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126)화 (126/385)
  • 126화. 제대로 된 불로소득

    이윽고 지온이 물었다.

    “마침 저희 집안에서 운영하는 서책방이 있는데, 소설책으로 만들어서 내 볼 생각 없어요?”

    입을 쩍 하고 벌린 유모지가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하자, 지온이 식탁을 '탁' 치며 말했다.

    “어, 침 떨어진다!”

    황급히 입을 닦던 유모지가 아무것도 흐르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부끄러운 마음에 벌컥, 화를 냈다.

    “왜 사람을 속이고 그러시오!”

    지온이 헤실헤실 웃으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왜요,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라도 흐를 것 같아서 그러세요?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시면 오늘 바로 계약서를 쓰는 게 좋겠어요. 괜히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면 시간이 아깝잖아요.”

    그녀가 그리 말하자, 유모지는 오히려 더 믿을 수가 없었다.

    “진짜 이게 소설책으로 나올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오? 누가 살까?”

    “왜 안 되나요?”

    지온이 원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라면 분명 많이 팔릴 거예요.”

    유모지가 갈등하자 지온이 답답한 듯 말했다.

    “공자님은 글만 쓰면 되고 손실이 나도 공자님한테 전혀 문제가 없는데, 뭘 그리 걱정해요?”

    “…….”

    침묵하던 유모지가 작게 투덜거렸다.

    “형이 왜 그쪽을 좋게 생각하는지 정말 모르겠다니까.”

    “뭐라고 하는 거예요?”

    “아, 아니오!”

    다시 정신을 차린 유모지가 다소 흥분해서 물었다.

    “그래서 얼마나 줄 생각이오?”

    그러자 지온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벌써 돈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무슨 헛된 꿈을 이렇게 계속 꾸시는 거지?”

    그러자 유모지는 더욱 어이없는 얼굴이 되었다.

    “그럼 돈도 안 내고 중간에서 본인만 이득을 보겠단 소리요?”

    지온이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방긋 웃음을 지었다.

    “지금 당장 돈을 달라고 하시니, 못 드릴 것도 없죠. 소설 원고 한 편에 은자, 열 냥 드릴게요. 이걸로 계산 끝난 거니까, 앞으로 아무리 많이 팔려도 그건 공자님이랑은 상관없는 거예요. 아셨죠?”

    “아니, 열 냥이라니!”

    유모지가 꽥 소리를 질렀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쓴 건데, 겨우 열 냥이라니!”

    지온이 말했다.

    “그럼 얼마나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알맞게 드린 거예요. 한 해, 두 편만 써도 평범한 집안은 충분히 먹고 살 만한 돈이에요.”

    유모지가 입을 삐죽였다.

    “…어쩐지 왜 몰락한 문인들만 쓰나 했지.”

    “그래서 파실 거예요, 안 파실 거예요?”

    “팔겠습니다!”

    갑자기 들려온 대답과 함께, 두 사람이 있던 별실 문이 열리더니 유신지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파는 방법을 달리했으면 좋겠군요.”

    제 형의 등장에 매우 놀란 유모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당장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되고 말았다.

    “혀, 형!”

    ‘난 죽었다, 죽었어. 형이 왜 여기 있지? 내가 소설을 썼단 걸 알면 매타작인데!’

    형님의 매타작이 끝나면 부모님께 말씀을 드릴 테고, 그럼 또 한바탕 매타작이 이루어질 터였다.

    ‘지금이라도 빌까? 너무 늦었나?’

    유모지가 그런 생각을 하며 바들거리는 가운데, 지온이 일어나 유신지에게 예를 갖추곤 웃음을 지었다.

    “대공자님, 이런 우연이 다 있습니까.”

    유신지의 얼굴은 이제 유모지의 눈에는 염라대왕처럼 보였다. 

    “네. 동료와 식사를 하러 왔다가 이런 큰 비밀을 알게 되었으니 정말 굉장한 우연이지요.”

    그가 걸어오자 유모지가 당장 목소리를 높여 빌기 시작했다.

    “형, 살살 때려! 나 두 달 후에 향시가 있잖아, 제발!”

    “시험 볼 생각은 하고 있었던 게냐?”

    제 아우의 멱살을 틀어쥔 유신지가 그를 도로 의자에 앉히더니 고고하게 유모지를 내려다보며 으르렁거렸다.

    “그걸 아는 녀석이 소설 쓸 여유가 있었던 것이로구나?”

    “그, 그게 이거 지금 쓴 거 아니고 전에 이미 써놨던 거야.”

    “아? 그래서 상습범이시다?”

    말을 할수록 점점 더 잘못되어가는 상황에 유모지는 제 입을 때리고 싶었다.

    방글방글 웃는 얼굴로 형제의 분쟁을 바라보던 지온은 적당한 때에 얄미운 한 방을 추가로 날렸다.

    “원고를 보니 여러 번 수정한 흔적이 많았습니다. 아마도 공자께서 신경을 많이 쓰신 모양입니다.”

    제 형님의 차가운 미소를 바라보는 유모지의 목이 거북이 마냥 안으로 쑥 말려들었다.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형, 나 진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어. 진짜야, 맹세할 수 있다니까?”

    유신지의 냉소와 멱살잡이는 멈출 줄을 몰랐다.

    “네가 열심히 하고 있는지 아닌지 어찌 알겠느냐? 뭐로 증명할 것이야?”

    유모지는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얼른 말을 뱉었다.

    “이번 향시에 반드시 합격할게!”

    그제야 유신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잡고 있던 멱살을 놓아 주었다.

    “네가 직접 약속한 것이다.”

    너무나 쉽게 유신지가 물러서자 유모지는 침묵했다. 

    “…….”

    ‘당한 것 같은데?’

    고개를 갸우뚱하며 유모지가 생각에 잠긴 사이, 제 도포를 정리한 유신지가 함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찻잔에 제가 마실 차를 직접 따르며 지온에게 말했다.

    “계약은 할 수 있으나, 이윤의 오 할을 저희가 받아야겠습니다.”

    지온의 눈썹이 쑥 올라갔다.

    “지금 한 푼도 내지 않으시는데 소설을 판 이윤의 오 할을 달라고 하시는 건가요?”

    유신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지온이 단호히 거절했다.

    “그것은 안 되겠습니다. 조판과 인쇄, 종이를 사는 데 드는 비용도 있고 인건비도 나가지요. 이 모두 소녀가 투자해야 하는 돈들이지요. 소설이 팔릴지 안 팔릴지, 팔려 나간 후에 얼마나 인기를 끌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 모든 위험부담을 안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무런 위험부담도 지지 않으면서 그렇게 높은 이윤까지 챙기다니, 그런 장사가 있으면 저도 소개해 주시지요. 대공자님.”

    유신지가 여유롭게 대답했다.

    “유가에 비록 서책방은 없지만, 하나 사는 것은 쉬운 일이지요. 어차피 저희가 원고도 가지고 있으니 직접 찍어내도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지온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대공자께서 직접 인쇄를 하시면 되겠네요! 다만 대공자님 명의로 갑자기 사업을 벌이시면 유 대부인께서 여쭤보지 않으실까요?”

    순간 차를 마시다 사레가 들릴 뻔한 유신지가 기침을 해댔다.

    지온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침묵하던 유신지가 물었다.

    “그럼 이율을 얼마나 주실 수 있으십니까?”

    “이 할입니다.”

    그리고 지온이 검지를 흔들며 말했다.

    “더는 안 됩니다.”

    유신지의 미간에 주름이 잡히는 것을 본 지온이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나 많은데요. 돈을 쉽게 벌 수 있다 생각하시면 안 되지요! 보아하니 둘째 공자님께서도 심심풀이로 쓰신 소설이신 것 같은데, 본래 없었을 이 할을 가져가시는 것이 아닙니까?”

    유신지가 가만히 생각하니 그녀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직접 서책방을 운영하면 손은 손대로 가면서도 돈은 그만큼 벌지 못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 둘째가 진짜 이쪽 일에 마음을 쏟으면 그건 또 그것대로 큰일이다. 녀석은 착실하게 과거를 보는 길로 가야 해!’

    “그럼 그렇게 하는 거로 하고, 계약하십시다!”

    * * *

    반 시진 후.

    고급스럽게 차려입은 중년의 사내가 급한 걸음을 종종거리며 주루로 들어왔다.

    주변을 둘러보던 그가, 턱을 괸 채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지온을 보고는 급히 달려와 그녀에게 예를 갖췄다.

    “지온 소저.”

    고개를 돌린 지온이 그를 향해 밝은 미소를 지었다.

    “유삼야(*劉三爺: 이름 뒤에 야爺를 붙여 존칭이 됨).”

    사내는 바로 두 번째 화신첨을 뽑았던 상인, 유삼이었다.

    유삼은 올 때처럼 가는 것도 신속하게 떠났다. 차 한 잔을 마시고, 원고를 챙긴 채 금방 떠난 것이다.

    손에 든 계약서를 손가락으로 톡 튕긴 지온이 중얼거렸다.

    “유삼야와 5대 5로 나누는 것으로 계약했네. 자, 그럼 내 몫에서 유공자에게 이 할을 내줘도, 난 삼 할이 남네? 이거야말로 제대로 된 불로소득이지!”

    * * *

    능양진인을 매서운 눈초리로 흘겨보던 강왕비가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뜻인지 제대로 말을 해!”

    능양진인이 조경 장군의 부인에게 시선을 주자 조경 장군의 부인이 주변을 보며 지시했다.

    “다들 나가 있게.”

    이윽고 방에 세 사람만이 남자, 능양진인이 입을 열었다.

    “팔공자님의 일은 빈도 역시 조금이나마 들은 것이 있습니다. 제삼자의 눈으로 보면 오히려 잘 보이는 경우가 간혹 있지 않습니까? 빈도가 곰곰이 생각하니,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뒤에서 조종하여 그런 일이 일어난 듯이 느껴졌습니다.”

    “뭐라?”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강왕비는 순간, 이게 무슨 소린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능양진인이 감정이 읽히지 않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왕비마마께서는 화신점에 대해 들어본 일이 있으신지요?”

    지금 강왕비는 다른 것을 생각할 조금의 여유도 없는 상태인지라, 바로 인상을 썼다.

    “아무거나 가져다 붙일 생각하지 말게! 지금 우리 여덟째 이야기를 하는 중 아닌가!”

    그 말에 능양진인은 순간 두통이 몰려왔다.

    ‘내가 지금 본론으로 들어가려는데, 그걸 몰라?!’

    일단 밑밥을 깔아 놓고, 조금씩 상황을 몰아가다 마지막에 폭로하듯, 배후에 숨은 범인을 가리켜야 전율이 흐르지 않겠는가!

    ‘근데 그것을 전혀 이해할 생각이 없군…….’

    그나마 옆에 있던 조경 장군의 부인이 한마디를 거들었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먼저 진인의 말을 들어봅시다.”

    능양진인이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말씀드리기 부끄럽지만, 화신점으로 저희 조방궁의 이름이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그러나 화신점은 주지인 저와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것이지요.”

    조경 장군의 부인이 맞장구를 치는 듯 입을 열었다.

    “화신점에 대한 이야기는 나도 들었네. 화신점을 만든 이가 자네의 사질인 지온 소저라지? 요즘 사방전의 화신마마가 진짜 신령한 신이라 떠드는 소리는 나도 들었네. 다들 자네의 사질을 불러 경 강의를 부탁하느라, 주지인 자네는 다 잊었다더군.”

    조경 장군 부인의 말에 담긴 조롱을 애써 모른 척한 능양진인이 웃으며 물었다.

    “그럼 부인께서도 소원을 이뤄주는 첨이 있다 믿으시는지요?”

    “그것은…….”

    조경 장군의 부인이 흔들리는 듯 대답했다.

    “뽑힌 일이 없으니, 그런 게 없다는 것도 어렵겠군.”

    능양진인은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분위기가 원하는 대로 몰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계속 밀어붙이는 수밖에는 없었다.

    “귀하신 분들 앞이니 솔직히 말씀드릴 수밖에 없겠습니다. 사실 불공을 드리는 것은 마음의 평안을 위함입니다. 거기에, 가능하면 자신의 운 또한 좋게 바꿀 수 있길 바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비는 모든 소원이 모두 성취되다니……. 불도의 길을 걷는 천하의 수많은 고인도 함부로 보장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강왕비는 인내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말만 빙빙 돌리고, 그래서 그게 여덟째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야?’

    그 말에 능양진인이 얼른 사죄하며 본래 상황을 몰아가기 위해 하려 했던 얘기들을 모두 생략하고, 본인이 생각하는 결론부터 먼저 던졌다.

    “현재까지 화신첨은 모두 세 번이 나왔습니다. 첫 번째, 화신첨의 주인인 원씨 가문 며느님의 소원은 자식을 얻는 것이었지요.

    그 집안 며느님이 회임한 후, 빈도가 좀 더 깊이 알아보니 그녀가 제 친동생과의 왕래를 끊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동생이 좋지 못한 것을 주었던 것이 불임의 원인인 듯했지요.

    그리고 두 번째 화신첨을 뽑은 이의 소원은 재물을 얻어 기사회생하는 것이었는데, 사실 이것은 왕비마마 덕분에 이루어질 수 있었던 소원이었습니다. 왕비마마께서 언제 도성에 돌아오실지 확인만 가능하다면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일이었지요.

    마지막 세 번째도 여 장원 선생만 설득할 수 있다면 역시 이룰 수 있는 소원이었습니다.”

    조경 장군의 부인이 부채를 살랑살랑, 흔들며 결론을 내렸다.

    “화신점이 영험한 것이 아니라 뒤에 누군가 있단 말이로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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