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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 (91)화 (91/385)

91화. 똑똑한 두 사람

유씨 가문의 두 형제를 태운 마차가 타닥타닥 조방궁으로 향했다.

옆에서 말은 하지 않고 괴이쩍은 눈빛으로 치근거리며 귀찮게 굴던 유모지는 결국 유신지에게 한 대를 맞고야 말았다.

“큰형, 지온 소저 말이야……. 진짜 귀신이랑 통하고 뭐 그러는 건가?”

유신지는 군밤 까는 것에 집중한 상태였다.

“그동안 공부는 다 어디로 한 것이냐?”

유모지가 바보 같은 얼굴로 대답했다.

“공자께선 괴력난신(怪力亂神)에 관한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고 했지, 없다고는 안 하셨잖아…….”

유신지가 한숨을 푹 쉬었다.

‘이 바보 같은 녀석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설명을 해주지 않으면 이해를 하지 못하니, 원…….’

“원씨 가문의 형수님 일은 그렇다고 치고, 그 상인이 어찌 기사회생하게 되었는지 알아보지 않았느냐?”

“알아봤지!”

“알아보고도 그런 질문이 나오는 것이냐? 세상에서 일어나는 기연의 대부분은 사람들의 궁리 끝에 일어난 일들이다. 그 상인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 역시 두 가지 때문이었지…….”

유신지는 유모지에게 두 가지 사건을 구체적이고 세심하게 설명해주었다.

“이것 보거라. 바로 이렇게 간단한 것이지.”

그리고는 동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제 아우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과거에 붙거든 넌 실무직에 있을 생각 말고 집현원(集賢院)에 들어가 서책이나 베껴!”

“형!”

발악하던 유모지가 문득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귀신과 통하는 게 아니면 우리 조방궁에 가서 점 볼 것도 없잖아? 갈 필요 없는 거 아냐?”

그러자 유신지가 양손을 흔들며 말했다.

“네가 가자고 하지 않았더냐?”

“으헉…….”

유모지는 이대로 말 머리를 돌리면 안 되는지 묻고 싶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 자신의 전 약혼녀만 보면 자꾸 무서운 듯한 마음이 드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어차피 점도 소용이 없을 거라면, 굳이 무서운 얼굴 볼 필요 없잖아!’

그러나 조방궁과의 거리가 멀지 않았던지라, 형제가 대화하는 사이 마차는 이미 도착을 하고 말았다.

유신지가 그를 마차에서 끌고 내려왔다.

“네가 오자더니, 도착했는데 뭘 꾸물거리느냐! 내려!”

“형! 난 안 갈 테니까 형만 가면 안 될까? 난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형만 다녀와, 제발……!”

유모지가 빌듯이 매달렸다.

“넌 어찌 된 녀석이 손바닥 뒤집듯 마음이 바뀌느냐?”

유신지가 이를 바드득 갈았다.

“규방의 규수가 그렇게나 두렵더냐? 못난 것아!”

“두려운 게 아니라, 나는 그러니까…… 루안!”

불현듯 유모지가 구세주라도 발견한 듯 소리를 꽥 질렀다.

“형, 봐! 루안이 지금 형 사람 훔쳐간다!”

유신지가 멈칫하는 사이 그의 눈에 루안이 들어왔다.

당장에 동생을 내던진 유신지는 제 옷차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살코기가 두둑한 뼈다귀를 발견한 강아지가, 이를 노리고 다가오는 다른 강아지를 보고 바짝 털을 세우는 모습과도 같아 보였다.

“루 형!”

유신지가 환하게 웃으며 소리치자 루안이 인상을 쓰며 그를 향해 돌아섰다.

“이런 우연이 있나! 루 형은 향을 올리러 온 것이오? 아니면 점을 보러 왔소?”

루안이 무미건조한 얼굴로 대답했다.

“다 아니오. 양고기 만두를 사러 왔소.”

유신지가 슬쩍 시선을 내려 보니 역시나 루안의 손에 종이봉투가 들려있었다.

‘조방궁 근처에 양고기 만두로 유명한 집이 있긴 하지.’

유신지는 아무렇지 않은 말투 속에 은근한 경계심을 숨긴 채 입을 열었다.

“만두 사시는 것 정도야 사람을 보내면 됐을 텐데, 어찌 직접 오셨소? 관아 일이 바쁘지 않은 가보군?”

“뭐, 괜찮소.”

루안이 밖으로 나가려는 듯 발걸음을 옮기자 유신지도 급히 그를 따라갔다.

“이리 만난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한잔하러 가면 어떻겠소, 루 형?”

“향을 올리러 온 게 아닌가?”

루안이 유신지의 마차를 쳐다보며 말하자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뭐 그리 큰일이겠소! 둘째 아우가 지난번에 놀란 일이 있었던지라 평안부나 받으러 온 거지. 혼자 가서 받아오라 하면 되오.”

‘흥, 만두 사러 왔다가 향을 올리러 갈 수도 있는 게 아니던가! 일단 붙잡고 보자!’

잠시 침묵하던 루안이 대답했다.

“알겠소.”

유신지는 매우 놀랐다.

“가겠다고 했소?!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로군!”

루안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대공자, 진심이 아니었소? 그럼 됐소.”

“진심이오!”

떠나려는 듯한 루안의 모습에 유신지가 당장 그를 붙들었다.

“가시오, 가시오! 저 집으로 갑시다!”

그대로 마차에 버려져 상황을 살피던 유모지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나더러 바보라더니, 내가 보기엔 둘 다 멍청이가 따로 없네. 서로 딴 마음이 가득한데 다른 사람들은 그걸 모를까 봐?”

스스로 두 사람을 눌렀다고 생각한 유모지 공자는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지온에 대한 공포심도 잊고 시종을 불렀다.

“가자! 향을 올리러 가야겠다!”

‘똑똑한 두 사람은 허세나 부리라지. 나는 점을 보고 싶으면 얼마든지 보러 갈 수 있다고! 허허허!’

* * *

늦은 밤이 되어서야 루안은 거처로 돌아왔다.

등을 밝히지 않은 방은 그저 까맣게 어두웠다.

그가 돌아오자 창가에 웅크리고 있던 그림자가 깊은 음성으로 말했다.

“넷째 공자님, 전과 달리 퇴근 후에 일이 무척 많으십니다!”

등을 켜려던 루안이 우뚝 움직임을 멈추고는 물었다.

“야우, 왜 아직 안 갔지?”

창가에서 뛰어내린 야우가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어렵게 도성까지 왔으니 주인께서 넷째 공자님을 잘 살피라 하셨지요. 일은 겸사겸사 온 것이고, 무엇보다 넷째 공자님의 생활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이를테면, 좋아하는 여인이 있으신지 하는…….”

“난 아주 잘살고 있으니, 넌 그만 가보거라.”

“제가 어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루안의 말에 그가 작은 성냥으로 등을 밝혔다.

노을색의 촛불 빛이 루안의 얼굴을 비추자 그의 모습은 더욱 우아하고 풍류가 넘쳐 보였다.

‘이런 외모의 넷째 공자님을 좋아하는 소저가 없을 리가 없지!’

야우가 속으로 생각하며 말했다.

“주인께서 넷째 공자님도 이제 어린 나이가 아니라 계속 이렇게 시간만 보낼 수 없다 하셨지요. 부친께서도 안 계신데 큰형이 되어 그조차 신경을 쓰지 않고 챙기지 않는다면 너무 무책임한 것이라고 전하셨습니다. 하여…….”

옷을 벗던 루안의 손이 멈추더니 그를 향해 돌아섰다.

“하여, 어쩌겠다고?”

“하여 넷째 공자님께서 혼인하지 않으시면, 속하도 북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습죠.”

야우가 불쌍하게 말했다.

“집에 계신 노모께선 아직 제 혼인을 생각하시며 준비하고 계시는데, 넷째 공자님도 제가 이대로 혼자 늙어 가길 원하진 않으시죠?”

“자넨 그냥 혼자 사는 게 좋겠군.”

루안이 무정하게 말했다.

* * *

한편, 그 시각.

술을 마셔 취기가 적당히 올랐던 유신지는 마차에서 내리다 쐰 바람에 돌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런데 오늘 내가 왜 갑자기 조방궁에 갔었지?”

잠시 생각을 하던 그가 제 이마를 철썩 때렸다.

“아, 둘째와 향을 올리러 갔었지, 참……. 그런데 어쩌다 루 형이랑 술을 마시게 된 거지?”

* * *

대장공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온 역시 움직이지 않고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었다.

손에 들었던 차를 모두 비우고서야 대장공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듣기 좋은 말이로구나. 그 역시 꿀 바른 화려한 말이 아니겠느냐?”

지온이 대답했다.

“듣기 좋은 말이 만약 꾸며낸 것이었다면 그저 꿀 바른 화려한 말일 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심이라면 본래 좋은 말일 테지요.”

저도 모르게 대장공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녀의 음성도 누그러들었다.

“그만 됐으니 일어나시게.”

지온이 안도하며 몸을 일으켰다.

대장공주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리와 본궁과 바둑 한판 두세.”

“네, 공주마마.”

바둑판이 놓였다.

대장공주가 바둑돌을 놓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자네가 조방궁에 온 것이 스승님께 효를 다하려고 복상하기 위해 온 것이었지? 복상이 끝나면 어찌할 생각인가?”

그녀에게 같은 질문을 한 사람이 대장공주가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지는 의미는 전혀 달랐다.

고개를 든 지온이 그녀를 바라보고는 웃으며 대답했다.

“신녀는 크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어쩌면 일을 끝내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시집을 갈 수도 있겠지요.”

예상 밖의 대답이었는지라 잠시 생각에 잠겼던 대장공주가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을 하려는 건가?”

지온이 바둑돌을 놓으며 대답 아닌 대답을 했다.

“삼 년 전에 신녀의 부친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순간 흠칫한 대장공주는 손에 들었던 바둑돌을 놓칠 뻔했다.

“분명 아프신 곳 없이 건강한 분이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시고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셨지요.”

지온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제가 집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부친의 흔적은 많이 지워진 상태였습니다. 하여 당시 상황을 묻고 싶어도 물을 수가 없었지요. 지금의 지씨 가문은 가세가 많이 기울어 과거에 왕래하던 고관대작들과 더는 왕래를 하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신녀는 누군가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둑판을 바라보던 대장공주는 문득 이것들이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그녀가 입을 열었다.

“본궁이 피곤하구나, 그만 가보거라.”

지온은 바둑돌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신녀는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녀가 공당을 떠나고 대장공주는 한참 말이 없었다.

매고고가 다가와 걱정스레 그녀를 불렀다.

“공주마마……?”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대장공주가 대답했다.

“매, 자네는 저 아이의 말이 사실인 것 같은가? 본궁을 사다리로 이용하여 그대로 청운을 타려는 게 아닌가 말이야.”

잠시 생각해본 매고고가 입을 열었다.

“입궁을 생각한다면, 가장 좋은 사다리는 공주마마가 아닙니다. 마마께선 이미 궁 일에 손을 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강왕부 쪽이 좀 더 힘이 좋을 것입니다.”

대장공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놀랍다는 듯 읊조렸다.

“저 아이의 아비가 지원(池元)이던가, 그랬지? 지 재상의 큰아들 지원이라면, 일이 벌어진 그해에 도성으로 돌아왔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

“네, 공주마마.”

“전에는 그리 기억에 남았던 인물은 아니네만, 죽은 시기가 확실히 공교롭긴 해. 설마하니…….”

매고고가 말했다.

“그해 함께 엮였던 이들이 워낙 많으니 그것 역시 알 수 없는 일이지요.”

대장공주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 아이의 목적이 그런 것이었다니, 정말 예상 밖이지 않은가…….”

사실 의지할 곳 하나 없는 그녀의 상황을 생각하여, 그저 좋은 혼처를 찾는 것이 목적일 거라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난데없는 부친의 신원(伸冤)이라니…….

두 사람은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그렇게 한동안 침묵이 흐르고, 매고고가 다시 그녀를 불렀다.

“마마…….”

생각에서 헤어 나온 대장공주가 입을 열었다.

“그 첩자(帖子)를 전해주게.”

순간 매고고가 멈칫했다.

“하늘에 오르고 싶은지, 아닌지는 실제 행동으로 증명해야지. 아니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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