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73)화 (73/385)
  • 73화. 운수 나쁜 날

    땀으로 한가득 번들거리는 이마를 한 고찬이, 달려와 보고를 했다.

    “대인. 저희가 다 찾아보고 있지만, 아직 발견한 것이 없습니다.”

    함께 따라온 현령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라 말했다.

    “대인, 묻힌 시신을 찾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죽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지난번에 있었던 살인사건의 결론을 내린 이가 자신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사건이 다시 내려온 것도 모자라 형부(刑部)까지 들쑤셔놨으니, 혹시라도 자신이 사건의 결론을 잘못 내린 것이라면 내년에 있을 고과에서 고배를 마실 것이 자명했다. 거기다 이 옛날 사건까지 추가가 된다면…….

    ‘끝이다. 올해를 못 넘길 거야. 올해가 다 무엇이냐? 바로 강등이지.’

    그러나 루안은 흔들림이 없었다.

    “다시 찾는다.”

    그 모습에 현령은 속으로 불만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루 낭중, 이 인간 이거 역시 소문대로 자기 마음대로구먼! 겨우 접선 하나를 가지고 최근에 실종된 이들이 모두 살해당한 것이라니……. 영산에 매년 놀러 오는 사람이 다 몇인데, 물건 하나 잃어버리는 사람이 없을까!’

    그러나 어쩌면 그 접선 역시 실종자가 실수로 흘린 것일 수도 있었다.

    언덕에 선 루안은 조용히 다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침 시기가 나들이하기에 좋은 계절이라 영산에는 관광객이 무척이나 많았다. 범인 역시 시신을 끌고 먼 곳까지 가기는 어려웠을 터였다.

    ‘그러니 시신을 묻은 곳은 분명 가까운 곳일 텐데…….’

    루안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온 산 가득한 복숭아나무가 들어온 바로 그 순간이었다.

    “고찬!”

    “네, 대인!”

    “이 근처가 전부 과수원을 하는 농가인가?”

    “그렇습니다.”

    “최근 새로 심은 복숭아나무가 있나?”

    “아…….”

    순간 루안의 말을 이해한 그가 덧붙였다.

    “곧 알아오겠습니다!”

    명령이 분명했던지라, 금방 돌아온 고찬이 보고를 올렸다.

    “남쪽 언덕에 있는 복숭아나무가 새로 심은 것입니다.”

    “가지.”

    남쪽의 복숭아나무는 무척이나 잘 관리되어 해사하게 핀 도화들이 만발해 있었다. 다만, 이곳 복숭아 과수원에선 뭔가 알 수 없는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그 냄새가 코끝을 맴돌았다.

    루안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이 부지의 복숭아나무는 언제 심은 것이오?”

    현령이 급히 이장을 찾아 사람을 보냈다.

    이윽고 찾아온 이장이 루안에게 대답했다.

    “이곳 부지의 복숭아나무들은 수년간 해마다 심었습죠. 처음 심었던 때가 아마……칠, 팔 년 전쯤이지요? 그리고 여기 있는 몇 그루는 올해 막 심은 것입니다요.”

    고개를 끄덕인 루안이 곧장 고찬에게 명령했다.

    “파내라! 나무의 뿌리가 있는 곳까지 파야 할 것이다!”

    그에 고찬이 크게 대답을 했고 현령이 마른 웃음을 지으며 루안을 향해 입을 열었다.

    “대인, 설마 과거 실종자들이 이곳에 묻혀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여기서 냄새가 나오.”

    루안의 대답에 멈칫한 현령이 말했다.

    “냄새라면…… 꽃향기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루안이 고개를 저었다.

    “악취. 이 꽃향기에 숨은 악취가 있소.”

    현령은 전혀 믿지 않았다.

    꽃이 이렇게나 많이 피었는데, 대체 꽃냄새 말고 무슨 냄새가 난단 말인가?

    ‘이 루 대인이라는 인간도 참으로 고집불통이지, 시신을 못 찾으니 악취가 난다는 이상한 소리나 하다니. 나긴 무슨 냄새가 난다고? 내 코엔 하나도 안 나는구먼!’

    첫 번째 복숭아나무 아래는 텅 비어,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두 번째, 세 번째 나무가 계속 파헤쳐졌다.

    현령의 얼굴이 점점 무시하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어 갔다.

    ‘이래서 덜 영근 것들이 하는 일은 믿을 수가 없다니까.’

    자신더러 증거도 없이 사건을 대충 종결지었다고 뭐라고 하더니만, 그러는 본인도 근거도 없이 제 생각대로 이 많은 사람을 고생시키고 있지 않은가?

    과수원을 멀쩡하게 가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데, 이리 파헤쳐놓으면 또 한 달은 고생을 해야 할 터였다.

    ‘그래, 파라, 다 파내! 그러나 내가 현령나부랭이라고 함부로 굴릴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지. 비록 관직이 높은 것은 아니다만, 그래도 동방생(*同榜生: 함께 과거를 치르고 급제한 사람) 중엔 좌사(*座師: 과거시험의 시험관)도 있다, 이거야!’

    그는 여기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상소라도 올리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연달아 대여섯 그루를 파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고찬이 구슬땀을 닦으며 루안에게 말했다.

    “대인, 다 팝니까?”

    워낙 부지가 크다 보니 십여 명에 달하는 관졸들이 셋이 짝을 이뤄 판다고 해도 언제 다 팔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다시 한번 사건 문서를 살핀 루안이 이장에게 물었다.

    “어떤 나무가 작년에 심은 것인가?”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장이 나무의 크기를 근거로 대략적인 범위를 알려주자 루안은 해당하는 나무들의 가지를 꺾어 일일이 냄새를 맡았다.

    현령은 그만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대체 뭘 하는 짓이지? 이미 꽃냄새가 이리 농밀한데, 설마 거기서 시체 냄새라도 날까 봐?’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지 않은가?

    그러는 동안 루안은 여러 차례 확인을 거친 후, 나무 세 그루를 찾아냈다.

    “이 세 그루 아래를 파낸다.”

    “네!”

    고찬은 일말의 의심조차 없이 관졸(官卒)들을 이끌고 땅을 파내러 갔다.

    첫 번째 나무 아래에서는 여전히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 나무 아래에는…….

    “뭔가 있습니다!”

    관졸이 찌른 삽 끝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부딪혔다. 휙 하고 삽을 꺼낸 관졸의 입에서 비명 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뼈 같습니다!”

    현령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설마? 진짜 시체라고?’

    사람들이 우르르 몰리며 그 주변을 빙 둘렀다. 직접 나선 고찬이 흙을 쓸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온 것은 역시나, 이미 하얀 뼈가 드러나기 시작한 손 한쪽이었다.

    고개를 든 현령은, 루안이 지목했던 나무 세 그루가 서로 인접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더구나 시신이 나온 나무는 세 그루 나무 중 가운데 나무였다.

    ‘진짜 이 꽃냄새 속에서 시취(屍臭)를 맡았다고? 대체 무슨 그런 코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백골의 발견은 시작에 불과했다.

    첫 번째 유골을 파낸 관졸이 그 아래 다른 유골이 더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결국, 소리들은 나무 세 그루를 모두 뽑아내고 계속 땅 아래로 파 들어가기 시작했다.

    복숭아나무 아래 숨겨져 있던 또 다른 세상이 제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의 얼굴은 공포로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겹쳐 쌓은 세 구의 시신이 나무 아래 매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몸을 낮춘 고찬이 유골의 특징을 세세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골격이 크고 건장하며, 무거운 것으로 보아 남성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나이 역시 그렇게 많은 것으로 보이지 않아, 청년인 듯합니다.”

    영산에서 실종된 문인 청년의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세상이 경악할 대사건이 실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루안의 목소리가 무겁게 울렸다.

    “계속 판다!”

    * * *

    처음엔 유신지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건강하고 체격도 좋은 열여덟의 젊은 청년이 잠깐 눈에 보이지 않기로서니, 무슨 일이 있으려고?

    어쩌면 장난기가 발동하여 협곡에서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그러나 유씨 가문의 하인들이 내려가 찾아보았지만,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자 끝내 유신지 역시 마음이 초조해졌다.

    “다른 곳으로 놀러 가신 것은 아닐까요?”

    지온이 묻자 유신지가 고개를 저었다.

    “둘째가 눈치가 없는 편이긴 하지만, 이 정도로 생각 없이 움직일 아이는 아닙니다. 저희가 다 이곳에 있으니, 가더라도 이야기는 하고 갔을 거예요.”

    지온이 그를 위로했다.

    “그저 길을 잃어버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익숙한 곳은 아니니까요.”

    고개를 끄덕인 유신지가 시종에게 말했다.

    “가서 사람을 불러오너라. 최대한 많이 불러와. 먼저 둘째부터 찾고 봐야겠다.”

    “네, 공자님.”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지서는 횡설수설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렇게 될 거라곤 전혀 몰랐어. 내가 가서 주워오려고 했는데 공자님께서…….”

    “그만해.”

    지온이 담담하게 지서를 꾸짖었다.

    “지금 그런 이야기는 소용이 없으니 우선 사람부터 찾고 봐야지.”

    그러고는 손수건을 꺼낸 지온이 소매를 묶으며 함께 찾을 준비에 나섰다.

    혹시나 제게 불똥이라도 튈까 싶어, 지서가 재빨리 외쳤다.

    “나, 나도 갈래!”

    지서를 가만히 보던 지온은 반대하지 않았다.

    ‘본인 때문에 생긴 일이니, 고생 좀 해도 되겠지.’

    지서는 본인에게 유리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열에 여덟은 그녀가 은근히 눈치를 주었기 때문에 유모지가 내려가 줍게 된 것일 터였다.

    유민이 말렸다.

    “그냥 여기서 기다리는 게 어떻겠어요? 아래는 다 풀숲이라 걷기도 힘들 거예요.”

    지온이 대답했다.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도움이 되겠죠. 제 사촌 동생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니, 저희도 최선을 다하는 게 맞아요.”

    “하지만…….”

    지온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유 소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조금 있다가 도울 사람들이 오면 길을 알려주시고요.”

    “네…….”

    지온이 유신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될까요?”

    유신지 역시 거절하지 않았다.

    “두 분은 절 잘 따라오세요.”

    “네.”

    작게 난 길을 통해 내려가던 지온은 루안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최근 영산이 위험하다고 했었는데. 설마 둘째 공자가 그렇게 운수가 나쁘려고?’

    * * *

    한편, 유모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사람 하나를 등에 업고 산을 떠돌고 있었다.

    “어르신, 대체 집이 어딥니까!”

    등에 업힌 노인의 거친 음성이 들려왔다.

    “바로 저 앞입니다. 조금만 가시면 곧 도착하실 겁니다.”

    유모지는 혼이 나갈 것 같았다.

    “그 말만 지금 몇 번이나 했잖아요.”

    그러자 그 음성이 다시 말했다.

    “공자님, 기다리기 힘드실 것 같으면 절 그냥 내려놓으시지요. 늙은이는 천천히 돌아가면 됩니다.”

    “…….”

    어르신이 노구(老軀)를 이끌고 돌아가는 모습을 떠올리던 유모지는 그냥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닙니다. 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 전 정자에서 쉬고 있을 때 지서는 끈질기게 그에게 말을 걸었고, 유민은 그 모습을 그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쳐다만 보고 있는 통에 유모지의 심기는 무척 불편했다. 

    그때, 지서의 손수건이 아래로 떨어졌다. 본래 신경 쓰지 않을 생각이던 유모지였지만, 지서가 한껏 불쌍한 얼굴을 한 채 자신을 바라보며 은근히 눈치를 주자 결국, 언제나 정의감 넘치는 유모지는 자기 자신과 타협하고 말았다.

    ‘하긴, 내려가 줍는 동안은 이 소저를 피할 수 있잖아?’

    귀도 잠시 휴식할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썩 괜찮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협곡으로 내려갔었다.

    어렵사리 손수건을 찾아 다시 올라가려던 그 찰나, 유모지의 귀에 어떤 음성이 들려온 것이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찾아가 보니, 한 늙은이가 다리를 붙들고 나무에 기대어 있는 것이 아닌가?

    보아하니 다친 듯 보였다.

    유모지가 입을 열었다

    “어르신,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그가 고개를 들자, 아는 얼굴이었다.

    “어, 어르신!”

    유모지가 놀라 소리쳤다.

    늙은이는 어제 만났던 화농이었다.

    ‘대체 이 사람이 왜 이곳에 있단 말인가?’

    화농 역시 그를 보고는 천천히 말했다.

    “공자님이셨군요, 이리 또 뵙게 되네요.”

    유모지가 웃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리 큰 영산에서 다시 만나다니요. 어르신, 다치셨습니까? 도와드릴까요?”

    화농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에 실수로 아래로 굴러떨어졌는데, 무릎이 안 움직입니다.”

    “그러셨습니까! 조심하셔야지요, 무릎은 상하면 쉽게 병이 됩니다. 어르신, 잠깐만 기다리고 계십시오, 제가 사람을 불러오겠습니다.”

    “잠시만요, 공자님.”

    유모지가 가려던 걸음을 멈췄다.

    “네?”

    “번거롭게 그러실 것 없습니다. 집이 저 앞입니다. 공자님께서 굵은 나뭇가지 하나만 가져다주시면 제가 그걸 짚고 천천히 돌아가면 됩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사람을 불러오는 것도 시간이 꽤 걸리는 터라, 유모지도 그리하겠다고 대답했다.

    굵은 가지를 가져다주자, 화농이 그것을 지팡이 삼아 몇 걸음을 디뎠다. 그러나 그는 곧 넘어질 뻔하고 말았다.

    척 보니 이 상태로는 안 될 것 같아 유모지가 말했다.

    “차라리 제가 부축해드리겠습니다. 댁이 바로 근처지요?”

    “그렇습니다.”

    조심해서 금방 다녀오면 문제 될 것 없겠다 싶었던 유모지가 곧장 화농을 부축했지만, 화농의 상처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결국, 그렇게 빨리 일행들이 있는 곳에 돌아와야 하는 유모지가 그를 등에 업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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