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83)화 (83/385)
  • 83화. 어찌 죽을지 알 수 있겠어!

    사내가 객잔에 들어서자마자 그를 부르는 큰 소리가 들렸다.

    “유삼(劉三)!”

    객잔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사내들 여럿이 순식간에 달려와 그를 에워싸더니 각자 말을 쏟아냈다.

    “이리로 거처를 옮기다니, 못 찾을 줄 알았나!”

    “운송비는 대체 언제쯤 계산을 해줄 수 있겠는가?”

    “중개 수수료는 줄 수 있는 건가?”

    “아직 표행에 들어간 비용도 계산이 안 됐소!”

    너도나도 한 마디씩 쏟아내는 통에 유삼이라 불린 상인은 귀가 다 얼얼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본인이 빚을 진 게 사실이니 좋은 말로 부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보게들, 잠시만 말미를 줄 수 있겠나? 정말 잠시네.”

    그가 손을 모아 공수하며 부탁했다.

    “일하며 늘 신뢰를 지켜온 것이 바로 나, 유삼이 아닌가. 내가 언제 빌려 놓고 갚지 않은 일이 있었는가? 전부터 함께 일을 해왔지만, 돈을 갚지 않았던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았는가. 이번엔 내가 정말 큰 어려움을 만나 이리된 것이지, 정말 일부러 돈을 갚지 않은 것이 아니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다들 유삼과 오래 일을 해왔던 이들이라 그래도 신뢰가 있었다.

    운송업자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자네를 믿지 않았으면 계약금도 안 받고 먼저 물건부터 운송을 해주었겠는가? 그러나 지금 대금이 들어오지 않으면 우리도 돌아갈 수가 없으니, 어쩌겠나?”

    그와 오랜 기간 거래를 해온 포목상도 말했다.

    “나도 그렇네! 내, 자네를 돕겠다고 이번 빙백에 장사 밑천까지 넣었단 말일세. 이대로 물건값이 들어오지 않으면 우리 집은 앞으로 운영이 어렵단 말일세!”

    “우린 안 그래도 소자본으로 작게 표행업을 하는 집이라 시간을 미뤄주기가 어렵소. 하루 대금을 미루면, 우리가 돌아가지 못하는 날이 하루 더 늘어나는 처지요. 집에 열이 넘는 식구가 기다리고 있는데, 다들 뭘 먹고 살란 말이오!”

    유삼이 간청했다.

    “며칠만 더 기다려줄 수 있겠소? 정말 이번엔 나도 버티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네. 솔직히 원래 있던 객잔에 더 머물 돈이 없어 이리로 옮겨온 것이네. 여보게, 제발 한 번만 도와주시게. 내 이번 난관만 넘으면 반드시 크게 사례를 하겠네!”

    포목상이 속내를 밝혔다.

    “부두 창고에 불이 나는 바람에 요즘 빙백은 찾아보기 어렵지 않은가. 자네가 손만 쓰면 얼마든지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을 것이네. 그럼 운송비든, 물건 대금이든 싹 다 털 수 있으니 지금 이런 고생은 안 해도 되는 게 아닌가.”

    “그렇지! 그리하면 고향으로 돌아갈 경비도 남길 수 있을 걸세. 일단 돌아간 후에 다시 일어서면 되지 않겠는가?”

    운송업자가 거들고 나섰지만, 유삼은 쓴웃음을 지었다.

    다시 일어서긴커녕, 물건도 잃고 집안의 논이며 밭도 다 잃게 생기지 않았는가?

    ‘돌아가면 정말 황아장수 일이나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속으로 한숨을 내쉰 유삼이 간절하게 말했다. 

    “좋은 이야기 고맙네. 딱, 3일만 기다려주면 안 되겠는가? 딱, 3일이네!”

    포목상이 한숨을 내쉬었다.

    “유삼, 자네 이야기는 나도 들었네. 조방궁에서 봤다는 무슨 점 때문에 이리 시간을 끄는 게 아닌가? 우리가 같이 일한 지 오래됐으니 내 허심탄회하게 말하겠네.

    점이라는 건 그저 어쩌다 얻는 행운 같은 것이지, 소원을 이뤄주는 일이 진짜겠는가? 내가 지금 자네에게, 거부(巨富)가 될 거라 한다고, 자네에게 갑자기 돈이 많이 들어오는 게 아니지 않은가?

    빙백이 비싼 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희소한 것도 아닐세. 이대로 시간을 끌다 남부에서 다시 물건이 올라오면 가격은 다시 올라가지 않을 것이네. 지금 팔지 않으면 일을 그르치게 될 거란 말일세!”

    “맞네! 그러다 대금도 다 치르지 못하면 어쩌려고 그러나? 빌어먹으며 고향으로 내려갈 생각인가?”

    순간 유삼도 흔들렸다.

    포목상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장가에 자신이 가진 빙백을 팔아 치우면 돈이 약간 모자라는 수준일 터였다.

    그러나 아흔아홉 개의 백첨자 중에 자신이 뽑은 것은 단 한 자루밖에 없는 화신첨이 아니었던가!

    ‘이게 운 때가 바뀌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고민을 거듭한 끝에 유삼이 입을 열었다.

    “여보게들, 겨우 며칠이니 내 체면을 봐서라도 앞으로 삼 일만 기다려주지 않겠는가? 정말 딱 삼일일세!”

    다들 아무런 대답이 없자, 유삼이 이를 악물었다.

    “만약 내가 삼 일 후에도 대금을 내지 못하면 하루씩 이자를 계산해 주겠네!”

    그 말에 끝내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운송업자가 누그러진 말투로 말했다.

    “알겠네. 그래도 수년을 함께 거래해온 정을 생각해서 삼일만 더 기다려주겠네. 유삼, 이 사람아. 자네니까 기다리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절대 기다려주지 않았을 것이네.”

    유삼이 크게 감사를 표했다.

    “베풀어준 마음, 내 가슴에 새길 것이네. 이번 난관만 넘기면 반드시 크게 사례하겠네!”

    운송업자가 그리 나오자 포목상 역시 더 그를 채근하기 어려웠다.

    “자네가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내가 어찌 더 강요하겠는가? 벌써 빙백의 가격이 뛰는 추세고 앞으로 며칠은 매일 가격이 오를 테니 자네 꼭 견뎌내야 하네.”

    표행업자 역시 말했다.

    “삼 일만 기다려 달라고 하니 나라고 방도가 있겠소? 그러나 도성은 물가가 높아 머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들어가는 비용도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오. 돌아가 함께 온 일행들을 불러와 이곳에서 같이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래도 되겠소?”

    혹시라도 그가 도망이라도 쳐, 돈을 받지 못할까 감시를 하겠다는 말이었다.

    유삼은 쓰게 웃었다. 그러나 생각하니 이를 비난할 수만도 없는지라 유삼이 말했다.

    “당연히 그리 하겠소. 일행을 불러다 여기서 묵게 하고 계산은 내 앞으로 달아 놓으시오. 다만 지금은 내가 돈이 없어 좋은 곳은 어렵소.”

    표행업자는 온갖 고생을 많이 하는 터라 당연히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유삼에게 공수한 뒤 일행을 부르러 떠났다.

    사람들을 모두 배웅한 유삼의 미간이 크게 좁아졌다.

    ‘내가 목숨까지 거는구나.’

    만약 선고의 말대로 이번 난관을 무사히 넘어가기만 한다면 화신마마의 신상을 금으로 만들어 바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안 된다면……조방궁의 문 앞에서 목이라도 달고 죽는 수밖에 없겠지?’

    문득 객잔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구경이라도 난 듯, 사람들이 우르르 몰리더니 누군가 유삼을 밀어 넘어뜨렸다.

    “뭐 하는 것이오!”

    힘겨운 상황에 안 그래도 화가 부글거리던 그가 냅다 소리를 질렀다.

    “거 눈이 안 달린 것이오?”

    그러나 그를 밀어 넘어뜨린 이는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그대도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나마 뒤에 있던 이가 멍청하게 있는 유삼을 향해 한마디 했다.

    “다들 구경하러 간 거요. 강왕비 행렬이 도성에 들어왔거든.”

    유삼은 그저 일진이 더럽다며 혀를 찼다.

    강왕비 행렬이 도성에 들어온 것이 평범한 저들 같은 사람들에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호들갑은 무슨……! 애라도 떨어지겠군. 그냥 왕비일 뿐인데, 뭘 그리 볼 게 있다고?”

    유삼의 투덜거리는 소릴 들은 주인장이 말했다.

    “다른 지역 사람이라 잘 모르겠지만, 강왕비는 그냥 평범한 왕비랑은 다르지요. 폐하께서 본래 어느 가문에 있었는지는 알고 계시죠?”

    유삼은 흠칫 놀랐다.

    모를 리가 있겠는가! 폐하는 선제의 양자였으니, 강왕비야말로 폐하의 생모가 아니던가!

    태후라는 이름만 없을 뿐, 사실상 태후라고 봐도 무방했다.

    ‘잠깐, 내가 지금 그걸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장사치는 정보가 빠르지 않던가! 고관대작가에 관한 일들은 그 역시 어느 정도 아는 바가 있었다.

    ‘강왕비가 사치스러운 성격이라 했었지?’

    그녀가 봉지에 있을 당시, 행상하는 이들은 다들 그녀가 있는 지역에 가고 싶어 했다. 좋은 물건만 있으면 가격도 묻지 않고 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강왕비가 도성에 왔으니 새 옷을 지을 게 분명했다.

    더구나 여름이니 빙백 천을 쓰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창고에 화내가 일어나 도성에는 빙백의 물량이 턱없이 적은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급격히 흥분한 유삼은 사람들을 따라 객잔 밖으로 뛰쳐나갔다.

    ‘돈을 빌리자! 어서 돈을 빌려야 해! 빙백을 모두 사들여 쌓아두는 거야!’

    때가 되면 자신이 부르는 것이 빙백의 가격이 될 게 아닌가!

    * * *

    “며칠째지?”

    낙영각의 능양진인이 물었다.

    “네, 스승님. 열흘 하고 이틀째입니다.”

    “그쪽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고?”

    “없습니다. 듣자니 그 상인이 마방으로 옮겼다고 하는데, 매일 밖으로 돌면서 포목상들을 만난다고 합니다. 아마 이미 후회하고 있겠지요?”

    능양진인이 웃음을 지었다.

    “후회해봐야 무슨 소용이겠느냐? 물건을 사고파는 일을 어찌 점괘에 걸어?”

    “그러게 말입니다!”

    제자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수행을 깊이 하신 스승님께서도 매번 점괘가 맞다고 감히 못 하시는데, 겨우 그 수준으로 말이 되겠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또 가만 생각하니 썩 기분 좋은 말도 아니었다.

    미간을 좁힌 능양진인이 화제를 돌렸다.

    “강왕비께서 도성에 드셨다지? 채비하거라. 강왕부를 정돈해야지.”

    우선 중요한 일부터 하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삼 일 후면 그 계집이 어찌 죽을지 알 수 있겠어!’

    * * *

    삼 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강왕비가 도성에 든 일로 덩달아 도성 전체가 술렁거렸다.

    능양진인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강왕부를 깨끗하게 정리하며, 강왕비를 어찌 만날지 고민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대충 강왕부가 정리되었을 때쯤, 보름이란 시간도 지나있었다.

    “사방전은 움직임이 있느냐?”

    능양진인의 물음에 제자가 대답했다.

    “움직임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요즘엔 향을 올리는 향객도 없습니다.”

    “오?”

    제자는 마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듯 그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엔 사람들도 구경이나 할 생각에 몰려갔었지만, 요 며칠 강왕부 일로 떠들썩하니 다들 그쪽에 관심이나 두겠습니까? 온종일 들리는 향객이라 해봐야 몇 명뿐입니다. 본래 사방전이 조방궁에서 향불이 가장 많이 켜지는 곳이었는데, 저들 때문에 다 망했지요!”

    능양진인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그 아이 손에 사방전이 오래 망가져 있었으니 이제 다시 가져올 때가 됐구나.”

    제자의 눈이 반짝였다.

    “스승님, 그 말씀은…….”

    능양진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사람을 시켜 그 상인을 찾거라. 그리고 그 상인에게 이렇게 전해…….”

    그녀가 제자에게 귀엣말을 속삭이자 제자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끄트머리에 능양진인이 덧붙였다.

    “사람은 외부 사람을 찾아 시키거라. 우리와 관련이 있다는 게 보여선 안 된다. 알겠느냐?”

    “네, 스승님!”

    자신만만한 제자의 대답에 능양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거라.”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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