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131)화 (131/385)
  • 131화. 소녀, 스스로 결백을 증명해 보이고 싶습니다.

    그들이 소리치기를 끝내자, 루안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양쪽 모두 고발을 하려는 모습을 보니, 스스로가 결백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로군. 본관이 한 가지를 알려 주겠다. 만약 무고라는 것이 밝혀지면, 가중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루안의 눈빛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노파였지만, 돈 생각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분명 저들이 잘못했습니다! 제발 이 억울함을 풀어주십시오!”

    루안이 노파에게 물었다.

    “저자가 자네에게 부적물을 마시면 병이 나을 것이라 말한 것이 확실한가? 의원을 불러 진찰을 받으란 말을 하지 않았나?”

    노파가 단언하듯 소리쳤다.

    “확실합니다! 거기에 부적물을 마시면 나을 것이니, 의원을 볼 필요도 없다 했습니다!”

    오, 하고 추임새를 넣은 루안이 말했다.

    “그랬다면, 확실히 심각한 상황이로군. 부적물을 마시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나, 믿으라 말하며 의원을 부르지 않아도 된다고 한 것은 무속이 되지. 무속에 관한 범죄를 저지른 자는 즉각 참수형에 처한다고 되어있다.”

    즉각 참수형이란 소리에 구경꾼들이 헉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 심각하단 말이야? 살인도 그렇게 중한 처벌을 안 받잖아?”

    “당연하지, 이 사람아. 태조께서 직접 정해 내려오는 법인데…….”

    워낙 혼란스럽던 시대라 엄격한 법률을 시행하던 때였다. 태조는 흔들리는 정국을 바로잡기 위해 이러한 법을 정했다.

    엄격하고 혹독한 방법으로 정국을 바로 잡을 수 있었고, 그 후로 몇 번의 황제가 바뀌었지만 다들 법을 바꾸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이제 와서는 과한 처벌처럼 느껴지더라도 선례를 따라 집행할 수밖에 없었다.

    루안이 청옥을 바라보았다.

    “선고는 어찌 보는가?”

    청옥이 강하게 대답했다.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빈도는 한 번도 다른 이들에게 부적물을 마시라 한 일도 없고, 당연히 의원을 찾아가지 말란 소리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억울한 누명입니다!”

    웃는 듯 아닌 듯 루안의 표정이 묘했다.

    “한 사람은 그랬다고 하고, 다른 하나는 그런 일이 없다? 양측 모두 참으로 당당하여 아무도 물러서지 않는군. 그렇다면 둘 중 한쪽은 거짓말을 하고 있단 것이고?”

    노파가 득달같이 말을 물었다.

    “저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손자를 죽게 했으니, 인정할 수 없는 거겠지요!”

    청옥 역시 변론하며 소리쳤다.

    “없었던 일에 대해, 빈도는 함부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서로 악다구니를 쓰며 싸우는 와중에 지온의 음성이 울렸다.

    “대인, 저희 사방전은 늘 법규를 지키며 성심을 다하여 공양과 향불을 올리는 곳이었습니다. 오늘 만약 무속과 같은 오명을 뒤집어쓴다면, 저희뿐만이 아니라 스승님마저 욕을 듣게 되겠지요. 저는 이 죄를 절대 시인할 수 없습니다. 하여 대인께서 허락하신다면, 소녀, 스스로 결백을 증명해 보이고 싶습니다.”

    고개를 돌린 루안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 스스로 결백을 증명한다?”

    지온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소녀, 하늘은 선한 이를 억울하게 만드시지 않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좋다. 스스로 결백을 증명한다면, 내가 책임지고 오명을 벗겨 주겠다. 하지만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저희 사자매들을 벌하여 주십시오!”

    루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다.”

    “감사합니다, 대인.”

    지온이 아이를 안고 있는 부인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

    “아이는 언제부터 아팠습니까? 그리고 부적은 어떻게 얻으셨지요? 그 후엔 어찌 치료하셨습니까?”

    이미 준비가 되어있던 노파가 입을 열었다.

    “손자는 열흘 전부터 아팠는데,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소. 그 와중에 조방궁이 무척 용하다는 소문에 부적을 요청했는데, 저 요도가 우리에게 거액의 시주를 요구하고 겨우 부적 몇 장을 주더이다! 그러면서 이걸 태워 물에 타 마시면 아이가 나을 거라 했는데…….”

    노파가 손으로 얼굴을 싸며 울음을 터트렸다.

    “다 내가 잘못 믿어 이리된 것이야! 멀쩡히 치료할 수 있던 아이의 치료 시기를 놓쳐 버렸어!”

    노파의 울음이 그치길 기다린 지온이 계속 질문을 던졌다.

    “그럼 처음부터 의원에게 보이지 않았다는 건가요?”

    “그건…….”

    노파가 망설이자 고찬이 일어나 버럭 고함을 질렀다.

    “솔직하게 말하라! 조사하면 다 나오는 것이야!”

    그 말에 노파가 당장 대답했다.

    “봤소! 처음엔 의원에게 보였소!”

    지온은 곧장 질문을 이어갔다.

    “의원이 처방은 어떻게 내줬나요? 그때 아이가 어땠죠?”

    노파가 말을 더듬었다.

    “그땐……. 그때도 안 나았소.”

    “그럼 아이가 약을 먹었는데도 낫질 않았다는 말이죠?”

    “맞소…….”

    노파는 청옥이 책임을 벗어날까 싶어 바로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전엔 그래도 병세가 안정적이었는데, 부적물을 마시고 심해졌소!”

    고개를 끄덕인 지온이 아이 앞으로 걸어가더니, 몸을 낮춰 아이의 이마에 손을 댔다.

    아이는 입술은 움직였지만, 다른 움직임을 보이진 않았다.

    아이는 이미 움직일 기운조차 없어 보였다.

    조방궁에 찾아오는 이들 중 아녀자들이 워낙 많았던지라 그 모습에 다들 동정심을 느꼈다.

    ‘두 눈 멀쩡히 아이가 죽어가는 것을 봐야 하다니, 너무 잔인하구나.’

    맥을 짚던 지온이 돌연 제 머리에 달린 은비녀를 뽑더니 그대로 아이를 찔렀다.

    “뭐 하는 거예요?”

    아이를 안고 있던 부인의 입에서 드디어 첫마디가 나왔다. 그녀는 지온을 밀어내려 했지만, 지온의 동작이 너무도 빨랐다. 은비녀의 날카로운 부분은 이미 아이의 목을 뚫고 들어간 뒤였다.

    대경실색한 노파가 소리를 질렀다.

    “대인! 살인멸구입니다! 저자가 살인멸구를 하려 합니다!”

    목을 찔렀던 은비녀를 다시 뽑기까지는 눈 깜짝할 새였다.

    다시 일어난 지온이 비웃음을 흘렸다.

    “내가 바보인가요? 부적물을 마시게 했다는 오명도 아직 벗지 못했는데, 사람들이 이리 많이 보고 있는 앞에서 죄목에 살인까지 추가하고 싶겠어요?”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지금 아이를 상처 입히면 일을 만드는 게 아니고 뭐겠어? 근데 그럼 대체 뭔 짓을 한 거지?’

    그때 부인의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장돌아! 장돌아!”

    그녀의 품에 안겨있던 아이가 천천히 눈을 뜨는 것이 아닌가!

    모든 이들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곧 죽는다며?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눈을 뜬단 말이야?’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와중에, 아이의 목이 꿀렁꿀렁 움직이기 시작했다.

    “웩!”

    목을 꿀렁거리던 아이가 갑자기 더러운 가래를 토해냈다.

    그렇게 가래를 토해낸 아이는 정신을 차리고 제 어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엄마…….”

    부인의 눈에서 바로 눈물이 쏟아졌다. 아이를 안은 그녀가 읊조렸다.

    “장돌아, 우리 장돌아! 이게 어찌 된 것이야?”

    “머리가 너무 아파요…….”

    아이가 중얼거렸고 노파와 사내 역시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게 어찌 된 것이야! 의원이 분명 아이를 보낼 준비를 하라 했는데? 그래서 이리 조방궁까지 달려온 것을, 어찌…….’

    “대인.”

    지온이 몸을 돌렸다.

    “이는 의술이 부족하여 도리어 병세가 나빠진 것입니다. 소녀, 조금이나마 의술에 조예가 있어, 지금 아이의 몸에 끈적하게 들러붙어 막고 있던 가래를 뽑아냈으나 이리 정신을 차리는 것은 잠시일 것입니다. 어서 명의를 찾아 보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하지 않으면…….”

    뒷말은 들을 것도 없었다. 루안이 고개를 돌려 명령을 내렸다.

    “어서 의술이 뛰어난 의원을 데려와라!”

    “네!”

    부하가 막 대답을 했을 때 구경꾼 사이에서 누군가 입을 열었다.

    “저는 노사영(魯士英)이라 합니다. 노부가 의술에 조예가 있어 도움을 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

    그의 이름을 들은 구경꾼들이 술렁거렸다.

    “안화당(安和堂)에 노 의원?!”

    “신의잖아, 신의!”

    “신의가 왔으니, 아이는 살았구먼!”

    백발의 나이든 의원이 관병의 부축을 받으며 사방전 앞으로 나왔다. 그의 손엔 여전히 향을 올리기 위해 준비된 대나무 바구니가 들려있었다.

    그를 보고 매우 놀란 지온이 빠르게 루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제대로 준비했네. 말 한마디 전했을 뿐인데, 이렇게 세밀하게 준비를 하다니.’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은 노 의원이 대나무 바구니를 내려놓고 부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평평하게 아이를 눕히시오. 노부가 한 번 보겠소.”

    부인이 당장 아이를 눕혔다.

    노파와 사내는 그저 황망한 얼굴로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죽을 줄 알고 이 일을 받아 돈을 벌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아이가 살아나면, 자신들은 어찌 된단 말인가?

    아이가 살면 자신들이 무고하게 고발을 했단 것이 증명되는 것이 아닌가?

    ‘즉시 참수형을 당한다 했는데…….’

    몸을 부르르 떤 사내가 소리쳤다.

    “지금 뭘 하는 거요! 우리 아이가 다 죽어가게 생겼는데, 가는 길마저 불안하게 보낼 참이오?”

    그리고 방해를 하려 사내가 달려들었지만, 부인이 그의 다리를 붙들었다.

    “이대복!”

    그녀가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전에는 뭘 해도 내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살릴 수도 있는 우리 아들을 너 때문에 죽게 만들면, 나와 끝장을 봐야 할 거다!”

    관병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이대복을 붙잡았다.

    그들의 행동에 구경꾼들은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죽게 생겼어도, 신의라 불리는 의원이 와서 진찰해준다는데, 그걸 안 보여 준다고?’

    이대복을 흘긋 바라본 지온이 덤덤하게 말했다.

    “소녀 본 것이 많지 않으나, 저런 아비는 처음 봅니다. 제 자식이 살 수도 있다는데 의원의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늘어지진 못할망정, 오히려 막으려 하다니요? 설마하니 아이를 살리고 싶지 않은 것인지요?”

    “저 말이 맞지! 어미의 반응이 정상적인 반응이지, 대체 저 사내는 뭐 하는 놈이지?”

    구경꾼들이 수군대는 가운데,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이대복이 변명을 늘어놓았다.

    “우리가 여기 찾아왔을 땐, 의원이 분명 살 방도가 없다고 했었소. 당신들이 이리 아이를 건드려놓고 만일 살리지 못하면, 우린 또다시 그 슬픔을 느껴야 하는 게 아니오?”

    이미 맥을 본 노 의원을 향해 루안이 물었다.

    “살릴 수 있겠소, 노 의원?”

    노 의원이 품에서 침이 담긴 작은 상자를 꺼냈다.

    “아직 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아이의 옷을 풀어헤치며 말했다.

    “아이의 병은 본래 그리 깊은 병이 아니었으나, 약을 잘못 먹어 이리 나빠졌을 것입니다.”

    그가 침 몇 방을 꼽자 아이가 또다시 토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조금 전보다 나오는 가래가 더욱 많았다.

    가래를 토해낼수록 아이의 얼굴색이 점점 돌아오고 있었다.

    노 의원이 침을 회수하고는 입을 열었다.

    “다 됐습니다. 조금 후에 노부가 안화당으로 약방을 보내어 약을 내리겠습니다. 앞으로 삼 일만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 것입니다.”

    루안이 물었다.

    “그렇게만 하면 낫는단 말인가?”

    루안이 제 의술 실력을 의심하자, 노 의원은 그가 관직에 있는 사람인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벌컥 화를 냈다.

    “그럼 낫지, 안 낫는단 말입니까? 병을 치료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하게 병을 아는 것입니다. 약방을 제대로 내리지 못하면 살 사람도 죽을 수 있고, 약방을 제대로 내리면 귀문 앞까지 갔던 이도 다시 잡아 데려올 수 있습니다!”

    그러고는 그가 아이를 찰싹, 때리며 말했다.

    “일어나거라!”

    노 의원이 어찌나 세게 쳤던지, 아이가 아야 하고 소리를 지르며 구르듯 일어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숨을 쌕쌕대던 아이가 스스로 일어나는 모습에 구경꾼들은 그저 기함을 토했다.

    “의술이 참으로 고명하구먼!”

    “당연하지, 노 의원의 이름이 괜히 유명하겠나?”

    “노 의원이 아이를 살렸잖은가. 그럼 지금 상황이…….”

    “저 아이가 처음에 먹은 약이 잘못됐던 것이지! 부적물과는 전혀 상관도 없었던 것이야!”

    “그럼, 그렇지! 조방궁의 선고께선 역시 그런 일을 하지 않으셨어! 내가 사방전에 온 것만 몇 번인데, 병을 치료한다는 이야기는 내가 들은 적이 없다니까!”

    “거 박쥐 짓 좀 하지 말게!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족들이 불쌍하다더니!”

    “어허! 저들이 연기를 좀 잘했어야지…….”

    상황이 여기까지 온 이상, 진상이 밝혀진 것과 다름이 없었다.

    고찬이 손을 한 번 흔들자, 관병들이 달려가 노파와 이대복 그리고 이대복의 부인을 모두 붙잡았다.

    노파는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렸고, 이대복은 고래고래 억울하다 외쳤다. 그러나 부인은 그저 묵묵히 눈물을 떨구며 제 아들만 보고 있었다. 부인의 표정에는 그저 기쁨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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