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129)화 (129/385)
  • 129화. 입이 백 개라도

    노파는 다 찢어져 가는 목소리로 주변 사람들을 향해 호소하듯 소리치고 있었다.

    “이보시오들! 내 말 좀 들어보시오! 우리 손자가 병에 걸리는 바람에 내가 화신마마가 영험하단 소문을 듣고 평안부 한 장을 구하러 왔었소. 선고가 거액의 시주를 하라 하여, 내 그 시주를 하니, 평안부 딱 한 장을 내주며 이걸 우려 마시면 괜찮아질 거라더이다! 그래서 내 손주에게 마시게 했는데 병이 낫질 않아 의원을 불렀더니, 글쎄 의원이 더는 손쓸 방도가 없다는 게 아니겠소! 엉엉……!”

    그러고는 땅에 철퍼덕 주저앉더니, 발버둥까지 쳐가며 곡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바보인 게지! 선고 말을 믿다니, 어쩜 이리 어리석을 수가 있어! 의원이 이미 시기를 놓쳐, 손자를 치료할 수 없다는데, 이를 어쩐단 말이냐!”

    그때 옆에 있던 사내까지 합세하여 소리를 높였다.

    “요사한 요도(妖道)들! 당장 나와 우리 아이를 도로 살려내라! 부적물을 마시면 낫는다더니, 죽게 됐는데도 숨어 나와 보지도 않아?!”

    “집안에 딱 하나 있는 자식인데, 이대로 보내면 후사를 잇지 말라는 겁니까!”

    비참한 얼굴로 울부짖는 노파와 분을 토하는 사내, 그리고 아이를 안고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는 부인의 모습을 보는 주변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불쌍하구먼! 아픈 사람에게 의원도 아니고, 부적물을 마시게 하다니……. 죽으란 말이랑 뭐가 달라?”

    물론 믿지 않는 이도 있었다.

    “조방궁에서 어찌 이런 일이 생긴단 말인가? 그리도 사방전에 선고가 얼마나 인자한 분인데. 내가 매번 향을 올리러 올 때마다 시주는 원하는 만큼 하라고 했단 말일세.”

    “그건 자네에게 별일이 없으니까 그런 것이겠지. 뭐, 조방궁이라고 벼룩의 간 빼는 놈들이 없을까 봐?”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이들이 더욱 많았다.

    가만히 듣고 있던 지온은, 그 말에 심장이 덜컹 흔들렸다.

    ‘누군가 날 죽이려는 거구나!’

    * * *

    지난 왕조 말.

    귀신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백성들 사이에 크게 유행하자 몇몇 비뚤어진 도사와 제자들이 기회를 틈타 정국을 혼란에 빠뜨린 일이 있었다.

    그래서 태조는 지금의 왕조를 세우자마자 가차 없이 미신을 믿는 풍속을 몰아냈고, 그 덕분에 나라는 다시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다.

    현재까지도 조정에서는 불가와 도가, 두 곳의 관리를 무척 엄격하게 하고 있어서 조방궁과 같은 황가의 궁관조차 평소 향을 올리거나 경을 강의할 뿐, 무속적인 일은 감히 하지 못했다.

    병을 치료하려면 부적물을 마셔야 한다는 말이, 무속적인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지온은 그저 화신점을 통해, 첨을 뽑은 이들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했던 것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누군가가 사방전이 무속을 행했다는 혐의를 씌우려 하고 있었다. 여기에 사방전이, 화신마마의 이름으로 화신점이란 것을 퍼트리며 혹세무민한다는 소문이라도 난다면, 지온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청옥과 함옥사매, 그리고 사방전에서 일을 하는 어린 선고들 모두 다 죽어 나가겠지.’

    만약 이대로 화신점이 무속적인 행위라고 몰린다면, 대장공주조차 지온을 도울 방도가 없었다.

    ‘독을 품고 부린 계략이야.’

    단번에 자신을 쓰러뜨려 다시는 일어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죽이겠다는 수였다.

    ‘능양진인의 계략인가? 도문의 급소가 어딘지는 그 사람만 알고 있긴 하지.’

    “아가씨…….”

    서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보자 지온이 조용히 대답했다.

    “괜찮아.”

    지온은 숨만 쌕쌕 간신히 쉬는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아직 기회는 있어.’

    * * *

    “어떡하지?”

    함옥은 몹시 당황한 상태였다.

    그녀가 마침 전에서 향불을 정리하고 있을 때 갑자기 일가족이 찾아왔다.

    그들은 전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전 앞에서 방성대곡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향객이 많았던 사방전이었기에 눈 깜짝하는 사이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이런 난장을 겪어본 일이 없었던 청옥과 함옥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다 사내의 ‘요도(妖道)’이란 말에, 눈치 빠른 청옥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의다! 고의로 난리를 치는 거야!’

    비록 경험은 없었지만, 저들의 말을 절대 인정하면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인정하는 순간, 화신점으로 어렵게 쌓은 명성이 다 무너질 거야!’

    이런 경우 곧바로 사실이 아니란 것을 밝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이 부풀어 돌다 결국 사실이 되어버리고 말 터였다.

    “함옥아, 내가 나가서 잠깐 상대하고 있을 테니까 넌 빨리 가서 대사저를 모셔와!”

    “어? 아! 알겠어!”

    함옥이 정신없이 대답하자, 청옥은 소매를 내리고 옷을 단정하게 정리한 후 대찬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선인들께서는 무슨 일이신지요? 왜 이곳에서 울고 계십니까?”

    그녀의 미소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태도 역시 어찌나 친절한지, 노파를 부축하기 위해 손까지 뻗었다.

    그러나 그녀가 뻗은 손을 노파가 세게 후려쳤다.

    “우리 손자를 죽게 만들어 놓고, 감히 그딴 소리가 나온단 말이냐? 도로 살려내라!”

    고함을 지르며 노파가 달려들자, 청옥은 본능적으로 들고 있던 불진을 들어 노파를 막았다.

    그러나 청옥이 미쳐 입을 열기도 전, 노파가 또다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사람을 치다니! 요도가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치더니, 이젠 사람까지 치는구나!”

    청옥은 당황했다.

    ‘난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아가씨……!”

    한편, 사람들 틈에 낀 서아는 속이 타들어 갔다.

    “이제 어쩌죠? 나서서 말려야 하나요?”

    지온은 걸고 있던 대나무 피리를 목에서 빼 서아에게 건넸다.

    “지금 당장 조방궁 입구로 가서 이 피리를 불어. 그리고 누가 찾아오면 바로 의원을 불러오라고 해. 반드시 의술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어야 한다! 어서 가!”

    “네!”

    피리를 받은 서아가 날듯이 달려나가고, 지온은 도로 너울을 쓰며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속적인 일을 행하는 건, 작은 죄가 아니야. 조방궁까지 함께 끝장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을 테니, 능양진인도 나타날 거야.’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역시나 옛말이 틀린 것이 없었다.

    청옥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몰려든 인파 너머 음성이 들려왔다.

    “어르신, 하실 말이 있으시면 천천히 하시지요.”

    능양진인의 제자가 길을 열자, 인파가 두 쪽으로 갈라지며 길을 내어주었고, 그 사이를 능양진인이 유유히 걸어 들어왔다.

    그녀 옆에는 귀부인이 한 사람 동행하고 있었는데, 꾸민 모습으로 보나 풍기는 분위기로 보나 분명 높은 집안의 사람으로 보였다.

    지온은 문득 정국공부로 선물을 전해주러 갔을 때, 저 부인을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나 아쉽게도 어느 집안사람인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저 사람이 능양진인의 뒷배인가?’

    “주지다, 주지가 왔어!”

    “저 사람이 주지야? 기세가 대단하구먼! 선풍도골(*仙風道骨: 신선의 풍채와 도인의 골격이란 뜻으로, 뛰어나게 우아한 풍채를 뜻함)이네, 선풍도골이야!”

    “당연하지, 능양진인은 수행을 깊이 한 고인이라고! 황궁에 계신 마마들께서도 경 강의를 위해 자주 부르시는 분이라니까!”

    “주지가 공정하게 처리를 하려나? 제 제자라고 감싸는 거 아냐?”

    “설마…….”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능양진인이 사방전 앞에 섰다.

    능양진인 역시 노파를 부축하려는 듯 손을 내밀었는데, 청옥보다 위압적인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노파는 반응하지 못하고 멍하니 그녀의 부축을 받아 일어났다.

    친근한 미소와 함께 봄날의 햇살같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능양진인이 입을 열었다.

    “빈도가 이 조방궁의 주지입니다. 혹 궁의 제자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제게 가감 없이 말해 주시지요,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노파가 잠시 얼어있는 사이, 그녀의 아들인 사내가 소리를 질렀다.

    “당신이 주지요? 그럼 이리 와 판단을 내려주시오! 저 요도가 부적물을 마시면 병이 낫는다며 우릴 속였소! 그래서 우리 아들이 죽게 됐는데, 이를 어찌 책임질 거요?!”

    그 사이 정신을 차린 노파가 같이 울며 맞장구를 쳤다.

    “불쌍한 내 새끼! 손자를 좀 보시오, 우리 손자!”

    노파는 부인의 품에서 아이를 달랑 안아서 뺐다. 작은 아이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는데, 숨만 간신히 내쉬고 있을 뿐, 힘 있게 들이마시질 못했다.

    갑자기 부인이 방성대곡하며 울음을 터트리자, 너무도 슬픈 광경에 보는 이들 역시 울음에 받혀 다들 눈시울이 붉어졌다.

    표정이 엄히 변한 능양진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청옥! 이게 사실이냐!”

    청옥은 바로 고개부터 흔들었다.

    “저는 그런 소릴 한 적이 없습니다! 제대로 확인하여 주십시오, 주지!”

    득달같이 몸을 일으킨 노파가 말했다.

    “아직도 거짓말을 하는구나! 그럼 이 평안부가 여기 사방전의 것이 아니란 말이냐!”

    그녀가 황색 종이를 높이 들며 소리를 지르자, 옆에서 보고 있던 사람 중에서 평안부를 받아 본 적이 있던 이가 그것을 살피곤 대답했다.

    “사방전의 평안부가 맞구먼! 사방전 평안부는 아주 희귀한 것이라, 집안에서 여러 번 요청한 끝에 딱 한 장을 받은 것이라 아주 귀히 모시고 있는 것이네!”

    노파는 당장 청옥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이래도 발뺌을 할 셈이냐!?”

    얼굴이 빨갛게 붉어진 청옥이 대답했다.

    “맞습니다, 그것은 우리 사방전의 평안부입니다.”

    그녀의 대답에 구경꾼들이 술렁이자 청옥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그러나 저희는 평안부를 그저 가지고 다니라 할 뿐입니다. 저희가 부적물을 마시라 했을 리가 없지요.”

    그러고는 노파의 손에서 부적을 잡아서 높이 들며 소리쳤다.

    “다들 보시지요. 종이가 이리 두꺼운 것은 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만약 이를 태워 마시게 했을 요량이라면 이렇게 두꺼운 종이를 사용할 리가 없지요.”

    모두의 시선이 부적에 꽂혔다. 부적은 빛조차 투과되지 않을 만큼 확실히 두꺼운 재질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자 노파가 당장 반박했다.

    “태워 마시는 부적은 이미 우리 손자가 마셨으니 저 부적은 당연히 가지고 다니는 부적이 맞을 수밖에!”

    그 말에 구경꾼들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겠구먼!’

    ‘하긴 그걸 태워 마셨으니 문제가 생겼겠지.’

    기세를 탄 노파가 더욱 청옥의 목을 조르듯 목소리를 높였다.

    “이 요도야! 더 할 말이 있느냐?!”

    청옥의 손이 가늘게 떨려왔다.

    입이 백 개라도 대꾸할 말이 없었다.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지만, 상대는 아이까지 업고 찾아와 난리를 치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은 댈 만한 증거 하나 없는 상황이 아니던가!

    청옥이 이를 악물고 맹세하는 듯 손을 들었다.

    “빈도는 삼청조사(三淸祖師)님들과 사방전에서 모시는 화신마마 앞에서 맹세 할 수 있습니다. 빈도는 절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맹세를 무척 중하게 여겼다. 특히 출가한 이들은 더더욱 함부로 맹세 같은 것을 하지 않았다.

    그런 청옥의 모습에 구경꾼들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노파 역시 따라 손을 들며 말했다.

    “맹세하는 게 뭐가 어려울까! 이 사람 역시 맹세하겠소! 만약 내 말이 거짓이면 하늘이 날 데려갈 것이오!”

    막장의 시작이었다. 양측이 모두 맹세를 외쳤으니, 대체 누구를 믿어야 한단 말인가?

    그때였다.

    구경꾼들 사이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아이 목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 판국이 아니오? 대체 어느 집에서 제 아이의 목숨을 걸고 이런 수작을 한단 말이오? 능양진인, 진인은 주지라면서 어떻게 이대로 보고만 있는 것이오? 설마 사방전과 한패요?”

    구경꾼들이 그 말에 흥분하기 시작하자, 능양진인이 드디어 앞으로 나섰다.

    “청옥…….”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