아니면 더 빨리 지온을 붙잡아 넣지 않은 것을 후회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능양진인의 옆에 있던 조경 장군의 부인은, 눈이 찢어질 듯이 그녀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결국, 누명을 쓴 것이로구먼. 무탈하니 난 그만 먼저 가보겠네! 배웅은 필요 없네, 주지!”

    그러고는 그녀는 씩씩거리며 소매를 떨치더니, 그대로 돌아가려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채 몇 걸음을 떼기도 전에 다른 이의 음성이 들려와 그녀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 급하게 갈 게 무언가? 이리 와놓고 본궁도 안 보고 가려는가?”

    조경 장군의 부인은 심장이 배꼽까지 떨어졌다 붙는 심정이었다.

    ‘여양대장공주? 어찌 난택산방 밖까지 나왔단 말인가!’

    사람들 사이에 소란이 일었다.

    “누구지?”

    “본궁이라면 설마……? 여양대장공주님?”

    조방궁에 공주 한 분이 살고 있단 것을 누가 모르던가? 그러나 조방궁에 걸음 했던 이들 중 그녀를 봤던 이들은 거의 없었다.

    지난 삼 년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심을 끊은 채, 대장공주는 조용히 수양에만 정진하며 난택산방에서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그녀가 실은 어떤 존재였는지 잊어버렸다.

    여양대장공주는 영종의 자식 중 유일하게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여식이었고, 선제의 친여동생이었다.

    영종이 재위하던 시절, 당시 황제였던 영종은 제가 심장처럼 아끼는 여양대장공주의 마음에 합한 부마를 고르기 위해, 나라 전체에 있는 거의 모든 우수한 젊은이를 그녀 앞에 데려와 보여주었었다.

    그 후 선제가 재위했고, 병약하여 몸이 약했던 선제는 오직 제 친여동생만을 믿었기에 몸에 탈이 나기만 하면 곧장 여양대장공주를 황궁으로 불러들여 제가 보던 정사를 그녀의 손에 맡겼었다.

    이러한 실정이었기에, 여양대장공주는 당대 최고의 권세가라 할 수 있었다.

    삼 년 전의 그녀 앞이라면, 친왕(*親王: 황제 바로 아래 작위)조차 저 스스로 착하게 굴며 움츠러들었을 터였다. 조경 장군 부인 따위는 그녀의 눈에 차지도 않을 존재였을 터였다.

    지금 그런 여양대장공주가 제 사람들과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선고의 의복을 걸치고 분칠하지 않은 맨얼굴을 한 그녀였으나, 오시(傲視)하는 듯한 시선과 분위기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제국(帝國) 공주다운 느낌이 강하게 드러났다.

    조경 장군 부인이 입술을 달싹이며 무릎을 굽혀 예를 갖췄다.

    “신부(*臣婦: 기혼녀가 자신을 신하로서 부르는 호칭), 대장공주마마를 뵙사옵니다.”

    루안 역시 몸을 숙였다.

    “신 루안, 대장공주마마를 뵙습니다.”

    능양진인과 지온 역시 예를 갖추자 매고고가 대장공주를 대신하여 입을 열었다.

    “다들 일어나십시오. 밖이니 그리 예를 차릴 것 없습니다.”

    “공주마마…….”

    능양진인이 입을 열어 말을 하려던 찰나, 매고고가 그녀의 말을 잘랐다.

    “수양 중이시던 공주마마께서 갑자기 사방전에 누군가 찾아와 난동을 부리고 있단 소릴 들으시고 이리 찾아오셨습니다. 능양주지,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능양진인이 황급히 대답했다.

    “마마께 실례를 범하였사옵니다. 그러나 사건은 이미 해결이 되었사옵니다. 여기 이 일가족이, 제 자식의 병을 치료할 수 없을 줄 알고 돈을 갈취하려 사방전을 찾아왔던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여기 계신 루 대인께서 제때 찾아오셔서 저희 조방궁이 원통하게 죄를 뒤집어쓰는 일이 없도록 해결해주셨습니다.”

    루안이 허리를 굽히며 입을 열었다.

    “아이의 목숨을 구하고, 범인 역시 스스로 자신의 죄를 자백하여 사건이 깨끗하게 밝혀진 상황이라 이제 신이 그들을 관아로 압송할 참이었습니다.”

    대장공주가 현장을 둘러보고는 다시 루안을 향해 시선을 돌려 그를 위아래로 훑어 내렸다.

    “자네가 루연의 넷째 아들인가?”

    루연(樓淵)은 전대 북양왕인, 루안의 부친이었다.

    루안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역시 생긴 것이 꼭 금동자 같구나.”

    “…….”

    루안은 얼굴이 부들거려 더욱 고개를 바짝 수그린 채로 고민했다.

    ‘대장공주는 대체 여길 왜 와서 이 난리인가? 조경 장군 부인을 잡아먹을 듯이 흉흉한 기세로 나타나서는 갑자기 내 얼굴에 관심을 가지다니.’

    그나마 대장공주가 ‘그런 쪽’으로는 딱히 소문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녀가 백 년 전의 강양공주 같은 이였다면 무슨 소문이 퍼졌을지 모를 일이었던 것이다.

    대장공주는 그 말을 끝으로 말을 돌렸다.

    “조금 전에 내가 듣자니, 저 일가족이 자식의 병을 치료할 수 없을 줄 알고 조방궁에 돈을 갈취하러 왔다고?”

    “그렇습니다.”

    그러자 웃음을 흘린 대장공주가 루안에게 물었다.

    “루 대인, 자네 뭔가 이상하단 생각이 들지 않는가?”

    “말씀하여 주십시오, 마마.”

    그러자 순식간에 미소를 거둔 대장공주가 한기를 뿜으며 대답했다.

    “자네에게, 묻지. 조방궁이 무엇을 하는 곳인가?”

    “황가의 궁관으로 공주마마께서 수양하고 계신 곳입니다.”

    대장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으로 병을 치료할 수 없는 병자가 돈을 갈취하러 가는 곳은 어딘가?”

    멈칫한 루안이 천천히 대답했다.

    “의원……입니다.”

    “그렇지!”

    번득이는 눈빛으로 일가족을 바라본 대장공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도 어디가 이상한지 모르겠는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루안이 차분히 대답했다.

    “설명해보게.”

    “마마의 말씀처럼, 병을 치료할 수 없게 된 병자는 돈을 갈취하기 위해 의원을 찾아가지, 궁관을 찾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유인즉, 첫째로는 성공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요, 둘째로는 범인은 떠올리지 못할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조방궁은 공주마마께서 수양을 하고 계신 곳입니다. 평범한 백성은 감히 그런 조방궁에서 난동을 부릴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데, 이 일가족은 바로 그런 평범한 백성들이지요.”

    대장공주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래서 본궁은 저들을 사주한 배후가 있으리라 의심하고 있네. 그리고 사주한 이들이 노린 이는 본궁일 거야!”

    그리고 곧장 몸을 튼 그녀의 시선이 조경 장군 부인에게 꽂혔다.

    “아니 그런가, 조경 장군 부인?”

    하필 이 순간에 질문이 던져지다니, 그 의도와 의미가 노골적일 수밖에 없었다.

    조경 장군 부인은 가슴이 바짝 졸였지만, 겉으론 이를 전혀 내색하지 않고 공손한 얼굴로 대답했다.

    “마마, 어찌 그리 꼼꼼하시옵니까? 듣고 보니, 정말 그런 듯하옵니다.”

    조경 장군 부인이 대답하며 뒤로 숨긴 손으로 능양진인을 쿡 찔렀다.

    능양진인은 입도 뻥긋하고 싶지 않았지만, 조경 장군 부인이 눈짓까지 슬금슬금 보내오자, 이대로 계속 가만히 있다가는 자신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아, 어쩔 수 없이 말이라도 해보는 수밖에…….’

    결심한 능양진인은 입을 열었다. 

    “마마. 마마를 염두에 둔 것이라기엔, 조금 문제가 있을 것 같사옵니다.”

    “오?”

    빙긋 웃음을 지으며 능양진인을 친근하게 바라보는 대장공주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야기를 해보시게.”

    “계략이 성공하더라도 이 빈도가 여기 있지 않사옵니까? 빈도가 저들을 내쫓으면 마마에게까지 일이 번질 일이 없었을 것이옵니다.”

    “주지는 정녕 그리 생각하는 것인가?”

    대장공주가 캐묻듯이 능양진인을 향해 물었다.

    대장공주의 물음에 뭔가 함정이 있는 것 같아, 능양진인은 연신 머리를 굴리며 생각을 거듭했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 와중에 대장공주가 다시 압박하듯 물어오자 능양진인은 결국 이렇게 답했다.

    “그렇사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장공주가 말을 받았다.

    “본궁을 노린 것이 아니라면, 노린 것은 지씨 가문의 이 아이라는 것이겠군. 맞는가?”

    더욱 짙어진 불길한 예감에 능양진인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자, 대장공주의 눈이 반달로 휘었다.

    “참으로 이상하구먼. 지온이, 저 아이는 밖으로 외출하는 것이 아주 드문 아일세. 평소에 사방전을 관리하거나, 본궁과 함께 경서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인 아이인데…… 그런 아이의 목숨까지 빼앗고 싶어 하는 이가 누구인 게야?”

    “그, 그것은……!”

    뭐라 말하려던 능양진인의 입이 물 밖 붕어처럼 벙긋거렸다.

    그때, 매고고가 서둘러 나섰다.

    “마마께서는 중한 신분이시니, 말씀에 신중을 기하셔야하옵니다! 지온 소저가 조방궁에 든 후로 본 궁의 명성이 크게 올라가고, 화신점의 이름 또한 천하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마마께서도 지온 소저의 박학다식함을 어여삐 여기시어 자주 불러 함께 담소를 나누시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그것이 어찌 일반적으로 원한을 살 일이겠사옵니까?

    지온 소저가 매일 조방궁에 머물고 있으니, 원한을 가진 이 역시 조방궁 안에 있을 겁니다. 그렇더라도 마마께서 그리 말씀하시면, 누군가는 이 조방궁에 있는 이가 지온 소저를 질투라도 하여 이런 일을 꾸몄다고 의심하겠지요! 혹여 그런 의심이 인다면, 일이 터지자마자 득달같이 달려온 능양주지가 첫 번째로 의심을 받겠지요!”

    “…….”

    능양진인의 얼굴이 꺼멓게 썩었다.

    ‘말리러 온 줄 알았더니, 화마에 기름을 뿌려대고 있잖은가!’

    지온에게 해코지를 할 사람이 있다면 능양진인, 바로 자신이라고 가리키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주지 생활을 십수 년 했고, 이십 년이 넘도록 조방궁을 관리했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수치스러운 날이 없었다.

    ‘매고고! 상전 대접도 그리 잘 받더니, 웃으면서 사람 물 먹이는 것도 잘 먹이는구먼. 내 그래도 주지로 일해왔거늘, 이리 무시를 하다니!’

    능양진인이 내심 이를 박박 갈아대며 어찌 대처할지 고심하고 있을 때, 매고고가 말을 휙 돌렸다.

    “그러나 당연히 주지는 그런 분이 아니시지요. 조방궁에 계신 진인께서는 한 분 한 분이 모두 고결한 품성을 지닌 분들이 아닙니까. 자연히 그런 일을 하실 분이 없으십니다. 하여 마마, 노비는 이 사건이 지 소저를 노리고 이루어진 일은 아닐 것으로 생각하옵니다.”

    그리고 능양진인을 향해 고개를 돌린 매고고가 부드럽게 물었다.

    “주지, 그렇지 않으십니까?”

    이렇게까지 된 마당에 누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능양진인이 입가를 부들거리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고개를 주억이며 대장공주가 말을 받았다.

    “주지가 그리 말한다면 본궁이 당연히 믿어야지. 그럼, 본궁 생각은 말이네, 이 사건은 다른 이들과는 무관하게 그저 본궁을 노린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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