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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 (112)화 (112/385)
  • 112화. 사내

    강왕부에서는 강왕부의 사람들 모두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강왕비 역시, 늦은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요의가 있는 방에 앉은 그녀는 아들이 처한 상황이 떠오를 때마다 눈물을 흘리고, 또 떠오를 때마다 눈물 흘리기를 반복했다.

    강왕비가 그러고 있으니 당연히 쉴 수 없게 된 강왕세자비 역시, 옆에서 함께 밤을 새었다. 강왕세자비는 간간이 제 시어머니를 위로하거나 시비를 시켜 탕이나 물을 내오게 하는 것으로 시어머니의 수발을 들고 있었다.

    “어머님,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드시지 않으셨는데 죽이라도 드시겠는지요?”

    조용히 묻는 며느리의 말에 강왕비가 온갖 짜증이 담긴 얼굴로 대답했다.

    “내가 어디 그게 넘어가겠느냐!”

    “도련님께서 언제 깨어나실지 모르니 어머니께서 몸을 든든하게 챙기셔야 합니다. 그리 챙기지 않으시면 어찌 버티시겠습니까.”

    좋은 뜻으로 한 강왕세자비의 말을 곡해하여 들은 강왕비가 버럭 노성을 토했다.

    “언제 깨어날지 모른다니, 네가 지금 시동생을 저주하는 게 하니고 뭐냔 말이냐! 당장 저리 꺼지거라!”

    강왕비가 소리를 지르며 휘두른 팔에 닭고기 죽이 들었던 그릇이 뒤집어지며 세자비의 몸으로 쏟아졌다.

    갓 만들어 김이 펄펄한 뜨거운 죽이 여름철의 얇은 옷을 입고 있던 세자비의 가슴으로 쏟아지며 순식간에 세자비는 죽에 데고 말았다.

    죽이 쏟아지자 비명을 지른 세자비가 몸에서 죽을 털어내자, 옆에 있던 시비들도 함께 달려들어 같이 죽을 털었다.

    강왕비 역시 손을 휘두르다 저도 모르게 그리된 것이라, 세자비가 그리 다치자 본인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강왕비는 여전히 제 체면이 중한 사람인지라 호통을 이어나갔다.

    “소리는 왜 지르는 게야! 요의가 아직 여기에 누워있는 것을 몰라서 그래?!”

    그 소리에 강왕세자비는 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삼켜야만 했다. 죽에 데어 시뻘겋게 달아오른 가슴을 누른 세자비가 조용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어머님.”

    그러고는 시녀들에게 엎어진 죽을 정리하라 명하고 물러나왔다.

    그때, 뒤쪽에서 총관이 다급하게 다가왔다.

    “폐하께서 사람을 보내시어 팔공자님 상태가 어떠신지 물어오셨습니다.”

    강왕비가 초조한 가슴을 내리 누르며 말했다.

    “아직 깨어나지 않았네. 그들에게, 반드시 범인들을 잡아 중벌을 내려야 한다고 하게! 반드시 폐하께 그렇게 말씀드려야 한다고 해!”

    “알겠습니다.”

    * * *

    그렇게 꼬박 하룻밤을 뜬눈으로 지새웠지만, 요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오히려 더 나아가 열까지 나기 시작했다.

    혼절하기 직전의 강왕비는 발작에 가까운 고함을 질러댔다.

    “태의! 태의를 불러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엄 태의는 비단 도포를 입은 청년과 함께였다.

    청년을 본 왕부의 장사는 정신없이 달려 나가 엎드리며 예를 올렸다.

    “폐하!”

    황제가 소매를 휘적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암행나온 것이니 호들갑 떨지 말게!”

    얼른 정신을 차린 장사가 조용히 대답하고는 두 사람을 모시고 요의가 누운 방으로 향했다.

    * * *

    간밤을 잠 한숨 못 자고 시시때때로 눈물바람을 흘린 통에 강왕비는 이미 무척이나 초췌한 모습이었다.

    그녀도 젊은 시절엔 알아주는 미인이었고 꽤나 잘 먹고 몸보신을 잘 해온 터라, 비록 나이는 들었어도 여전히 미모가 상당했었다.

    언제나 생모의 화려하고 부귀한 모습만을 기억하고 있던 황제는, 빛바랜 낯빛에 눈 밑두덩이까지 불룩하게 튀어나온 모친의 모습에 놀라고 말았다.

    그러나 강왕비가 그런 것에 신경 쓸 정신이 어디 있겠는가?

    황제를 본 그녀는 곧 오열했다.

    “아순(阿詢)아, 이리 와 네 아우 좀 보거라!”

    황제는 한참이나 듣지 못했던 이름이라 생각했다.

    과거 황제를 아순이라 불렀던 이들은 강왕비를 빼면 선제와 태후뿐이었다.

    여섯 살에 태자의 배동으로 입궁한 후로 황제는 저를 낳아 준 부모를 거의 만나지 못했었다.

    여섯 살 전의 기억은 이미 흐릿해진 지가 오래라, 기억하는 친부모의 모습은 그저 명절에나 한 번씩 입궁하여 자신을 보기 위해 선물을 주러 온 모습이 전부였다.

    입궁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적엔 무척 슬퍼했었다.

    그때만 해도, 가문의 형제들만 해도 모두 몇인데 부모님이 굳이 자신을 골라 궁으로 보낸 것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아서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집에서 물건을 보내오면 어렸던 그는 그것을 한참이나 품에 안고 놓지 않았었다.

    선제와 태후는 그에게 무척 잘해주었었다. 얼마나 잘해주었는지, 그는 자주 그들이 진짜 제 친부모였으면 하고 바랄 정도였다.

    ‘그러나…….’

    생각을 털어낸 황제가 강왕비를 부축하듯 붙들며 따뜻하게 말했다.

    “몸부터 챙기십시오. 짐이 태의에게 최선을 다해 치료하게 하겠습니다.”

    강왕비가 눈물을 쓸어내며 못내 울분을 참더니, 또다시 황제를 향해 답답한 심정을 쏟아냈다.

    “태의가 대체 치료를 어찌 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벌써 하루가 꼬박 지났는데 여덟째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질 못하고 저리 누워 오히려 열만 펄펄 끓고 있으니…….”

    덜컹하고 황제의 가슴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가 의술에 조예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중상을 입고 난 후에 열이 끓는 것이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엄 태의!”

    “네, 폐하.”

    곧바로 나타난 엄 태의가 들어가 다시 진찰하기 시작했다.

    먼저 상처를 살핀 그는 다시 요의의 맥까지 짚더니 뒤통수에 불난 사람처럼 밖으로 뛰쳐나왔다.

    “폐하, 폐하!”

    “어찌 된 것이냐?”

    그런 엄 태의의 모습에 황제는 더욱 놀랐다.

    “팔공자님의 상처에 이미 염증이 생겼습니다. 신, 의술에 대한 조예가 미진하여 제대로 된 치료를 하기가 어려울 듯싶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강왕비가 고함을 비명처럼 지르며 끼어들었다.

    “우리 여덟째를 치료하지 못하겠단 말이냐? 어서 말해라, 이놈! 어서……!”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엄 태의가 대꾸를 할 수 있겠는가? 그는 그저 고개를 푹 떨군 채 그저 황제의 명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나마 상황 파악을 한 황제가 당장 명령을 내렸다.

    “호은! 지금 당장 태의원에 있는 원사(*院使:관직 명)며 원판(*院判: 관직 명)까지 모두 들라 하게!”

    “네, 폐하.”

    * * *

    이윽고 호 공공, 호은이 당직을 서고 있던 태의들 전부를 데리고 나타났다. 대여섯 명쯤 되는 태의와 함께 딸려온 견습생들로 방이 가득 찼다.

    그들이 예를 차리는 것도 기다리지 않고, 황제가 먼저 손을 저었다.

    “됐으니 어서 환자부터 보시게!”

    “네, 폐하!”

    저마다 맥을 짚고 상처를 살펴 가며 의견을 나눈 대여섯 명의 태의들이 서로의 얼굴만 힐끔거리며 다들 입을 꾹 다물었다.

    “대체 어떤 상황인 것이야!”

    황제가 너무도 답답하여 묻자 태의들 중에서 가장 직급이 높은 원사가 나서 대답했다.

    “폐하, 상처에 이미 염증이 번져 그 부분의 피부는 이미 죽은 것과 다름이 없는지라…….”

    그 말에 충격을 받은 강왕비가 원사의 말을 부정하듯 도리질을 쳤다.

    “무슨 말이냐?”

    그녀가 중얼거리듯 물었다.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여덟째가 살 수는 있는 것이냐!”

    결국, 원사가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열었다.

    “상처 부위를 제거한 후 다시 치료약을 처방한다면 혹 목숨을 살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상처 부위를 제거…….”

    황제의 미간에 주름이 가득 잡혔다.

    “잘라버려야 한다, 이 말인가?”

    원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 습니다. 상처 부위에 이미 염증이 번져 이대로 다시 이어 붙여 놓는 것은 이미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성한 피부까지 함께 염증으로 썩어갈 것입니다. 시간을 오래 끌어 지금처럼 계속 열이 내리지 않는 상태가 이어진다면 공자께선 이대로…….”

    황제의 이마에 빳빳하게 돋아 오른 핏줄이 팔딱팔딱 새파랗게 튀었다. 잠시 요의가 저질렀던 일들을 다시금 떠올린 황제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떼버리게.”

    “안 돼!”

    강왕비가 비명을 질렀다.

    “떼다니?! 어찌 그것을 떼라고 하십니까! 떼어내면…… 우리 여덟째가…… 내시가 된다는 게 아닙니까!”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나 이 상황에 대답할 수 있는 간 큰 자는 없었다.

    강왕비가 비명처럼 질러댄 소리에 펄펄 끓는 열로 혼미한 상태에 빠졌던 요의가 돌연 정신을 차리더니 갑자기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내시라니, 무슨……? 내시……?”

    황제는 인내심을 끌어올려 강왕비를 다독였다.

    “목숨이 중한 것이 아닙니까, 숙모님. 이대로 가다간 여덟째는…….”

    “그래도 떼어내는 것은 안 됩니다, 그걸 떼면 뭐가 되라고요!”

    강왕비는 여전히 울부짖듯 말했다.

    “폐하께선 요의의 친형님이십니다! 요의가 황실의 일원인데 그것을 떼다니, 안됩니다!”

    “그럼 이대로 죽는 것을 보고만 있자는 것입니까?”

    황제가 추궁하듯 물었다.

    “제 골육인데 짐도 구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하지만, 그러나…….”

    말을 잇던 강왕비가 돌연 울음을 터트리며 외쳤다.

    “떼고 나면 사내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여덟째를 어찌 내시로 만든단 말입니까, 우리 여덟째를…….”

    황제가 그녀를 어깨를 붙들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비틀어 원사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떼라!”

    이에 원사들이 대답하고는 모두 수술 준비를 위해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 * *

    방으로 들어온 이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더니 이불을 걷어내고는, 자신의 성기 여기저기를 가리키는 모습을 지켜보던 요의는, 순간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고야 말았다.

    요의가 소리를 질렀다.

    “뭐 하는 것이냐? 저리 가라, 저리 가! 난 내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싫어!”

    그러나 그는 이미 열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이 아니었던가!

    저 자신은 크게 고함을 친다 생각했으나 실은 그저 바람이 빠지듯 입안에서만 웅얼거렸을 뿐이었다.

    “지금 뭐라시는 건가?”

    원사가 묻자 견습생이 요의의 웅얼거리는 소릴 자세히 듣고는 대답했다.

    “죽고 싶지 않다, 죽을 수 없다…… 고 하십니다.”

    그 말에 원사가 따뜻하게 요의를 다독였다.

    “목숨은 건지실 것이니 공자께선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부분을 제거한 후에 탕약을 복용하고 한동안 충분히 쉬시면 곧 회복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아, 으거…… 즈거…….”

    요의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다 꺼져, 제거하지 마…….”

    이미 한 번 통역했던 견습생이 눈치 빠르게 곧장 말했다.

    “팔공자께서 제대로 제거해 달라 하셨습니다.”

    원사가 웃으며 요의의 손을 토닥였다.

    “모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멀쩡한 곳은 건드리지 않고 그 부위만 제대로 제거해드리겠습니다.”

    그러고는 다른 이에게 물었다.

    “마비산은 준비가 됐는가? 어서 팔공자님께 드리게!”

    “다 됐습니다!”

    마비산이 나오자 견습생이 요의를 붙들고 마비산 한 그릇을 전부 먹이기 시작했다.

    “으어헙, 꾸룩…….”

    요의는 고개를 틀어버리고 싶었지만, 어찌나 제대로 몸이 잡혔는지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견습생들은 이런 경험이 풍부했다. 누군가 손을 뻗어 요의의 목을 잡더니 가볍게 누르자 마비산이 금방 목구멍 너머로 넘어오는 게 아닌가!

    마비산 한 그릇이 전부 요의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안 돼, 내시가 되는 건 싫다고……!’

    속으로 아무리 크게 외쳐봐야 그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았다.

    요의가 잠든 것을 확인한 원사가 고개를 돌렸다.

    “엄 태의, 그래도 자네가 외과수술을 가장 잘하니 자네가 하는 게 좋지 않겠나?”

    그러자 엄 태의가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안되지요, 안됩니다! 제가 치료를 제대로 못 하지 않았습니까!”

    “폐하께서도 계시는데 더 두려워할 게 뭐가 있나? 조금 전에 내가 폐하께 제거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네. 떼어내는 건 폐하도 동의하신 일이야.”

    “그럼…… 알겠습니다.”

    손을 씻은 엄 태의가 날카롭게 벼려진 작은 칼을 쥐어 들었다. 그리고 이미 붉게 부어오른 상처 부위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이를 갈았다.

    전에 자신이 그리도 제거해야 한다 할 땐 안 된다며 자신의 가족들까지 죽이겠다고 협박하지 않았던가!

    ‘이번엔 성지까지 떨어졌으니, 내 반드시 네놈의 것을 떼어 주리라!’

    * * *

    향 하나가 다 타들어 갈 때쯤, 안에서 핏물이 가득한 대야가 줄줄이 나오는 것을 본 황제가 놀라 물었다.

    “어찌 피가 이리 많이 나는 것이냐? 상처라고 해봐야 부위도 작았을 텐데?”

    호 공공이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폐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부위가 사람마다 달라 그럴 것입니다. 피가 많이 나지 않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는지라……. 소인 역시 당시 피를 많이 흘려 목숨이 위험했었습니다. 다행히도 명줄이 길어 이리 살아남아 폐하를 보필하는 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씁쓸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내시가 되고 싶어서 되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대다수가 도저히 다른 길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제 양물을 버리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방 안에 있는 이가 누군가? 자신의 친아우이자 황족의 후예가 아닌가!

    ‘그러나 그런 녀석이 이제 내시처럼 양물 없는 사내가 되게 되었으니…….’

    “……마마, 왕비마마!”

    그때 한쪽 옆에 있던 시비가 다급한 음성으로 황제에게 말했다.

    “폐하, 왕비마마께서 혼절하셨습니다!”

    황제의 한숨이 깊어졌다.

    “쉬실 수 있도록 모시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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