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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 (111)화 (111/385)
  • 111화. 일단 붙여 놓고 궁으로!

    시위들은 빠르게 말을 달려 요의를 강왕부로 데려갔다.

    소식을 들은 강왕비는 금방 혼절하고 말았다. 세자비가 당장 그녀의 인중을 누르라 지시하고는 강왕비를 깨웠다. 다시 깨어난 강왕비는 깨자마자 요의의 위에 엎어져 울기 시작했다.

    “내 아들, 요의야!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느냐! 야만스런 놈들이 감히 내 아들에게 그런 짓을 하다니, 다 죽어야지! 다 죽어야 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뻣뻣하게 굳어있는 황 공공은,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울고불고 악을 쓰던 강왕비가 그에게 다가와 발길질을 해댔다.

    “폐하께서 내 아들이 봉지에 갈 때까지 보필하라고 했는데 넌 뭐하고 있었느냐! 도성에서 벗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겨우 반나절 만에 이 아이에게 일이 생기게 만들어? 네놈의 가죽을 벗기겠다! 네놈을 요의의 부장품으로 만들어 버리겠어!”

    황 공공은 강왕비가 차면 차는 대로 가만히 맞고 있었다. 그녀의 침이 얼굴에 와서 묻어도 그는 움직이지 않고 그저 납작 엎드린 채로 말했다.

    “왕비마마, 팔공자의 상세가 중하시니 조금이라도 빨리 태의를 부르시어 치료를 받으시옵소서.”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분노에 찬 강왕비가 그의 말을 끊었다.

    침상에 누운 요의가 울며 소리를 질러댔다.

    “어머니, 아파요, 너무 아파 죽겠어요!”

    다시 제 아들에게 돌아가 요의의 손을 꼭 쥔 강왕비의 눈에 눈물이 철철 흘러내렸다.

    “요의야, 조금만 참거라. 곧 태의가 올게야! 괜찮을 게야, 우리 아들, 분명 괜찮을 게야!”

    무감한 얼굴로 한쪽에 서서 모자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던 강왕세자비는 시간이 지나도 두 사람이 울음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머님. 제가 가서 태의가 왜 이리 빨리 오지 않는지 재촉하고 오겠습니다.”

    그녀를 신경 쓸 겨를조차 없던 강왕비는 그저 다녀오라며 손만 내저었다.

    강왕세자비가 다시 눈짓을 보내며 명했다.

    “어머니의 심기를 어지럽히는구나, 저놈도 함께 끌고 나오너라!”

    그제야 얼굴에 묻은 침을 닦아낸 황 공공이 강왕세자비를 따라 방을 나섰다.

    밖으로 나온 세자비가 고개를 돌려 그에게 물었다.

    “어찌된 일인가?”

    황 공공이 사정을 설명하자 세자비가 차갑게 웃고는 다시 물었다.

    “도련님의 상처를 치료할 방법이 있겠는가?”

    황 공공이 고개를 저었다.

    “그곳이 거의 잘려나간 터라 의술이 아무리 고명해도 아마 다시 접붙이지 못할 것이옵니다.”

    세자비는 만감이 교차했다.

    통쾌한 기분이 들면서도 무척 귀찮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요의가 망나니짓을 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자신의 곁에 있는 시비들에게도 손을 댈 정도가 아니었던가. 일이 벌어지면, 시어머니인 강왕비는 제 아들을 싸고돌기 일쑤였고 심지어는 아랫것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에게, 형수가 되어 행실이 단정하지 못해 어린 도련님을 못된 길로 빠지게 했다며 면박을 주기도 했다.

    강왕세자비는 과거를 곱씹으며 인상을 썼다.

    ‘어떻게 그런 소릴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제대로 대문을 통과하여 강왕부에 들어와 옥첩에 이름을 올린 정실로서, 적자까지 낳은 세자비가 아닌가! 그런데 이런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행실이 단정하지 못하단 욕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내 얼굴에 발길질을 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 아닌가!’

    그 일이 있고 그녀는 수치심에 한동안 제 장원 밖 출입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시중시녀가 도련님을 유혹했다는 소문이라도 퍼지면 얼마나 좋지 않겠는가? 모르는 이가 들으면 강왕세자비가 부도덕한 일을 했다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막내 도련님인 요의에게 저리 큰 문제가 생겨, 시어머니가 슬픔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자 얼마나 속이 시원한지 몰랐다.

    하지만 강왕부의 체면은 또 지켜야 하는지라, 막내 도련님이 저리 되었으니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강왕세자비가 온화한 얼굴로 황 공공을 위로했다.

    “도련님의 성정이 어떠신지 다들 모르지 않네. 자네가 한 행동에는 문제가 전혀 없었는데 공공의 마음이 힘들었겠군.”

    황 공공은 그제야 소매로 눈 주위를 찍어댔지만, 진짜 눈물을 흘렸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세자비께서 이리 말씀해주시니 소인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팔공자님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으니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요. 태의가 오면 바로 돌아가 폐하께 처분을 달라 청할 것입니다.”

    세자비가 따뜻하게 말했다.

    “그저 솔직하게 폐하께 말씀드리게. 폐하께서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실 분이 아니시니 목숨까진 건드시지 않으실 것이네.”

    “네.”

    황 공공이 감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감사하옵니다!”

    * * *

    한편, 드디어 도착한 태의는 요의의 상처를 보고는 대번에 얼굴을 굳혔다.

    강왕비가 다급한 얼굴로 물었다.

    “가만히 있기만 하고 뭐하는 겐가? 어서 내 아들의 상처를 치료하시게! 만약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면 자네의 머리도 떨어져 없어질 줄 알게!”

    “예, 예…….” 

    입술을 달싹거리며 낮게 대답한 태의가 급히 손을 움직여 바늘과 실을 꺼냈다. 다급해진 그는 진땀을 흘리며 생각했다. 

    ‘될지 안 될지는 나중 문제다. 우선 지금이라도 잘 모면하고 보자!’

    * * *

    마비산(麻沸散)을 마시고서야 곡소리를 멈춘 요의의 고개가 모로 넘어갔다.

    상처 부위를 씻긴 태의의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스승님?”

    스승의 얼굴이 좋지 않은 것을 본 젊은 견습생이 그를 불렀다.

    이마에 차디찬 식은땀이 가득한 태의가 결국 이를 악물고 바늘을 내려놓았다.

    “…강왕비마마를 뵙고 와야겠다.”

    * * *

    태의가 내실에서 나오자 강왕비의 차가운 음성이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안에서 내 아들을 치료하지 않고 지금 나와 뭐하는 것이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아랫것들을 부르면 되었을 텐데?”

    태의가 털썩 무릎을 꿇으며 고했다.

    “왕비마마, 공자의 상처가 너무 깊습니다. 신의 의술로는 아마도…….”

    “지금 그게 무슨 뜻이냐?”

    크게 노한 강왕비가 물었다.

    “지금 내 아들을 치료할 수 없단 말이야?”

    “신, 신은…….”

    강왕부의 장사(長史)가 황급히 물었다.

    “엄 태의께선, 외과의 신의가 아닙니까! 전엔 잘린 손가락도 붙이지 않으셨습니까!”

    엄 태의의 이마에 흐르던 식은땀이 더욱 거세게 흘러내렸다. 엄 태의가 다급하게 해명했다. 

    “그 일과는 상황이 다르네! 그때는 손가락도 반밖에 잘리지 않아서 다시 접합만 해놓으면 뼈가 스스로 자라 붙었단 말일세. 그러나 팔공자의 것은 곧 떨어지기 직전인데다, 위치 역시 다른 곳과 달라, 다시 자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곳이라…….”

    강왕비가 눈을 둥그렇게 뜨며 소리쳤다.

    “그게 무슨 소린가! 아직 치료도 하기 전에 책임 회피부터 하려는 게야!”

    “아닙니다, 아니옵니다!”

    엄 태의는 연신 해명을 하려 애를 썼다.

    “신은 그저 마마께 상황을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믿기 어려우시면 다른 이를 부르셔서 확인을 해보십시오…….”

    그러자 강왕비가 손잡이를 세게 내리치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때가 어느 때인데 이제 와 다른 이를 부르란 말인가? 그럴 시간이 된단 말인가!”

    장사가 중간에서 중재하기 시작했다.

    “그렇지요, 지금에서 다른 태의를 부른다고 해도 도착할 때쯤이면 너무 늦을 것입니다.”

    도무지 다른 방도가 없자, 엄 태의는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로 했다.

    “신, 신은 고칠 수 있으리란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확신이 안 서도 치료를 해야만 할 것이야!”

    강왕비가 차갑게 소리쳤다.

    “아니면 자네의 머리가 떨어질 걸세!”

    “어서 들어가십시오.”

    장사가 그를 다독였다.

    “시간이 지체되면 더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그냥은 넘어갈 수 없었던 엄 태의는 마지막 한 마디를 덧붙였다.

    “신이 보기엔 공자의 상처가 너무 깊습니다. 이대로 절단한다면 목숨에 지장은 없을 것이나, 이대로 다시 이어 붙인다면 다시 썩어 들어갈지도…….”

    그가 아직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강왕비가 찻잔을 내던졌다.

    눈을 치뜬 그녀가 가슴을 들썩이며 이를 갈며 말을 뱉었다.

    “무슨 괴이한 소리를 하는 것이냐? 잘라? 내 아들이 황족인데 어찌…… 어찌……! 당장 들어가 붙여! 아니면 네 집안 가솔의 명줄부터 다 끊어 놓을 것이다!”

    엄 태의는 절망에 빠졌다.

    그는 정말 제대로 붙여 놓을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강왕비가 제 말을 들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는 듯 보이자, 엄 태의의 얼굴이 까맣게 죽어갔다.

    결국 그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붙이라 이거지? 그래, 붙여주마!’

    후에 있을 문제도 고했고, 치료를 해도 죽고, 못해도 죽는 판이 되었으니 어차피 차이도 없지 않은가!

    더구나 아무리 저리 나와도 정 칠품의 태의인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는 황제의 명이 떨어져야 했다.

    ‘일단 붙여 놓고 당장 궁으로 돌아가 죄를 청하는 게야!’

    마음을 정한 엄 태의가 무겁게 가라앉은 얼굴로 견습생을 향해 낮게 외쳤다.

    “실을 주거라!”

    * * *

    “뭐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황제가 황 공공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질렀다.

    “지금 뭐라 한 것이야!”

    황 공공이 어렵게 다시 입을 열었다.

    “진국장군께서 옥경(*玉莖: 음경)을…… 다치셨사옵니다.”

    잠시 정신을 추스린 황제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얼마나 다친 것인가? 치료할 수 있는 것이냐?”

    “조금 많이 다치셨사온데 태의가 지금 치료하는 중이옵니다.”

    황 공공이 뭉뚱그려 대답했다.

    “요의, 그 녀석은 대체……!”

    황제가 버럭 역정을 냈다.

    “도성을 벗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리 문제를 일으킨단 말이냐! 여인이 필요하면 왕부에 시녀들도 많을 텐데, 왜 굳이 민가의 여자를 건드리는 것이야!”

    땅에 납작 엎드린 황 공공은 말 한 마디 제대로 하기 어려웠다.

    황제의 옆에서 글을 쓰고 있던 옥비가 붓을 내려놓으며 낭창한 음성으로 그를 위로했다.

    “폐하, 너무 속상해하지 마시고 태의의 보고를 기다리심이 어떠시겠습니까? 혹시 아무 일 없을 수도 있지 않겠는지요?”

    황제는 짜증이 났다.

    “녀석이 다친 그곳은 다른 곳과 다른 곳이야. 평소에도 살짝 부딪치기만 해도 아픈데 칼에 베였으니…….”

    옥비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언제나 영특했던 옥비는, 지금은 황제가 감정을 분출해야 할 때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제 마음을 보인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말이 많아지면 오히려 그의 성질을 건드릴 수 있었다.

    주변을 서성이던 황제가 입을 열었다.

    “강왕부 앞을 지키거라. 가서, 일이 생기거든 곧장 와서 보고해!”

    “네, 폐하!”

    대답을 한 황 공공은 내심 안도했다.

    물론 벌을 받을 것은 분명했지만, 황제가 그에게 소식을 알아오라 한 것을 보면 그에게 내릴 벌이 아주 중한 벌은 아니리라 예상되었던 것이다. 

    ‘그나마 목숨 줄은 붙여 놓을 수 있겠구나…….’

    황제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호은, 요의를 호송했던 시위를 들라하라.”

    “예, 폐하.”

    시위대장에게 상황을 다시 물어 정확하게 파악한 황제가 지명수배 명령을 내렸다.

    한편, 그 사이, 강왕부에 갔던 황 공공이 돌아왔는데 황 공공은 요의를 치료했던 엄 태의와 함께였다.

    엄 태의는 황제가 있는 궁에 들자마자 죄를 청하듯이 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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