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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 (110)화 (110/385)

110화. 장가는 다 갔구나

노인장은 정중한 모습으로 명패를 받고는 포권하며 감사를 표했다.

“공자께서 하신 말씀은 저희 조손, 두 사람의 가슴 깊이 새겨두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이번 일이 잠잠해지면 저희는 다시 공자님을 찾아뵙고 명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루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중하십시오.”

“난난, 가자꾸나.”

“네, 할아버지.” 

가볍게 대답한 소녀와 노인장, 두 사람은 또 다시 고양이처럼 유려한 몸짓으로 마차 밖으로 빠져나가더니 들판 어딘가로 사라졌다.

마차는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어 마치 모든 것이 환상이었던 것 같았다.

지온은 눈을 깜빡거려보았다.

“공 노야는 강호에서 상당히 유명한 사람이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듯, 루안이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과거 그는 여러 사람들과 원수를 맺고 손녀만 데리고 북양으로 도망을 쳤소. 그러다 어린 손녀가 중병을 앓게 됐는데 어디서도 손녀를 고칠 수가 없던 그때 부왕을 만나게 됐소. 그 이후로 공 노야는 죽을 때까지 북양왕실에 충성하겠다고 맹세했소.”

“그랬던 거군요.”

지온이 잠시 말이 없었다.

“당신 수하들이 내 생각보다 많네요.”

루안이 담담한 웃음을 보였다.

“천천히 알게 되겠지.”

잠시 망설이던 지온이 다시 입을 열었다.

“겨우 이정도 작은 일에 저런 고수 두 사람을 써버리는 건 너무 아까운 거 아닌가요?”

루안이 고개를 저었다.

“하나, 이것은 전혀 작은 일이 아니오. 둘, 지금 저 두 사람이 도성에 남아 있어도 딱히 이용할 곳이 없었소. 저 둘이 돌아올 때가 되면 돌아오게 할 것이오.”

말은 저리해도 지온도 알고 있었다.

요의가 자신에게 다른 마음을 품지 않았다면, 루안도 일을 이렇게까지 극단까지 끌고 와 처리하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위기가 닥쳐 그 싹이 올라왔을 때, 바로 밟는 것이 가장 좋을 수도 있는 법이오. 그리고 이번 일로 추진할 게 한 가지가 더 있소.”

루안의 목소리가 은근하게 변했다.

“도성이 너무 오랫동안 조용했지.”

* * *

마차는 성문 앞에서 멈췄다.

루안은 지온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윽고 관도에 급한 말발굽 소리가 울려 두 사람이 고개를 들자 역시나 주루에서 보았던 시위들이 요의의 마차를 호송하며 돌아오고 있었다.

하나같이 다급한 얼굴을 한 그들은 북적거리는 인파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비켜라! 길을 막지마라!”

요의의 마차가 성문 앞에 도착하자, 말에서 내린 시위대장이 성문관(城門官)에게 무어라 말을 전했다.

조급함에 속에서 불이 난 시위대장에게, 성문관(城門官)이 반드시 검사와 수색을 거쳐야 도성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자 두 사람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나마 장관(長官)이 자리하고 있어 직접 마차에 올라 상황을 살핀 후, 그들을 도성에 들어갈 수 있도록 풀어주었다.

이런 소동이 벌어졌으니 주변 사람들도 일이 생긴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중 호기심이 왕성한 이들은 직접 성문관을 찾아가 이야기까지 청해 들었다.

“저거 강왕부의 팔공자아냐? 아침에 도성에서 나가지 않았나?”

“그러게? 반나절 만에 왜 돌아왔지?”

“내가 보니까 마차에서 비명소리가 계속 들리던데…… 여길 다친 거 같던데?”

말을 하던 그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제 아랫도리를 향해 눈을 휘릭휘릭 굴렸다.

“거기를……?”

동료들이 역시나 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거길 어쩌다 다친 거여?”

* * *

소문은 금방 도성 전체에 퍼졌다.

한량들은 다관에 삼삼오오 모여 이 일을 두고 입방아를 찧어댔다.

“쯧쯧쯧, 그런 곳을 다치다니……. 딱 봐도 못된 짓을 한 게지.”

“도성으로 돌아온 지 한 달밖에 안된 그 소왕이란 분이 벌인 짓들을 보시오. 이상할 것도 없지.”

그리고 얼마 후, 장정에서 친우나 친인척을 송별하고 온 사람들이 돌아와 주루에서 벌어진 일을 주변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전하면서, 요의에게 벌어진 일은 또다시 풍문이 되어 바람처럼 온 도성으로 널리널리 퍼져나갔다.

“소왕이란 분도 대단해! 아주 그냥 보통 분이 아니시네!”

바로 며칠 전엔 돼지를 끌어안고 자는 것을 좋아한다 소문이 퍼졌고, 지금은 벌을 받아 도성 밖으로 내쫓기는 와중이었는데,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곳에서 또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

“수치도 이런 수치가 없군! 강왕부에서 어찌 그런 인물이 나온단 말인가…….”

“그러니 말이네. 그래도 폐하의 친아우가 아닌가…….”

“너무 오냐오냐 키워 그런 것이지. 폐하를 보시게. 어려서부터 선제 앞에서 자라지 않으셨나? 그러니 인덕이 크고 자애로운 성정을 가지게 되신 것이지.”

“그만들 하시게나. 다들 황가의 일에 왈가왈부하지 마시게. 화는 입에서 나오는 것이네.”

루안은 얘기를 듣다가 일어나서 계산을 마치고, 지온과 다시 마차로 돌아왔다.

“이 일이 퍼지면 강왕부의 명성도 함께 나빠지겠네요.”

먼저 말을 꺼낸 지온이 웃음을 지으며 말을 마저 이었다.

“그는 체면이 중요한 사람이니 강왕부를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겠네요.”

루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후의 화를 불러일으켰고, 황제의 불만을 샀으니, 강왕부는 앞으로 세를 누리기 어려울 터였다.

“돌아가지.”

* * *

마부는 여전히 훌륭한 솜씨로 마차를 몰아 처음 나섰던 장원의 뒷문 앞에 마차를 세웠다.

마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다시 서각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한편, 야우와 한등은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붙어 싸우며 두 사람 모두 두 눈을 부릅뜨고 문 앞을 막고 있었다.

뒤쪽에 있는 벽을 타고 넘던 지온이 순간 제 옷자락을 밟고 휘청거리며 저도 모르게 작게 목소리를 냈다.

루안이 재빨리 흔들리는 그녀를 부축했다. 이미 지온의 목소리를 들은 야우는 급히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들었다.

“사공자님!”

찰나, 그를 놓쳐버린 한등은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바로 그 순간, 야우가 돌연 걸음을 멈추더니 이상한 음성과 함께 괴이한 표정으로 루안이 있는 곳을 쳐다보는 게 아닌가.

‘사공자님 품에 누군가 안겨 있는 것 같은데, 자세로 보아 꽤나 친밀해 보이는 군.’

그런데 그 자가 청색 관복에 망건을 쓴 것이, 서생의 차림을 하고 있지 않은가?

야우가 낸 소리에 루안이 돌아보곤 기분이 상한 듯 그에게 사나운 눈빛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품에 있던 자를 보호하는 듯 자신의 뒤로 밀며 숨기는 게 아닌가?

‘사내를……안고 있어…….’

순간 눈앞이 캄캄해진 야우가 넘어질 듯 휘청이며 속으로 탄식했다.

‘끝이다. 부인이고 뭐고, 장가는 다 갔구나.’

야우는 한등에게 질질 끌려갔다.

그 광경을 보고 어리둥절해진 지온이 루안에게 물었다.

“당신 시종, 몸이 너무 약한 거 아니에요?”

이런 생각을 할 법도 했다. ‘사공자님’ 한 번 부르고 곧 쓰러질 듯 휘청거리지 않았던가. 

루안이 덤덤하게 대꾸했다.

“신경 쓰지 마시오.”

* * *

두 사람은 다시 서각으로 돌아왔다.

관복을 벗고 제 옷으로 갈아입은 지온이 서아를 불렀다.

서각 안으로 들어오던 서아는, 머리를 풀어헤친 지온을 보고는 혼비백산하여 달려왔다. 서아는 제 아가씨의 입술에 발랐던 연지도 지워진 것을 보고는 소리쳤다. 

“아가씨!”

지온이 빗을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

“원래 모양대로 만들어줘.”

“네, 네…….”

서아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어렵게 지온의 머리를 만지고, 다시 그녀의 입술에 연지를 찍어 주었다.

“다 된 건가?”

루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책장이 있는 곳에서 사람 하나가 나타나자 서아는 곧장 일어나 원한 가득한 눈빛으로 루안을 노려보았다.

이번에 어리둥절해진 것은 루안이었다. 서아를 흘긋 바라본 루안이 지온에게 말했다.

“배웅해 주지.”

“네.”

* * *

지온과 서아, 두 사람이 탄 마차가 조방궁으로 향했다.

지온은 안색이 창백한 서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누가 괴롭혔어?”

연신 고개를 흔들던 서아가 이윽고 간신히 한 마디를 뱉었다.

“……괴롭힘을 당한 건 아가씨가 아니시고요?”

의아한 지온이 되물었다.

“내가 언제 괴롭힘을 당했지?”

서아는 곧 눈물을 쏟을 듯이 손수건을 꺼내들더니 입을 열었다.

“아가씨, 어쩜 이리 바보 같으세요! 아직 혼인도 하지 않으셨는데, 어떻게……. 그러다 상대방이 책임지지 않겠다고 하면 어쩌시려고요? 루 대인께서 진짜 아가씨를 좋아하셨다면 아가씨께서 상을 다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혼담을 보냈어야 맞는 거지, 지금 이렇게 하는 게 대체 뭐냔 말이에요! 아가씨, 정말 출가라도 하셔서 선고라도 되려고 이러시는 거예요?!”

멍하니 듣고 있던 지온은 얼마쯤 지나고서야 서아의 말뜻을 이해하고는 그만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너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니?”

서아가 눈물을 닦았다.

“절대 밖에 이야기하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이런 일은 앞으로 절대 있어서는 안 돼요, 아가씨. 제발이요……. 아가씨. 한 번만 제 청을 들어주세요!”

울며 애원하는 것을 보니 진심으로 마음을 졸이는 것 같았다.

지온은 이에 감동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기도 했다.

지온이 서아의 이마에 둥글게 만 손가락을 톡하고 튕기며 말했다.

“이상한 생각하지 마, 그런 일 없었어.”

서아가 울며 말했다.

“아가씨, 제게 숨기지 않으셔도 돼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을게요. 하로도, 의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을게요.”

“…….”

침묵하던 지온은 한숨을 폭하고 내쉬며 해명했다. 

“정말이야, 그런 일 없었어. 방금 같이 서각 밖에 나갔다 오느라 내가 남장을 해서 머리를 풀었던 거야.”

고개를 든 서아가 의심의 눈초리로 지온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요?”

“정말이야.”

지온은 웃음이 날 것 같았다.

“대체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니? 내가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하겠어!”

“하지만…….”

가만히 생각하던 서아가 입을 열었다.

“아가씨와 루 대인께서는 너무 친해보이세요. 자주 따로 만나시잖아요. 제 생각에 그러시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시녀가 관여하는 것도 많다.”

지온의 말에 서아가 정색하고 나섰다.

“아가씨 곁에는 그런 것들을 이야기해줄 어른이 없으시잖아요. 잘못된 행동이란 걸 제가 알고 있는데 그걸 말씀 드리지 말라는 건, 아가씨께서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을 저더러 눈뜨고 가만히 보고만 있으란 말씀이세요?”

“알겠어, 알겠어! 서아, 넌 아주 충직하고 심지가 곧은 시녀다!”

지온이 웃으며 서아를 다독였다.

“어떤 일을 해도 되고, 어떤 일은 하지 말아야 할지, 나도 다 생각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 모든 게 확실해지기 전까지 법도에서 벗어나는 일은 하지 않아. 네가 걱정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이 정도면 안심할 수 있지?”

그제야 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온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지씨 가문에서 숨소리도 안내고 조용히 지내던 계모가, 정말 좋은 사람이었네. 골라서 보내준 시녀들 성정이 하나 같이 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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