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85)화 (85/385)
  • 85화. 모두 계산을 했던 게야!

    문득 함옥이 볼멘소리를 질렀다.

    “아, 근데 이건 아니죠!”

    “뭐가 아니에요?”

    “사저, 빙백 가격이 오를 걸 알았잖아요! 그걸 사저가 샀으면 사저가 큰돈을 벌 수 있었던 건데, 왜 다른 사람 돈을 벌어 준거예요?”

    지온이 하하,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금전이 뭐가 아쉬워서요? 황금의 집도, 천금만금의 녹봉도, 이 서책 안에서 모두 찾을 수 있는 것을요. 그러니 서책을 열심히 읽고 공부하는 것이 정답이에요.”

    그리고 지온이 다시 서아에게 말했다.

    “여기 정리하고 그만 돌아가자.”

    “네, 아가씨.”

    사방전을 나가는 지온을 보며 함옥이 중얼거렸다.

    “난 이제야 우리 사저가 왜 그때 숙부 내외랑 재산 다툼을 하지 않았는지 알았어. 겨우 그 돈이 뭐라고…….”

    청옥 역시 말했다.

    “나도 이제야 알겠다. 전엔 내가 널 아무리 가르쳐도 소용이 없더니, 사저가 실전으로 가르치니까 바로 착해지는구나.”

    “사저~!”

    함옥이 애교를 부리자 청옥이 웃음을 흘렸다.

    “관상 배운다고 하지 않았어? 대사저 말대로 공부 열심히 해.”

    “응…….”

    * * *

    능양진인의 귓가가 웅웅 울리고 있었다.

    모두 제자가 그녀에게 올리는 보고 때문이었다.

    “그 상인이 진짜 기사회생을 하였습니다!

    제자가 상황을 알아보았습니다. 그 상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방(馬房)에 묵을 정도로 버티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다 삼 일 전, 강왕비께서 도성에 돌아오신 후에 갑자기 그가 여러 무역상을 만나기 시작했지요. 저희는 다들 그자가 가지고 있는 빙백을 팔기 위해 그러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에게 돈을 빌리러 다니고 있었던 것이었어요!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 중, 담보로 걸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 시장에 보이는 모든 빙백 천들을 사들였습니다.

    사람들은 다들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어제 강왕부에서 공포하길, 각종 원단을 매입할 생각이며, 그중 빙백은 수급이 어려우니 세배의 가격으로 사겠다고 했답니다!”

    능양진인이 창백해진 얼굴로 물었다.

    “그래서 그자가 빙백을 강왕부에 팔았다고? 그자가 어찌 감히……? 강왕부에서 원하는 물건을 어찌 그리 높은 가격에 팔아?”

    “아닙니다!”

    제자가 대답했다.

    “그는 강왕부에 팔지 않고 몇 곳의 무역상을 찾아갔습니다! 그 무역상들이 강왕부와 관계를 잘 맺고 싶은 마음에 더 높은 가격으로 사들인 것입니………스승님? 스승님……!”

    쓰러질 듯 제자의 손에 몸이 흔들리던 능양진인은, 시간이 흐르고서야 앞뒤 정황을 파악했다.

    지금의 강왕부는 활활 타오르는 불 속의 기름과 같아서 수많은 사람이 강왕부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했다.

    강왕비는 황제의 생모가 아닌가!

    강왕비의 눈에 들기만 한다면 앞으로 도성에서의 삶은 그야말로 쫙 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장사하는 행상 나부랭이가 어찌 강왕부에 높은 가격으로 물건을 팔 수 있겠는가? 그러나 강왕비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이들에겐 팔고도 남지, 팔고도 남아!’

    그리하면 가격도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으면서, 강왕부의 눈 밖에 날 일도 없이 무탈하게 돈만 주머니로 데구루루 굴러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창고에 난 불이 그의 물건을 죄다 살라 먹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로 인해 그는 더 큰 기회를 잡게 된 셈이었다. 뒤바뀐 기회로 본래 벌 수 있던 것보다 더 많이 벌게 되지 않았는가!

    “어찌 이리되는 것이야! 빙백은 남부에서 계속 생산이 되는 물건이 아니냐?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마음대로 가격이 올라!”

    능양진인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제자가 울상을 한 채 대답했다.

    “스승님, 그게 몇 개월간 운하를 준설 한다고 배가 들어오질 못하고 있습니다. 곧 여름인데 강왕부에 계신 귀한 분께서 그걸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

    능양진인은 지난번 일을 떠올렸다.

    그 아이는 화옥을 자극하여 먼저 일을 치게 만든 아이였다. 그러고는 몰래 사람을 바꿔치기하고, 화옥에게 ‘죄증(罪證)’을 남기며 압박해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직접 화옥을 처리하게 하지 않았던가!

    그 일도 그렇거니와 직접 자신을 찾아와 담판을 짓기까지 했다.

    ‘그래서 내가 억지로 대장공주에게 향환의 일을 이실직고해야 했지.’

    사건이 모두 맞물리고 있지 않은가.

    ‘몹쓸 년이 모두 계산을 했던 게야!’

    “스승님!”

    흐릿한 와중에 제자의 두려움 가득한 비명이 들려왔다.

    “쓰러지시면 안 돼요, 스승님!”

    고개를 턴 능양진인은 쓰러지려는 몸을 애써 지탱했다.

    “괜찮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제자는 비명을 질렀다.

    “피, 피……!”

    능양진인은 순간 코가 뜨거워지더니 뭔가가 후두두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코피가 흘렀다.

    당황한 제자의 어설픈 시중을 받으며 코피를 닦은 능양진인이 말했다.

    “괜찮다. 요즘 열이 오르는 음식을 많이 먹어 혈열(血熱)이 차서 그런 게야.”

    닦고 나니 더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 그제야 제자는 안심했다.

    “네…….”

    능양진인도 천천히 안정을 찾았다.

    “이번 건은 됐다 하더라도 지난번 것이 있지 않으냐? 원씨 가문에선 아직 소식이 없지?”

    “없습니다.”

    능양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을 시켜 말을 퍼트리거라. 누가 이번 일을 가지고 이야기하거든 원씨 가문의 얘기를 들라고 해.”

    “네, 스승님.”

    * * *

    “아가씨, 선물 여기 다 있어요!”

    의운이 자랑스레 말했다.

    시녀 셋 모두 다들 흥분한 얼굴이었다.

    그들이라고 값비싼 물건을 보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보기야 많이 봤어도 그건 스스로 번 것이 아니었지만 이번엔 다르지 않은가!

    온전히 아가씨의 힘만으로 벌어온 물건들이었던 것이다.

    이미 서책을 손에 든 지온이 말했다.

    “응, 너희들이 알아서 정리해.”

    지온의 무관심도 시녀들의 좋은 기분을 어찌할 순 없었는지, 시녀들은 상자를 열어 하나씩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게 빙백이지? 딱 아가씨 여름옷 지어드리면 되겠다.”

    “이 주화(*珠花: 머리 장신구) 세밀한 것 좀 봐! 색도 수수해서, 우리 아가씨가 지금 해도 되겠다.”

    “상인이라더니, 역시 마음에 쏙 들게 보냈어! 보낸 물건마다 전부 아가씨가 사용할 수 있는 거야.”

    “아니지, 이 정도로 세심하지 않고서 어떻게 그 큰 장사를 하겠어?”

    시녀들이 수다를 떠는 중에, 지온이 문득 물었다.

    “아, 상인이 연락처는 알려주고 갔어?”

    지온의 말에 하로가 생각났는지, 선물함에서 쪽지 한 장을 찾아 건넸다.

    “아가씨, 여기요.”

    지온이 받고 보니 그 위로 정확하게 주소가 적혀있는지라 서아에게 챙겨두라 일렀다.

    서아가 의아하여 물었다.

    “아가씨, 무슨 뜻이라도 있는 건가요?”

    지온이 말했다.

    “그냥 예비용이야. 그 사람이 똑똑하네. 역시 난 정말 운이 좋아.”

    시녀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어리둥절한 것은 서로 마찬가지였다.

    “아가씨.”

    하로가 솔직하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지온이 대답했다.

    “내가 보름을 기다리라고 했잖아. 그 사람은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돈은 반드시 벌 수 있었어. 하지만 돈을 얼마나 벌 수 있을지는 자신의 역량에 달린 것이었거든. 가장 간단한 방법은 가지고 있던 빙백을 강왕부에서 사려고 할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그럼 두 배 정도 높은 가격으로 팔 수 있었을 테니까 본전을 찾을 수 있었을 테고 다시 재기도 할 수 있었겠지.”

    “더 나은 방법도 있단 말이에요?”

    지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방법은 다시 한번 출혈을 각오하고 시장에 있는 빙백들을 모두 사들이는 거야. 그렇게 물량은 모두 사들이면 가격은 당연히 더 오를 테니까 본전이 아니라 더 크게 남길 수 있겠지.”

    시녀 셋은 표정이 각각 달랐다.

    서아는 얌전하게 듣고 있었고 의운은 놀라 멍한 표정이었다. 반면에 하로는 나름의 생각을 하는 듯했다.

    “가장 돈을 크게 버는 방법은 마지막 방법이야. 시장에 나온 모든 빙백을 사들인 후에 강왕부에서 물건을 사겠다고 나섰을 때 다시 다른 상인들에게 파는 거지…….”

    지온이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하면 강왕부에게 미운털이 박히지도 않을 테고 돈도 원하는 대로 올릴 수 있을 거거든. 강왕부에 잘 보이고 싶은 사람들끼리 경쟁이 붙으면 가격은 몇 배 정도만 뛰는 게 아닐 거야.”

    “그 사람은 마지막 방법을 쓴 거군요!”

    깨달은 하로의 말에 지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으로 된 신상을 이야기했을 정도면 분명 돈을 아주 많이 벌었다는 거야. 마지막 방법인 게 분명해.”

    하로가 감탄을 쏟았다.

    “장사하는 일에도 이렇게나 머리를 많이 써야 하다니……. 상인이 정말 똑똑하네요!”

    한편, 서아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연락처를 남긴 것은 무슨 뜻인 건가요?”

    지온이 대답했다.

    “그는 분명 미신을 믿는 사람이지만, 머리도 충분히 똑똑한 사람이야. 모든 일이 끝난 후에 다시 상황을 돌아보면서, 내가 보름을 기다리라고 한 이유가 있었다는 걸 금방 깨달았을 거야.”

    하로도 그의 의도를 깨달았다.

    “그 상인이 아가씨와 관계를 다져놓으려고 하는 거로군요?”

    지온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그렇게 크고 요란하게 사람들을 끌고 나타나서 화신점이 영험하다고 동네방네 이야기한 것도 일부러 내 명성을 높여주려고 한 일이야.”

    그래서 자신은 운이 좋다고 한 것이었다.

    그저 이름을 알리기 위해 화신점을 이용했을 뿐인데, 이렇게 똑똑한 사람을 만나게 되지 않았는가!

    * * *

    강왕비가 도성으로 돌아온 일로 도성 전체가 들썩였다.

    오늘은 꽃놀이, 내일은 생신연, 모레는 다과회 등, 이름만 가져다 붙인 행사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행사마다 강왕비가 매번 참석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도리어 다른 이들만 밤낮없이 고생이었다.

    수각(水閣)에 앉은 유 대부인은 느릿하게 접선을 살랑거리며 다른 집 부인들의 한담을 듣고 있었다.

    대갓집 귀부인이나 아가씨들이 나누는 대화도 사실 시정에 사는 이들이 나누는 대화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어느 집이 영전했다더라, 어느 집이 첩을 들였다더라, 어느 집 형제가 싸우고 사이가 틀어졌다더라……. 그저 쓰는 단어가 좀 더 고상할 뿐이었다.

    “……아! 조방궁의 그 이야기는 다들 들으셨는지요?”

    “무슨 이야기입니까? 대장공주님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요?”

    “아닙니다. 왜 있지 않습니까! 바로 얼마 전까지 떠들썩했던 화신점 말입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든 유 대부인이 귀를 쫑긋 세웠다.

    그녀도 상인의 소문을 듣고 사람을 보내 물어보려 했으나, 큰아들인 유신지에게 지 소저에게 신경 쓰지 말라며, 그녀가 알아서 잘할 거란 소릴 들었었다.

    그래도 자신 역시 며칠 지온 소저와 함께 보내본 사이가 아니던가? 자신이 보기에도 생각 있는 소저였기에 유 대부인은 유신지의 말을 믿었다.

    하지만 그 일이 어찌 결론이 나왔는지 모르는 터라 정말이지 너무도 궁금했었다.

    사실 조방궁에서 화신점을 본다는 일은 귀부인들 사이에선 그다지 주목받을 만한 일은 아니었다. 화신점은 그저 한두 마디하고 지나갈 정도의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들리는 말이 많아도 너무 많지 않았던가? 이런 상황에, 소문이 돌도록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이가 없다는 건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누군가 지온 소저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거지?’

    유 대부인의 호기심은 더욱 커졌다.

    ‘소문이 멋대로 커지게 가만 놔두고 있는데, 무슨 수가 있는 건가?’

    “뭐 들을 만한 이야기라고요. 점치는 이야기니 믿을 만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말을 하는 부인의 얼굴에 무시가 가득했다.

    누군가 키득키득, 웃음을 지었다.

    “지씨 가문은 대체 무슨 마가 끼었답니까? 지난번엔 형제끼리 그리 싸우더니, 이젠 점쟁이 소저라니요. 무덤에 누운 지 노야께서 이 소식을 들으시면 화가 나 벌떡 일어서실 것입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요즘 위씨 부인도 통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너무 창피해서 그런 것이 아닌지…….”

    말을 꺼냈던 부인이 그녀들의 말을 끊었다.

    “다들 옛날 소식밖에 모르시나 봅니다. 이미 새로운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아? 무슨 소식인지요?”

    그러자 부인이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내걸었던 보름이 다 지나가지 않았습니까? 본래 크게 손해를 보고 강에 뛰어들려 했던 상인이 진짜 다시 살아났다 합니다!”

    모였던 부인들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유 대부인 역시 매우 놀라긴 마찬가지라 얼른 물었다.

    “어떻게 된 게요?”

    유 대부인의 물음에 그녀가 열심히 설명했다.

    “……모두 강왕비 덕분이지요. 행상집 몇 곳이 가격 경쟁을 벌여 몇 배나 되는 가격에 빙백을 사갔다지 뭡니까? 상인은 본전을 회수한 것은 물론이요, 이익을 크게 봤다 합니다.”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던 부인들 덕에 수각이 침묵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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